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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궉(John鴌), 어느 김정숙 씨와 옛날식 茶방에 앉다
<도라지 위스키는 없었다. 새빨간 립스틱의 멋을 부리진 않았지만, 마담은 나그네를 반겨 맞았다. 궂은비 내리는 날--.>
요한궉(John鴌), 그가 실로 오랜만에 타관의 노인학교에서 강의를 한 시간 맡았었다. 실로 감개가 무량할 수밖에. 하나 세월을 이길 장사가 없는 터, 그는 실력 부족을 절감했다.
지난 얘기를 좀 하는 게 순서겠다. 그가 처음으로 노인 학교(덕성토요노인대학)를 설립하고 구청에 신고를 한 것은 83년이었다. 부산 북구청 2호! 그리고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할 세월이 흐른 뒤인 2004년에 그는 교수복(?)을 벗었다. 장장 21년. 그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의아심을 표시한다.
“그게 가능한 일일까? 저자가 입만 열면 허풍이니, 혹세무민(惑世誣民)하여 명성 얻으려 는 속셈이겠지. 척하면 삼척인데, 그 속셈을 누가 모를라고. 왜곡이야 왜곡!”
그들의 진단에 동의를 하건 말건 그건 그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교직 생활을 하면서 매주 토요일 오후 무료로 노인학교에 출근했던 걸, 그가 사실대로 적시할 따름이다, 다시 한 번.그 말을 믿고 안 믿고조차 세월 흐르면 관심 밖의 일로 치부되겠지, 더더구나 여생이 쥐꼬리만 하니….다만 자타가 공인하는 가운데 예서제서 터지는 탄성은 이런 것이다.
“미친 짓을 했다, 그 열정을 내 가족을 위해 바쳤더라면, 쯧쯧….”
이 명제 하나만은 한 치의 오차 없이 맞다. 얻은 공명에 비해 잃은 게 너무 크고 많았다. 그래서일까? 한숨 속에 섞인 신음이, 오히려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내 지나간 인생, 수수께끼였어. 아니 죄악의 정점에서 상승과 하강의 곡선을 그린 꺾은선그래프, 그 자체였을지도 모르지. 사자성어로 말하라면 불가사의(不可思議)? 하니 말이야. 밑바닥을 찍을 일만 남았어. 내 좀 일찍 세상을 하직하길 원하는 명분이기도 하지.”
어쨌거나 지난번 강의실에 들어갈 때, 그를 휩싼 건 강박관념이었다. 그는 중얼거렸다. 백여 명의 학생들로 하여금 모두가 배꼽을 잡고 폭소를 터뜨리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는 우레 같은 박수를 받으며 깊이 허리를 굽혔다. 그러곤 다짜고짜 학생들에게 물었다. “영자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 손들어 보세요.”
예상대로 ‘영자’는 상당수였다. 요한궉,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미 머릿속에서 그 광경을 은연중에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의 대부분이 45년 전후 출생이었으니까. 좀 과장되게 표현해서, 거의 평생을 노인 학교에 부대끼며 살아 온 그가 해방둥이 여자들의 흔한 이름의 순서는 훤히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여자 노인 학생 일흔일곱 안팎의 흔한 이름 순서는 기가 막힙니다. 상위 10명중 1명을 빼면, 모두가 자(子) 자야. 영자, 정자, 순자, 경자, 옥자, 명자, 숙자, 정순, 화자!”
뜸을 들인 그가 말을 잇는다.
“정순이 그나마 아홉 번째를 차지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어느 ‘자야’가 ‘자야’인지 자못 혼란스러웠을 테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는 다시 입을 떼었다. 3년이 지났을 때 약간의 변화가 있었단다. 그가 일러 주는 대로 적어 보자. 순자, 영자, 정순, 정숙, 영숙, 연순, 정자, 영희, 정희, 옥순….이쯤에서 학생들은 이미 어리둥절해진다. 아니 요절복통 일보 전이다. ‘순자’ ‧ ‘영자’ ‧ ‘정자’‧ ‘정순’만 살아 명맥을 유지하고, 나머지는 끝 자 ‘숙’ 혹은 ‘순’,‘희’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거의 백 퍼센트!
