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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고흥 74코스
내로 여성복지회관-외로마을-도야마을-노송마을-남양방조제-남양 버스정류소
20220525
1.고흥만 연안 풍경과 메타세콰이어길
남파랑길 74코스는 9.2km, 3시간 안에 걸을 수 있는 거리다. 실제 걸은 거리는 9.4km, 2시간 20분이 걸렸다.
내로마을 여성복지회관 앞에서 출발하여 노일보건진료소 옆 내로당낭길로 나가 남파랑길 74코스를 출발한다. 해가 쨍쨍하지는 않지만 햇볕은 뜨겁다. 비교적 짧은 이번 남파랑길 74코스는
1)과역면 노일리의 내로마을과 외로마을
2)과역면 도천리의 방란마을과 도야마을
3)남양면 대곡리의 노송마을
4)남양면 남양리의 남양마을
과역면과 남양면 6개 마을을 통과하여 끝난다.
1)과역면 노일리 내로마을과 외로마을
마을을 넘어서 고흥만 해안으로 나갔다. 휴양체험마을 앞에서 맞은편 고흥만을 바라보면 남파랑길 73코스를 걸은 전체를 바라볼 수 있다. 특히 대전리 용등산 해안과 대전방조제, 예회리 해안은 손금을 읽듯이 조망할 수 있다. 바다에는 작은 섬 서목섬과 하루에 2번 바닷길이 열린다는 우도가 둥실둥실 떠서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74코스의 종점의 표지가 되는 남양리 산성의 정상이 분명히 가늠된다. 74코스는 남양리 산성 아래 남양 버스정류소에서 끝난다.
해안을 따라가면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죽도 섬이 나오는데 죽도 섬에 들어갔다가 나오고 싶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그대로 통과하여 외로마을 앞 방조제를 건넌다. 방조제에서 외로마을은 가깝다. 외로마을은 한가하다. 외로마을을 빠져나와 과역로로 나와 아스팔트 도로를 걸어 나가면 오른쪽에 고흥 명품유자농원과 서정환의 석류농장 입구가 나온다. 과역로 고개를 넘으면 노일리에서 도천리로 진입한다.
2)과역면 도천리의 방란마을과 도야마을
과역로 방란마을 버스정류소에서 왼쪽 방란길로 진입한다. 방란, 이름이 요상하다. 꽃다울 방(芳), 난초 난(蘭), 향기로운 난초의 마을 방란(芳蘭)마을은 방란길을 따라오다가 왼쪽으로 있고, 그 맞은편 과역로 방향에는 하송마을과 상송마을이 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방란마을 앞을 지나치며 사진을 담지 못했다. 곤포 사일리지들이 쌓여있는 곳을 지나치며 농부에게 그 이름을 질문하였던 곳 그 위쪽 마을이 방란마을이라고 생각한다. 방란마을을 지나쳐와서 왼쪽 도야마을로 들어가면 들녘이 활짝 열리며 도착해야 할 남양리 산성은 더 가까이서 손짓한다.
도야마을은 과역면과 남양면을 이어주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도야라는 이름을 얻었다. 옥류봉 아래 비교적 당당한 마을의 품새를 지니고 있다. 마을 입구의 사업체 정문 기둥 위에는 한 쌍의 개구리 조각상이 양쪽에 설치되어 있는데 오른쪽 엄마개구리는 쌍둥이 아기개구리를 업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솟을대무에 백세문 현판을 달고 있는 기와집이 있는데 어느 문중의 재실인 것 같았다.
도야마을 버스정류소 앞 중심거리에는 마을회관, 복지회관, 부녀회관이 자리하고 있는데 도야마을의 기품을 드러내 주었고, 그들의 자존심을 도야마을 특산품인 참꼬막, 고흥유자, 간척지 쌀(海米), 마늘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마을 버스정류소 옆 도천교회는 신도수가 얼마나 되는지, 마을 사람 전체가 모두 교회에 다닐까? 교회 정문 앞을 지나 도야마을 밖으로 나와 도야마을을 바라보면 산세와 마을이 잘 어울어진 풍경을 연출한다.
