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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장사 마돈나> <타짜> 두 편으로 모두의 궁금증을 자아낸 배우가 있다. TV 드라마를 통해 이미 아줌마들의 스타가 된 김윤석이다. 이제 본격적인 영화 인생을 시작한 준비된 배우 김윤석을 만났다.
주성철 기자 <타짜>에서는 <천하장사 마돈나>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최동훈 감독과 ‘아귀’에 대해 어떤 얘기를 나눴나?
김윤석 <타짜>가 결국 도박영화인데 속임수 써서 돈 버는 도박의 세계다. 그게 도박을 쫓는 형사의 얘기라면 달라졌겠지만 바로 그 타짜의 세계, 사기도박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러다보면 그 세계가 다소 멋지고 낭만적으로 그려질 수 있고 그 우정이나 의리가 부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도박의 끝에 얼마나 끔찍한 세계가 기다리고 있나, 얼마나 섬뜩하고 괴물 같은 존재가 버티고 있나, 하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아귀는 특정한 인물이나 사람이라기보다 주인공이 부딪히게 되는 거대한 벽 같은 거다. 아귀는 영화로서도 후반부에 등장하지만 정말 그 도박의 끝이 어딘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영화 보고 ‘아, 도박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게.(웃음)
주성철 기자 정말 아귀는 사람이 아닌 느낌이다.
김윤석 영화는 돈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영혼의 파괴를 보여주는 단계로까지 가야 한다고 의견 일치를 봤다. 진짜 그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모든 악의 집합체다. 과거 그와 함께 의리와 정으로 함께 살았던 사람들조차도 다 패배자로 만들고 혼자 살아남았다. 그래서 외로운 건지 만족한 건지 그런 것도 알 수 없다. 그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다. 영화 속에서 복수를 해달라는 얘기에도 그는 복수 같은 그런 순수한 인간적 감정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게 내 아버지 복수도 아닌데, 식칼로 배를 쑤시든 망치로 머리를 찍든 고기값을 번다”고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으로 말한다.
주성철 기자 <타짜>로 악한의 극단을 연기해본 소감이 어떤가?
김윤석 누군가 영화 속 아귀를 보고 ‘묵직하고 거무튀튀하면서도 날이 선 일본도 같은 느낌’이라고 얘기해줬는데, 나 역시 그런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연기했던 터라 기분이 좋고 고마웠다. 분명 이것은 오락영화고 또한 성숙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김응수, 유해진, 김상호, 주진모 등 이미 연극무대에서도 관록이 대단한 출연 배우들의 면면도 정말 화려하고 그에 걸맞는 수준의 영화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이런 게 웰메이드라는 생각이 든다. 치기어린 연기 없이 굉장히 절제되고 냉정하고 야비하고 또한 거짓말 없는 과감한 영화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김혜수의 용기도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다들 따로 인터뷰하면 같이 출연한 다른 배우 칭찬하기 바쁘더라.(웃음) 정말 잊지 못할 작업이었다.
주성철 기자 <천하장사 마돈나> <타짜> 그리고 화제의 아침드라마 <있을때 잘해!>가 각기 다 다르지만, 어쨌건 공통적으로 어딘가 좀 비도덕적이고 마음이 쉽게 가지 않는 인물들을 연기했다.
