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4일 부산에 소재한 한국거래소 내에 KRX금시장이 개설됐다.
업계에서는 (사)한국귀금속보석단체장협의회 김종목 회장, (사)한국귀금속중앙회 정재호 회장, (사)한국귀금속유통협회 유동수 회장 등이 참석했다. 필자도 참석하여 개장식을 지켜보았다.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비롯해 지역 국회의원, 정부관계자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사실 축사라기보다는 귀금속 업계의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KRX금시장의 개장으로 지하경제의 주범인 금거래가 투명화 되고, 고금유통이 양성화될 것이고, 밀수가 근절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업계인의 한 사람으로 무척이나 화가 나고 또한 부끄러웠다. 초청받은 귀금속 협회 단체장님들이 안쓰럽게 보일 정도였다.
다만 국내 금시장의 양성화만을 위해 KRX금시장이 개설되었다면 그것은 불필요한 존재라고 본다. 기재부, 국세청, 관세청 등이 강력한 단속 의지로도 가능한 일을 굳이 거래소를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거래소에 설립한 금 거래소의 정확한 명칭은 KRX금시장이다. 사실 금(상품)거래소가 맞는 표현이다. 정부에서 금 거래소를 설립하려고 했을 때 민간업자들이 이미 금 거래소라는 상호등록을 해놓은 상태여서 어쩔 수 없이 KRX금시장이라는 명칭을 쓸 수밖에 없었다. 시장이라는 명칭을 쓰게 된 근거는 영국의 LBMA(London Bullion Market Association, 런던금시장협의회)에 있다고 볼 수 있다.
2009년 정부에서 금 거래소 설립에 대해 처음으로 추진할 때 기획재정부가 주무부처가 되어 진행하다가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로 업무가 이관 되어 통합되었다.
당시 금 거래소의 설립 필요성은 세 가지로 요약되는데 첫째, 유통 구조의 이원화로 인한 문제점 해결(자료금과 무자료금)과 둘째, 국제 금가격 및 환율변동 리스크 관리에 대한 정부의 관리 감독 부재. 셋째, 귀금속 품질관리 및 감정에 대한 신뢰기반이 취약한 이유. 마지막으로 직접적인 계기는 2001~ 2005년에 발생한 면세금 부당환급사건이다.
가공거래(폭탄금업체), 변칙거래(쌍용금은 등)로 금사업자 195명을 국세청에서 전원 검찰에 고발하여 100% 전원이 구속되었고, 이 여파로 1조8천억원이 과세되자 2007년 정부 T/F팀은 ‘귀금속산업발전방안’을 긴급히 정책으로 수립하고 ‘금유통기구’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오늘의 KRX금시장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도 과감한 귀금속 업계의 거래소 유인책인 부가세 면제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경부, 한국거래소에서 건의했으나 기재부에서는 불법으로 재산을 상속하거나 증여할 수 있다는 논리로 묵살되었다.
그러던 중 2012년 12월,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 시절에 ‘일반상품거래법’에 의한 추진을 포기하고 지하경제양성화의 방안으로 금 거래소에 대한 정책을 전격적으로 전환한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 국세청, 관세청, 한국거래소가 주축이 되어 금시장 개설 및 금 거래 양성화를 위한 정부 T/F팀이 구성되어 2013년 7월 22일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에서 ‘ 금 현물시장 개설 등을 통한 금 거래 양성화 방안’이라는 제목으로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주요 내용은 첫째, 과세 인프라 확충방안으로 현금영수증 의무발행업종에 귀금속 시계업종을 포함하고 둘째, 전자세금계산서 발행 대상을 10억에서 3억으로 낮추는 방안으로 확대하고 셋째, 자료상, 무자료 거래에 대한 세무조사 등 세원관리 강화 방안으로 세무당국의 현장정보 수집, 세무조사를 강화하고 넷째, 품질에 대한 신뢰확보 방안으로 조폐공사가 금 품질관리에 관여하게 되고 다섯째, 밀수단속강화로 관세청에 금 정보 분석 전담반을 편성하고 통관심사를 강화했다.
이때부터 금 거래소를 KRX금시장으로 이름을 변경하면서 2014년 1/4분기 중 금 현물시장을 개설하겠다고 발표하고 시급히 개장을 추진한다.
현재 KRX금시장 활성화의 정부기관의 역할을 보면
우선 기획재정부, 금융위는 전 방위 고강도 양성화 정책으로 현금영수증 의무발행, FIU(차명계좌 조사 및 국세청 고발)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산업자원통상자원부, 조폐공사는 금 품질 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고 관세청은 밀수 단속을 위해 금 전담반을 구성하고 있다. 이처럼 모든 초점이 과도한 양성화라는 정책에만 일관되어 있고, 우리 업계에 대한 지원이나 발전 방안은 전무한 상태로 초기의 금 거래소 설립 취지와는 너무나 다른 형태의 KRX금시장이 개설된 것이다.
현 KRX금시장의 문제점을 보면
첫째, 외국의 성공적인 금거래소 중 민간 위주의 영국 LBMA 시장과 정부주도의 중국 상하이 황금 거래소의 형태를 믹스한 금 거래소라고 말하지만 현재 KRX금시장은 전세계 금 거래소에서 유일하게 부가세를 10% 적용하는 실물업자에게 매우 불리한 금 거래소임이 틀림없다.
