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과 문원폭포(冠岳山=文原爆布)
산세는 험한 편이나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도심에서 가까워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관악산 정상에는 아찔한 벼랑 위에서 서울을 내려다
보고 있는 연주대(戀主臺)가 있다. 원래 이름은 의상대였으나 고려의
충신이었던 강득룡·서견·남을진 등이 사라진 고려왕조를 그리워하며
통곡하였다는 뜻으로 연주대로 이름이 바뀌었다.
관악산은 경기도 안성 칠장산에서 광교산으로 이어진 한남정맥의 끝
자락에 불꽃처럼 솟구친 산이다. 개성 송악·가평 화악·파주 감악·포천
운악과 함께 경기 5악으로 불린다.
관악산 자락에는 여러 갈래의 등산로가 있다. 과천 들머리가 있는가 하면
낙성대 들머리가 있고, 시흥 들머리도 있다. 이들 등산로는 산의
여기저기를 두루 거친다.
아이와 함께 느린 걸음으로 오를 수 있는 곳도 있고, 바위를 즐길 수 있는
곳도 있다. 깊은 계곡이 길을 따라 오래도록 이어진 곳도 있다. 저마다의
길에는 특성이 있으니, 취향에 따라 길을 선택하면 된다.
가장 대중적인 코스는 신림동 만남의 광장들머리에서 연주대로 오르는
코스다. 과천중앙공무원교육원 입구 앞쪽에서 문원폭포로 들어서 육봉
능선으로 올라서는 구간은 그림 같은 암봉들이 늘어서 짧게나마 바위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천애절벽의 옹립을 받은 암자, 소금강이라 일컬어
지던 아름다운 바위와 암봉에는 그 하나하나마다 전설과 고유한
이름들이 깃들어 있어 산행의 묘미를 더한다.
이 브라우저에서는 해당 기능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IE9이상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해주세요.
레이어 닫기
경기도 고양시의 동남쪽 끝에 있는 동이다. 의왕시의 청계동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호구총수』의 과천현 현내면에 문원리(文原里)라 기록되어 있으며, 1914
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 향교말(校洞) · 다락터(樓基) · 홍촌말(洪村) · 새술막(外店)
구리안(九里內) · 베레이(또는 배랭이, 別陽)를 합해 시흥군 과천면의 문원리로
편제되었다. 1982년에 원문리의 북쪽 지역에 중앙 · 별양 · 원문의 3개 지역이
떨어져 나가 독자적인 행정단위가 되었고, 1986년에 과천시로 승격되면서
문원동이 되었다. 조선 시대 문원리 지명은 향교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향교에 있던 대성전(大成殿)인 문묘(文廟)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문원리의 중심 마을은 향교말 · 홍촌말 ·
새술막이었는데, 현재 이곳의 대부분은 중앙동에 속해 있다
관악산의 봉우리 중에 죽순이 솟아오른 듯한 모양을 한 기암절벽이
있는데, 그 위에 석축을 쌓고 자리잡은 암자를 연주대라 한다.
원래는 의상대사가 문무왕 17년(677)에 암자를 세우면서 ‘의상대’라
이름했었는데, 고려 멸망 후 조선을 반대하며 고려에 충성을 다하던
유신들이 이곳에 모여, 멀리 개경쪽을 바라보며 고려를 그리워하여
연주대(戀主臺)로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조선 태종(재위 1400∼1418)이 셋째왕자 충녕대군을 장차 태자로
책봉하려 하자 이를 눈치챈 첫째 양녕과 둘째 효령대군이 궁을 나와
관악산에 입산 수도하면서, 이 연주대에 올라 왕궁을 바라보며 왕좌를
그리워하였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연주대에 얽힌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연민을 불러 일으키는 내용인데, 이것은 연주대 주변 경관이 매우
뛰어난 절경인데다 한눈에 멀리까지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의 건물은 3평 남짓한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며,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이다. 이곳에는
석가모니와 나한들을 모시는 불당인 응진전이 있다.
출처:(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