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섬과 섬 사이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이문재, ‘오래된 기도’ 부분
얼마 전 문득 발길이 제주 성바오로서원으로 향해져 결국 『기도』라는 책을 들고 나왔는데 아직 읽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저런 일로 마음이 약해져 다시 ‘그분’을 찾고 싶어서였나.
이 시인은 우리의 모든 행위가 다 기도가 될 수 있다고 한다. 허나 가만히 눈을 감는 것, 말없이 누구의 이름을 부르는 것, 노을 앞에서 멈추는 것, 그믐달의 한 쪽을 보는 것과 같은 일들이 쉬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늘 바쁘게 내닫는 우리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거나 속도를 좀 줄여야 한다.
어제 토라진 아내에게 오늘 아침 먼저 말을 걸고, 이웃에서 얻어온 고들빼기를 혼자 세 시간 동안 다듬고 깨끗이 했으니 나는 기도를 한 것이다. 『기도』를 당분간 그냥 책꽂이에 꽂아둘 것 같다.
< 저작권자 © 제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첫댓글 이 시... 좋아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