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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에는 일종의 불꽃이 있는데, 삶이나 죽음보다도 더 강렬한 그것은 차라리 ‘영혼’이라고 불러야 하리라. 자존심과, 고집과, 용기 이외에도 형언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무엇이 있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임을 기뻐하면서도 전율하게 만든다.”》
내면의 혼란 방향 잡아주는 길라잡이
산란기가 되면 태생지로 돌아가는 연어처럼 인간에게도 귀소 본능이 있다. 카잔차키스에게 이 본능이 발동한 건 1955년 어느 날. 스위스 루가노의 별장에서 머물던 그는 연필을 들었다. 일흔두 살. 인생이 저무는 석양을 바라보며 그는 태어날 적 희미한 기억부터 떠올렸다.
‘영혼의 자서전’은 ‘그리스인 조르바’로 알려진 그리스 출신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서전이다. 영혼이라는 수식이 말해주듯 자서전에는 단순히 인생의 이력만이 담기지 않았다.
세 살 때 맡았던 여인의 체취부터 별과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 1년 내내 말린 포도가 폭우에 휩쓸려 떠내려갔던 일까지…. 어릴 적 일들을 재구성하는 그의 기억력은 또렷하고 세세하다. 자서전에 이런 사소한 기억까지 늘어놓는 것은 “꿈에서처럼 언뜻 보기에 하찮은 사건들이 어느 정신 분석가보다도 더 영혼의 참되고 꾸임 없는 얼굴을 잘 드러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두 개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해적 출신 아랍인 아버지의 조상이 불이라면, 농민 출신 그리스인 어머니의 조상은 흙이었다. 그는 “타협이 불가능한 요소를 타협시키고, 허리춤에서 조상의 짙은 어둠을 끌어내어 내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빛으로 변형시키는 것이 내 의무, 하나뿐인 내 의무라고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런가 하면 그의 뼛속에는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터키인들의 박해를 받으며 싹튼 증오와 공포가 박혀 있었다. 대낮에 터키인이 기독교인들을 학살하는 걸 지켜봤던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 눈에 보이기도 한다면, 그 시간에 나는 내 영혼이 성숙하는 과정을 틀림없이 보았으리라. 나는 몇 시간 사이 갑자기 아이에서 어른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터키인들로부터 자유를 찾으려는 열망은 시간이 흐르며 헛된 사상, 모든 우상과 싸우려는 새로운 투쟁으로 번져나간다. 그리고 죽음조차도 간섭할 수 없는 자유의 극한은 1917년 일꾼으로 고용한 기오르고스 조르바를 만나며 꿈꾸게 된다. 두 권의 책에는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가 담겨 있다.
두툼한 양장본 두 권짜리에 1500쪽인 자서전은 가뜩이나 가득 찬 여행가방, 여행서적도 아닌 자서전을 챙기려는 명분을 점점 사라지게 한다. 하지만 생활과 떨어진 공간에 내던져진 나를 되돌아보는 여행을 하고 싶다면, 이 책은 낯선 길이 아닌 혼잡스러운 내면의 방향을 알려주는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파리, 빈, 베를린, 캅카스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한 흔적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카잔차키스의 개인사를 통해 당시 유럽의 역사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도 덤. 이 책을 추천한 권삼윤 씨도 “유럽 문화의 뿌리와 자기 영혼의 뿌리에 대해 이야기했으니 그걸 읽다 보면 유럽 전체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책을 쓰고 2년 후. 그는 독일의 한 병원에서 독감으로 사망했다. 시신은 크레타에 안치됐고 ‘영혼의 자서전’은 유작이 됐다. 묘비에 새겨진, 생전 준비해뒀던 비명(碑銘)이 인상 깊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염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