그런가 하면 10년 뒤엔 풍속도가 ‘숙(淑)’의 전성시대를 좌지우지한다. 영숙, 정숙, 영희, 명숙, 경숙, 순자, 정희, 순옥, 연순, 현숙….세상에, 이럴 수가! ‘숙’이 딱 반이지 않는가?
여기서 일단 그는 말을 끊고 잠시 숨을 돌렸다. 하지만 이윽고 다시 기세등등하게 질문 하나를 다시 던진다.
“행여 여기 ‘영희’란 이름자를 가진 학생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성 씨는 상관없고….”
그제야 학생들은 요한궉의 수업 수준이 결코 녹록치 않다는 걸 깨닫는 모양이었다. 얼굴을 좌우로 돌려가며 웃는가 하면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으니까. 그는 웃음을 띠고,
“영희란 이름을 가진 학생은 앞으로 좀 나오시지요. 아니 꼭 영희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영이도 괜찮아요. 어차피 남에게 비슷하게 들리니까요.”
그날 운수가 좋았던지 젊었을 때 미모(美貌)께나 뽐냈으리란 느낌을 주는 70대 중반의 여학생이 다섯이나 앞 다투어 요한궉 선생 가까이 몰려드는 게 아닌가? 그는 쾌재를 부르짖었다. 그의 다음 ‘폭탄선언’이다.
“도중에 자기 이름이 나오면, 큰소리로 예 혹은 야호 얼씨구 등의 소릴 지르는 겁니다. 추임새 정도로 여기세요.”
그는 회심의 미소를 띠고, 우렁찬 노래 소리를 목창에 실었다. 둘이서 걸어가는 남포동의 밤거리/ 지금은 떠나야 할 슬픔의 이 한밤/ 울어 봐도 소용없고 붙잡아도 살지 못할 항구의 사랑/ 영희(영이)야 잘 있거라 영희(영이)야 잘 있거라…
강의실 안은 바야흐로 폭소 소리로 떠나갈 듯하다. 다섯 명의 영희 혹은 영이가 터뜨리는 추임새가 뒤죽박죽이면서도 곁들이는 몸짓들이 요상했으니까. 어느 영희가 춘 막춤은 화룡점정이었다. 한국 노인들의 전매특허인 관광 춤과는 다른 현란한 솜씨였다.
요한궉 선생은 설명했다. 노래 제목은 ‘항구의 사랑’. 영남대학교 명예 교수며 문학 박사. 시인이기도 한 이동순은 평소 대중가요에도 심취해 있었다. 그가 우리 국민이 애창할 수 있는 가요 스무 곡을 나름대로 기준을 갖고 선정했는데, 이 ‘항구의 사랑’이 열여덟 번째다.
요한궉이 노인 학교에 몸담고 있을 때 이웃 동네에 교직 선배가 살았다. 오래 전에 퇴직을 한 여자 분이었다. 그런데 그가 노인학교에 입학을 한 것이다. 결석 없이 꼬박꼬박 학교에 나왔다. 출석을 부를 때 요한궉 선생은 익살스럽게, 이영희라는 이름 대신
“영희야”
하고 마치 애인에게라도 속삭이듯 자그마한 목소리로 출석했음을 확인한다. 그러면 이영희 학생은 절을 하며 박수까지 보탠다. 때로는 두 박자(拍子) 사이를 헤집고
“말라고(뭐할래의 사투리)”
기막히고 절묘한 대답을 내놓는다. 그보다 다른 학생들이 일제히 터뜨리는 후렴이 벡미(白眉) 혹은 압권이다. 영희야 잘 있거라/ 영희야 잘 있거라
그 다음은 차라리 상상에 맡기자.
요한궉의 지난번 노인학교 수업은 또 다른 기상천외의 일화로 메워 나갔다. 주위로부터의 전언을 들어 보자, 그는 다짜고짜 엉뚱하게도 세상에서 가장 희한한 이름을 가진 부부를 소개했던 것이다.
“제가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어 주시겠습니까?”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시늉을 보이더란다. 그는 잔기침을 한 번 하고 나서 자신만만해 하는 표정으로 학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의 말이다.
"제가 노인 학생들을 78명, 30명, 70명씩 인솔하여 각 4박 5일씩 외국 여행을 다녀 온 사 실은 전무후무한 하나의 역사입니다. 대만과 태국, 싱가포르 ‧ 말레이시아 ‧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습니다.”