이는 금의 화폐적인 기능을 무시한 채 귀금속 제품의 원재료인 상품으로의 기능만 부각한 것으로 외국의 선진화된 거래소 운영에 우리나라의 편협적인 세제정책이 제대로 따라오지 못한 절름발이식 형태라고 말 할 수 있다.
일례로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도 골드바에 대해서는 17%의 부가세를 부과하지만 거래소에서 인출된 골드바에 대해서는 전액 환급해 준다.
둘째, 정권이 바뀌면서 양성화와 지원이라는 정책이 지하경제양성화라는 강력한 제재정책으로 급선회 했다. 정부, 관련기관, 학계, 업계의 의견을 아울러서 국회의 입법기관을 통한 법률로 운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KRX금시장의 조기 개설에만 치우치다 보니 한국거래소 내부규정(자본시장통합법)으로 간소화된 것이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셋째, 업계, 학계의 의견 수렴이 전무한 상태의 KRX금시장이 개설되었다. 귀금속 업계가 양성화의 대상이고 그 방안이 KRX금시장 개설이라 주장하지만 실제로 양성화의 대상이라는 귀금속 업계의 의견은 KRX금시장 개장이 우선이란 이유로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넷째, 공청회, 설명회, 교육, 홍보, 모의거래 등을 충분히 진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개장했다.
다섯째, 현재 조폐공사 감정료(건당 30만원), 전산프로그램사용료(매달 30만원), 예탁결제원으로부터의 딜리버리비용(운송료) 등을 영세한 귀금속업자와 삼성증권, 신한투자신탁 등 대기업과 동일한 조건으로 부담시키고 있다.
여섯째, 금융권, 증권사의 금 실물 인출 문제로 지난 3월 21일 시중 증권사 9곳은 서울 여의도에서 긴급 모임을 갖고 금융위에 금 거래에 대한 법적 보완책 마련을 요구했다. 증권사는 현재 개인 투자자들에게 금위탁매매 주문을 받아 KRX금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현 자본시장법 시행령에는 ‘어음’과 ‘예탁원이 필요로 하는 것’을 예탁 대상으로 한다고 있지 금 현물이란 용어는 없기 때문에 강력히 유권해석을 한국거래소에 요청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한국거래소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증권사들의 거래 금 지금이 모두 예탁결제원의 보관 및 인출을 거친다’고 언급한 것을 보면 증권사가 금 실물을 인출하는데 우려하는 내용은 일단락 된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이나 증권사 등은 금 지금 관련 파생상품으로 상장지수펀드(ETF), 주가연계증권(ELS), 상장지수채권(ETN), 파생결합사채(ELB) 등의 금융상품과 파생상품으로 개발되는 펀드나 리스 등 실물이 필요 없는 파생상품들이 우리 금시장의 실물인 금제품과 경쟁해야 함은 자명하다고 보인다.
마지막으로 금 실물사업자의KRX금시장 진입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우선 수입업자의 경우 관세는 면제지만 0.6%의 농특세는 면제받지 못했다.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기 때문에 수입해서 거래소에 입고하는 것이 가격경쟁력으로 볼 때 전혀 매력이 없다.
실례로 한 업체는 30kg을 수입했다가 농특세 때문에 낭패를 보고 손해를 감수하고 재 수출했다.
또한 고금은 KRX금시장에 진입 할 수가 없다. 고금의제매입이라는 유인책이 사라져 뒷금 형태의 고금을 양성화하기 위한 금시장의 진입이 사실상(가격경쟁) 불가능하다. 왜? 비싸게 사서 싸게 팔수 없으니까?
대안 및 요구 사항을 정리해 보면
첫째, 외국의 성공적인 금 거래소를 벤치마킹하여 KRX금시장에서 인출되는 골드바에 대한 부가세를 철폐해야 한다.
둘째, 금 실물은 귀금속업계의 생존의 문제인 만큼 금융권이나 대기업의 실물인출을 적극 반대한다.
셋째, KRX금시장의 양성화 정책은 귀금속 업계와 협의하고 이에 따른 충분한 지원책을 병행 추진해야 한다.
넷째, KRX금시장은 금 실물업자를 금융권 제도인 자본통합법에 의거하여 적용시키지 말고 별도의 실물상품거래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다섯째, 현재 거래되는 호가 개념의 거래시세를 이원화(페이퍼골드, 실물인출 소매가)하여 귀금속 소매상의 골목상권을 보호하는데 적극 협조하라.
마지막으로 현재 자기매매회원으로 등록한 금 도매업체의 경우 매입자납부제도에 의거하여 양성화된 금 도매업체로써 KRX금시장이 양성화의 정책으로만 일관한다면 불필요한 옥상가옥이 될 것이니 거래활성화를 위한 운영규정의 개정과 제정을 귀금속업계와 적극적으로 협의해야 한다.
개장 이후 거래량이 미미해지고, 애초 목적인 금시장의 양성화 효과도 거의 없다고 판단될 때 정부가 고강도의 대책을 강구하는 무리수를 두게 될까 우려스럽다. 금 실물업자의 요청안을 적극 수렴하는 것이 지금은 느려도 결과론적으로는 빨리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귀금속업계와 상생하고 함께 가는 KRX금시장을 기대해 본다.
/ 글: 차민규
(사)한국귀금속유통협회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