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발의 회상: 두만강에서 중앙아까지 ③
두만강 말모이: ‘나그네’는 ‘남의 편’이 아닌 동지
연변 사람들의 말씨는 주로 평양 문화어, 그 중에서 지리적 근접성 때문에 함경도 말투에 가깝다. 함경북도 억양과 경상도 억양이 섞여 좀 억센 편이다. 연변에서는 편한 말로 남편을 ‘나그네’라고 하고 아내를 ‘안가이’라고 한다. 굳이 연변의 독특한 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연변 특유의 의미가 깃들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그네의 사전적 의미는 ‘결혼한 남자를 그 아내에 상대하여 이른 말’, ‘결혼한 남성(속어)’을 말한다. 어원은 '나간'+'네'로 볼 수 있다. ‘나간’은 집을 나갔다는 것이고, ‘네’는 일반적으로 사람을 속칭한다. 남편은 밖으로 다니고, 왔다 갔다 하니까 당연히 나다니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연변의 남편들은 다른 지방과 달리 많이 나돌아 다니어서 붙여진 이름일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자면 조선에서 간도로 이주한 사람들의 고달픈 삶의 속뜻이 ‘나그네’라는 말 속에 스며있는 것 같다. 개척지에서 농사짓기에 바쁘게 매달리다 보니까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독립운동을 하려면 당연히 집에서 편히 지낼 수 없었을 것이다. 집에 어쩌다 들리는 생활이라 나그네와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힘겨운 황무지 개척과 같은 농사일에 쫒기는 타향살이도 서러울 터인데, 독립운동가에 대한 일제의 감시와 추적, 암살과 같은 조선인 탄압정책으로 정처 없이 쫓겨 다니며 살아야만 했다. 그러니 밖에 나간 남편은 당연히 이따금씩 나타나서 잠시 머무르다가 다시 나가야하는 존재이었을 터니까, 지나가는 나그네가 하룻밤에 잠깐 들렸다 가는 ‘나그네’와 다를 것 없어서 남편을 ‘나그네’로 부르는 것도 당연하였으리라. 하기야 ‘남의 편’이래서 부르는 ‘남편’이나 ‘나그네’나 아내의 입장에서는 도긴개긴(도찐개찐)일지 모른다. 그래도 연변 댁의 ‘나그네’는 ‘남의 편’이 아닌 동지였으리라.
세월이 흘러도 나그네 심정은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중동의 열사에서, 망망대해의 선원에서, 기러기 아빠에서 나그네는 연변 뿐 만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똬리를 틀었나 보다. 국민 애창곡 ‘나그네 설움(1940)’에서 ‘나그네’의 외로움과 서러움이 50년 지나서도 연변가수 김우진의 ‘연변 나그네(1989)’에서 회상되지만, ‘나그네’의 한, 이제는 풀어줄 날이 오리라.
듣기 https://youtu.be/tgmCP8ZjQ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