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21:1-16
찬송가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를 거운 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아람의 왕 벤하닷을 죽이고, 진멸해야 했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고, 자신의 마음대로 조약을 맺고 벤하닷을 살려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인해 선지자에게 저주의 말을 듣고 난 후의 일이 오늘 본문에 나타납니다.
(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인해 선지자에게 저주의 말을 듣고 나서 아합 왕의 마음은 근심하고 답답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아합 왕은 어느날 자신의 왕궁 곁에 있었던 포도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포도원은 이스르엘에 사는 나봇이 소유 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르엘은 산악지대에 위치해 있지만 비교적 비옥한 평야를 이루고 있는 곳입니다. 아합은 자신의 왕궁 가까이에 있던 나봇의 포도원을 사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 그에게 거래를 제안합니다.
(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아합은 자신의 왕궁 곁에 있는 포도원을 자신에게 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역으로 보자면 사마리아와 이스르엘은 약 38KM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여기서 아합이 말하는 왕궁은 ‘본궁’이 아니라 ‘별궁’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구입하여 채소 밭을 삼고자 하였는데 여기서 채소 밭은 정원이라는 뜻도 있기에 아합 왕이 별궁 옆에 정원을 꾸미고자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합 왕은 나봇에게 포도원을 요구하며 나봇의 포도원 보다 더 좋은 포도원을 주겠다고 하였고, 나봇이 원한다면 그 값을 돈으로 줄 수 있다고 말하며 제법 합리적인 제안을 합니다. 아합 왕의 요청에 대해 나봇은 답변합니다.
(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나봇의 답변에서 포도원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차이가 나타납니다. 아합 왕은 현재 나봇의 포도원을 거래가 가능한 부동산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나봇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포도원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유산으로 정의합니다. 나봇도 자신의 포도원을 부동산으로 간주했다면 이 거래는 수월하게 성사가 되었겠지만 나봇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지키는 사람이었기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호와의 유산을 다른 사람에게 판매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이스라엘의 왕이라도 여호와 하나님보다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합 왕은 자신의 요청이 거절당하자 곧바로 반응합니다.
(4)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자신의 제안을 거절 당하자 아합은 근심하고 답답함을 느끼며 침상에 누워 식사까지 거절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아합 왕이 얼마나 미숙한 지도자였는지 보여줍니다. 한 나라의 왕이 고작 포도원 하나 얻지 못했다고 식음을 전폐하는 모습은 믿음직한 지도자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만을 성취하기 위한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였다는 표현은 앞서 열왕기상 20장 43절에서 아합이 여호와의 선지자의 말을 듣고 상심했던 것과 같은 표현입니다. 이 모습을 보면 아합 왕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온전히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선지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아합 왕에게 전했고, 나봇 역시 여호와께서 금지하신 땅이기에 포도원을 판매하지 않았기에 아합 왕은 근심하고 답답함을 느낀 것입니다.
아합 왕이 근심하여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소식은 왕궁 일대에 퍼지게 되어 아내 이세벨이 찾아와 자초지종을 물었고, 아합 왕은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설명합니다.
(6) 왕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 포도원을 내게 주되 돈으로 바꾸거나 만일 네가 좋아하면 내가 그 대신에 포도원을 네게 주리라 한즉 그가 대답하기를 내가 내 포도원을 네게 주지 아니하겠노라 하기 때문이로다
아합은 아내 이세벨에게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설명하는데 사실과 다르게 전달을 합니다. 분명 나봇은 포도원이 조상의 유산이며, 여호와께서 금하시기 때문에 거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나봇이 단지 자신의 포도원을 판매하지 않은 것처럼만 설명합니다. 이처럼 욕망에 눈이 멀어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말을 바꾸어 말을 합니다. 마치 선악과 앞에서 여자와 뱀이 대화를 나눌 때 하나님께서는 분명 여자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으나 여자가 뱀에게 말할 때 “죽을까 하노라” 라고 말하며 자신의 마음대로 말을 바꾸는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기가 죽어 있는 남편을 위해 이세벨은 자신이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겠다고 하며 자신만만하게 말하며 아합 왕에게 다시 즐겁게 식사를 하라고 말합니다. 이세벨은 지체하지 않고, 자신의 계획을 실행합니다.
(8-10)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치고 봉하여 그의 성읍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내니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에 높이 앉힌 후에 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라 하였더라
이세벨은 아합 왕의 이름으로 편지를 작성하여 이스르엘 성읍에 장로들과 귀족에게 보냈습니다. 그 내용은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는 얼토당토 하지 않은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의 이름으로 인을 치고 봉했다는 것은 이 편지는 왕명으로 권위가 있는 공문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계획은 아주 치밀하여 나봇을 죽이기 위해 불량자까지 섭외하였는데 당시에 어떤 사람에게 사형을 구형하기 위해서는 2-3명은 반드시 있어야 했기에 누가 보아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거짓 증인을 세운 것입니다. 거짓으로 가득찬 이세벨의 계획은 곧바로 실행 됩니다.