김윤석 그러게. 이상하게 올해 들어온 세 편 모두 뭔가 좀 잘못되고 빠져 있는 모습이다. 조그만 인간적 매력이 발견되더라도 사실 좀 완전히 좋아하기도 힘들고. 그렇게 겹치는 모습들이 있긴 한데 무엇보다 배역 자체가 다들 너무 매력 있었다. 가령 <있을때 잘해!>의 하동규는 법을 어기는 범죄자나 조폭이 아니라 도덕이나 윤리로만 욕할 수 있는 캐릭터다. 나쁜 놈이긴 하지만 딱히 법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그런 묘한 경계선에 있다는 점이 매력 있었다. 그러고 보면 다들 좀 실제 생활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그런 류의 인간들이다.(웃음)
주성철 기자 <천하장사 마돈나>에 나왔을 때는 송강호와 무척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김윤석 나나 송강호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은 그런 얘기 많이 한다. 나는 부산이고 강호는 김해, 둘 다 경상도 출신이기도 하고 같이 극단 생활도 했고. 기본적으로 나와 강호는 추구하는 연기관이나 좋아하는 연기 스타일이 무척 비슷하다. 그런 점에서 서로를 존중한다. 그래도 나와 작업해본 감독들은 둘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얘기한다.(웃음) <천하장사 마돈나>에서도 비슷한 지점이 발견되지만 또 그만큼 미세하게 다른 점들이 발견될 거다.
주성철 기자 연극하면서 함께 자취도 했다고 들었다.
김윤석 같이 자취를 한 게 아니고 내가 자취하면서 잘 살고 있는데 거기에 강호가 와서 지낸 거다. 강호는 형이랑 같이 있었는데 그게 좀 불편하고 그러니까 나한테 온 거지. 자취방이 수유리에 있었는데 대학로하고 가깝기도 하고 그래서 새벽까지 술 마시다가 집에 못 가게 된 애들 다 몰려와서 자고 그랬다. 당시 힘들었던 얘기는 정말 할 필요가 없다. 정말 너무 힘들었던 데다가 다 힘들었을 때니까.(웃음)
주성철 기자 아무래도 두 사람이 연우무대, 극단76 등에서 함께 활동했으니 각자 영향 받은 점들이 클 것 같다.
김윤석 1990년 서울 와서 연우무대를 시작으로 극단76에서도 연극을 했다. 아무래도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곳은 연우무대의 서울대 천재들 김석만, 이상우, 김민기 선생님들이다. 그리고 철학적으로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선생님은 극단76 기국서다. 연우무대 나와서 낭인 생활을 하다가 기국서 선생을 만나 정말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 연극이라는 게 결국은 인간에 대한 얘기, 인간에 대한 집요한 탐구라는 거다. 멋이라는 게 화려한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가진 것 하나 없는 떨거지가 담배꽁초 하나 딱 주워서 기분 좋게 피는 게 멋이라는 거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의 모습이다. 아우라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라 그런 데서도 나오는 거다. 아마도 강호와 나는 그런 점에서 비슷할 것이고 둘 다 그런 분을 만나 다행히 겉멋이 안 들었다. 지금도 행복이자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주성철 기자 그런 영향은 지금도 유효한가?
김윤석 쉽게 얘기하면 혹은 좀 잘난 척하면서 얘기하면(웃음) 기국서 선생의 스타일은 실존주의 철학에 가깝다. 브레히트의 서사적이고 감성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이방인>의 뫼르소 같은 느낌이다. 박찬욱 감독 영화에도 그런 부분들이 있는데 인간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 뫼르소는 그 죽음을 그냥 짜증스러워 한다. ‘날씨도 더운데 말이야’ 하면서. 중학교 때 <이방인>을 읽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살아가면서 보면 우리가 의도했던 것보다 의도하지 않은 일들이 사실 더 많이 일어난다. 연기도 그렇지 않느냐는 거다. 가령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자. 보통 드라마에서는 ‘아버지!’ 하고 고함치면서 난리치고 하지만 사실 그런 광경 별로 보지 못했다. 사람은 너무 큰 사건을 겪게 되면 오히려 현실감이 없어진다. 눈물은 나지만 머리가 텅 비어버리는 거지. 거기서 좀 빠져나와야 아버지와의 추억도 생각나고, 부재도 실감나면서, 괴로워서 술도 마시게 되고 그런다. 그렇게 인간을 탐구하고 접촉하고 싶다. 그렇게 나오는 인간의 모습이 결국 이 시대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주성철 기자 대학에서 극예술연구회 활동을 한 건 이전부터의 꿈이었나?
