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들이 물에 뛰어들기만 했어도···”
세월호의 침몰을 지켜보며
이성동
영국의 시인 티 에스 엘리엇(T.S Elliot)은 <황무지>라는 작품을 통해서 생명의 부활을 기대하는 찬란한 계절 4월을 가사상태(假死狀態)를 이어가는 현대인에게는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다. 2차대전으로 숱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참담함 속에서 그 절망을 의식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냉정하고 황폐한 정신세계를 그렇게 묘사한 것이다. 지난 4월 16일 오전 8시 55분 뿌연 안개 속의 진도 앞바다 거센 조류가 일고 있는 맹골수도를 빠르게 항해하던 세월호가 꽝 소리와 함께 기울다 침몰했다. 신속하게 대응했더라면 승객을 거의 다 구조하고도 남을 골든타임 99분을 허둥대다 대형 참사를 유발했다. 이 속에는 어른들의 잘못으로 미처 피어나지 못하고 비명에 숨진 경기도 안산 단원고 꽃봉우리 같은 아이들이 다수(250명 추정)가 있어서 우리를 참으로 비통하게 하고 인천 용유초등학교 동창생 회갑여행 희생자들과 그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일반인 희생자들을 포함 총 300여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돼 우리들의 마음을 한없이 안타깝게 한다.
세계 해운사에서 4월의 잔인함은 또 있다. 우리에게 영화를 통해 잘 알려진 영국의 초호화판 유람선 타이타닉호의 참사도 102년 전 1912년 4월(14일)에 발생했다. 승객 2200명을 태우고 뉴욕으로 항해 중 대서양의 뉴펀들랜드 부근에서 빙산(氷山)에 부딪혀 침몰된 것이다.
일본으로부터 구입한 세월호는 설계구조를 임의대로 변경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사고 당일 배의 균형을 잡아줄 맨 아래층 화물칸에 세 배 이상 과적한 화물을 바닥에 허술하게 결속한 채 3, 4층에 승객 476명을 태우고 시정(視程)이 흐린 운무(雲霧) 속을 빠른 속도로 운항하면서 갑작스레 방향을 틀어 대형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무지와 무능 무책임이 불러일으킨 대형 참사이다.
21년 전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 훼리호 참사도 이와 비슷하나 개선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 사건을 거울삼아 그동안 철저한 안전점검과 위급상황에 대비한 조직적인 훈련을 평소에 했어야 했다.
이러한 참사가 계속 일어나는 원인은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의 안전불감증과 선장, 승무원으로서 갖춰야 할 책임감의 결여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의 결정적인 원인은 물살이 거센 맹골수도에서 선장이나 일등항해사가 조정해야 할 키를 경험이 부족한 초보 항해사에게 맡겼다. 이 외에도 세월호의 부실한 운영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선박탑승 인원의 유사시 생명줄인 구명정도 46개나 달려 있어도 1개 외는 모두 펴지지도 않고 사용할 수 없는 무용지물이었다. 평소 훈련을 통해서 낡은 것은 교체하여 사용이 가능한 상태로 항상 유지했어야 했다. 위급한 상황에서 따라야 할 매뉴얼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과적위반은 물론, 탑승인원이 몇 명인지 조차 몰라 정원의 규정은 있으나마나였다. 배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위급상황을 통제하는 콘트롤타워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승객을 빨리 탈출시키라”는 진도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지시가 있었으나 선장과 승무원들이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 허둥대다 배가 침몰된 것이다.
