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하여 그동안 갈고 닦은 무술 솜씨를 만천하에 뽑냈는데 그 누구도 온달을 따라 갈지가 없었다. 그날은 온통 온달의 독무대였다. 그 자리에는 평강공주 아버지인 그 자리에는 평강공주의 아버지인 평원왕도 참석했는데 다른 참가자들을 압도하는 온달의 무술 솜씨는 평원왕의 눈에 띄었고 그 덕분에 일약 군대 지휘관의 자리에 오르게된다. 평강공주가 바보로 알려진 온달을 찾아 궁을 떠날 때만 해도 부녀간의 인연을 끊자고 했던 평원왕의 온달의 활약상을 보며 주위에 신하들에게 자기 사위임을 자랑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후 온달 장군은 북주北周의 무제 우문용과의 전투를 비롯하여 많은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움으로써 대장군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신분에 구애 받지 않는 훌륭한 인재를 발탁하여 활동하는 등용 시스템이 없었다면 온달은 아마도 영원히 바보로 살다가 이름 없이 사라졌을지도 모르고 고구려도 온달과 같은 뛰어난 인재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은 비록 온달 뿐이지만 고구려가 주변국들과의 전쟁을 치루면서 건국이념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공을 세운 평민 출신 지휘자들은 부지기수로 많았을 것이다.
파격적인 등용 사례는 이뿐이 아니다. 제9대 고국천왕 때 국상의 자리에 오른 을파소는 기 유리왕 시절 대신을 지낸 을소의 자손이긴 하지만 한평생 벼슬을 하지 못하고 시골에서 농사나 짓던 농사꾼에 불과했다. 그러나 귀천을 가리지 않는 고구려의 인재 등용 시스템에 따라 하루아침에 국상의 자리, 즉 지금의 국무총리 자리에 올랐고 나라를 안정되게 이끄는데 공헌하였다. 고국 천왕은 재임시 외적 세력의 횡포가 극에 달하자 이들을 척결할 계획을 세운다. 이를 눈치챈 좌가려와 어비류 등 외척들이 반란을 일으키지만 고국천왕은 군사를 동원하여 이들을 제압하고 5부 체제를 동서남북 4부 체제로 개편한다. 귀족들이 힘을 못쓰도록 체제를 재편해 버린 것이다. 이후 나라를 안정되게 이끌어 가기 위해 각부에서 인재를 추천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처음에 추천된 인물은 동부 東部의 안류 晏留였다. 하지만 안류는 자신은 덕망이 부족하다며 고사하고 대신에 을파소를 추천한다. 고국천왕은 을파소에게 지금으로 치면 차관 또는 그 이하의 고위직을 제안한다. 하지만 을파소는 스스로 비련하고 게으르다는 핑계를 대며 좋은 사람을 뽑아. 높은 관직을 주고 활용하라고 제안하며 물러난다. 그러자 고국천왕은 올파소가 더 높은 관직을 원하는 있음을 눈치채고 그를 국상에 임명한다. 농사꾼에서 하루아침에 한나라의 재상으로 파격 등용된 것이다 게다가 고국천왕은 누구라도 국상의 말을 거역하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겠다며 을파소에게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 준다.
이렇게 국왕의 지원을 받은 돌파소는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 주었다가 추수기에 거두어들이는 진대법등 개혁정책을 실시하여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키는데 크게 기여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인재 육성에서 선발에 이르기까지 고구려는 신분을 가리지 않는 개방된 시스템을 선택함으로써 좋은 인재들을 발굴하여 적재 적소에 활용하였다. 이러한 인재 발굴 시스템을 고구려의 젊은이들에게 열심히 노력하면 자신도 인정 받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내적 동기를 부여 하였을 것이다. 만일 신분이 낮은 사람이라고 해서 교육이나 채용의 기회가 막혀 있었다면 백성들은 굳이 힘들어 공부하지 않았을 것이고 나라에서는 그만큼 좋은 인재의 활용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체계적인 교육정책과 신분에 구애 받지 않는 개방적인 등용 정책이 고구려를 강대국으로 만든 것이다. 기업에서도 채용에 대한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아직도 모든 기업들은 일류대학을 나온 사람들을 우수한 인재로 알고 그들을 채용하기 위해 힘을 기울인다. 하지만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곧 좋은 직원은 아니다. 좋은 대학을 나와도 무능한 사람이 있는 반면 누구도 좋은 대학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대학을 나온 사람이 유능하다고 평가받는 경우로 있다. 물론 평균적으로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일을 잘한다고 평가 받는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나라 사회에서 규범화되고 획일화된 평가 기준에 따른 것이라면 과연 그것을 계속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시중에 떠도는 우스갯 소리 중에 이런이야기가 있다. 에디슨이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으면 전파상 주단이 되었을 것이고 아디슈타인은 수학,과학 외에는 잘하는 것이 없어 대학 근처에도 못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