학생들은 웅성거렸다. 사고 나면 어쩌려고 그런 모험을 했느냐는 반응이라 하자. 사실 그건 모험 이상의 모험이었다. 오죽하면 이런 결심을 했을까?
“여학생이 배탈이 나서 설사가 나면, 내가 벗기고 깨끗이 씻어 주는 일까지 각오한다. 그 학생에게는 쑥스럽지만, 인솔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건 그 길뿐이다!”
천우신조였는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갓 기우였던 셈이다. 다만 첫 번째 때 김포 공항에서 저녁 비행기를 타러 가다가 바리케이드에 걸려 넘어진 여학생이 있었다. 오른쪽 손목이 딱 부러졌다. 하지만 친구들이 도와주어서, 나머지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했으니, 기네스북 운운은 아직도 회자되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호텔에 비데 같은 게 없었으니, 그 여학생 아침에 가장 고생했으리라.
그는 다시 학생들에게 박장대소의 전주곡 같은 ‘폭탄’을 하나 터뜨렸다.
“지금 제가 드리는 말씀을 듣고, 전혀 우습지 않은 학생이 있다 치십시다. 마치고 병원으 로 바로 가십시오.”
코미디언 같은 그의 표정에 학생들은 동화되어 가고 있었다. 때를 놓치지 않고 그는
“세 번 중 어느 때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못 하겠습니다. 어느 학생 내외가 참가 신청을 했습니다. 부인의 회갑 기념으로, 없는 살림에 목돈을 마련한 겁니다. 물론 제가 모금을 해 서 1인당 5만원씩 지원했으니까 도합 10만원의 부담을 덜어 줬습니다만….”
“와, 그거 정말 기네스북에 오르겠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일을 했군요.”
적당히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그가 물었다.
“여러분 중에서 혹시 ‘또(又)’ 자가 들어가는 이름을 가진 학생 있습니까?”
그는 화이트보드에 또 ‘又(우) 자’를 휘갈겨 쓰곤,
“우리 어릴 때 시골에는 ‘또방우’ 혹은 ‘또철이’라는 이름이 더러 있었지요.”
드디어 이쪽저쪽으로부터의 반응이 심상찮게 일어난다.
"재혼한 부부였습니다. 몇 년 전에. 그런데 남학생의 이름이 김또출이었던 겁니다. 부인 즉 아내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학생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송또분이었습니다.”
갑자기 강의실 안이 거의 난장판 수준이 되고 말았다. 또(又 )자 들어가는 사람이 현상금을 걸고 찾아도 극히 드물 텐데, 아무리 20년 전이라지만 부부가 또 자 이름을 가졌다? 그거만으로도 기네스북에 오르고도 남을 일! 그날 모두가 그렇게 배꼽을 잡았다.
요한궉 선생의 뒷말은 학생들을 새삼 혼란스럽게 만들고도 남았다. 송또분 학생은 인공 심장박동기를 달아야만 생명을 이어가는 처지였다. 당연히 4박 5일 여행은 모험 중의 모험….그래도 여자 가이드를 별도로 데리고 가기로 하고, 송또분 학생은 비행기를 탔다. 대신 금속탐지기는 통과 불가. 가이드가 내내 붙어 있어야만 했단다.
여기까지가 새로 결성된 대원칸타빌 실버 악단 창단 후 경로당에서 회원들과 환담을 나눈 걸 재구성한 것이다. 여기서 노인 학교 이야기는 일단 벗어나자.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점심은 경로당에서 여자 회원들이 짓는다. 다 합해서 열두서 명이 모이는데, 솜씨들이 좋아서 정말 맛있다. 요한궉도 거의 어김없이 참석한다. 그는 어느 날 엉뚱한 화두를 하나 던졌다.
“지난번 영부인 김정숙이 또 G20에 대통령을 따라 갔더군요.”
“그러기에 말입니다. 혼자 온 원수들이 수두룩한데, 김정숙은 몇 번쯤 빠지면 안 되나?”
“유튜브를 온통 김정숙이 장식하고 있으니….”
“국가 위신을 생각해서 자중자애할 줄도 알아야지. 쯧쯧.”
분위기가 가라앉자 요한궉이 다시 나섰다.
