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섬, 사도(沙島) -7천만년 전 공룡발자국 여기저기, 해안 기암절벽도 장관
모래가 많아 모래섬이라고도 불리워지는 사도에 가면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7천만년 전의 공룡발자국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사도 가는 방법은 여수 출발, 백야도 출발 등 두가지 방법이 있다. 여수에서는 06:00, 14:20 두번 있으며, 백야도에서는 08:00, 11:30, 14:50 세번 출발한다. 백야도는 육지와 연육교로 연결된 섬이다.
필자 일행은 백야도에서 08:00 출발 카페리호를 탔다. 백야도에서는 사도까지 약 1시간, 여수에서는 백조호 쾌속선으로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두 여객선 모두 중간에 개도, 하화도, 상화도를 경유한다. 요금은 백야도 출발 8,500원, 여수 출발 11,500원.
사도,중도,시루섬, 장사도, 나끝섬, 면목섬, 추도 등 7개의 섬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 이들 섬들은 음력 2월 15일 무렵이면 일제히 바다가 갈라져 하나의 섬으로 이어진다. 이섬 역시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 일곱개의 섬이 이어져 ㄷ형의 장관을 연출하는 것이다. 나끝섬과 중도는 이미 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꼭 음력 2월 15일이 아니더라도 사도,시루섬,장사도는 매일 바다가 갈라져 건널 수 있다.
사도는 경관도 아름답다. 시루섬에는 사람 키 수십배 높이의 거대한 얼굴바위가 바다를 향하고 있으며, 거북이바위, 장군바위, 병풍바위, 용미암 등 기암절벽이 즐비하다. 또 추도역시 공룡발자국은 물론, 부안 채석강과 비슷한 웅장한 층리가 있고, 아름다운 해안절벽이 방문객의 혼을 빼앗는다.
시간이 멈춘 섬 사도. 사도에 가면 바람도 화석이 되고, 사랑도 돌이 되어 굳어질 것 같다.
9시 사도 도착. 마을 입구에는 사도관광센터가 세워져 있고 공룡 두마리가 마주보고 서 있다. 섬에 내리자마자 공룡마을임을 실감한다. 혹시 사도에 관한 새로운 정보자료라도 있을까 싶어 관광안내센터에 들어가본다. 건물은 현대식으로 잘 지어져 있는데 직원도 없고 안내자료도 전혀 비치되어 있지 않다. 비수기다 보니 굳이 안내원이 상주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여름 성수기에만 안내원이 나온다고 한다. 실내 벽에는 추도 마을 전경, 추도 돌담길 사진이 걸려 있다.
일행중 여자 한 분이 공룡꼬리에 올라가 본다. 사람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공룡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필자 일행이 사도에서 하룻밤 머무를 곳은 안나네민박(666-9196). 84세의 김경애 할머니와 딸 안나(63) 씨가 운영하는 민박이다. 필자 일행중 한 분인 혜명스님이 이섬에 올 때 종종 머무르는 집이다. 전형적인 섬마을 집 형태. 장독대 뒤에는 수백년된 동백나무도 있다. 장독대 위에 큰 통이 두개나 있다. 비상시 빗물을 받아두는 수조라 한다. 사도는 건너섬인 낭도에서 수도관이 바다로 연결되어 있지만 비상시를 대비하여 자체적으로 이와같은 물받이통을 설치해놓고 있다고 한다.
아침식사를 하지않고 새벽에 길을 나선 터라 민박집에 도착하자 마자 간단히 아침식사부터 한다. 식사 후 산책길에 나선다.
사도 돌담길이 아담하다. 사도에는 현재 2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고 한다. 가구수보다 주민이 적은 마을. 상당수의 집들이 비어 있다. 마을 중간에는 전남대학교 국유지 밭이 넓게 차지하고 있다. 주민 20명 뿐인 마을에 노인정도 있고 교회도 있다. 마을이 꽤 깔끔하다. 주민 20명 뿐이라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않을 정도다.
마을 앞 사도해수욕장 우측으로 가면 사도교 직전에 정자를 만난다. 정자 우측은 마을 뒷산 산책로 오르는 길, 좌측은 사도교를 건너 시루섬과 장사도 가는 길이다. 시루섬과 장사도는 필자가 방문한 10월 4일의 경우 12시경 바다가 열린다.
시루섬 바닷길이 열리기 전 먼저 산책길에 나선다. 사도교 정자 우측 산길을 오른다. 산책로가 아기자기하다. 주로 소나무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발 아래 사도교와 중도가 내려다 보이고 사도교 뒷편으로 멀리 추도도 보인다. 중도, 시루섬(증도라고도 함), 장사도는 사람이 살지않는 무인도, 추도에는 할머니 두분 만 살고 있다.
