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장이 임씨
씨족집성촌 동네 들머리에
방 한 칸과 대장간을 차려놓고
80호 농가와 이웃마을의
농기구를 관장했던
임 편수片手라 불리던 사내
땅딸막한 키
짧게 깎은 머리, 송충이 눈썹
곰보에 딸기코
웃통 벗고
메질할 때 꿈틀대는 근육에
과부들 고개 돌리고
통방울눈 희번덕거리며
가래침 뱉을 때
심부름온 애들 질겁을 했다
일없는 날이면
둠벙에서 낚은 민물고기로
고주망태가 되기도 하고
농기구 벼리려 오는
농투성이들 꾀어
밤새 노름으로 동네 아낙들
원성을 사기는 했어도
낫 이빨 안 나간다고 근동에서
손재주는 인정받았다
흘레붙는 개 앞에서
용두질을 한다든지
성질을 못 이겨
동회洞會 하는 날
젊은이들과 드잡이하던
괄괄한 불한당이었지만
위계질서로 숨 막히는 집성촌에
미꾸라지 양식장의 메기처럼
활력을 불어넣기도 하였다
사십 겨우 넘긴 봄
어느 해지는 어스름에
간암인지 간디스토마인지는
모르지만 입버릇처럼
-이 더러븐 세상! 을 외치고는
천방지축 날것의 생을 접었다
*시작노트
지나고 나면 그 사람의 허물보다
따뜻한 추억이 먼저 떠오른다.
한해 여름, 모심기 끝내고 온 동네 사람들이
못물을 빼 천렵을 할 때, 가래로 잉어 한 마리 잡고서
-동네 사람들아 이래도 내가 고기 못 잡느냐 고
의기양양하게 외치던 모습은, 지금도 내 마음에
흑백사진으로 선명하게 남아있다.
나를 멸시하지 마라는 경고의 의미도 있었으리라.
아버지 돌아가시고 한 세대가 막을 내렸다.
이제 내 차례다. 아재의 명복을 빈다.
*편수-절을 짓는 목수나, 단청이나 불화를 그리는
사람이라고 사전에는 나와 있는데, 어른들은
대장장이를 그렇게도 불럿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