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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보니 창밖 주차장에 눈 덮힌 자동차가 들어옵니다. 늦은 아침을 먹고 뒹굴다가 메일을 펴니 덕소 한강의 눈소식이 첼로 소리 깔고 퍼져 울리고, 형산이 정현이 데리고 눈밭에서 노는 사진이 한없이 부럽게 보였으며, 부지런한 조교장은 자기 아파트 주변의 눈 꽃핀 정원수를 그림같이 찍어 보내니 한동안 살피다가 나도 모르게 6호선타고 불광동에서 3호선으로 경복궁에 나갔습니다.
여러번 본것은 생략하고 동궁전과 신무문 옆의 태원전을 보고 신무문으로 나가니 바로 청와대 정문이라 한장찍고 우회전해서 춘추관 신문고도 찍어 넣었습니다. 고궁박물관 지하1층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 2대(고종과 명성황후 쓰던차)를 찍었는데 그곳을 꼭 보아야 됩니다. 중종이 세자 인종에게 왕이 되거든 읽고 경계하라고 적어준 친필 교훈책, 영조가 세제인 정조에게 적어준 교훈 등, 어떤 왕은 옥돌에 새겨주기도 했고 어떤이는 대나무 죽책에 붓으로 적어 주기도 했는데 그 글 솜씨가 하나같이 명필입니다. 충청도 서천인가에 있는 문정왕후 아들 명종의 태실을 3분지 1로 줄여서 고대로 만들어 놓은 명종태실도 볼만 합니다. 사진을 찍을 수 없어 못찍은 것이 유감스럽습니다. 왕이 쓰던 사람이 깔고 앉아도 남을 만한 크기의 벼루도 있습니다. 역대 임금의 옥쇄, 왕비의 옥쇄, 세자의 옥쇄 등은 황금으로 만들었는데 도장의 크기가 다르고 손잡이가 금거북형과 용머리 장식으로 한 것만 다릅니다. 역대 임금의 글씨가 이렇게 명필인지를 몰랐습니다. 세자 교육을 위해 世子1師, 世子 2師를 임명했고 이분들은 후일에 영의정에 오르는 행운을 잡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자 교육이 철저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 사진 내용 설명
1. 열상진원(水+列의 합성자上眞源) - 자연샘이 솟는 곳으로 향원전 연못을 거쳐 경회루 연못으로 흘러가는 수원지 우물입니다. 수량도 풍부합니다.
2. 동궁전 - 세자가 거처하는 궁전으로 자선당(慈善堂)은 세자가 독서와 일반 사무를 보던 곳이고 비현각(丕顯閣)은 세자빈이 기거하는 살림집이다. 그외에 수라간과 광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우선 자선당과 비현각과 행랑만 복원하여 이번에 처음으로 개방하였다.
3. 태원전(泰元殿) - 경복궁 북서쪽 가장 외진곳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시던 영전(影殿)으로 세운 것인데 후대에는 왕과 왕비가 죽으면 산역을 하고 석물을 다듬어 준비를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보통 3개월이상 1년이 걸리게 되므로 그 동안 시신을 태원전 영은재(永恩齋)에 모시고 상식을 지낸다. 따라서 이곳에는 관리와 환관 나인들이 상주하게 되니 그 전각의 규모가 대단히 넓고 크다. 국상을 치른 후에 위패는 종묘에 모시고 초상화는 태원전에 모시든 전각이 태원전이다. 복원이 완성되어 이제 처음으로 개방하였다.
4. 신무문(神武門) - 경복궁 4대문 중 북문이다. 연산군의 폭정으로 박원종, 성희안이 반정군을 이끌고 들어와 중종을 옹립할 때 세검정을 거쳐 신무문으로 들어왔고, 진성대군이 이괄, 김류를을 앞세워 연시내에 병력을 집결시켜 세검정을 지나 창의문을 통과하고, 신무문을 열고 들어와 경복궁을 점거하니 광해군은 황겁히 어의의 집에 숨어 있다가 체포당하고, 인목대비의 교지를 받아 징성대군이 인조가 되는 쿠테타도 이 신무문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대궐의 북문인 신무문을 폐쇄할 수 없으니 산성의 북문인 창의문을 폐쇄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이유는 창의문 쪽은 음기가 서린 곳이라 부녀자들이 창의문을 나서면 음기가 동하여 장안에 음란한 기풍이 돌기 때문에 미풍양속을 해칠 우려가 있으니 창의문을 폐쇄한다는 것이었다.
이렇듯 자하문밖 세검정은 국방의 요지로서 숙종은 북한산성의 외성으로 성을 쌓고 창평대를 설치하고 군사를 주둔 시켰다.
5. 춘추관 - 청와대에서 기자들을 모아 놓고 국정을 브리핑하는 곳이다. 그 옆에 신문고가 보인다. 신문고의 좋은 뜻을 살려보고자 상징적으로 설치한 것 뿐이고 억울한 사람이 그 삼엄한 속에 들어가서 신문고를 과연 울릴 수 있겠는지 모르겠다.
6. 한국 최초의 자동차 - 1903년 고종황제 즉위 40주년을 맞이하여 미국공사 Allen이 들여와 고종에게 선물한 고종 어차. 운전사가 없었으므로 일본인을 고용하였다고 한다.
7. 제2차 수입차 - 1911년 고종은 영국의 '다임러' 1대와 미국의 'GM 리무진' 1대를 수입하여 자신과 명성황후가 타고 다녔다. 경복궁 고궁 박물관 지하층에 전시된 차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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