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5일차, 어제처럼 오늘도 잠시 피렌체 밖으로 나갔다 오는 날이다. 오늘은 미스터 체키니 한테 가는 날이다.
두오모나 쿠폴라만큼 피렌체의 유명한 명물이 하나 또 있는데, 바로 소고기다. 피렌체에 가면 소고기, 그것도 티본 스테이크를 꼭 먹어야 한단다. 피렌체가 왜 스테이크가 유명할까? 아마도 이태리의 가죽제품이 유명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소가죽을 얻기 위해서는 당연히 소고기가 나올 테니 말이다. 가죽을 얻기 위하여 키우는 소의 고기가 맛있을까? 아마도 좋은 가죽도 얻고, 좋은 고기도 얻을 수 있도록 개량해왔을 수도 있겠다. 만약 스테이크를 안 먹으면 피렌체 갔다 온 것이 모두 허사라도 되는 것처럼 말들을 많이 하기에 나도 한 번 무리해서 그 티본 스테이크가 먹고 싶어졌다. 그러나 피렌체 스테이크는 1kg이 기본, 1인분은 따로 팔지 않는단다. 우리나라 블로그를 수없이 검색했지만 피렌체에서 혼자서 피렌체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따로 열심히 찾아 본 것이 2018년도 영문판 Lonely Planet 이태리 편이었다. 거기서 찾아 낸 것이 피렌체에서 3~40km쯤 떨어진 아주 작은 마을 Panzano에 전세계에 명성이 자자한 Dario Cecchini라는 소고기 장인이 하는 바베큐전문 식당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Lonely Planet은 인터넷이 없던 시절, 백패커들에게는 경전과 같은 안내서였다. 물론 인터넷이 일반화 된 지금에야 그 명성이 많이 퇴색하기는 했다. 지난 7월 쯤에 두바이에서 거금 100디람(3만원)을 주고 샀는데, 10월10일 밀라노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게 될 가르다 Garda 호수의 말체시네 Malcesine의 몬테 발도 Monte Baldo도 이 책에서 찾아 낸 것이다) 체키니의 식당은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정육식당과 같은 곳이다. 시스템이 좀 특이해서 테이블을 예약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극장처럼 좌석을 예약하게 된다. 손님들은 큰 화덕 앞에 있는 긴 테이블 양쪽에 마주 보고 앉는다. 금액도 무조건 1인당 50유로. (나한테는 좀 과분한 금액이긴 한데, 대신 다른 때 식대를 아끼려고 간편식으로 많이 떼웠다. 호박씨 하루종일 까서 한 입에 털어 넣기?) 반드시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만 한다. 포도주 무제한 제공이고, 소 부위별로 순서에 따라 제공되는 바베큐도 원하는 만큼 준다. (말하자면 이태리식 소한마리 식당이다) 이 식당은 말하자면 최고의 피렌체 스테이크를 제공하면서, 모르는 여행자끼리 실컷 먹고 마시며 떠들 수 있는 파티 공간을 제공하는 곳이다. 나는 피렌체 마지막 날인 10일 오후 1시 코스를 예약했다. 나는 전날 시에나에서 돌아오자마자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서 판자노행 버스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1시 차가 있어 아침 일찌기 아직 보지 못했던 두오모 내부를 둘러보고 바로 터미널로 와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8시 쯤에 두오모 앞으로 가니,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보니 개장 시간이 아침 10시. 10분쯤 지나자 사람들이 내 뒤에 줄을 서기 시작했고, 30분쯤 지나자 줄이 어느새 3~40m나 늘어섰다.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미리 개장 시간을 확인하지 않은 덕에 두오모 내부를 구경할 수 있었다. 두시간 가까이 같이 줄을 선 사람들과 친해져서 별로 지루한 줄도 몰랐다. 못 알아 듣는 건, 못 알아 듣는대로, 말하는 건 긴 말이 필요치 않았다. 그래도 서로 웃으며 즐거운 대화가 되었으니 신기하다. 만약 10시에 개장인 것을 알고 조금이라도 늦게 갔으면 버스를 타는 시간에 맞출 수 없었을 것이다. 1착으로 들어가서 서둘러 둘러보고 버스 터미널에 가니 11시 5분전. 그런데 시간표에 나와있는 11시 차가 없단다. 다음 버스가 언제냐고 하니 11시 30분. 판자노에 12시 55분 도착 예정. 정시에만 운행이 된다면 겨우 시간에 맞출 수 있는 상황. 그러나 버스는 무려 20분이나 연착을 해서 20분 정도 늦었다. 비록 지각을 하게 생겼지만, 버스 안에서 보이는 토스카니 지방의 잘 가꿔진 구릉들의 풍경이 기가 막혔다. 차안에서 연신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토스카나의 구릉지의 환상적인 경관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어서 렌트카로 이 지방을 여행하지 못 하는 것을 너무나도 애석해 했었는데, 그나마 시외버스 투어로 그 아쉬움을 조금은 달랠 수 있었다.
식당에 도착하니 이미 30명 가까운 사람들이 마주 보고 길게 앉아, 먹고 마시고 있었는데, 벌써 불콰하니 취해들 있었다. 리셉션에서부터 웰컴 와인으로 일찌감치 마시기 시작 했을 것이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앉으니 벌써 옆자리 친구가 내 와인 잔을 채우고 건배를 하잔다. 내 옆은 이태리 볼로냐에서 온 남녀 젊은 친구들 네 명이 있었고, 맞은 편은 브라질에서 온 부부인데, 부인은 브라질에서 태어난 일본인이었다. 그리고 저 쪽엔 일본에서 온 젊은 남자 1명과 독일에서 온 처자들 등등 수없이 건배하며 즐겼다. 한국말로 치어스를 뭐라고 하느냐고 물어봐서 건배라고 했는데, 일본 친구에게도 물어 간빠이 라고 하니 한국말과 비슷하다고들 놀랐다. 둘 다 중국의 같은 한자의 어원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다고 설명을 한다고 했는데 잘 못 알아 듣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이태리어로, 브라질어로, 독일어로, 한국어로, 일본어로 각자 브라보를 수도 없이 외치며 먹고 마셨다. 바로 앞에 화덕에서는 큼지막한 고기 덩어리가 구워지고 있고, 식당 직원들은 그냥 고기만 굳고 서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익살맞은 퍼포먼스로 좌중을 웃겼다. 이날은 나도 와인을 좀 많이 마셨다. 혼자 외로운 외국 여행 중에 이처럼 떠들석하고 즐거운 파티라니! 술기운까지 빌려 즐겁다 못해 신나고 행복했다. 다만 너무 마신 덕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당장 토할 것처럼 속이 메슥거려 엄청 힘든 대가를 치루긴 했다.
맨 앞 네 명이 유쾌한 이태리 친구들, 저 쪽 까만 친구가 일본인, 다음은 독일에서 온 처자들... 그러고보니 내 앞 브라질 부부가 사진이 없네... 참 점잖고 친절한 사람들이었는데.: 가장 먼저 나온 생고기 다진 것. 웨이터는 체키니 사시미라며 나눠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