“‘영부인(令夫人)’이란 호칭이 문제라는 생각이 듭디다. 사전에는 남의 아내를 높여서 부르는 말로 풀이되어 있는데, 왜 다들 대통령 부인에게 부치는 고유명사 비슷하게 생각하는지….박정희 대통령의 자녀들에게도 영식(令息)이니 영애(令愛)이라는 호칭을 붙여알 만한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한 적이 있었지요.”
바야흐로 여기저기서 반응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퍼스터레이디라고도 하지만, ‘대통령 부인’이 맞지요.”
“지금 문재인의 아들 준용 군을 영식이라 불렀다간, 집중포화를 맞을 건 명약관화해.
“하기야 청와대 대에서 분양받은 유기견 토리를 ‘퍼스트독’이라 하지 않나, 원!”
가만히 듣기만 하던 회장이 나섰다.
“우리나라 대통령이나, 내각 책임제 아래서의 장면(張勉) 총리 부인 이름은 참으로 촌스럽습니다. 이승만의 부인은 프란체스카였지만, 귀화한 후에는 이부란으로 썼지요. 어감이 생경하고, 좀 답답한 느낌을 줍디다.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총리의 부인 이름이 뭐였지요?”
“공덕귀와 김옥윤이었지요.”
마침내 분위기가 대통령 부인 이름 토론장처럼 변했다.
“공덕귀는 남자 이름 같기도 하지만, 김옥윤은 어감이 촌사람 같은 수준은 벗어났습디다.”
“동감입니다.”
여기서 요한궉은 옳다구나 싶었다. 좋다, 이름이라면 자신 있다!
그러고 나서 그는 팔을 걷어붙였다. 여러 노인학교에서, 약방 감초처럼 두루두루 섞어 우스개로 써 먹던 수법이었다. 그가 입을 연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혹은 총리 부인(즉 영부인)의 이름은 전반기(?)와 후반기로 구분하면,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대통령 부인의 이름만큼 뒤죽박죽인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진 사연도 드물다고 전제했다. 아래에 옮겨보자.
김옥윤의 뒤를 육영수가 이었다. 지금은 하나의 고전(?)이 되었지만, 박정희와 육영수의 결혼식 주례가 신랑 신부를 뒤바꾼다.
“지금부터 신랑 육영수 군과 신부 박정희 양의 결혼식을 올리겠습니다.”
단번에 엄숙한 분위기가 산산 조각이 날 수밖에. 세상에 신랑과 신부가 한순간에 바꿔치기가 되었으니. 그러나 그건 그냥 우스개로 넘어갔다. 과연 ‘육영수’는 남자 이름이다. 옛날 교과서에도 ‘영수’는 흔히 남자 아이로 나오지 않았던가?
프란체스카, 공덕귀, 김옥윤, 육영수, 홍기(최규하 대통령 부인/ 외자다.)….이만 하면 그들의 성별을 이름만으로 구분해 내기는 힘들리라. 다만 가톨릭 신자는 프란체스카가 성녀(聖女) 이름이라 쉬 고개를 끄덕일 수 있으리라.
여기서 일화 하나, 그야말로 기가 막힌….
‘박정희와 육영수를 좋아하는 모임’이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그 양산 지회장의 이름이 박영수였다. 육군 중령 출신. 박정희에게서 ‘박’ 씨를 따오고, 육영수의 이름 두 자를 그대로 빌려 쓴 박영수! 그런데 더욱 놀랄 일은 그 박영수가 김재규의 비서실장이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차라리 경악 속으로 빠뜨린다.
요한궉 선생이 부산에 살 때, 부산일보사 대강당에서 크고 작은 강연이 있으면 자주 갔더란다. 정년퇴임한 김상훈 부산일보 사장(시조시인)이 그 모임의 고문이었다. 요한궉 가끔 가서 노래를 불러 주었다. 대강당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다. 서투르지만 그걸 연주해 가면서 박정희의 애창곡 ‘찔레꽃’까지 입에 오리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양산 분회도 결성되어 거기 발걸음을 했다. 마침내 양산 시장 번영회 정기 총회에서도 초청 받아 공연했다. 박정희를 총으로 쏜 김재규의 애창곡 ‘사나이 결심’도 자신의 입에 올렸으니 세상사 그래서 요지경이란다. 그가 일러 준 조용필 발매의 그 노래 가사다. 사나이 가는 길 앞에 웃음만 있을쏘냐/ 결심하고 가는 길 가로막는…(이하 생략)
어쨌거나 최규하 다음의 대통령은 전두환이었다. 그의 부인 이름은 이순자.
