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비둘기
권도운
그날도 비가 내렸죠.
내 마음속에도 비가 내렸죠.
그러나 난 비를 맞으며
눈을 맞는 꿈을 꾸었죠.
그대는 비를 맞으며
떠나갔지만, 그대 아나요.
그대를 처음 만나던 날도
그대 모습
비에 젖어 있었다는 걸…….
난 비를 맞으며 떠나가는
그대 뒷모습 보면서
차라리 눈이라도 내려
그대 어깨 젖지 않기를…….
하지만 눈은 내리지 않았죠.
그대로 인한 내 마음의
상처보다 나로 인한
그대 마음의 상처가 비에
젖어 더욱 아플 거라는 걸…….
그대 뒷모습 보는
내 마음 너무 아파요.
제발 지금이라도 돌아와
비에 젖은 상처 함께 치료해요.
우린 왜 비를 맞으며
헤어져야 하나요.
다시 돌아와 눈을 맞으며
행복할 순 없나요.
그대와 난
비에 젖은 비둘기…….
비를 맞으며
눈을 꿈꾸는 하얀 비둘기…….
꽃이 노래로 말하다 ♡ 독자를 위한 시의 말 : 서평/서각 권석창(시인/문학 박사) ― 「하얀 비둘기」 – 이 시 또한 신세대 노래로 널리 불리고 있다. 다른 시들에 비해 선명한 이미지가 아름다운 시다. 그러나 이 시 역시 무겁거나 복잡하지 않다. 비를 맞으며 떠나가는 임을 보면서 차라리 비보다 눈이 내리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비를 맞으면 상처가 더 아프니까 눈이 내리기를 기원하고 있다. 눈과 비의 뉘앙스가 이 시의 모티프가 되고 있다. 아주 사소한 내용 같지만, 상대에 대한 깊은 사랑이 날카로운 감각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 꽃말시집 「별이 내려와 꽃이 되는 정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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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속의 시학 ♡독자를 위한 시의 말
서평/서각 권석창(시인/문학박사)
권기훈 시인의 시는 신화처럼 신성하고, 꽃처럼 아름답고, 음악처럼 즐겁다. 시의 존재 가치가 흔들리고 있는 시대, 시가 소외되는 시대라는 말들이 풍문처럼 들리기도 하는 시대다. 어떤 시인들은 이념의 문학이 사라진 자리에서 신 서정을 노래하기도 하고, 어떤 시인들은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 것인가 하고 서성거리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 시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다시 한번 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 서 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시는 존재했고, 그리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사람이 살고, 언어가 있는 곳엔 언제나 시가 있었다.
왜냐하면 사람은 언어를 단순히 의사전달의 수단으로만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언어로 정치도 하고 기도도하고 노래도 하며 산다. 시의 위상이 흔들리는 시대, 권기훈 시인은 아주 특이한 발상의 작업을 하고 있다. 권기훈 시인의 언어는 너무 순진하여 그의 시들에는 신화시대의 언어가 되살아난 듯한 느낌이 있다.
문학은 신화의 변형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권기훈 시인의 시에는 신화 시대의 사람들의 신성한 언어인 사랑, 이별, 그리움, 미움, 죽음, 부활, 꿈, 환상 등이 옛날처럼 되살아나 있다. 모두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신화는 인간의 삶이 극도로 단순화되어 인간 삶의 원형이 나타나 있다. 이 시집 앞부분에 실린 시에도 그러한 징후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당신은 이제 그만 편히 쉬어야 합니다. 당신이 떠나고, 벌써 내가 싫증이 난 거냐고...... 거의 날마다 못 먹는 술 마시고 주정도 부려봤지만,...... 많은 시간이 지난 오늘에야 철이 난 건지 당신을 일찍 보낸 건, 아니 떠난 건 잘된 일이었다고......
우리 다시 만날 그날까지 기다려 달란 말도 못하겠어요. 편히 쉬고 있을 당신에게 부담이 될까봐.......
당신과 함께 웃고 울었던 날들...... 그 중에서 하필이면 나물 뜯으며 내게 가르쳐 준 개미취꽃 이야기...... 개미취꽃은 개미처럼 부지런한 사람들을 닮은 꽃이라고......
