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첫날 저녁, <과학, 세상을 보는 눈 : 온생명의 관점에서> 공개특강에 60여명이 모였습니다.
최무영 교수님은 과학이란 무엇인가? 로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과학은 과학적 방법으로 어떤 것을 탐구, 이해하는 것인데요. 자연과학은 자연을 탐구하고, 사회과학은 사회를 탐구합니다. 그래서 과학적 방법으로 자연과 사회를 탐구하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연과학에서 자연은 인간을 포함하여 전체 우주를 대상으로 합니다.
21세기 현대물리학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가 '복잡계'입니다. 구성원끼리 이해 상충으로 발생하는 것이 '쩔쩔맴(frustration)' 현상인데요. 쩔쩔맴이 일어나는 구성원이 많아지면 변화무쌍하고 변이성이 커지는데, 이를 복잡성이라 합니다. 복잡성은 하나의 상태로 규정할 수 없습니다. 흔히 변이성이 작은 안정된 상태를 좋아하곤 하는데요. 헌데, 이 상태는 생명으로 보면 죽은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현상 가운데에는 봄여름가을겨울처럼 질서있는 모습이 있고, 날씨처럼 예측이 어려운 무질서한 모습이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자연현상은 질서와 무질서 사이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가 변이성이 큰 복잡성이 있는 상태인데요. 구성원 하나하나가 복잡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 구성원 묘하게 짜여져 있어서 복잡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상호작용하는 많은 구성원이 떠오름(창발, emergence)이라는 사태를 통하여 복잡성을 갖습니다. 복잡성은 전체가 부분에 있고 부분이 전체에 있는 모습을 띄고, 모호하며, 산만하고, 불안정합니다. 복잡성 상태는 주위 환경과 교류를 하기 마련인데요. 그래서 총체성의 관점이 중요합니다. 생명과 사회는 대표적인 복잡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포가 혼자 있으면 살아있을까요? 라는 질문에 우리는 대번에 아니오 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살아있다고 하는 인간을 지구 밖으로 떨어뜨려 놓으면 살지 못합니다. 생명은 그 구성원 사이의 협동 현상입니다. 생명은 개체 사이 관계, 그리고 환경과 관계가 매우 중요합니다. 개체로서 낱생명, 다른 낱생명과 환경을 합친 것(보생명)을 포괄한 것이 온생명입니다. 낱생명은 온생명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의존적 존재입니다. 온생명이 망가지면 낱생명은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 관점에서 환경파괴와 기후위기가 인간의 생존과 결부된 문제입니다.
이어서 이러한 과학이 인문학, 예술과 이어져 있음을 이야기해주셨어요. 과학, 인문학, 예술은 인간 정신적 활동인 문화입니다.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는 기술의 시대에 인문학, 과학, 예술이 없신 여김을 받고 있는데요. 다양성이 사라진 인류 문명은 머지 않아 파멸할지도 모른다는 예측은 이 지점에서도 가능합니다. 아름다움은 다양한 어울림이라는 것을 떠올려봅니다.
개체로서 인간이 스스로만 바라보고 욕심을 부리다가 코로나 사태를 맞았습니다. 이를 돌아보며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눈을 가지고, 서로 살리는 삶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와 문명을 향한 우직한 걸음 내딛어 봅니다.
첫댓글 낱생명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생명+ 다른생명+환경이 만나 그속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과 이어짐을 통해 온생명으로서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누리고 깨닫게 되는 것.
그 속에서 일어나는 변수와 예측불가능은 아름다운 예술같다 느꼈습니다.
앞으로 자연과 생명을 예술과 연결지어 탐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를 속이는 개별성, 삶의 부분성에서 벗어나 삶의 전체성을 확보하고 온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더 이해가 되었어요.
모든 문제의 근원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의 결핍이라고 하셨는데, 공감이 많이 되었고 지혜를 얻으며 살아야겠다 깊이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