요한궉은 약간 짓궂은 표정을 짓더니 뜬금없이 이런 진단(?)을 내리는 게 아닌가?
"이순자로 말미암아 우리 역사에 영부인 ‘자야‧ 옥아‧ 순아 ‧숙아 ‧ 희야’ 시대가 열렸습니다. 좀 산뜻한 느낌을 주는 이름의 대통령 부인들이었더라면 나라가 바뀌었을 겁니다. 전두환 부인 이순자, 노태우 부인 김옥숙, 김영삼 부인 손명순, 이명박 부인 김윤옥, 노무현 부인 권양숙, 문재인 부인 김정숙….옛날엔 길 가다가 ‘자야 ‧옥아 ‧ 순아 ‧ 숙아‧ 희야’라 부르면 십중팔구가 돌아본다는 우스개가 있었어요. 하하. 특히 노태우 대통령 부인 김옥숙은 옥(玉) 과 숙(淑)을 다 따왔으니 엎친 데 덮친 격, 아니면 갈수록 태산이지요.”
따는 그럴싸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누가 김대중 부인 이희호는 거기 해당되지 않는다며 이의를 걸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유권 해석을 요한쿽이 내놓는다.
“천만의 말씀. 이희호(李姬鎬)의 이름 가운데 자가 ‘희’ 아닙니까? 자리바꿈을 슬쩍 한 거지요. 이호희가 원래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호(鎬)는 여자 이름의 마지막 자로 적당치 않지요. 하여튼 박정희나 김대중의 부인 이름만 보면 둘 다 남자입니다. 허허.”
“그렇군요. 육영숙이나 육영순으로 말씀이군요.
“이제 대통령도 후보자의 부인 이름을 보고 뽑아야 할 시기가 온 것 같아요. 적어도 ‘자야 옥아 순아 숙아 희야’는 안 됩니다. 나는 확신하지요. 하다못해 북한 김정은도 부인의 이름 끝 자가 ‘주’인데….리설주(李雪主 혹은 李雪珠)! 어감도 얼마나 좋습니까? 하하. ”
“하면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될는지 점을 쳐 봐야겠습니다그려.”
“거 참 흥미진진하군요. 부인 이름이 ‘자야 옥아 순아 국아 희야’ 군(群)에서 벗어난 후보라야 합니다.”
그러다가 요한궉은 도대체 이 나라의 이 씨들은 뭘 하고 있느냐는 면박을 주었다. 소위 작가라는 사람이 오얏과 자두를 구분하지 못하다니 서글프단다. 이순자(성주 이 씨다.)는 성 씨를 한자로 李로 쓴다. 그는 그거야 삼척동자도 안다면서 파안대소했다. 그가 물었다. 무슨 이 자냐고. ‘오얏 리’지 뭐냐는, 망설임 없는 반문이 십중팔구의 에에서 튀어나온다.
“저런! ‘오얏 리’가 뭡니까? ‘자두 이’지요. 바뀐 지 오랜데, 이 씨들은 계속해서 우깁디다. ‘오얏 리’라며…. 그렇게 둔감해서 쓰겠습니까? 학자마저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을 설명하면서, 풀이한다는 게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마라?”
“아! 오늘 중요한 걸 하나 깨달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종친회에 가서 얘기해야지요. 그건 그렇고. 당신은 요한궉이라는 아호를 쓰는데, 이참에 속 시원히 설명해 보세요.”
“궉 씨라는 성(姓)이 있는 건 아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설화가 이렇습니다. 옛날 어느 처녀가 우물가에서 보리쌀을 씻고 있는데, 하늘에서 커다란 새가 날아 내려와 가슴팍에 충격을 가했다 합디다. 그러곤 ‘궉!’하는 소릴 내고 도로 승천(?)했다더군요. 그로부터 태기가 있어 열 달이 지난즉 아기를 출산하게 되었다는 설화. 그 아기가 궉 씨의 시조라는….”
