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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회 박훈산 백일장 결과 발표-
장원 - 김자경 시 <계 단>
차상 - 손은주 시 <나의 노래>
우정숙 시조 <계 단>
권오용 수필 <계 단>
차하 - 정재선 시 <나의 노래>
박순례 시조 <계 단>
김정화 수필 <계 단>
설경미 수필 <계 단>
최기향 시조 <계 단>
참방 - 백화
이윤진
최민서
심금섭
권소영
◎ 장원 <자유시>
계 단
김자경(경주 용강동)
막내야
당신은 항상 그 너머에서
걸음조차 서투른
어린 딸을 부르셨다
산수유 붉게 익어가는 그 가을에...
사랑채 그 아래로
희고 시린 고무신은
한 번도 딸을 안아줄 수 없었던
당신을 닮아 있었다
섬돌아래
둔탁한 계단을 오르며
누워계신 아버지를 부른다
아부지, 아부지
그 사랑채 계단은
울 어머니 부지런한 싸리빗질에도
신음소리 배인
넉넉한 품이 되었다
산수유 검붉게 떨어지던 날
산맥의 혈맥은 멈추고
달빛에 차게 물들더니
어린 언덕을 놓으셨다
지금도 산수유 붉게 물드는데
그리운 나의 아버지는
어느 계단에서
만날 수 있으려나
으스럼 달빛에 소슬바람이 인다
◎차상 시
나의 노래
손은주(대구 수성구)
자그마한 우물 하나 숨 쉴 때
나 선홍빛 능소화로 태어났다
고목의 따뜻한 피를 먹고
뿌리에서 가슴으로 타올라 붉은 꽃 되었다
살이 차오를수록 나의 몸피는 말라
우물 속에서 축축한 사슬이 된
또 다른 나를 껴안고 한 줌 노래로
삭이고 있었다
한때는 꽃이었던 내가
허물해진 육신으로 담 밖에 휘어지면
꼿꼿한 나는 없고
잔잔한 목탁소리만 들려오는데,
저 광활한 우주 속 붉은 점 어디에
흔들렸을 나의 노래
산새의 한 마리 새는 기억해 줄까
잃어버리는 일은 무던히도 견뎌야 하는 일이지
지금은 빙결되어 피어나지 못할 계절
다시 태어나기 위해 나는 묵언 중
◎차상 시조
계 단
우정숙(대구시 달서구)
새벽을 깨우는 건 햇살만이 아니었다
어릴 적 소아마비로 절룩이는 양씨 총각
단잠 든 골목을 흔들어 또 하루 일으킨다
‘만평 이삿짐센터’ 짐수레를 끌다보면
먼 산이 어깨 위로 슬며시 와 앉는 시간
달달한 믹스커피로 거친 숨을 달랜다
살점 없는 왼다리에 찬바람이 들며나도
가난한 가지 끝에 둥지 틀 꿈을 향해
신발 끈 고쳐 묶고서 한걸음 더 오른다
◎차상 수필
계 단
권오용(영주시 지천리)
엄마는 나를 낳자 몸 한가운데 배꼽에 평생 지우지 말라는 문양을 새기셨다.
**가문 **공파 5대손.
정말 축복받는 탄생이었다. 그러나 길지 않은 행복이었다.
태어나서 석달만에 6·25가 터졌다.
워낙 산골이라 전쟁의 포화는 잘 몰랐지만 총칼 끝에 묻어온 몹쓸 병이 나를 덥쳤다.
“소아마비” 잘 들어보지도 못한 병이다. 이때부터 모든 불행은 다 나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10리가 넘는 산길을 다녀야 하는 초등학교길, 첫 출발은 동내에서 가장 빨랐지만 학교 도착은 가장 늦었다.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고통은 운동회 날이다. 다른 사람은 파란 가을 하늘이라고 하지만 난 멍울진 가을 일 뿐이었다.
인생의 둘째 계단도 그렇게 맞이했다.
중학교 입학시험도 원수 같은 체력장 20점에 막혀 낙방 했다. 합격자 발표 날, 진갈비 내리는 날만 되면 생각 키우는 잊지 못할 날이다.
