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7. 11. 28. 00:45
22世 감사공 윤인 유인 형제의 죽서루 팔경詩
“오문의 사서(史書)에는 전해지지 않는 詩”
옛 부터 강원도 통천(通川=북한지역)의 촉석정(叢石亭), 고성(高城)의 삼일포(三日浦)와 해산정(海山亭), 속초(束草)의 영랑호(永郞湖) 양양(襄陽)의 낙산사(洛山寺), 강릉(江陵)의 경포대(鏡浦臺), 삼척(三陟)의 죽서루(竹西樓), 경북 울진(蔚珍)의 월송포(越松浦)를 일컬어 관동팔경(關東八景)이라 일 컬 는다.
이중에서도 삼척시 죽서루길 44(성내동)에 소재하는 죽서루를 가장 많이 찾는 까닭은 관동팔경 중에 오십천(五十川) 위의 죽서루가 제일 크고 오래된 누정으로 가리 이씨(加利李氏) 시조이고. 문인이었던 이승휴「李承休, 1224(고종 11)∼1300년(충렬왕 26)」가 고려 충렬왕 때 창건하고 지금의 건물은 1403년(태종 3) 삼척부사 김효손『金孝孫,1373년(공민왕 22)∼1429년(세종 11)』이 중창한 후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런 것으로 17개의 기둥이 자연 암반 위에 정면 7칸 측면 2칸의 겹치마 팔작지붕 건물로 세워져 기둥의 길이가 모두 다르다.
또한 이 누정은 조선시대 삼척부사의 객사(客舍)였던 ‘진주관(眞珠館)’의 부속 건물로 접대와 향연을 위한 장소로 활용되었던 곳으로써 보물 제213호로 지정되어 있다. 죽서루 앞을 흐르는 오십천은 바다까지 50번 돌아 흐르는 하천이라 해서 부쳐진 이름으로 특히 죽서루 팔경이 우리나라 승경(勝景)을 시제로 한 詩 중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시의 작자 면면을 보면 고려 말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과 근재 안축(謹齋 安軸), 가정 이곡(稼亭 李穀), 제정 이달충(霽亭 李達衷)으로부터 조선 전기 서거정(徐居正)ㆍ성현(成俔)에 이르기까지 40여 편의 詩가 창작되었으며 두 형제가 강원도 관찰사를 역임하면서 백성들의 민생을 살피러 이곳 척주(陟州 =오늘날 三陟)의 죽서루에 이르러 시를 남긴 분은 익재공의 래손(來孫=5세손)인 윤인(尹仁), 유인(有仁) 형제분이 유일하고 오문의 사서(史書)에는 기록이 전해지지 않는 詩이기도 하다.
이 두 형제분의 죽서루 팔경詩는 陟州漢詩集-三陟文化院(1993)에 수록되어있을 뿐 오랜 세월 죽서루에 걸려있던 현액은 1959년 9월 11일에 발생한 사라호 태풍 때 소실되고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특히 감사공 윤인 선조는 당대 기라성 같은 인물들인 삼종 형제가 되는 문안공 이문형(李文炯)과 판서를 지낸 이계손(李繼孫), 좌찬성을 지낸 강희맹(姜希孟), 사육신인 성삼문(成三問), 이개(李塏), 박팽년(朴彭年/사돈관계), 유성원(柳誠源), 영의정을 지낸 정창손(鄭昌孫), 신숙주(申叔舟) 등과는 문과 동기로서 걸출한 인물이셨다. 향후 오문의 노력으로 죽서루에 게판(揭板) 복설(復設) 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죽서루 팔경 현액 시(竹西樓 八景 縣額 詩)
□지은이 : 이윤인(李尹仁)
□창작 연대 : 丙戌(1466년)
□제74代 강원도 관찰사/재임기간 : 1465년(세조 11)~1466년(세조 12)
□생졸년 : 1415(태종 15)∼1471(성종 2)/향년 56歲
渺渺東溟接太淸(묘묘 동명 접 태청)
아득한 동해바다 하늘과 맞닿았고
風驅高浪蹴天聲(풍구 고랑 축천 성)
바람은 높은 파도를 휘몰아 하늘 차는 소리 내는데,
馬前歌吹爭前導(마전 가취 쟁 전 도)
노래와 피리소리 말 앞을 다투어 인도하니
不獨金侯擅後名(불 독 금후 천후 명)
김 후만이 후세 명성 누리는 건 아니리
[각주]
이 詩를 읊으면서 감사공 윤인 선조는 이색(李穡)이 말하길 “붓을 들면 구름이나 연기처럼 뭉게뭉게 詩가 피어 나온다.”고 일컬은. 척약재 김구용『惕若齋 金九容/安東人, 1338(충숙왕 복위 7)∼1384(우왕 10)』 선생과 자신의 지기지우(知己之友)인 저 헌 이석형『樗軒 李石亨/延安人,1415(태종 15)∼1477(성종 8)』을 그리며 읊은 詩이다.
-------------------------------------------------------------------------------------------------------------------------------------------------------
공의 동생 유인(有仁, 大司憲公)도 형이 돌아가신 15년 뒤 이곳 강원도 관찰사가 되어 지역 민생을 살피던 차에 전임 관찰사였던 선형(先兄=세상을 떠난 형)의 죽서루 현액 시(詩)를 보고 감개무량(感慨無量)하며 차운(次韻)하여 두 편의 시를 또 읊었다.
□지은이 : 이유인(李有仁)
□창작 연대 : 丙午(1486년) 가을
□제94代 강원도 관찰사/재임기간 : 1485년(성종 16)~1486년(성종 17)
□생졸년 : 1431년(세종 13) ∼1492(성종 23)./향년 61歲
聞道先兄政化淸(문도 선형 정화 청)
들으니 선형의 맑은 선정은
棠陰柳幕共傳聲(당음 류막 공 전성)
당음과 유막으로 전해지고
男兒磊落平生志(남아 뢰락 평생 지)
남아의 당당한 평생 의지는
不枉區區一代名(불 왕 구구 일대 명)
구차 하게 한 때 명성에 굴하지 않았네.
[각주]
▷棠陰(당음) : 소공(召公)의 어진 정치로 ‘어진 감사(監司=觀察使)의 아름다운 정사(政事)’의 뜻.
▷柳幕(유막) : ‘군기가 엄한 주아부(周亞夫)의 군영’을 뜻함./ 주아부(周亞夫)는 기원전 143년 때인 서한(西漢)의 명장으로 군사를 다스
리는 데 엄격하고 분명하기로 이름난 사람으로 훗날 승상에 오른 사람이다. 형의 정사(政事)를 살핌에 주아부(周亞夫)의
인물에 비한 것이다.
이어서 또 읊기를
天末秋回氣轉淸(천말 추회 기전 청)
외진 곳에도 상쾌한 가을 기운 더해 가는데,
羈懷又聽樹間聲(기회 우 청수 간성)
나그네 시름에 나무 사이에 이는 바람소리 듣고
登樓擬和陽春曲(등루의 화양 춘곡)
누대에 올라 양춘 곡에 화답하여
慚愧濡毫記姓名(참괴 유호기 성명)
붓을 적시니 이름 쓰기 부끄럽네.
[주해]
현액(懸額)과 편액(扁額) : 현액과 편액은 같은 말이긴 하나 현(懸)은 걸 다의 뜻이고, 액(額)은 액자(額子)나 편액(扁額)의 뜻임으로 따라서, 술목관계(述目關係)의 문맥에서는 '편액을 걸다'로 수식관계(修飾關係)의 문맥에서는 '걸려 있는 편액'으로 해석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