그 ‘궉’ 자가 참 좋아서 탐을 냈단다. 그의 부모가 지어 준 이름은 요환(要煥)이었다. 성은 물론 권(權) 씨. 세례 받을 때 수녀가 조언하더란다. 본명을 요한이라고 하라고. 영어론 John. Johnnes라고도 쓴다 했다. 어쨌거나 요한이라는 성인은 마흔세 분이다. 그 중에 세례자 요한을 골랐다. 약간 억지를 그가 부렸으니 이거다.
“마리아와 궉 씨 시조의 어머니를 어찌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마는, 처녀인데도 아들을 낳았으니 접목(?)이 완전 억지는 아니지요. 요한을 앞세우고 궉 씨 성을 빌어다가 만든 제 예명 혹은 필명이. 한데 궉 자가 참 드문 글자지요. 궉(鴌) 자는 자전에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인터넷에 뜨긴 합디다만. 하늘 천(天)자 밑에 새 조(鳥), 鴌은 봉새 궉 자입니다. 궉채이라는 유명한 국가 대표 인라인스케이트 선수가 있습디다, ”
<새 옛날식 다방엔 곤드레밥도 팔더라.>
다시 두어 달이 흘렀다. 그런데 그가 모습을 감춘 것이다. 경로당 회원들도 무척 궁금해 했으나, 감쪽같이 그가 사라져 버리고 만 것. 전화를 해도 안 받았다. 물론 부인도 보이지 않았다. 7월 말 어느 목요일이었다. 그가 경로당에 나타난 것은.
“어깨 수술을 했어요. 분당 바른세상 병원에서….”
“그러셨군요. 다들 걱정했는데. 당최 전화도 안 받으니 답답했습니다. 상태가 심합니까?”
“뭐 ‘좌측 견관절 회전근개 파열’ 및 ‘좌측 견관절 유착성 관절낭염’이랍디다. 어찌나 통증이 심한지 견디기 힘들어요. 일주일에 사흘 재활 도수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다닙니다. 앞으로 석 달은 더 고생해야 한다나요? 아이고아이고 아야 소리가 저절로 터집니다. ”
근데 며칠 전 하루 옆길을 걸었단다. 하도 아파서, 병원에 가는 척 집을 나서서는 야탑역을 지나치고 모란에 내렸다는 것이다. 시장 구경이나 할까 해서. 까짓 하루쯤 치료를 안 받는다고 심히 덧나겠느냐는, 약간의 반감(?)도 있었다. 그의 말이다.
“김정숙 씨를 만나고 왔습니다. 허허.”
“아니 영부인 말씀입니까? 김정숙 씨가 모란 시장에 왔습니까?”
모란 시장은 사실 요한궉이 정말 가고 싶었던 곳이었단다. 전국에서 제일 큰 전통 시장이라는 소문을 오래 전부터 들어왔던 터이기도 해서였다. 마침 새벽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요한궉 선생은 노래를 흥얼거렸다.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 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 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그야말로 부린 마담에게/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 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1‧ 2절을 다 마치고 나니 기흥역이다. 왕십리 행을 타야 한다. 다음 열차가 오는 동안 요한궉은 벤치에 앉아서 다시 ‘낭만에 대하여’을 입에 올렸다. 이번에 조금 소리를 키웠다. 어떤 초로의 여인이 최백호와 혈연관계인 것 같다며 중얼거리곤 지나갔다.
요한궉이 모란역에 내렸을 때, 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다행히 개나 고양이를 도축하는 데는 없었다. 하지만 여기저기 가게에 그 사체들을 진열해 놓아 특유의 냄새가 났다. 시장에 별로 신기한 게 보이지 않아서 적이 실망했다. 한 바퀴 외곽을 돌다 보니 유달리 눈에 띄는 게 있었으니 ‘다방’이다. 어림잡아 일고여덟 개는 되는 것 같았다. 소위 카페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요한궉은 중얼거린다. ‘옛날식 다방’이 있으면 제격이련만!
비는 그칠 줄 몰랐다. 요한궉은 더 이상 걸을 마음이 없어 어느 다방 문을 밀치고 들어섰다가 그 자리에 우뚝 서고 말았다. 벽에 라면이 얼마며 국수가 얼마라는 따위의 메뉴가 불어 있어서다. 순간 아가씨(?) 둘이 쪼르르 달려 나오며 반색이다.
