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두금(馬頭琴)을 켜는 사나이의 고백 42
애욕의 대상이 아니라는 뜻인가요?
그렇다네. 초자아의 절제된 욕구라네.
보통의 아름다움과는 다른 차원이군요.
그러니까. 예쁘다. 좋아한다. 가 즉물적이라면
아름답다! 는 추상적이긴 해도 품격을 갖춘 거지.
남자에게도 그런 단계적 통제력이 있군요.
대상에 따라 윤리적 제어장치가 있네.
그걸 초자아의 통제 기능이라고 하지.
미술 심리치료에도 많이 쓰이는 용어인데
마에티에게 느꼈던 연민이 소유와 애욕을
벗어난 격이 다른 도취였군요?
예술적인 아우라에 감전된 상태에서
인간적인 유대가 돈독해지므로
판단의 기준이 달라진 거요.
인격적인 남자라면 열두 살 이상의
나이 차를 가진 여자와의 성 접촉은
천륜에 어긋난다는 윤리관이지.
남자 나이 열두 살부터는 정자 생산이 되고
혼인하면 자식을 낳을 수 있으니 말이오.
열두 살 이상의 나이 차라면
자식 또래와 관계한다는 계산이니
인륜을 저버리는 행위로 간주하는 거지.
네, 말씀 듣고 보니 일리가 있어요.
성의 자유화가 제도적 장치마저
뛰어넘는 현실이 걱정스럽기는 해도
그것을 스스로 지키려는 자의식과
사회적인 성 윤리가 긍정적으로 지켜진다면
남녀 모두에게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막는다고 그것이 억제되는 것이 아닌,
풀어줌으로 현실 감각적 문화로
질서를 잡아갈 때
성 문란의 중심에서 빠져나와
개인의 권리 또는 방어 수단을
만들어 가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마에티를 보는 시각과
마에티에게 느끼는 선생님의 감정이
이해는 되지만 남자가 여자를 느끼는
본능적 속성을 배제한 관계라는 건
또 하나의 의문으로 남겨두고 싶네요.
시시때때로 다가오는 아름다움이 그 보호색을 벗고
즉물적 교감으로 전이 된다면 논리의 전개가 무색해지는
바람 같은 마음을 과연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요?
그러게. 그게 늘 문제지.
사람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물이니까.
경계가 허물어질 수 있다는 가정이군.
네, 자주 접하고 느끼는 환경이라면
보다 친숙한 교감이 둘 사이에 새로운
국면을 불러올 수 있다는 거죠.
하하~! 그럴 수는 있겠지.
이야기를 진행해보면
결론의 가닥은 잡힐 거요.
감정은 색깔을 가지는 것이잖아요.
아름다움이 그리움의 빛깔을 띤다면
이성도 본능 앞에 무릎 꿀 거 에요.
하하, 마치 그러기를 바라시네.
호호, 미리 짚어보는 소리예요.
연민이란 마음의 갈등을 벗고
늘 새롭게 태어나기를 갈망하는 거지.
남녀 간의 궁극적인 일체감은
육체 교감으로 팽창을 완화하려 드는 게
통속적인 결말이네.
하지만 마에티와의 관계에서
그런 이성적 감정이 고개를 들 때마다
잘 훈련된 초자아로 견제할 수 있었지.
그녀를 신선시하는 내 주관적 인식 때문이네.
나이라는 격차는 느낄 수 없었지만
25년 이상의 나이 차는
견고한 장애로 존재했네.
윤리적 감정 보다 높은
자연스러운 인간관계였지.
말과 표정 속에서만 존재하는 신선함은
영험처럼 받아들여졌고
그녀 예술적인 영혼은 티 없이 맑아
푸른 하늘에 흰 구름 같았네.
아름다움의 정의는 제행무상의
물적 개념이 아닌
불변의 천 상 개념이었지.
첫댓글 예쁘다 보다는 아름답다, 우아하다 는 찬사가 더 좋던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