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오로지
사랑을 위해서만 사랑해 주세요
'난 저 여자를 사랑해
미소 때문에 예쁘기 때문에
부드러운 말씨 때문에
나와 꼭 어울리기 때문에
어느 날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에 '라고
말하지 마세요
그러한 것은 그 자체가 변하거나
당신으로 하여금 변하게 할 테니까요
그처럼 맺어진 사랑은 그처럼 풀려버릴 거예요
내 뺨의 눈물을 닦아주는 당신의 사랑 어린 연민으로
날 사랑하진 마세요.
당신의 위로를 오래 받았던 사람은 울기를 잊어버려
당신의 사랑을 잃을지도 모르니까요
오로지 사랑을 위해 날 사랑해 주세요
그래서 언제까지나
당신이 사랑할 수 있게
이 시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 1812~1889)의 아내이기도 한 엘리자베스 배릿(Elizabeth Barrett, 1806~1861) 이라는 여류 시인의 작품입니다. 이 시를 보면 그녀도 마르셀과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15세 때 낙마 사고로 척추를 다친 이후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는데,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로버트 브라우닝과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뜰 때까지 16년을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지요.
이 시를 보아도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판단하거나, 아니면 사랑하거나입니다! ㅇㅇ 때문에 사랑하거나, 아니면 아무 조건 없이 그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거나 둘 중 하나이지요. 당신은 어떤 걸 원하나요? 만일 당신이 마르셀과 브라우닝의 생각에 동의한다면, 모든 판단을 당장 그만두고 당신의 애인, 배우자, 자녀가 존재하는 그대로를 기뻐하고 사랑해야겠지요. 그러면 당신도 그들에게서 그렇게 사랑을 받을 겁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겁니다! 내가 상대를 판단하여 사랑하면 상대도 나를 판단하여 사랑하고, 내가 상대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면 상대도 나의 존재 자체를 사랑한다는 거지요. 바로 이것이 사랑이라는 '상호 주관적 매듭'의 근본 속성입니다. 마르셀은 성서에서 예수가 "비판(판단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7:1~2) 라고 교훈한 것이 그래서라고 해석했습니다.
김용규의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중에서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