“오늘 대박! 최백호 오빠 등장입니다. 오빠 정말 최백호를 닮으셨네요.”
그런 분위기를 그냥 넘길 요한궉이 아니다. 마이크를 잡고 열창하는 흉내를 내며,
“왜 내가 최백호를 닮아? 최백호가 날 닮았지. 허허”
하곤 호탕한 웃음을 날렸다. 그제야 비로소 다방에 들어왔다는 걸 실감했다. 얼마 만인가? 요한궉은 짐짓 점잖은 척 표정을 짓고, 커피를 주문했다. 석 잔이다. 자신과 레지 둘. 그러자 레지 둘은 마담 언니가 따로 있단다. 마담도 불렀다. 1만 2천원을 쓰기로 했다.
그러면서 요한궉은 레지 둘을 양쪽에 앉히고 어깨에 손을 한 번 얹어보는 만용을 부렸다. 다행히도 그들은 까탈 따윈 부리지 않았다. 이윽고 커피 넉 잔이 탁자에 놓이고 넷이 한자리에 앉았다. 요한궉은 잔들이 다 비자, 만 원짜리 넉 장을 꺼내는 호기를 부리면서 왈
“점심으로 국수나 한 그릇씩 먹지 그래.”
허세를 부리다니 싶어 실소가 나왔다. 그래도 그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도수 치료 1회에 7만원! 여기 5만원을 써도 오늘 2만원은 남는 장사이고말고.”
손님은 거의 없었다다가 마담하고 둘이서만 자리를 같이하게 되었다.
“마침, 다방 안이 거의 비었으니, 내가 노래 한 곡 부르면 안 될까? ‘낭만에 대하여’! 최백호의 흔적을 한 번 남기고 싶소. 내가 MR은 언제나 스마트폰에 녹음해 다닌다네.”
“대찬성이지요, 오빠! 저기 두서너 손님에게 양해를 얻을게요, 아니 이리로 오시게 하면 되지요. 까짓 한 시간 정도는 문을 닫아도 됩니다. 아, 진짜 가수의 노래를 라이브로 듣다니.”
그래서 벌건 대낮에 기가 막히는 공연(?)이 다방에서 이우러진다. 마침 마이크와 앰프 시설도 갖추어져 있었다. ‘낭만에 대하여’ 1‧ 2절을 MR에 맞춰 열정을 다해 부르고 나니, 앙코르가 터진다. 다시 요한궉은 최백호의 ‘영일만 친구’를 내쏟는다. 바닷가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어릴 적 내 친구/ 푸른 파도 마시며 넓은 바다의 아침을 맞는다…
20분 남짓 걸렸을까? 기상천외의 초미니 콘서트는 그렇게 끝났다. 참 군데군데서 마담이 요한궉을 도왔다. 마치 뺵코러스를 하듯이. 요한궉은 마담의 목소리가 퍽 아름답다고 느꼈다.
“김정숙입니다. 정말 노래를 잘하시는군요. 저희 가게에 가끔씩 들러 주셨으면….”
“대통령 부인과 조금 닮았구려. 노래는 여기. 김정숙 씨가 우위요.”
“과찬이세요. 동명이인이지만, 한자의 가운데가 다릅니다. 그분은 바를 정(正) 자, 곧을 정(貞)입니다. 실은 저도 옛날 2년제 사범대학 음악과를 졸업했어요. 요즘은 ‘솔베이지의 노래’에 심취해 있어요. 지난번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노르웨이에 갔다 온 이후로….”
그러면서 마담은 (주) 박영사에서 낸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 165-166쪽을 펼쳐 보였다. 거기엔 ‘솔베이지의 노래(Solveig’s Lied)’가 실려 있었다. ‘페르 귄트 모음곡’ 중에서란다. 한데 마담은 놀랍게도 ‘솔베이지의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게 아닌가!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아 그러나 그대는 내 님일세 내 님일세/ 내 정성을 다하여 늘 고대하노라/늘 고대하노라/ 아……
요한궉은 그 처연한 목소리에 정신을 앗기고 말았다. 조금 전에 자신의 ‘척하는’ 실수(?)가 되레 부끄러웠다. 레지 둘이 입을 모아 말한다.
“오빠, 영부인과 김정숙 언니의 노래 솜씨를 한 번 비교해 보세요.”