정자에서 10분 정도 완만한 비탈길을 오르면 정상이다. 산이라기 보다는 언덕 수준이다. 우측에는 정자가 보이고 좌측 아래에 벤취쉼터가 보인다. 벤취쉼터 아래는 깎아지른 절벽. 내려다보기에도 어지럽다. 추락위험 표시와 함께 목제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절벽 아래 바위섬이 우뚝 서 있다. 이곳에서 보면 바위섬이 사도 본섬과 이어져 있는 것 같이 보이는데 실제로는 떨어져 있는 바위섬이다. 바위섬 테라스에는 강태공들의 낚시하는 모습이 내려다 보인다. 바위섬 꼭대기의 나무 한그루가 외로워 보인다. 봉우리 난간에서 바닷바람을 정면으로 맞고 있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 바위 틈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까? 그 생명력이 새삼 놀랍다.
산 정상에 서면 바다 건너 고흥 나로도우주선 전망대가 보인다. 거리상 꽤 가까운 거리이다. 이정도라면 사도에서 가장 가까운 육지인데 왜 고흥 쪽에서 여객선 운항이 열리지않고 여수 쪽에서 여객선이 다니는지 궁금하다.
산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면 가지가 기묘하게 휘어진 소나무 한 그루를 만난다. 소나무가 우람하다. 수백년은 됨직한 소나무. 마을을 지켜주는 나무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소나무를 지나면 다시 오름길. 소나무숲길이 아기자기하다. 좌측은 깎아지른 절벽. 암벽 모양도 특이하다. 마치 고릴라 얼굴같은 모습이다. 코구멍도 있고 눈썹도 보인다. 절벽 아래에는 검푸른 바다가 출렁이고 있다.
소나무숲길을 지나 대나무숲을 내려오면 다시 마을에 이른다. 날머리에는 폐가 한 채가 보인다. 위치도 좋은 데 폐가로 버려진 것이 아깝다. 텃밭도 넓다. 누군가 주인이 있겠지. 저런 집을 사서 세상을 잊고 조용히 여생을 보내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사람들은 누구나 섬을 그리워한다. 필자 역시 요즘 부쩍 섬을 그리워한다. 틈만 나면 섬여행에 나선다. 이번에도 순천 대광정사의 헤명스님이 사도 얘기를 하길래 두말없이 따라나섰다. 섬, 실제 살아보면 어떨까? 그렇게 아름답기만 할까? 사람들은 실제로 살고싶어한다기 보다는 섬을 낭만적으로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이생진 시인의 시 중 '독도는 낭만이 아니다'라는 시가 있다. 우리들은 보통 독도를 여행지 중 하나로만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을 부인할 수 없다. 그냥 가보고싶은 섬 독도. 그러나 독도는 결코 낭만이 아니다. 우리 국토의 동녘끝을 지키는 마지막 핏줄이다.
이번 사도여행에서는 특별히 육지로부터 염소고기를 준비해 왔다. 염소고기는 평소에 먹기 힘든 고기이고 몸에도 좋다. 사도교 앞 정자에서 숫불구이로 염소바베큐를 했다. 무공해 야채에 염소숫불구이라니...민박집 아주머니가 마련해준 반찬까지 합치니 진수성찬이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1시경 자리를 떴다. 중도 좌측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사도를 건너 해안길을 걷는다. 바다와 섬을 보면서 걷는 기분. 해본 사람 만 안다. 뭐랄까. 내가 바다가 되고 섬이 된 기분이랄까. 파도처럼 출렁이는 마음. 바로 그것이다.
코너를 돌자마자 경악이다. 지난 태풍이 핥고 간 흔적. 도로가 만신창이다. 얼마나 태풍의 위세가 심했으면 시멘트도로가 이지경까지 됐을까.우리나라 최서남단에 위치한 가거도 선착장이 파괴됐다는 뉴스가 실감이 간다. 여수 연안 섬인 사도가 이 정도인데 가거도는 태풍의 강도가 비교가 안되겠지. 아직 복구도 못한 길을 조심스럽게 건넌다.
오전에 잠시 답사차 다녀왔을 때는 중도와 시루섬 간 바닷물이 가득 했는데 지금은 물이 빠져서 모래길이 선명하다. 이곳은 중도와 시루섬 사이의 모래사장이라 '양면해수욕장'이라고 부른다. 여름에 물 빠진 시간동안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모랫길을 건너면 제일 먼저 거북바위를 만나다. 이순신 장군이 이곳 거북바위를 보고 거북선을 창안했다고도 하는 이야기가 서려있는 바위. 머리와 등이 영락없는 거북이 모양이다. 크기도 어마어마하다. 그 아래를 걸어오는 사람 모습이 쬐그맣다.
그 다음은 시루섬의 최고명물인 얼굴바위. 이마, 코,입,목이 사람얼굴을 꼭 닮았다. 사람 키 수십배 높이의 암벽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얼굴. 이마 위 머리털까지 사람 모습이다. 신비스럽기 그지없다. 조각가가 일부러 깎아놓은 듯 하다. 자연의 예술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얼굴바위를 지나면 해안가 좌측으로 감자모양으로 생긴 감자바위가 보이고 바로 거대한 장군바위와 마주친다. 이 사진에서 좌측이 장군바위의 일부, 우측은 병풍바위의 일부이다. 두 바위 사이로 바다가 열린다. 우측바위는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코 모양으로 생겨서 필자 마음대로 '큰코바위'라 이름붙여 본다. 해안가에 있는 사람 크기를 보면 이 두바위가 얼마나 거대한지 짐작할 수 있다. 병풍바위에는 소나무화석도 보인다.