머리만은 장애가 아니어서 공부는 잘 했지만 떨어진 그 중학교를 지나서 가야하는 등굣길이 싫어서 성치 못한 몸으로 먼 길을 돌아서 삼년을 다녔다.
고등학교 계단도 체육에다 교련까지 겹쳐 신나는 생활은 아니지만 철든 아이들이라 놀림을 당하지 않아 다행스러웠다.
몸이 성치 못한 손자에게 공부밖에 없다는 조부님의 덕으로 당시에는 천명중에 한 명이라는 대학교까지 갔다.
순탄하고 올라가기 좋은 계단이 펼쳐졌다. 이때부터 인간은 온전히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다는 나의 철학이 조심스럽게 전개되었다. 몸이 서툴다보면 사는 일리 늘 그렇지만 절둑거리며 하루해를 보내도 보람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비로소 어둠이 고요한 것들을 빛나게 하듯이,
무거운 내 삶의 옹이들이 불길을 타고 먼지처럼 날아갔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평생직장도 얻고 보니 나는 도랑에 가재가 아니라 넓은 들판에 우뚝선 느티나무였다. 고단한 농부가 쉬고, 주위 온갖 새들의 쉼터였다.
인생의 계단은 끝이 없다. 죽는 날까지.
퐁퐁 샘솟는 우물이고, 풋고추를 익게 하고 풋사과를 익혀 놓고도 더 주지 못해 머뭇거리는 햇님같이, 계속 주어야만 할 계단에 선다. 첫 계단에서 끝나는 계단까지.
계단은 원하는 곳까지 인도하는 길이 아니다.
싫증나고 고단한 삶의 한 페이지를 기억에 새겨주고자 하는 가파름이 아니라 느긋함이다.
부실한 몸의 경험을 통해 현명해 지기보다 경험함으로써 자제하게 하며 나를 무심하게 살게 하는 지도자였다.
계단을 오를 때면 반드시 참아야만 올라 갈 수 있다.
근면함이 아니고는 큰 덕을 이룰 수가 없다고 깨우쳐 준다, 몸이 성치 못하면 근면하면 된다. 스스로 힘써 쉬지 않고 날마다 새롭고 새로워지면 된다. 이것이 나의 좌우명이다.
혼자 수줍게 자잘대던 숲도 이젠 순한 빛을 잃어가고 있다. 복사꽃이 지고나면 송화가 날리듯이 몇 계단 남은 나의 인생도 볕 좋은 날에 쌓여 도톰해진 느티나무 숲이 그립다.
◎차하 시
나의 노래
정재선(청도군 이서면)
어머니 풋감 주워
소금물에 삭혔다가
행주치마 젖은 손으로
아나, 묵고 놀아라
툇마루 제비새끼마냥
흉년에도 배 불렸지요
아버지 홍시 따서
항아리에 넣어 두고
주름진 손 내밀며
아나, 묵고 숙제해라
꿀보다 더 달콤했던
그 맛 그 말 짠합니다
가릴 것 숨을 곳 없는
계절이 시작되고
수많은 노래들이
뿔뿔이 흩어져도
그 음성 감빛 물들어
지워지지 않습니다
◎차하 시조
계 단
최기향(밀양 삼문동)
동남풍 앞세우고 께끼발로 밤이오면
동찬천 돌계단은 남몰래 깨어나서
밤새워 물소리 법문 귀세워 듣는다.
숯가마 불볕 더위 산을 에는 삭품에도
묵언의 동자승아 깨달음도 뉘우침도
정수리 밟고 지나간 발자국에 새긴다
온몸이 투명해진 바람마저 누부신날
돌계단 하나하나 독경으로 씻어주며
초롱한 이마 언저리에 내 이름을 새기네
◎차하 시조
계 단
박순례(울산 상안동)
설중매 지고나면 함박웃음 짖는 벚꽃
봄은 또 풀린 옷고름 층층히 버려둔 채
저만큼 오동꽃 소식에 잰걸음을 서둔다
◎차하 수필
계 단
김정화(대구 수성구)
숲길을 걷다보면 계단을 만난다. 언제나 한 결 같이 지름길 계단으로 가지 않고 에움길로 발길을 옮기게 된다. 흙의 터전인데 사람들이 만들어 높은 계단은 언제나 내게 거부감을 준다. 계단을 차근차근 오르지 못한 한때가 떠올라 나는 주목받는 사람이 손길이 닿은 인위적인 것에 내 몸이 반란을 먼저 한다.
