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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용서와 죄의 도말의 차이
대속죄일을 연구하다 보면, 마지막 결론은 죄의 문제, 곧 죄의 해결 방법인 죄의 용서와 도말 문제에 귀결되게 되어 있다. 죄의 용서와 죄의 도말은 엄연히 다른 것이며, 그 둘의 차이는 분명하다. 죄의 용서에 대하여서는 달리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그리스도인들이 잘 아는 주제이지만, 도말은 조금 생소한 주제인 것 같다.
혹자는 죄의 도말에 대하여 잘 몰라도 구원 얻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문제는 우리의 죄가 어떻게 도말 되는 것인가 하는 것보다 오히려 죄가 도말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중대한 논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의 중요성이 더한 것이다. 죄의 도말 문제는 대속죄일과 직결되는 일이며, 마지막 세대의 남은 백성들이 생명책에 기록되기 위하여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경험이다. 대속죄일에 죄를 조사하고 심판하는 일이 없이는 죄의 도말이 있을 수가 없고, 죄의 도말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이 지구의 죄의 역사를 끝내실 수가 없다.
죄의 도말
대속죄일 날에 “여호와를 위한 염소”의 피, 곧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속죄를 상징하는 염소의 피로 모든 죄와 성소의 기구에 뿌려졌던 죄의 기록들이 깨끗하게 씻어졌던 것처럼, 우리의 영적인 생애에서도 그 경험은 적용된다. 성경은 죄의 도말에 관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록하고 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사 43:25) 다윗은 자기의 죄를 회개할 때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시 51:1,2,9)
죄의 도말이란 말은 우리가 흔히 두 가지의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일반적인 죄의 용서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마치 우리가 그러한 죄를 전혀 짓지 않은 것처럼 잊어버리시고 깨끗이 씻으시는 일반적인 의미이다. 두 번째는 좀 더 구체적이고 마지막 최종적인 구원의 역사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들을 죄의 기록책에서 지우시면서 우리의 마음속에서도 특별한 역사를 이루시는 것을 뜻한다. 성소 제도와 그것에 나타난 기별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후자의 의미를 잘 이해할 것이다.
1. 용서와 도말의 차이
“죄의 용서” 와 “죄의 도말”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성소 제도를 통해서 고찰해 보면, 죄의 용서는 매일 드리는 제사라고 할 수 있으며, 죄의 도말은 매년 드리는 제사라고 할 수 있다. 죄의 용서는 일 년 내내 성소의 봉사에서 매일 반복되는 일이며, 죄의 도말은 대속죄일 날 한 번 단행하는 최종적인 죄의 용서를 가리킨다. 자, 그러면 실제적인 경험 속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자.
죄의 용서란, 우리가 평상시에 짓는 죄를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 미쁘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의 이름 밑에 “용서받았음.”이라고 기록을 해 두시는 것을 말한다. 심판을 거쳐 우리의 진실함과 계명을 지키는 성품이 드러나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 기록을 아직 완전히 지우시지 않고 기록책에 남겨두시되, 우리의 진실한 회개를 보시고 순간순간마다 지은 그 죄 자체를 하나님의 은혜로 분명하게 영원히 사유하여 주시는데 그 단계를 죄의 용서라고 부른다. 그리고 우리의 태도와 마음을 죄를 회개했던 때와 똑같이 유지하여서, 심판 날에 서면서 변함없이 죄를 용서받고 싶은 똑같은 진실한 마음과 동기를 가지고 있을 때, 결국 우리가 받아 온 그 용서들은 영원히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지만, 사람은 마음이 변하여 다시 죄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멸망의 길을 택할 수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의 완전한 도말, 즉 기록책에서 우리의 죄를 영원히 삭제해 버리시는 일을 심판 날까지 미루시는 것이다.
조사 심판과 죄의 도말은 주님의 재림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성경에 언급된 것과 같이 죽은 자들은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아야 하므로, 그들의 사건이 심리되는 심판이 마치기 전까지는 그들의 죄가 도말 될 수 없다. 사도 베드로는 죄의 도말에 대하여 말하기를,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행 3:19)라고 말함으로 유쾌하게 되는 날, 곧 죄의 도말이 먼저 있고 예수님께서 보내심을 받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러므로 심판이 마치면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때 모든 사람에게 행위대로 갚아 주실 것이다.
2. 죄의 도말은 언제 이루어지는가?