김윤석 영화야 물론 어릴 적부터 좋아했다. 부모님이 영화를 좋아해서 주말이면 꼭 TV에서 해주는 영화를 봤다. 얘기를 해보면 내가 또래 친구들보다 영화에 대해 좀 더 많이 알았다. 당시 우리 영화는 침체기였고 험프리 보가트, 존 웨인, 말론 브랜도를 좋아했다. 사실은 미술을 더 좋아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그렇게 진학하고 싶었지만 알다시피 당시에는 그런 게 집에서 맞아죽을 짓이었다.(웃음) 그런 갈증이 있던 차에 부산 동의대 들어가서 어느 대학을 가나 있는 극예술연구회를 보게 됐고 ‘연극아이’라는 동아리에 들어갔다. 만날 데모하고 휴교령 내리던 시절이었지만 그렇게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있다는 게 참 외롭지 않고 매력적이었다. 시간 나면 친구들이랑 학교 옆 안창마을에 가서 술 마시고. 그렇게 학교를 나와서도 만족을 못해서 부산에 있는 ‘극단 현장’에 들어갔다.
주성철 기자 극예술연구회에서 연극 연출도 했고 전국대학생연극제에서 대상도 받았다. 거의 동아리에서 정신적 지주였을 것 같다.
김윤석 우리 연구회가 전국 대학생연극제에 본선 진출도 한 번 못 해봤는데, 내가 <견습아이들>을 무대에 올리면서 본선을 한방에 통과시켰고 결국 본선에서 대상도 받았다. 그때가 4학년 때였는데 학교 대강당에서 맘 맞는 회원들과 거의 여름방학을 올인 하다시피 했다. 그 덕에 대상팀 자격으로 유럽까지 보내줬다. 러시아, 폴란드 등 동유럽에 갔는데 참 세상이 넓다는 걸 느꼈다. 갔다 와서 많이 성숙해졌고. 그때의 기억이 아마 나중에 서울 대학로로 오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주성철 기자 그렇게 대학로에 있다가 다시 부산으로 내려온 이유는 뭔가?
김윤석 지금 생각해보니 좀 웃기지만 연극하기 싫어서 부산 내려온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게으른 선택이기도 한데 정말 그렇게 살기가 싫었다. 몇 년 그렇게 연극하고 술 마시고 다니다보니까 정말 아등바등 출연하려 애쓰고, 그런 게 갑자기 너무 싫어서 ‘에이씨 안 할래, 바다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내려온 거다. 지금은 그런 건방지고 치기 어린 생각을 할 수 없을 거다. 그땐 장가도 안 갔고 힘들게 살면서도 돈 욕심도 없이 자유로울 때였으니까. 내 연기 인생에서 일탈은 그때 딱 한 번이었다.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는데 남들이 다 바보라고 했다. 왜 다시 내려 가냐고. 나도 나중에 후회 많이 했다. 그렇게 나를 객관화시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
주성철 기자 그 시기에 부산에서 다시 연출자로 연극 한 편을 무대에 올렸다.
김윤석 광안리에 라이브 재즈카페를 열고 지내고 있던 중에, 친구 한 명이 기획사를 하나 차렸는데 내 재능을 쓰고 싶다고 해서 딱 한 편 했다. 1997년에 ‘극단 예오’를 차리고 <오필리어>를 무대에 올렸다. <햄릿>을 재해석해보자는 생각으로 특별한 미사여구 다 빼고 본론을 가지고 밀어붙여보자고 마음먹었다. 사실 기국서 스타일을 많이 베낀 거다.(웃음) 출연배우가 4명인데 거의 모노드라마식으로 맞부딪히고 원 없이 해봤다. 직접 연출도 했는데 그거 하니까 진이 다 빠져버렸다. 연극 연출도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계속 연출 공부하고 그랬으면 지금도 할 수 있겠지만 이젠 정말 못 한다. 지금은 완전한 연기자다.(웃음)
주성철 기자 다시 서울 올라와서는 어땠나?