두 바위 사이에 서서 인증샷 한장 찍어본다.
바위협곡을 지나 되돌아보면 장군바위가 분명하게 보인다. 사진으로는 작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위 사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집채 만한 크기이다.
장군바위를 지나면 용미암과 마주친다. 용의 꼬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용의 꼬리가 바다로 이어져 있고 몸통은 병품바위를 기어오르는 모습이다.
용미암을 지나 우측 코너를 돌면 갑자기 넓은 마당바위가 나타난다. 수백명은 앉아서 쉴 수 있는 넓이이다. 명석바위라고 부른다.
명석바위에 오르면 다시 시야가 트이면서 고흥 나로도우주선전망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낚시섬도 지척으로 보인다. 산책로에서 내려다봤던 바위섬을 이곳에서 보니 두 섬 사이가 갈라진 모습이 분명하게 보인다.
명석바위에서 얼굴바위 쪽으로 되돌아 나온다. 양면해수욕장 모랫길을 건너올 때는 물이 덜 빠졌던 장사도길 역시 완전히 열렸다. 장사도 건너는 길은 양면해수욕장길과는 달리 돌길이다. 미끄러운 돌과 바위를 조심스럽게 건넌다. 그런데 막상 건너고 보니 볼만한 것이 없다. 좌우측 모두 절벽. 정상으로 오르는 길도 없는 것 같다. 할 수 없이 되돌아나온다. 나중에 민박집 주인으로부터 들은 얘기로는 장사도 우측 해안을 따라가면 다양한 꽃 문양의 아름다운 해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가파른 길이라고 하는데 아주머니들이 다니는 길이라면 누구든 왠만하면 다녀올 수 있는 곳인 것 같다.
시루섬과 장사도를 둘러본 후 선착장 쪽으로 이동한다. 추도를 가기 위해서다. 민박집 주인을 통해 미리 추도가는 낚싯배를 예약해 놨다. 요금은 1인당 1만원. 추도는 음력 2월 15일경에 바닷길이 열리기 때문에 평소에는 낚싯배로 건너갈 수 밖에 없다.
선착장 옆에 나끝섬이 있고 물 건너 추도가 보인다. 나끝은 사도와 다리로 연결돼 있어 이제는 섬이라고도 할 수 없다. 나끝 봉우리에는 소나무 몇그루가 그림같이 자라고 있다.
나끝 옆에는 또 하나의 바위섬이 보인다. 이름이 면목이란다.나끝이든 면목이든 섬 이름으로는 특이하다.
사도 선착장에서 배로 몇분 만 가면 추도다. 마을이 아담하다. 집은 여러채인데 주민은 80세 넘은 할머니 두분 만 사신다고 한다. 추도는 공룡발자국은 물론, 책을 쌓아놓은 듯한 모양의 층리 암벽이 유명하며 마을 돌담길도 볼 만하다.
좌측길로 접어들면 산 중간을 자른 듯한 협곡을 만난다. 협곡을 넘으면 반대편 해안이다. 협곡이 웅장하고 아름답다.
협곡을 넘으면 다시 바다가 열리고,
꽤 넓은 마당바위도 나타난다. 마당바위 좌측은 수직 암벽. 이곳 암벽도 작은 얼굴 모양을 띄고 있다. 나름대로 '작은코바위'라 이름붙여본다. 코 위 나무 한 그루가 그림같다.
마을 우측에는 계곡 모양의 사잇길이 보인다. 대표적인 층리현상이 보이는 암벽 사잇길이다.
암벽사잇길을 지나면 다시 넓은 마당바위, 옆은 책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듯한 암벽이다.
마당바위에는 여기저기 공룡발자국이 선명하게 보인다. 추도는 사도 화석단지와 같이 중생대 백악기 후기(약 7천만년 전)에 형성된 아시아에서 제일 젊은 공룡발자국 화석단지이다. 이곳 추도에서는 약 1,800여점의 공룡발자국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한반도 남해안에는 인간이 살기 헐씬 이전인 중생대 백악기(약 1억4천5백만년-6천5백만년 전)에 공룡들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안내판에 의하면, 공룡발자국, 공룡알, 공룡뼈 등 다양한 종류의 이들 화석들은 아마도 세계 최대규모일 것으로 보고 있다.
불과 1박2일로 둘러본 사도와 추도,그리고 인근 섬들. 필자는 이곳에서 시간을 잊은 듯 하다. 7천만년 전이 상상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 시간인가? 어쨋든 필자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되돌아가본다. 먼먼 옛날 육지 어느 구석이었을지도 모르는 이곳 사도에서 공룡과 놀고 나도 공룡이 되는 꿈을 꾼다.(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