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kolaus Kopernikus)
생애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1473년 현재의 폴란드 중북부에 있는 당시의 한자동맹 도시인 토룬(폴란드어 Toruń,
독일어 Thorn)에서 관리이자 주철업을 하는 아버지 니콜라스 코페르니크과 당시의 프로이센의 슐레지엔 지방 출신인
어머니 바르바라 바첸로데 사이에서 네명의 자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열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잃고 외삼촌 밑에서 여의고 토룬에서 초등 및 중고등학교를 다닌 후 코페르니쿠스는
1491년 당시 독일의 작센에 속했던 폴란드 남부지방의 대도시 크라카우(현 크라쿠프)로 가 대학에 입학하여 1494년까지
수학 및 천문학을 공부하다. 대학을 졸업한 후 1495년 이탈리아의 볼로냐로 가 삼촌의 권유로 신학과에 입학한다.
이탈리아에 머무르면서 코페르니쿠스는 또한 로마 및 파도바 대학에 등록하여 강의를 들은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흔히 대담하고 획기적인 생각을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태양과 별이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겉보기
운동과는 달리, 사실은 지구가 돌고 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는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고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변혁으로 불리는 '과학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1543년에 출간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에서 그는 지구와 태양의 위치를
바꿈으로써 지구가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님을 천명했는데, 이것은 당시 누구도 의심하지 않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체계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도전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인간은 그 위에 사는 존엄한 존재이며 달 위의 천상계는 영원한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중세의 우주관을 폐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는 관측 결과와 완전히 부합한 것은 아니어서, 이후 많은 과학자들 특히 케플러, 갈릴레오 갈릴레이,
뉴턴 등에 의해 수정되고 보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제 문명세계에 사는 우리들 중 지구가 돌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