3)남양면 대곡리의 노송마을
도야마을에서 나와 방조제 아래의 규모가 큰 왕새우양식장을 우회하여 우주항공로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남양면 대곡리 노송마을로 들어간다. 노송마을은 우주항공로와 고흥로 등 도로와 가까이 접해 있다. 마을집 우사(牛舍)에 한우들이 튼실하게 자라고 있는데 송아지가 엄마젖을 먹는 모습을 참 오랜만에 보게 되었다. 고흥로에서 남양초등학교와 남양중학교로 이어지는 골안송정길 갈림목에서 남파랑길 고흥 지역으로 들어오던 생각이 솟아났다. 벌교에서 고흥으로 들어오는 남파랑길을 안타깝게도 역방향으로 걸어서 지금도 혼동이 일어선다. 남파랑길 63코스와 64코스는 고흥 남양면 지역으로 들어와서 과역면으로 나아가는 탐방길인데, 길손은 안내산악회의 계획에 따라 64코스를 역방향으로 걸은 뒤 63코스도 역방향으로 이어갔다. 그 기억을 되살려 추억한다.
남파랑길 64코스를 과역면 연등리 독대마을회관 앞에서 출발하여 연등마을, 슬항마을, 외호마을을 거쳐 남양면으로 넘어와 장담리의 오도방조제를 건너 신흥리 들판을 걸어 장동마을로 들어왔다. 이곳에서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대곡리의 상와마을, 그곳에 남양초등학교가, 거기서 주교마을 방향으로 더 내려가면 남양중학교가 나온다. 지금 남양면 대곡리 노송마을에서 상와마을과 주교마을로 이어지는 안골노송길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는다. 이 길은 남파랑길 63코스의 망주리로 이어져 망주산이 우뚝한 대강천 방죽길과 죽암방조제를 걸어 벌교 방향으로 나아간 일이 아득한 듯 떠오른다. 그때 망주산이 남해와 순천만을 굽어보는 조망이 일품일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지금도 그 풍경이 분명히 떠오른다.
남파랑길 74코스 남양면 대곡리 고흥로에서 동쪽 방향의 대곡리 상와마을, 주교마을, 망주리 망동마을과 망주산을 추억하며 가슴이 들떴다. 그 추억은 고흥로 메타세콰이어 길에서 순식간에 눈녹듯이 사라졌다. 싱그런 푸르름, 상큼한 나무줄기, 74코스의 명품길은 지금 이곳의 기쁨에 사무치게 했다. 걸어온 모든 고통과 잡념은 새털처럼 가벼이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고흥로에서 왼쪽으로 꺾어 농로로 진입했다. 이앙기로 모내기를 하는 모습을 만났다. 이앙기가 지나가며 꽁무니에서 나오는 모를 심는 장면은 내 생애 처음으로 보게 된다. 부끄럽지만 농촌 현실을 너무도 모르는 먹물이다. 예전 국민학교 때 농번기 방학이 있었는데 그때 모내기를 해 본 체험이 아득할 뿐이다.
4)남양면 남양리의 남양마을
우주항공로 대곡교 아래를 통과하면 왕새우양식장, 주로 방조제 아래 바닷물이 풍부한 곳에 왕새우양식장이 있음을 고흥 지역을 걸으면서 알게 되었다. 왕새우양식장 앞을 지나 임도를 따라오르다가 왼쪽으로 꺾어 내려가면 남양면 남양리로 들어간다. 역시 방조제를 세워서 드넓은 간척농토를 개척하였다. 남양리 방조제는 맞은편 과역면 도천리 방조제와 마주보고 있으며 그 사이로 열린 바다 끝 해안은 고흥만 예회리 해안으로 가늠한다. 맞은편 옥녀봉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그 아래 도야마을과 무슨 관련이 있을 것 같다.
방조제를 건너 간척농토 사이 농로를 따라 올라가면 고개, 고개에서 과역면 도천리와 남양면 대곡리 일대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길손은 마치 탐정이나 되듯이 걸어온 길의 실체를 하나씩 밝혀내는 즐거움에 젖는다. 고개의 밀밭에는 빛깔이 다른 수많은 밀이삭들이 고개를 뻣뻣이 내밀고 탐정의 추리가 정확한지 감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고개를 넘어 우주항공로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고흥로 큰길로 나간다. 남파랑길 74코스의 이정표가 되어준 남양리 산성이 가까이서 길손을 반기고, 그 아래 남양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고흥로 큰길로 나가 아담한 남양이발관을 지나 고흥로와 남양로가 만나는 남양사거리에 이르렀다. 오른쪽 남양로는 남양초등학교와 남양중학교 그리고 망주리로 이어지는 길이고, 왼쪽 고흥로는 남양리 해안으로 나가 우도 방향으로 이어진다. 고흥로 남양 버스정류소 옆 남파랑길 75코스 안내도가 있는 곳에서 남파랑길 74코스를 마친다. 그리고 남양사거리 맞은편 남양수퍼를 찾아가 캔맥주를 마시며 1박2일의 남파랑길 고흥 72-74코스를 걸은 기억을 되살리며 감회에 젖는다.