사연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도 꽃이냐고 비웃겠지만, 난 그날 이후 개미취를 화분에 심어 베란다에서 가꾼답니다. 어쩌면 당신은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것조차 잊고 편히 쉴진 모르겠지만, 당신과의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 아니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것조차 잊고 편히 쉬길 바라는 마음으로, 개미처럼 부지런한 사람을 닮은 꽃, 개미취꽃같이 생긴 당신을 다시 만나기 위해......
--개미취꽃 이야기
이 시는 매우 순수하여 어떻게 보면 시가 아닌 이야기 같다. 은유도 없고 상징도 없고 아무런 표현기교도 사용하지 않았다. 내용을 요약하여 보면 개미취꽃 이야기를 들려주던 연인이 떠나고, 시의 화자는 연인이 그리워 개미취꽃을 화분에 심어 기르며 연인을 기다린다는 것이 그것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기다림이 이 시의 골격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랑 이별 기다림은 우리 삶의 원형이며 사람의 삶이 이어지는 한 영원히 거쳐야 하는 길인지도 모른다. 문학이 사람의 삶을 대상으로 노래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 동안 너무나 복잡한 삶을 이야기하고 너무나 어려운 삶을 노래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권기훈 시인은 다시 신화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우리의 무겁고 복잡한 삶을 순수하고 즐겁게 노래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시를 감상하는 독자들은 쉽고 편하다. 그러나 이 시편들은 그렇게 만만하고 쉽지만은 않다.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시의 소재는 꽃이다. 꽃 하나에 시 한편을 대응시켜서 시를 쓰고 있다. 왜 꽃일까? 꽃은 우주다. 대지에 뿌리를 박고 줄기는 하늘을 향하고 잎은 이슬과 태양을 받아들이고 이렇게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피어난 것이 꽃이다. 말하자면 완전한 유기체로 존재하면서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신화가 문학의 원형이듯이 꽃에는 인간의 원형적인 모습이 있다. 즉, 꽃은 복잡한 사고를 가진 인간이 아니라 매우 신성화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시인은 꽃 속에서 인간의 영혼을 보고 있으며 꽃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시어로 노래를 하기도 하고 입맞춤하고 있는 것이다.
꽃과 사람과의 대화, 이것은 아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꽃은 순진무구한 원형의 사람이며, 현대인은 온갖 문명으로 복잡해진 골치 아픈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의 화자는 꽃처럼 신성하고 꽃의 영혼과의 입맞춤까지 할 수 있는 착한 사람이다. 아니 어쩌면 신화속에 사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부드러운 표정은 쉽게 지을 수 있고, 유니크한 사랑도 나눌 수 있죠.
그러나 진실이란 별은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지는 그런 게 아닌, 그것은 길거리에서 줍는 것도 아닌가 봐요. 참으로 외로운 이름이죠.
내가 가장 당신으로부터 얻고 싶어하는 것은 당신의 별이랍니다.
난 항상 당신의 별을 찾고 있답니다. 쉽게 찾는다는 것은 쉽게 잃는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난 그것을 쉽게 말하는 얼굴은 원하지 않아요.
내가 원한다면 언제나 연인도, 친구도 찾을 수 있답니다.
배반을 당하기 전까진 행복할 수 있겠죠.
하지만 누구라도 또다시 날 위로할 생각은 말아요.
난 아무 것도 원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내가 언제 진실할 수 있을 진 나도 몰라요.
나의 소망은 나의 별이 정직하지 못할 때 날 바로 잡아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별이 바로 당신이길 바랄 뿐입니다.
--유일한 사랑
이 시는 이미 신세대들에게 널리 알려진 노랫말이 되어 불리고 있다. 이 시는 긴 행을 단위로 하여, 이야기하는 듯한 어조에서 독특한 리듬을 형성하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시의 리듬은 시의 내용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권기훈 시인의 시의 리듬은 지금까지의 어떤 시보다도 독특하다. 그것은 아마 리듬을 의식하지 않는 화자의 순수한 마음에서 연유한 자연스러움 때문일 것이다. 의식적으로 어떤 리듬이나 표현 기교, 생략, 상징 등의 기교를 배제하고, 순수한 화자가 순수한 꽃에게 절실하게 메시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이러한 리듬이 형성된 듯이 보인다. 이러한 리듬은 요즘 신세대의 기호와도 일치한다.