내 삶에 쉰 계단을 오르고 있다. 곧 입시를 치를 막내를 떠나보내면 나는 빈둥지기에 접어들게 된다. 가난하던 어린 시절에는 당장 먹고 사는 일에 밀려진 내 꿈들이 한 계단에 멈추어 있었다. 그 꿈은 시조에 자랄 수 있었는데 내가 선택 하지도 못한 채 가진 내 뒷모습이었다. 자존감을 중년이 될 때까지 앗아갔다. 두 아이의 발달의 단계를 무사히 오르게 하고 이제 막내아들만을 위한 꼭지점에 이르고 있다.
이제 이 꼭지점에서 나는 내려오고 나를 향한 또 다른 꼭지점으로 향한 계단의 징검다리로 꿈으로 가는 길을 이제야 어렴풋이 보였다. 내 아름다운 여고시절과 사춘기라는 발달단계를 오를 때 돌부리를 만난 아음의 생채기를 쉰 문턱에서 억울했던 지난날의 아픔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병원의 힘을 빌려 때가 되 몸의 수선이 되었고 혼자 끌어안았던 창피함과 좌절은 나만이 아는 것이 되고 철저히 움추린 나를 남들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런 줄 알았으면 지금까지 회복 되지 않을 짐도 골이 깊어진 자존감은 안 되었을 것이다. 억울했다. 그로부터 나는 내 삶의 발달 단계에서 20대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이십대의 대학이라는 부재로 이십대만이 누리는 특권과 꿈은 언제나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십대에 그 잃어버린 이십대를 찾아 헤메며 이십대의 학업과제를 세아이 틈에 겨우 마쳤다. 쉰에 들고서야 또 하나 잃어버린 또다른 내 삶에 계단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에게 향했던 에너지와 양보를 이제는 내 잃어버린 이십대를 찾아가기 위한 마지막 시간으로 써야 할 때이다. 아이 키우고 생업을 위한 정신없는 나날 속에 더는 지체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계단 앞에 서있다. 숲속 수없는 산책길에도 비가 와서 질퍽하지만 않다면 나는 갈림길에 있는 지름길의 그 계단으로 가지 않는다. 백이십 하나의 계단을 오르다 숨이 차서 멈춘 곳에서 오도가도 못 하던 나를 또 문득 만날 것 같은 두려움에 남들 앞에 제대로 걸어가 보지 못하고 뒷골목으로 숨어 다니던 때처럼 갑자기 막막해졌다. 내 생애 한가운데서 올라온 길 내려다보는 시간은 참 마디게 온 것 같은데 한 순간 같았다. 사춘기 소녀에서 부모가 되어 내 과업을 멈추어 선 딱 내 나이 숫자가 되는 지점에서 새 삶 발견을 했다. 그리고 올라온 평지에 내 무엇을 가지려고 시간의 계단을 밟으며 허둥되는가 싶어 계단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틀에 갇히게 만들게 해서 나는 언제나 풒 길 에서는 에돌아간다.
사람이 만든 계단은 폭이 넓다. 단 한 사람을 위해 걷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두 사람은 같이 지나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졌다. 이처럼 시간의 계단으로 가는 삶에서 사람의 잣대높낮이와 너비로 만든 것은 인생을 담은 것은 아닌지 여러 사람이 같이 오르고 같이 내려오는 계단 같은 삶을 살아간다. 건너뛰면 언젠가 그 계단을 다시 찾기 위해 오르도록 우리 인간은 우주의 어떤 힘이 깃들어 있는 것인지 모른다. 지금 내가 앉은 처마 아래 담장너머에서 지저기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시간의 계단은 구속이면서 때론 넘어지게 하지만 새 삶을 주기도 하는 용수철 같다.