(11) 그의 성읍 사람 곧 그의 성읍에 사는 장로와 귀족들이 이세벨의 지시 곧 그가 자기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대로 하여
이스르엘 성읍에 살고 있던 장로들과 귀족들은 편지에 써져 있던 내용 그대로 실행하여 나봇을 돌로 쳐죽였습니다. 분명 그들은 나봇을 죽이라는 명령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봇은 아합 왕의 제안도 거절하며 여호와의 말씀을 지킬 정도로 신실하게 살아가던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과 왕을 저주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당한 지시에도 불구하고, 장로들과 귀족들도 결국 이세벨의 권력에 굴복을 하여 나봇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나봇이 이렇게 억울한 죽임을 당하지만 어떠한 변론을 하였다는 내용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너무 중대한 범죄라고 생각하여 바로 돌로 쳐죽였거나 나봇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따로 변론하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이 모습은 십자가 형을 선고 받고도 아무런 변론을 하지 않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본문에서는 나봇의 죽음만 나오지만 열왕기하 9장 26절에 보면 나봇의 피와 그의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다고 증거합니다. 나봇이 죽으면 그의 아들이 유산을 상속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이세벨은 치밀하게 나봇과 더불어 그 유산을 상속받지 못하도록 아들들까지 살해한 것입니다. 이처럼 욕망에 눈이 멀게 되면 도덕성은 사라지고, 목적을 향해서만 달려가게 됩니다.
나봇이 죽은 후 장로들과 귀족들은 아합 왕이 아니라 이세벨에게 이 소식을 통보했습니다. 아합 왕의 이름으로 편지를 받았지만 결국 이 모든 일을 꾸미고 진행한 것이 이세벨인 것을 모두가 알고 있던 것입니다. 소식을 듣게된 이세벨은 기쁜 소식을 남편에게 전하였고, 아합 왕의 반응이 나타나며 오늘 본문은 마무리 됩니다.
(15-16) 이세벨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함을 듣고 이세벨이 아합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돈으로 바꾸어 주기를 싫어하던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소서 나봇이 살아 있지 아니하고 죽었나이다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
이세벨은 아합 왕이 원하는 것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얻어다 주었습니다. 어찌 보면 아내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죄악들은 아합 왕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저주를 받아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나봇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아합 왕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 그 포도원을 차지하러 내려갔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전쟁을 해서 땅을 얻는 것이 아니라 고작 자신의 사사로운 욕심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조금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그 땅을 기쁘게 취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 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아합 왕과 이세벨은 아람 군대를 물리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도 욕망에 눈이 멀어 나봇의 포도원을 강제로, 목숨을 빼앗으면서 차지하였습니다. 우리도 혹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속적 욕망에 눈이 멀어 더 많은 물질을 가지기 위해, 더 높은 자리를 위해 타인을 억압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한 이세벨의 거짓말을 알고도 눈을 감았던 이스르엘 성읍의 장로들과 귀족들은 마치 유대인들의 협박에 굴복하여 어쩔 수 없이 예수님에게 십자가 형으로 사형 선고를 내린 빌라도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우리도 혹시 세상의 권력에 굴복하여 나의 믿음을 저버리고, 세상에 동화되어 그들과 동일한 가치관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나봇이 죽음을 감수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포도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단지 포도원의 부동산 가치가 높아서 지킨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조상들에게 주었고, 그것을 목숨과 같이 지키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나봇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다가 그와 그의 아들들까지 피를 흘렸습니다. 우리가 나봇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하였겠습니까? 포도원이야 나중에라도 다시 되찾을 수라도 있으니 목숨부터 부지하기 위해서 바로 아합 왕에게 판매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긴 나봇은 자신을 기꺼이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의 섭리의 통로로 살아갔습니다.
우리는 대림절 셋째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절기 동안에 무엇을 지키며 살아가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 주셨다면 우리 역시 그 은혜를 입은 자들이기에 우리의 삶을 그분께 기쁨으로 내어 드려야만 합니다. 나봇이 하나님이 주신 유산을 지키다가 목숨을 잃었던 모습은 예수님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우리도 오늘 하루 살아가실 때 세상의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 치고, 말씀이 우리의 삶에 나타나 이기신 주님과 동행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합 왕은 자신의 탐욕을 위해 나봇을 죽이고 결국 자신이 차지하고 싶었던 포도원을 차지했습니다. 혹시 나의 삶에도 이러한 세속적 욕망에 사로잡혀 타인을 비방하고, 내가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힘쓰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또한 이스르엘 성읍의 장로들과 귀족들처럼 부당한 요구에도 권력에 굴복하여 나봇을 죽이도록 명령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돌아봅니다. 주님 바라기는 오늘 본문에서 나봇처럼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내 생명보다 귀한 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 성공보다 귀한 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이 고백을 실천했던 나봇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 되도록 오늘 하루 주님께서 나를 굳건히 붙들어 주시옵소서. 나의 삶을 주님께 드리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나봇이 아합 왕에게 자신의 포도원을 판매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아합 왕이 이세벨에게 자신이 거절당한 일을 설명할 때 어떤 거짓말을 하였습니까?
3. 나봇은 억울한 죽음을 당할 때 변론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돌에 맞기 전에 어떤 심정이었을지 묵상해 봅시다.
4.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합 왕과 이세벨, 성읍의 장로들과 귀족, 나봇 중에서 내가 가장 닮아 있는 인물은 누구입니까?
(작성: 김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