대속죄일 날에 치러지는 의식들에서 우리는 최종적으로 일 년에 한 번 모든 죄가 정결하게 되고 깨끗하게 도말 되어 없어졌던 것처럼, 죄의 도말은 마지막을 사는 성도들에게도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죄가 언제 도말 되는가? 죄의 도말은 맨 마지막에 조사하고 심판하는 일이 다 끝난 후에, 한 번에 단행되는 하나님의 죄를 삭제하시는 역사이다. 오순절 날 성령의 능력으로 설교한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죄 도말의 때를 설명하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영어로는 죄의 도말임)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행 3:19,20) 베드로는 우리가 회개하고 거듭나서 돌이켜 죄와 악에서 떠나면 죄 도말의 경험이 우리에게 이르러 온다는 조건을 말하면서, 그 시기를 주 앞으로부터 이르러 오는 유쾌하게 되는 날에 일어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주 앞으로부터 이르러 오는 “유쾌하게 되는 날”이 무엇인가? 그날은 곧 늦은 비 성령을 받게 되는 날이다. 이른 비의 경험을 통하여 모든 죄를 승리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들을 고정하기 위하여 내리는 늦은 비 성령, 곧 인침을 받게 하는 늦은 비 성령을 받는 날이 유쾌하게 되는 날인 것이다(이른 비와 늦은 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살아남는 이들 월간지 122호를 참조하세요). 한국어로 “유쾌하게 되는 날”이라고 번역한 단어를 영어에서는 “the time of refreshing”이라고 번역하였는데, 그 말은 “다시 새롭게 되는 때”라는 의미로서 우리 인류가 타락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서, 다시 온전하여진 기능과 용량을 가지고 하나님을 제대로 경배하며, 구원의 즐거움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상태로 다시 새롭게 되돌아간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심판을 통하여 그 사람의 마음과 생애가 하나님의 계명과 뜻에 조화되는 삶이라는 것이 입증될 때, 그 죄에 대한 도말이 되고 그 죄의 기록은 영원히 삭제되는 것이다.
3. 죄 도말의 과정
죄 도말의 과정은 무엇이며, 실제적으로 어떠한 일이 일어나게 되는가? 죄를 도말하는 것은 죄의 기록을 말끔하게 지워서 없애 버리는 것이라고 앞에서 배웠다.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잊어버리실 수가 없는 분이지만, 우리의 모든 죄를 잊어버리기로 약속하셨고 그렇게 하기로 선택하신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있는 죄의 책에서 우리 죄의 기록을 지워 버리실 때에는 우리 마음과 두뇌 속에서도 죄의 기억을 지우셔야 한다. 그러나 하늘의 기록을 지울 때에 이 땅에 있는 장본인의 협력과 동의가 없이는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하실 수가 없다. 다시 말해서, 죄를 진실로 회개함과 또한 그 죄를 미워함과 또다시 그러한 죄를 짓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기고, 더 나아가서는 그 죄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성품이 준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게 되므로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거나 죄를 범하지 않을 정도로 성품이 준비된 것을 보실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 대한 심판을 끝내시고 그의 모든 죄를 책에서 도말해 버리시는 것이다. 하늘 기록에서 죄를 지워 버리시는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두뇌 속에서도 죄의 기록들을 다 지우시게 되는데, 그리하여 우리가 지은 죄들에 대하여 전혀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쾌하게 되는 날을 경험하게 된다.
일평생 동안 보고 들은 모든 기억이 두뇌에 저장되어 있으므로 사람들은 과거의 기억들 때문에 자주 괴롭힘을 당한다. 죄에 대한 도말이 가능하다는 실례로, 성경에 나타났던 바벨탑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하나님을 반역하여 바벨탑을 쌓고 있던 사람들에게 그들의 반역과 죄가 급속하게 세상에 퍼지는 것을 막으려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 갑자기 언어소통에 문제가 생기고 그리하여 바벨탑을 쌓을 수가 없게 되었다. 어떻게 그러한 일이 생길 수 있었을까? 하나님께서 그들의 두뇌 속에서 지금까지 그들이 사용하던 언어의 기억을 지워 버리시고, 그 대신 다른 언어의 프로그램을 넣어 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다른 기억들과 개성, 품성에 관한 기억들은 그대로 놓아두고 건드리지 않으셨다. 그러한 사실로 보아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릿속에 이루시는 창조의 능력을 실감할 수 있고, 죄 도말의 가능성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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