평소에 훈련이 없었던 탓이다. 사고를 최초로 119상황실에 신고한 사람도 승무원이 아닌 안산 단원고 최덕하 군으로 밝혀졌다. 마땅히 승무원이 해야 할 신고를 학생이 한 것이다. 그 신고를 접수하고 현장에 첫 번째로 도착한 목포항공대 소속 512호 헬기조종사 김재선 경위는 “승객들이 물에 뛰어들기만 했어도 많이 구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사를 넘나드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일들이 침몰하는 세월호 속에서 긴박하게 진행됐다. 174명의 귀중한 생명을 구조하는 단초를 제공한 안산 단원고 최덕하 군은 세월호 선미(船尾)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구명동의를 학생들에게 일일이 나눠주며 피신시켜 20여명의 학생들을 구조한 세월호의 히로인 박지영양, 그녀는 끝내 주검으로 발견되었고, 안산 단원고 최 군의 담임인 남윤철 교사는 갑판까지 올라가 구조를 받을 수 있었지만 아이들을 더 구하겠다며 선내로 들어갔다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검도 3단의 유단자 정차웅 군도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벗어주고 다른 친구를 구하려다가 생일을 하루 앞두고 희생됐다. 지난해 교편을 잡은 최혜정 교사도 끝까지 제자들을 구조하다가 선실의 학생들과 운명을 같이 했다. 이 외에도 자기가 입고 있던 구명동의를 학생들과 여인들에게 벗어준 의로운 이들이 있었음이 뒤늦게 속속 밝혀지고 있다. 최덕하 군의 용단있는 기지(機智)와 이 같은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을 발휘한 사람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이번 세월호의 대참사에서 그나마 174명의 귀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 이 얼마나 거룩한 희생인가! 이런 의인(義人)들이 있었는가 하면, 배가 기울어지는 상황에서 승객들을 먼저 대피시켜야 할 선장과 승무원들이 “배를 떠나지 말고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을 해 놓고 그들은 그들만이 사용하는 통로를 통해 세월호에서 먼저 빠져나와 최 군의 신고를 받고 해경이 출동시킨 구조선에 제일 먼저 올라탔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도모해야 할 선장과 승무원들이 마땅히 져야 할 책임과 의무를 철저히 외면한 것이다. 이뿐 아니다. 세월호의 운영 실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총체적인 부실로 드러났다. 또 세월호 침몰의 배경에는 정부를 대신해서 선박운항관리를 맡은 ‘한국해운조합’과 선박의 안전을 검사하는 독립기관인 ‘한국선급’이 해양수산부 또는 해양경찰청 퇴직 공직자들이 재취업하는 대표적인 “낙하산”기관들로 드러났다. 관리감독을 하는 기관과 받는 기관이 손을 맞잡고 일하는 셈이니 운영상의 부실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리고 세간에 많은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세월호의 선사(船社)인 청해진 해운의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회장에 대한 부정축재, 재산은익, 금융권의 불법특혜 대출 등 회사의 탈법운영에 대해서도 금융감독원과 사정당국이 현재 조사를 진행 중에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여객선 참사의 교훈이 되고 있는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던 120년 전 당시 승객 구조 상황은 선장과 승무원들의 책임감과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도 없었던 이번 세월호의 허둥대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타이타닉호의 선장이었던 에드워드 존 스미스(Edward Jhone Smith) 씨는 노약자와 여인들을 먼저 탈출시키고 승무원들에게 “영국인답게 행동하라(Be British)"고 말하며 자기는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서 끝까지 승객들을 구하고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하는 투철한 사명감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선박운항의 세계적인 귀감이다.
민족 전체를 가사상태(假死狀態)로 빠트린 이번 대참사, 214명의 사상자를 낸 경주 마리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가 발생한 지 두 달만에 세월호 참사가 또 발생했다. 이 어리석은 역사의 순환은 다시는 이 땅에서 재현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정부에도 분명한 책임이 있다. 정부는 이번 참사를 계기로 해운업이 새롭게 탄생할 수 있도록 선박운영체제를 강력한 정부감독 관리체제로 바꾸고, 지금까지 해운업에 깊숙이 뿌리박은 유착관계의 단절과 그 책임자를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이 처참하고 암담한 비극의 현장에도 우리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구조하고 한 구의 시신이라도 더 인양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목숨 걸고 활동하고 있는 해경과 해군, 민간 잠수부들, 그리고 유족들과 비통한 마음을 함께 나누며 불철주야 이들에게 헌신적인 봉사활동으로 힘이 되어주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지난 5월 6일에는 자기 아들과 동갑내기 아이들을 바다 밑에 그냥 둘 수 없다며 사고 현장 바다 속에 뛰어들어 가이드라인을 설치하다 숨진 민간 잠수사 이광욱 씨(53)의 죽음이 천안함 사고 때 병사들의 주검을 인양하려다 순직한 한주호 준위처럼 우리를 또 슬프게 한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내 가족 내 형제를 잃은 슬픔에 젖어있다. 전국 시군구에 설치된 희생자 분향소마다 비명에 숨진 영령들을 애도하는 인파가 물결을 이루고 진도 팽목항 길게 늘어선 방파제 난간에도 ‘언니 오빠들 하늘나라로 가요’ ‘꼭 살아서 돌아와요’라는 비원(悲願)을 노랗게 줄에 단 아이들도 있다. 그 노란 리본들이 바닷바람에 한 없이 하늘거리고 있다. 그것들은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며 차가운 바다 밑 세월호 격실에서 애통하게 숨진 어린 넋들이 살려달라고 외치는 단말마(斷末魔)의 아우성들이다.
아! 세월호에 갈기갈기 찢긴 이 아픈 상처들이 어느 세월에 아물고 평온을 되찾을 수 있을까, 오호(嗚呼)통재(痛哉)라, 오호(嗚呼) 애재(哀哉)라!
천지신명이시여! 바라옵건데 이들을 인도하시어 편안하게 잠들게 하옵소서.
첫댓글 성동아 글올려주어 감사하다 현중일에는 꼭 올라온다니 반갑기 그지없다.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여라.
열 일 제쳐놓고 가겠습니다. 그리운 이들이여! 한햇동안 얼마나 변했나 보고싶구려, 그때 만나서 또 회포 나누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