◎차하 수필
계 단
설경미(경주 용담로)
한 달 전 초등친구들과의 번개 산행으로 무장산엘 올랐다. 각자 조금씩 준비한 간식 가방을 등에 메고 아이처럼 설레는 맘으로 주차장을 출발, 두 시간 남짓 오르는 길이다. 길옆에는 순박한 여인네 같은 미나리가 살랑거리며 우리를 불렀고 바람은 알맞게 시원했다. 이 정도 쯤이야, 콧방귀를 뀌는 것도 잠시였다. 단풍을 보며 감탄하는 낭만도 접었다 계단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숨이 차고 턱까지 찬 숨을 내뱉기까지가 혼자서는 버거웠다. 딱 1년만의 산행은 뒤에서 나를 당기듯이 더디게 했다. 종아리도 아파오고 말수는 줄어들었다. 나이 오십에 힘들다 말도 못하고 한숨은 바위처럼 무겁게 떨어졌다. 그렇잖아도 약간 불편한 다리가 땀비의 짠맛을 보여주는 시간, 사는게 이런 건가 보다 길옆에서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미안함 맘이 내 열정을 가로 막았다. 몇 번을 고민하고 내뱉은 말, “그래도 올라갈게 도와줘” 어느새 내 가방은 남의 짐이 되었고 친구의 스틱은 내 손에 익숙하게 쥐어져 있었다. ‘그래 견디자 열 살에 50바늘의 흉터를 내면서도 살린 다리이다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몇 년 전엔 완만한 동산로로 갔던 것만 생각하고 겁 없이 왔는데 산에도 다른 모습이 있구나 내가 본게 다가 아니구나 나는 스스로를 보이지 않는 끈으로 동여맸다. 나는 그냥 내가 아니잖아 20여년전 아내의 자리에서 이제는 엉겹결에 가장 감투를 쓰게 된 가장이다. 남들이 혀를 차며 걱정하는 그 삶 속에서도 나는 쓰러지지 않았다. 고작 이 산 계단 앞에서 멈출수는 없다. 스스로 부실체력을 인지하고 단지 내가 친구가 좋다는 이유로 오늘의 산행을 택했다.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 앞으로 살다보면 얼마나 많은 계단이 나를 가로 막겠는가 나는 그때마다 약하게 휘둘려서는 안된다. 한 남자의 아내로 떠받치며 살았다. 20년 다시 내가 살아가는데 단단하게 나를 세우는 자양분이 된다.
엄마로서의 역할과 가장의 역할을 나는 계속 수행해야 한다. 속으로 나를 다독이며 겉으로는 땀을 훔쳤다. 사는게 바빠서 언제 이렇게 산에 오를 여유가 있었던가.
멋내기 산행은 내게 호사다. 누리지 못하고 살았던 내 인생의 보상인 날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내색 않고 억새에 감탄해야 한다. 세상은 내 슬픔 따위엔 꿈쩍도 않은 현실을 인지해야 한다.
다 알지만 말을 않는 것이 나를 다지는 일이란걸 산에서 배우며 하늘을 쳐다보는 사이 표지석이 보인다. 그제사 나잇살도 잊고 사진을 찍고 웃었다. 남들은 몰라도 나는 국토대장정을 마친 기분이었다. 이런 기분에 산엘 오르나 보다 오를 때 그 많던 계단이 원망스러웠는데 이제는 고마웠다. 스스로 긴장하며 함께했던 산행, 내 의지에 박수를 보내며 남은 나의 생의 계단에 당단풍 한 그루를 심고 싶다. 앞으로 갈라진 잎새처럼 고난이 와도 두렵지 않다.
지나온 이 길처럼 앞으로도 지혜롭게 가면 되니까
우리가 살면서 왜 계단을 밟아야 하는지 그 층계가 무엇을 의미하든 하는 것은 모두 자기 몫이다. 견고함도 빛남도 자기 손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옹골찬 내일 있어 오늘도 현과 앞에서 나는 자신있게 웃는다.
첫댓글 짧은시간에 주옥같은 작품을 남기신 필력에 감탄을 합니다.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조정희 사무국장님 진행하시느라 수고 많으셨는데 또 꼼꼼하게 사진과 글 올리셨군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