*** 고향이란? ***
2003.01.25 글 / 이영화 (이윤현회원의 막내딸)
연말이라 텔레비전에선 송년특집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얼마 전 한TV프로그램에서 그간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던 내용을 간추려 보여주는 것을 보았다.
집에서 구박만 받던 가발공장 직공에서 미 육군 예비역 소령이 된 사람. 할복자살을 기도했던
이혼녀에서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 등 저마다 눈물 없이는 얘기할 수 없는 사연들을 털어놓았다.
따지고 보면 모든 사람의 인생이 한 편의 드라마지만. 내 아버지의 삶 역시 소설 한권은 쓰고도
남을 장편의 드라마 같기에 그 프로그램을 보며 나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아주 가끔. 자신의 어려웠던 유년시절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시곤 하신다. 그 어려웠던
시절 가난에서 오는 배고픔에서부터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외아들로서 하루하루 살면서
느껴야 했던 고난들까지 요즘의 신세대인 나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들을 어린 나이에 겪으셨던
것이다. 평소에는 누구보다도 강인한 분이신 것 같이 보이지만. 할아버지 제삿날이면 십 수 년 전
할아버지 장삿날 뼈 속까지 시렸던 추위를 회상하시며 남몰래 눈시울을 적시시는 것을 나 알고 있다.
게다가 고향을 떠나 타향에 정착하기까지 겪으셔야 했던 역경 역시 그 이전의 것과 다를 바 없으셨던
것 같다. 정든 고향을 등지고 씨족사회나 다름없는 동네로 이사를 오셔서 배타적인 시선 속에서 시작한
새 삶은 그야말로 하나부터 열까지 가시밭길이었으니 말이다. 전쟁 등으로 인해 모두가 힘든 시절이었지만.
여러 사정상 남달리 더 힘든 여건이셨던 아버지는 이를 악물고 사셨다고 말씀하시곤 한다.
아버지의 그런 얘기를 듣고 있을 때면 지금의 나의 방황과 고민은 사치라는 생각과 함께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항상 바르고 선하게 살 것이며 사회에 좀이 되지 말고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아버지는 과수원을 하시면서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시면서 삼대 째 배
농사를 지으신다는 자부심으로 항시 주인 의식과 장인정신을 강조하신다. 한 번은 아버지와 내가 있는
자리에서 어떤 분이 아버지가 배 농사지으시는 것이 어떠냐고 물으신 적이 있었다. 그런 질문은 처음
받았지만. 난 당당히 대답할 수 있었다. 좋은 배 생산하시니까 좋은 일 하시는 것이라고. 아버지는
요즘도 서울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 수업과 벤처농업대학 강의를 들으시며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
대응하고자 노력을 않지 않으신다.
날로 높아지는 소비자의 요구와 엄청난 시장개방의 물결 속에서 한국농업의 미래를 걱정하시면서 살아
남기 위한 길을 연구와 투자임을 강조하신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하시는 노력에 존경심을 넘어
때로는 경외심마저 들기도 하지만. 하루도 집에 계실 틈이 없이 전국을 다니시며 배우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고 있을 때면. 자식으로서 이제는 조금은 쉬엄쉬엄 하셨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청담동에 산지도 어느새 이십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버지께서 들려주시는 옛 압구정동의
모습은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모래사장이 있었던 한강에선 여름이면 수영을. 겨울이면 썰매를 탔고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넜으며 온
동네가 과수원과 논밭 이었다는데. 그 곳엔 지금 한강시민공원과 대교들이 있고. 그 논밭은 젊은이들의
거리가 되어 화려한 네온 싸인 간판과 세련된 외제브랜드들이 수를 놓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시대는 변하여도 추억은 남듯. 아버지께 압구정동은 여전히 정겨운 동네이신 것 같다.
아버님의 마음의 고향. 압구정 고향 어르신 여러분 모두 계미년 한해 건강하시고 날마다 좋은 일만
있으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