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자로 불려갔다. 난생 처음 가본곳이다. 인근지역이 변산반도임도 처음알았다. 후배중 한놈은 변산반도에서 유기농하면서 살겠노라고 참게농법을 배우니 우렁이농법을 배우니 한적이 있었다.
원주 부론집에서 오후 2시에 출발하여 원주터미널에서 도착하니 전주까지가는차가 4시에나 있어 3시 대전행 차를 탔다. 청주를 들려 대전도착하니 5시30분 다시 6시에 전주가는 차를타고 7시30분 전주에 도착 다시 부안행 차를 타고 도착하니 8시40분이었다. 6시간 40분 걸려 도착한 셈이다.
터미널 근처 집회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대략은 알고있었지만 이렇게 매일같이 집회를 하고 있었다니 놀라움을 감출수 없었다. 당시 83일째 집회였다.
이미 집회는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고 가수 김원중, 백창우 이런분들이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원래는 8시 초기에 공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가수들 노래공연이 이어졌고 대책위 상황보고에 이어 마지막으로 또랑광대편 뭉치이야기를 했다.
공연을 하기전에 문득 4-5년전 강원도 횡성 청일면 유동리 버들골 살림굿 생각이 났다.
그곳은 2년여에 걸쳐 울진에서 건설된 핵발전소 전력을 수도권에 공급하는 송전탑 건설의 부당함과 반민주적이고 반생태적인 에너지 산업정책에 대한 싸움이기도 하였다. 송전탑 약 400기가 백두대간을 따라 72만 5000 볼트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압전기를 송전하는데 문제는 사람이 살고있는 집위로 , 돼지가 길러지는 축사위로 마구잡이로 지나가고 있어 전자파 피해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고 송전탑 건설을 위해 임로를 만드느라 산림을 파헤쳐 산사태가 일어나는등 주민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주민들은 이에 맞서느라 농사일도 팽개쳐 가며 그 긴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유동리란 버들골이란 뜻의 이름인데 투쟁의 한 양식으로 어느날 버들골 살림굿을 제안받고 비나리를 해드린 것이 인연이 되어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결국 우리 모두골은 오랜만에 이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투쟁사례극 백두대탑을 마당극 작품으로 만들어 이분들을 위로하고 전국적으로 홍보하는 데 일조한 적이 있었다.
그 싸움은 송전탑이 있는 마을마다 분쟁이 그치질 않았는데 가장 마지막까지 싸움을 벌이다 결국 한전의 보상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많은 아쉬움을 남겼던 싸움인데 그 싸움에서 우리는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에 많은 의문부호를 갖게 하였는데 그 의구심이 이날 부안에서의 싸움에서 다시 강하게 분출되었던 것이다.
왜 우리나라 전력공급 체계가 획일적이어야 하는가 그것도 거의 반이나 되는 양을 핵발전으로만 공급하는 것인가? 또 이 핵발전소는 얼마나 위험한가, 지역 분권별로 특성에 맞는 전력산업개발은 안되는 것인가? 이런 의문으로부터 핵발전소가 서양 선진국에서는 사양산업으로 폐기하고 있는 추세인데 왜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증축하지 못해서 안달인가
알아보니 핵발전소 폐기물은 현재있는 구역 자체적으로 수용이 가능한데 문제는 앞으로 핵발전소가 더 건설될 경우를 생각해서 폐기장 부지를 선정한다는 것이다. 결국 핵 이외의 대체에너지 개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핵발전으로 밀어부치는걸 기정 사실화 하다보니 폐기장 선정도 밀어부칠 수밖에 없던것이고 이에 떡고물에 환장한 부안군수가 이를 덥석 물었다는 것이다.
부안은 현재 기름물에 불을 당긴꼴이다. 초기 민의를 반영시키지 못한것도 모자라 경찰력으로 무력진압을 한 것이 오히려 부안군민들을 다 투사로 만들어 버렸다.
핵! 그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지난 80년대 구소련의 체르노빌 사건이다.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수십만명이 암으로 숨지고 수백만명이 방사능에 오염되어 시름시름 앓다 죽어갔다.
나는 잠시 지난날의 싸움을 생각하면서 이웃동네 횡성의 이야기가 저 남도해안의 지역과도 똑같은 얘기라는 생각이 들면서 창작판소리 또랑깡대전을 "뭉치의 죽음"을 선택했다.
사실 창작판소리 "뭉치 이야기"는 실제 우리집 강아지 이야기인데 이름과 성장과정은 현실이고 동네돌아 다니는 이야기는 픽션으로 꾸민이야기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지난 9월20일 서울 인사동에서 또랑깡대 예선대회에 참가하기 열흘전 그러니까 지난 추석연휴 첫날 9월 10일에 뭉치녀석이 지나가는 차에 치어 죽었다. 나는 이사건 때문에 인사동에 참여할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결국 또 한번 가상으로 꾸며 공연에 임했다. 공연의 반응은 예상외로 좋았으나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놈은 저세상에 갔는데 작품으로는 아직도 살아있어 아들놈하고 알콩달콩 어쩌고 저쩌고 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고 있자니 찝찝한 기분을 떨쳐낼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부안공연에서는 솔직하게 우리집 강아지의 죽음을 알렸다. 물론 시간도 없고 능력도 모자라서 죽음을 부각시키는 사설과 소리는 하지못하고 맨마지막에 엇중모리에 실어 알리는 정도에 그쳤으나 그렇게라도 사실을 알리면서 나는 내가 숨기고 있었던 비밀을 고백할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한적한 마을에 평화롭게 살았던 한 생명이 문명의 이기 때문에 어느날 허망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엇중모리 : 이렇듯 뭉치놈은 동네에서 겪은 일을 가끔씩 아들놈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해
주다가 지난 추석연휴때 지나가는 자동차에 치어 하늘나라로 올라 갔답니다
비록 뭉치놈은 허망하게 죽었지만 여기계신 부안군민들은 똘똘 뭉치어서 문명
의 이기를 바로알고 바로세워 공해없고 평화로운 땅을 후손 만대에 물려주길
기원하나이다 부안군민 만만세--
부안은 한세기에 세 번의 혁명을 하고 있다고 한다. 1894년에 일어났던 동학혁명이요 그다음이 3.1만세 운동 그리고 지금의 핵폐기장 반대운동 이란다.
다음날 또랑광대를 챙겨주신 김병국씨와 새만금간척사업 현장을 보고 변산반도로 가서 채석강을 구경하고 정읍까지가서는 동학격전지 황토현 전적지와 전봉준장군이 처음 봉기를 했던 말목장터를 둘러보고 정읍 터미널에서 귀가 하였다. 최고의 대우를 받은 셈이었다.
바쁜 와중에도 역사,생태, 관광 기행을 안내해주신 어르신의 여유와 배려가 눈물나게 고마웠다. 부안! 그 먼거리가 마음으로는 한층 가까운 이웃으로 다가온 출장이었다..
첫댓글 형님!! 겁나게 수고 하셨습니다...
뭉치ㅜ.ㅜ 한번두 못봤는데... 얼마나 귀여웠을까... 엉엉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