김윤석 부산에 있을 때 강호한테서 만날 전화가 왔다. 뭐 하냐고, 다시 올라오라는 거지. <오필리어> 하면서 다시 연극을 해볼까 하던 차였고, 나도 나름의 뭔가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때였는데 사실 지방에서는 너무 힘들었다. 내 능력도 부족했고. 그래서 결국 다시 대학로로 갔다. 아직 나를 찾는 동료들이 있다는 생각에 기뻤고 자연스레 다시 합류할 수 있었다. 그렇게 체코 대통령을 지내기도 했던 희곡 작가 하벨의 <재개발>에 참여했다. 그리고 학전에서 <의형제>를 했고.
주성철 기자 그렇게 돌아와 보니 스스로 좀 달라졌다고 느꼈나?
김윤석 작품 분석, 인물 분석하는 데 좀 달라진 것 같고 쉽게 말해 그 기간 동안 좀 어른스러워진 것 같았다. 열정이 군더더기가 되면 보기 싫다. 뭔가 표현하려고 할 때 이전에는 좀 그런 군더더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말끔히 걷어낸 느낌이었다. 열정도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조절해야 하는데 무조건 열불을 토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런 치기들이 많이 없어진 것 같았다.
주성철 기자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서 영화의 유혹도 컸을 것 같은데, 그에 비하면 좀 늦게 출연한 편이다.
김윤석 좀 그렇다. 내가 세상을 주무르는 게 아닌데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난 영화와 더 빨리 만나고 싶었는데 잘 안 써주더라고.(웃음) 첫 영화가 <베사메무쵸>였는데 그냥 단역이었고 ‘저 사람 누구냐?’ 정도 됐던 건 <범죄의 재구성>이다. 함께 형사로 나온 천호진 선배도 부산 영도 출신인데, 나를 두고 경상도 사투리 저렇게 편하게 잘 쓰는 사람이 누구냐고 그러면서 좀 알려진 거다. 일단 발을 들여놓은 다음에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었다. 영화가 좋다고 막 하고 싶지는 않았다. <범죄의 재구성> 후에 그런 유사한 형사 역할 들어왔는데 그건 하고 싶지가 않았다. 바꿔 말해 지금 나에게 <천하장사 마돈나>의 동구 아버지나 <타짜>의 아귀 같은 역할이 들어온다면 안 한다. 이제 나도 40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나 스스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할 수가 없다. 내가 가진 상품들로 노점을 차렸는데 하나 팔렸다고 그 똑같은 걸 다시 내놓기는 싫다. 그렇다고 까다롭게 구는 건 아니고(웃음) 내가 먼저 의욕을 보일 수 있어야 나도 작품도 좋다는 거다.
주성철 기자 영화 외에도 이미 스타라고 해도 될 만큼 꽤 많은 TV 드라마에 출연했다. 처음에 드라마 출연에 대한 부담이나 거부감은 없었나?
김윤석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TV 드라마가 정말 또 다른 공부가 된다는 점이다. 연기자로서 내추럴의 극단까지 가볼 수 있다. 영화는 사건 중심이고 모든 신들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1시간 반이나 2시간 안에 압축시켜야 하기 때문에 매 신의 긴장감이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냥 밥 먹으면서 너 어제 뭐 했니, 뭐 어쩌고저쩌고 정말 일상적이고 리얼한 생활의 모습까지 나아가는 순간이 많다. 영화의 긴장감과 비교하자면 한 10% 정도다. 그래서 어쩔 때는 내가 지금 연기를 하고 있는 건가, 그냥 카메라 앞에서 살아가고 있는 건가 하는 착각까지 들 때가 있다. 물론 그런 영화들이 있긴 하지만 일상의 끝까지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영화가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주성철 기자 연기 스타일을 보면 순발력이나 대사를 스피디하게 처리하는 타이밍 등 코미디도 잘 소화할 것 같다.