어른들은 신세대의 행동, 사고, 옷차림을 염려하고, 경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른들의 가치를 기준으로 하여 판단한 것이지 결코 객관적인 가치 판단이라 할 수 없다. 신세대는 어른들의 진솔하지 못함, 허위의식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신세대의 사고, 정서, 감정은 어른들보다 순수하고 때로는 더욱 진지하다. 권기훈 시인의 시의 진솔함, 혹은 순수한 감정의 토로는 신세대의 정서와 매우 가깝다.
시가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연유는 난해성의 문제와 연결된다. 권기훈 시인의 시는 결코 난해하지 않다. 순수한 시의 화자의 순수한 꽃의 대화가 어려운 내용일 수 없기 때문이다. 디지털시대의 언어, 디지털 시대의 리듬 디지털 시대의 감성으로 신성함의 미학을 창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날도 비가 내렸죠 내 마음속에도 비가 내렸죠 그러나 난 비를 맞으며 눈을 맞는 꿈을 꾸었죠 그대는 비를 맞으며 떠나갔지만 그대 아나요 그대를 처음 만나던 날도 그대 모습 비에 젖어 있었다는 걸...... 난 비를 맞으며 떠나가는 그대 뒷모습 보면서 차라리 눈이라도 내려 그대 어깨 젖지 않기를......
하지만 눈은 내리지 않았죠 그대로 인한 내 마음의 상처보다 나로 인한 그대 마음의 상처가 비에 젖어 더욱 아플 거라는 걸...... 그대 뒷모습 보는 내 마음 너무 아파요 제발 지금이라도 돌아와 비에 젖은 상처 함께 치료해요 우린 왜 비를 맞으며 헤어져야 하나요? 다시 돌아와 눈을 맞으며 행복할 순 없나요? 그대와 난 비에 젖은 비둘기...... 비를 맞으며 눈을 꿈꾸는 하얀 비둘기......
--하얀 비둘기
이 시 또한 이미 신세대 노래로 널리 불리고 있다. 다른 시들에 비해 선명한 이미지가 이름다운 시다. 그러나 이 시 역시 무겁거나 복잡하지 않다. 비를 맞으며 떠나는 임을 보면서 차라리 비보다 눈이 내리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비를 맞으면 상처가 더 아프니까 눈이 내리기를 기원하고 있다. 눈과 비의 뉘앙스가 이 시의 모티프가 되고 있다. 아주 사소한 내용 같지만 상대에 대한 깊은 사랑이 날카로운 감각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권기훈 시인의 시를 읽으면, 우리가 어린 시절 ‘시’라는 말만 들어도 공연히 가슴이 설레고 밤잠을 설치던, 그런 문학 소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그것은 아마 지금까지 우리가 대하던 시가, 너무 무겁고, 너무 진지하고, 너무 복잡한 고도의 언어 기교에서 나온 것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시는 어렵다. 너무 전문화되어 몇몇 전문가와 시인 자신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난해한 시가 주를 이루어 왔다. 현대인의 의식구조 또한 사회가 복잡한 만큼 복잡하다.
시는 당대 사회의 소산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에서 현대시는 복잡하고 난해하다. 그러나 권기훈 시인의 시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화처럼 신성하고, 꽃처럼 아름답고, 음악처럼 즐겁다.
시가 독자의 가슴에 숨은 영혼의 감성을 일깨워주고,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면, 이 시집에 대한 평가는 독자의 영혼의 몫이다.
시는 인간의 삶을 반영한다. 기존의 시들이 삶을 복잡하고 심각한 것으로 파악하고 무거운 시, 진지한 시를 추구했다면, 권기훈 시인의 시는 삶의 깊이를 보다 젊고 싱그러운 정서로 바라본다. 그리하여 시인의 시는 쉽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진실하다. 권기훈 시인의 신화처럼 신성한 시가 홀씨처럼 진실한 독자의 강에 새싹이 되어 자라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