2.걸은 과정
남파랑길 74코스 안내도가 건물 왼쪽에, 74코스 시작점 표지물이 오른쪽 쉼터정자 기둥에 있다.
안내도에 소개된 세 곳은 남파랑길 74코스에서 가기 어려운 곳이다. 특히 우도는 75코스 안내도에 소개해야 될 듯.
노일보건진료소 옆 내로당날길을 따라 진행한다.
내로(內老)마을은 당초 마을 명을 흥양군 남면(남양면과 합병 당시) “노나리”라고 불러오다가 1910년 한일강제합병과 동시 과역면 2代 면장 조방호(趙芳浩)가 마을 명을 노일리(老日里)의 중심 마을이라 하여 노나리(老羅里) 안쪽이라는 뜻으로 안 내(內)자를 써서 내로(內老)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집단 주택지가 4군데로 분리되어 형성됐다 하여 지금도 골몰, 양짝, 세돔, 음짝 등으로 부른다.)(고흥군청)
구사산과 그 왼쪽의 노일방조제, 구사산 오른쪽으로 용반리 해안과 그 오른쪽 용산리 해안과 용산방조제가 가늠된다.
오른쪽 해안 방향으로 진행한다.
왼쪽 체험휴양마을 방향으로 진행한다.
왼쪽은 체험휴양마을, 오른쪽 둘레길 방향으로 진행하여 앞에 보이는 섬 죽도 앞을 거쳐 간다.
언덕 위에 체험휴양마을이 있다. 그 오른쪽 뒤에 용산방조제, 그 오른쪽에 영오리 해안과 성두리 해안이 이어지고 있다.
맨 왼쪽은 성두리 해안, 그 오른쪽으로 예회리 해안이, 맨 오른쪽에 대전방조제와 그 오른쪽 용등산 해안이 분명히 보인다.
왼쪽 고흥만 예회리 해안이 이어지고 그오른쪽으로 대전방조제와 용등산 해안이 보인다. 용등산 해안 앞 바다에 작은 서목섬이 용등산 해안을 가리고 있다. 오른쪽 앞은 죽도, 그 뒤는 우도, 그 왼쪽에 각도섬이 분명히 보인다.
죽도 섬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중앙 뒤의 산에 남양리산성이 있으며 그 아래가 74코스 종점이다.
바닷물이 빠져서 죽도에 걸어 들어갈 수 있다. 오른쪽 뒤에 우도 섬이 보인다.
바다 왼쪽에 우도 섬, 중앙 오른쪽 뒤 산에 남양리산성이 있으며 그 아래가 남파랑길 74코스 종점이라고 어림한다.
방조제를 건너서 오른쪽으로 꺾어 노일리 외로마을 방향으로 올라간다.
죽도 앞 낮은 산모롱을 돌아서 외로마을 앞 방조제를 건너 이곳으로 왔다.
외로(外老)마을은 당초 마을명을 “흥양군 남면 노나리”라고 불러오다가 1910년 한일강제병합과 동시 분리하면서 안쪽마을을 내로(內老)라고 하였고, 본 마을은 노나리 북쪽편 밖에 있다 하여 외로(外老)라고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흥군청)
뒤쪽 중앙에 죽도, 그 앞 왼쪽에 낮은 산, 그 앞 오른쪽으로 외로마을 방조제가 길게 가로막고 있다.
과역로를 따라 고개를 넘어 노일리에서 도천리로 들어간다.
과역로를 따라 고개를 넘어 과역면 노일리에서 도천리로 들어왔다.
왼쪽으로 꺾어 과역로에서 방란길로 들어가 방란마을 방향으로 이어간다.
과역로를 따라 고개를 넘어 도천리로 넘어왔다. 오른쪽 골짜기에 암자인 듯한 건물이 보인다.