김윤석 그런 얘기가 있다. 나는 삶을 보여줬는데 그는 코미디라 한다고. 코미디라는 게 정말 범위가 넓다. 그중에서도 바보가 돼서 웃기는 것보다는 가장 리얼하고 독특한 순간의 상황과 인간이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웃음에 관심이 많다. 대사 처리가 반 박자 빠르다는 건 내 의도와 상대방의 의도가 안 맞아 들어가서 웃음이 나온다는 의미이기도 할 거다. 나는 과장된 웃음보다 그런 상황에 놓이거나, 인물의 대사보다 상황 자체가 웃음을 유발하는 게 좋다. 가령 <있을때 잘해!>에서 하동규가 계속 나쁜 놈이었는데 가끔 웃음을 줄 때가 있다. 웃겨서 웃긴 게 아니라 그는 늘 똑같은 행동과 얘기를 할 뿐인데 상황 파악을 잘 못하니까 웃긴 거다.
주성철 기자 드라마, 영화, 연극 등 최근 1년간은 정말 생애 가장 바쁘게 지냈을 것 같다.
김윤석 특히 올해에는 굉장히 무리수를 뒀다. 연극 <가을날의 꿈>을 무대에 올리느라 지난 7월 한 달 동안 매일 2시간 정도 정말 쉴 새 없이 나오는 역할로 공연했다. 그것도 편안한 국내 작품이 아니라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의 작품이었다. 대본 분석하는 데 이미 힘을 다 써버린 느낌이었다. 그렇게 4년 만에 무대에 섰는데 아쉬움도 많았고 얻은 것도 많았다. 거기다가 <천하장사 마돈나> <타짜>에다 드라마까지 겹쳐서 정말 고생했다. 그 사이 드라마는 너무 잘 돼서 난리가 났고. 그렇게 한 게 회복이 다 안 돼서 지금도 골골하고 있다. 다시는 그렇게 스케줄 잡지 말자 꼭꼭 다짐했다.(웃음) 드라마 하고 쉰 다음에는 연말쯤 영화 선택해서 내년 초에 멋지게 들어가고 싶다.
주성철 기자 영화배우로 탐나는 역할이 있나?
김윤석 현실을 이기지 못하는 멜로를 해보고 싶다. <실락원>을 영화도 소설도 다 좋아하는데 사랑의 승리나 사랑의 힘을 그리는 그런 멜로 말고 그렇다고 막연히 불륜도 아닌, 현실에 고전하는 냉정한 멜로 말이다.
주성철 기자 지난 추석에는 바빠서 고향에도 못 갔겠다.
김윤석 맞다. 전화만 드리고. 그래도 자주 내려가는 편이긴 하다. 전에 다른 인터뷰를 하면서 서울에서 5시간 정도 음악도 없이 운전해서 딱 부산에 도착하면 너무 좋다, 뭐 그런 얘기를 했는데 실수로 부산에서 출발해서 서울에 도착하는 것으로 잘못 써놨더라. 서울에 도착하면 그때부터 현실인데 뭐가 좋겠나. 부산 가면 부산광대예술제 위원장하시는 홍성모 선생이 있는데 그분하고 옛 연극하던 사람들 만나 마음껏 술 마시고 바닷가 가면 정말 좋다. 나에게 가장 좋은 휴식의 시간이다. 곧 또 한 번 슬슬 내려가야지.(웃음)
프로필
1967년 부산 출생 | 동의대 극예술연구회 활동 | 연우무대, 산울림, 극단76 활동 | 1997년 극단 예오 대표 | TV 드라마 <부활> <인생이여 고마워요> <있을때 잘해!> 등 | 영화 <시실리 2km> <범죄의 재구성> <천하장사 마돈나> <타짜> 등
주성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