그러곤 둘은 내 스마트폰을 빌리더니 김정숙 영부인의 목소리를 어떻게 재생해 낸다. 문재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에 어느 유세장에서 부른 노래였다. ‘희망의 나라로’와 ‘그리운 금강산’. 현장에서는 사람들이 아우성까지 지르고 발을 구르며 박수를 보냈지만, 요한궉은 적이 실망하고 말았다.
그건 성악을 전공한 사람으로 여기기에는 너무나 실력이 부족했다. 대중가요를 어지간히 좋아하는 보통 사람도 그 정도는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하필이면 친일 인사로 손가락질 받는 현제명 작곡의 ‘희망의 나라로’를 택한단 말인가? 아니나다르랴 댓글을 보니 반 훨씬 넘게 혹평이다.
그런데 이어서 들려주는 어느 정치가의 부인은 열에 아홉 이상이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대비가 되고도 남았다. 가곡이 아닌 대중가요 ‘만남이었는데….노사연이 부른 거 말아다.
“사양길에 접어 든 것 같아. 지금 저명한 여성 중에서 자야니 옥이니 순아니 숙이니 희야 등 말이야. 영부인 김정숙 처신도 남의 입줄에 오르내리고 있던걸? 북한에 갔을 때도 아슬아슬 했다지 뭐요? 김정숙 씨가 노래를 부르겠다고 나섰다는 거야. 리설주는 김정은에게 제지를 받았다고 해요. 현송월이 나섰다는 후문을 들었소. 천우신조지. 우세하기 직전에 현송월이 구제했다고나 할까?”
요한궉이 워낙 열을 내다보니, 아가씨 둘이 어느 새 합석해서 끼어든다.
“우리 마담 언니가 차라리 옵서버라도 따라갔었으면 호호. 농담이에요.”
시간은 점점 흘러갔다. 손님 둘도 돌아갔다. 다방 안은 한산했다. 요한궉이 한마디.
“장사가 이렇게 안 되어 어쩌지? 각종 경제 지표가 걱정이고….”
“경제가 엉망이니 민심이 싸늘하지요. 정말 경기가 엉망이에요.”
“그래도 대통령 지지율은 50%을 상회하던데?”
“허수! 오늘 모란역 출구에서 길거리 미터 조사를 하던데, 손님들은 그걸 믿어요. ”
“이럴 땐 영부인이라도 내조를 잘해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되어야 할 텐데….”
“오히려 발목을 잡는 것 같아요. 특히 체코나 일본에서 퍼스트레이디로서의 모습은 국민의 얼굴을 찡그리게 했어요. 사흘이 머다 하고 외국 여행으로 나가 혈세 낭비나 하고….”
“김정숙이라는 촌사람 이름을 가진 여성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겠지만, 개개인이 각성해야 하겠구려. 이 다방의 김정숙 씨는 아름다운 노래나 손님에게 선사하소.”
그러면서 다방 문을 나서는 요한궉의 심경이 착잡했다. 뭐 내조는커녕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고? 약간 위로가 되는 바가 있었다. 모든 김정숙이 다 그러지는 않으리라는 기대 덕분이었다. 다시 역으로 나와 지하철을 탔다. 불현듯 김정숙이라는 이름 생각이 나서 스마트폰을 열어 찾아봤다. 김정숙 영부인을 비롯하여 대여섯 명은 되겠지.
한데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김정숙이라는 동명이인이 무려 스물여섯 명이나 되는 게 아닌가? 게다가 모두가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고 저명인사다. 대학 교수가 반이 넘는다. 역대 대통령 부인의 이름은 거의 ‘전멸’이다. 그의 입에서 자연스레 튀어나오는 탄식.
“아, 김정숙 씨, 모두 예사롭지 않군! 청와대의 김정숙 씨가 군계일학이 되었더라면, 쯧쯧. 그나저나 ‘자야 옥아 순아 옥아 희야’ 시대도 이제 2년 반 남짓, 그나마 위로가 되는군.”
아 참, 황망 중이라 다방 이름이 기억에 떠오르지 않는다. 세 음절이었는데….‘낭만에 대하여’ ‘최백호’ ‘마담’ ‘궂은비’ 등을 관련지어 ‘옛날식’으로 하자. 끝.
<라면과 국수를 파는 현대의 옛날식 다방>
78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