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사지 - 마애 삼존불 - 보원사지 - 서산목장 - 개심사 - 해미읍성 낙조
꽃구경에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서산 여행에서는 한 걸음쯤 느긋해져 보자. 아니, 봄볕이 가장 좋은 오후 2~3시경 벚꽃 구경을 하려면 목장은 오후 일정으로 남겨두는 것이 옳다. 아침 일찍 출발한 여행길이라면 서산 IC를 빠져나와 당진 안국사지부터 들러보는 게 순서.
행정구역으로는 당진이지만 서산에서 더 가까워 서해안고속도로 서산 IC에서 차로 10여 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길을 찾아 들어가기가 수월치 않은 게 흠이지만 물어 물어 가는 수고만큼의 값어치는 톡톡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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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들어오는 방향에 따라 미소의 느낌이 달라진다는 서산 마애삼존불. |
현재 안국사지에는 안국사라는 이름의 절이 있지만 살림집 수준. 석불입상(보물 제100호) 석 점과 석탑(보물 제101호)이 볼거리의 전부다. 석불입상은 호리호리한 몸집에 온화한 표정을 하고 있어 낯선 곳에서도 객으로 하여금 마음을 턱 놓게 하는 얼굴과 웃음을 지녔고, 불상 아래에 있는 오층석탑은 소박하면서도 귀엽다.
하지만 최근 안국사에 기거하는 비구니의 수고로 볼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절터를 가득 채운 수선화밭. 노랗고 앙증맞은 꽃이 장독대며 절 앞마당에 피어 있다. 3월 중순에서 4월 말까지 계속 피어난다고 하니, 노란 봄빛을 만끽하기엔 이만 한 곳도 드물다.
안국사지에서 마애삼존불(국보 제48호)이란 이정표를 따라 647번 지방도로를 타면 서산목장 뒤로 이어지는 고풍저수지 길이 나타난다. 저수지를 끼고 외길 터널을 통과한 다음, 미륵 돌장승을 지나 산 속으로 가면 그곳에 부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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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삼존불에서 나와 647번 지방도로를 타고 개심사로 가는 길. 흰 펜스와 목장의 푸른색이 잘 어울려 드라이브 코스로 인기다. |
삼불교를 건너 산길을 200m쯤 올라 전각의 문을 열면 부처 삼존이 바위에서 볼이 터져 나갈 듯 웃는다.
순진무구한 듯도 하고, 자애로운 듯도 한 미소는 빛이 들어오는 각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반드시 삼존불관리사무소를 통해 긴 장대 끝 백열등으로라도 미소의 다름을 확인해 볼 일이다.
마애삼존불을 뒤로하고 용현계곡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통일신라 말에 창건된 대사찰 보원사지가 나타난다. 규모가 하도 커 뜨물이 내를 이루었고 먼 마을에서 그 냇물을 끓여 숭늉으로 마실 정도였다고 하는데, 봄빛에도 절터는 사뭇 허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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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목장의 초지 풍경. 황사가 잦아드는 4월 중순이면 방목을 한다. |
소박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당간지주, 법인국사 보승탑, 오층석탑 등 다섯 점의 국가 지정 보물만이 파란 하늘빛을 인 채 봄볕 아래 서 있다. 보원사지에서는 길을 다시 돌아 나와 해미 방향 647번 지방도로를 타야 한다. 10여 분을 못 가 만나게 되는 푸른 초지. 개심사로 가는 고창동 갈림길까지 647번 지방도로는 파란 목장길이다.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 떼 뒤로 새하얀 벚꽃 구름이 피고, 바람결에 벚꽃잎이 날린다. 구제역으로 몇 해 동안 폐쇄되었고, 차를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지만 매년 4월이면 도로변이 인파로 넘친다. 서산목장을 가로질러 고창동으로 접어들면 개심사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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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무렵의 해미읍성. 붉게 물든 진남루와 성벽의 어울림이 그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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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산 초지와 신창저수지를 옆에 끼고 달리는 길이 꽤나 멋스러운데, 개심사는 이름마저 예쁘다. 겹벚꽃 피는 4월과 단풍 지는 11월이 특히 고운데, 꽃은 있으나 화려하지 않고 억지로 멋을 부리지 않아 단아하다.
오후 5시 20분경이면 개심사를 벗어나 무조건 해미읍성으로 간다. 조선 초기에 쌓은 해미읍성은 성곽과 주위 산줄기가 무척 잘 어울리는 곳. 푸릇푸릇 봄 풀 돋은 성곽 위를 걸어 한 바퀴(한 시간 정도 소요) 돌아본 후, 하늘빛이 붉어질 즈음 진남루 앞에 선다. 해미읍성의 남문인 진남루를 붉게 물들이며 떨어지는 낙조는 일몰 명소로 알려진 간월암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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