하송(下松)마을은 1580년경 박상동(朴尙東)이 설촌(設村) 당시 흥양현 남면 “솔래”라고 마을명을 불렀으며 1810년 조선 순조 때 마을의 중앙지에 소나무가 무성하고 중군산 계곡물이 흐른다는 뜻으로 마을명을 송천(松川)으로 개칭한 후 다시 ‘하송(下松)’으로 분리되면서 변함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흥군청)
방란(芳蘭)마을은 과역면 노일리 지역(地域)에 속하였던 마을로 이름을 “우천”으로 불러 오다가 1952년 리동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마을 주변에 난초와 꽃나무가 많아 풍경이 좋은 마을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꽃다울 방(芳)자와 난초 난(蘭)자를 합하여 방란(芳蘭)으로 고쳐 부른 이래 1986년 7월 14일 리동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법정마을로 독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흥군청)
상송(上松)마을은 처음 마을 앞 전답에 삼을 재배하여 질삼을 많이 하는 마을이라 하여 “삼밭골”이라 불리어오다가 설촌(設村) 당시 입향조(入鄕祖) 김승룡(金承龍)이 마을 주변에 소나무가 많고 중군산 계곡물이 사계절 마을 앞에 흐르고 있다 하여 소나무 송(松)자와 내 천(川)자를 붙여 마을 명을 “송천(松川)”이라 하였으며 1920년경 일제강점기 초기에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송천(松川)이 2개 마을로 분리 되면서 윗쪽에 위치한 마을이므로 상송(上松)이라 고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흥군청)
도야(道也)마을은 당초 마을 이름은 문씨(文氏)가 처음 입촌(入村)하였다고 하여 문사동(문사골)이라고 칭하다가 서기 1900년경 분산되어 있는 상·하송, 방란을 송천이라고 하였으며, 본 마을을 합하여 “솔도야(송도야)”라고 개칭하였다. 그후 마을 앞 간척지 제방이 축조되면서 두원면과 남양면을 연결하는 길목이라고 하여, 길 도(道) 자, 잇달을 야(也)자를 출합하여 도야(道也)라 개칭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흥군청)
도야마을에 우뚝 솟은 산은 옥녀봉인 듯.
중앙 뒤 산에 숲이 우거진 곳이 남양리산성이며 남파랑길 74코스 종점은 그 아래 남양리라고 가늠한다.
아빠개구리는 왼쪽, 오른쪽 엄마개구리는 아기개구리 두 마리를 업고 있다.
기와집 대문에 百世門(백세문) 현판이 붙어 있다. 어느 문중의 재실인가? 문은 잠겨 있다.
참꼬막, 유자, 쌀, 마늘을 도야마을의 특산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오른쪽으로 빙 돌아 이곳으로 나왔다. 옥녀봉이 어느 산봉일까? 두 옥녀봉 사이에 말 안장 같은 산 아래 도야마을이 위치한 것일까? 여인의 두 젖가슴 사이의 옥녀봉 아래에 도야마을이 자리잡은 것일까? 왼쪽 끝의 산봉과 오른쪽 끝의 산봉 중 어느 산봉이 옥녀봉일까?
오른쪽에 왕새우양식장, 그 뒤가 방조제, 중앙 뒤에 남양리산성이 있는 산, 그 아래가 남파랑길 74코스 종점이다.
오른쪽 길을 따라가다가 왼쪽으로 꺾어 농로를 따라간다.
이 뒤쪽은 방조제이며 중앙 뒤쪽에 남양리산성의 자취가 보이는 산 아래가 74코스 종점 남양리 남양 버스정류소이다.
도야마을을 빠져나와 왼쪽 뒤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왕새우양식장을 거쳐 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꺾어 농로를 따라 진행한다.
과역면에서 남양면으로 넘어와 농로를 따라가다가 앞에 보이는 우주항공로 지하통로를 통하여 노송마을로 진행한다.
옛날에는 노송정(老松亭)이라 불렀다는데, 그 이유는 옛날 조방호씨댁 부근 도로변에 큰 노송(老松) 한 그루가 서있어 이 노송의 그늘 밑은 오가는 길손의 쉬어가는 휴식처였다고 하여 이를 마을 이름으로 하여 노송정(老松亭)이라 불렀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인 1914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정(亭)자를 빼고 “노송(老松)”이라 부르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흥군청)
우주항공로 지하통로를 통하여 노송마을 앞으로 나왔다.
남파랑길은 고흥로의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을 따라 진행한다. 오른쪽은 골안송정길을 따라 남양초등학교와 남양중학교로 이어진다.
고흥로에서 왼쪽으로 꺾어 농로를 따라 진행
대곡교 아래를 통과하여 오른쪽으로 꺾어 올라간다.
우주항공로 옆 임도를 따라가다가 언덕으로 올라가서 우주항공로를 바라보았다.
임도에서 왼쪽으로 꺾어 해안 방향으로 진행한다.
건너편 방조제 너머에 왕새우양식장, 오른쪽으로 과역면 도천리 도야마을이 있다. 앞에 보이는 산이 옥녀봉인 듯.
고흥만 도천리 해안(왼쪽)과 남양리 해안(오른쪽) 사이로 열린 바다 뒤는 고흥만 두원면 예회리 해안이라 가늠한다. 방조제 둑방길을 따라가서 오른쪽 농로를 따라 올라간다.
중앙 뒤에 남양리산성이 있는 산이 보인다. 간척농토 위 고개를 넘어 이어간다.
방조제를 건너 이 농로를 따라 올라가 건물 앞을 지나 중앙 뒤 고개를 넘어 남양리 남양마을로 향한다.
방조제를 건너 농로를 따라 올라왔다.
파란색 건물 앞을 지나 고개로 오른다.
과역면 도천리와 남양면 대곡리 그리고 남양면 남양리를 잇는 고흥만 해안에 방조제가 건설되어 광활한 간척농토가 개척되었다. 오른쪽 옥녀봉 아래 과역면 도천리 도야마을에서 왕새우양식장 앞을 거쳐 왼쪽 산 뒤의 남양면 대곡리 노송마을로 들어와 고흥로를 따라오다가 왼쪽 우주항공로 대곡교 아래를 통과하여 임도에서 방조제로 내려왔다. 방조제를 건너 오른쪽 농로를 따라 파란색 건물을 지나 이곳으로 올라왔다.
고개를 넘는다.
고개를 넘으니 왼쪽 언덕에 체험실습을 위해 사용되었으나 이제는 버려진 듯한 건물들이 있다.
지하통로를 통하여 남양마을 앞으로 향한다.
옛날에 마을 강변에 버드나무가 많이 있다 하여 버들내 또는 버드내라 불렀는데 이를 음차하여 버들 양(楊)자와 물 강(江)자를 써서 “양강(楊江)”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와 같이 버들내니 버드내 혹은 양강(楊江) 等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역원(驛院)이 설치되기 이전부터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와 같이 “버들내”, “버드내” 또는 “양강등(楊江)" 等으로 조선 말기까지 불러오다가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실시된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양(南陽)”이라 고쳐 불렀는데 이는 고려 때부터의 남양현의 고현지(古縣地)라 하여 남양(南陽)으로 고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흥군청)
고흥 남양리 산성은 고흥군 남양면 남양리와 중산리 일대에 있는 해발 162m의 산 정상부를 감싸고 있는 산성으로 동서 양쪽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이다. 이 지역 일대는 백제시대에 조조례현(助助禮縣)이 있었던 곳이다. 조조례현은 통일신라 경덕왕대에 이르러 충렬현(忠烈縣)이 되었다가 다시 고려시대에 이르러 남양현(南陽縣)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남양리 산성은 돌을 쌓아 만든 산성이며, 총 둘레는 534m이고, 너비는 4m내외이다. 산성의 평면형태는 부정형으로 남북이 동서에 비해 길며, 성벽은 동벽과 북벽 일부가 잘 남아 있다. 성 안은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는 지형으로 성 안의 평탄지는 12곳이 확인되는데, 계단식 형태를 띠고 있으며, 대부분이 예전에 논밭으로 경작을 하였던 폐경지이다. 성의 중앙부에는 돌로 쌓은 원형의 우물 2곳이 나란히 있는데, 지금은 폐쇄되어 물이 나지 않는다. 문터는 현 출입로로 이용되는 성의 남동쪽 회절부(回折部)에서 서쪽으로 40m정도에 있다. 현재 흙과 모래에 밀려 거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지만, 동쪽의 외측 모서리부분이 높이 90cm가량 남아 있다.
성안에서 토기류·자기류·기와류·방추차·숫돌·석환(石丸)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이 유물들의 양상으로 볼 때 이 산성은 백제시대에 처음 쌓은 후 조선시대까지 계속해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양리 산성은 성이 자리잡은 위치 및 쌓은 방법, 출토 유물 등으로 보아 백제시대에 처음으로 쌓았던 산성이며, 전남 동부지역의 백제산성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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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남양마을 버스정류소 옆에 남파랑길 75코스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건너편에 남양수퍼와 그 뒤에 남양치안센터가 있으며, 남양수퍼 앞에서 오른쪽으로 나가면 남양면사무소와 남양우체국, 팔영농협이 있다.
위쪽 남영로를 따라가면 남양초등학교와 남양중학교 그리고 망주리로 이어진다.
남파랑길 75코스는 고흥로를 따라 진행하여 우주항공로 남양교 아래를 통과하여 해안으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