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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태안 73코스 역방향 제2부
도투매기입구-큰어리골입구-작은어리골입구-
남산골갈림길-후망산입구-가로림양식장입구-
차돌백이입구-별쌍금일몰전망대-용난굴입구-
중막골입구-펜션단지-지레너머-목로골-양식장-
만대솔향기염전-못재골-중말입구-근욱골입구-
백화염전저수지-한장부리-태안기지입구-만대항
20231227
1.가로림만 솔향기염전에 피어오른 백금순 꽃!
두루누비 사이트에서는, 1.만대항에서 시작하여 바다가 보이는 조용한 임도가 이어지는 후망산을 지나는 코스 2.어촌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마을길, 숲길, 해안길을 고루 거니는 코스라고 서해랑길 73코스를 개략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관광포인트로는, 1.태안의 최북단 항구로 저렴한 가격의 횟집이 모여있는 '만대항' 2.갯벌체험, 독살체험 등 바다체험을 운영하고 있는 '만대어촌체험마을'을 내세운다. 73코스 시점은 태안군 이원면 내리 만대항, 종점은 태안군 이원면 내리1리 누리재 버스정류장이며, 거리는 11.7km, 소요시간은 4시간, 난도는 보통이라고 서해랑길 안내도에 적혀 있다. 2023년 12월 27일, 한 해가 저무는 연말에 서해랑길 73코스와 72코스, 2개 코스를 역방향으로 탐방하였다. 73코스 역방향 탐방 체험을 2부로 나누어 기록한다.
제2부 : 서해랑길 73코스 탐방을 역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 꾸지나무골 유스호스텔에서 임도를 따라 솔향기 펜션과 산제산 전망대 출입구를 지나 솔피노 카페 갈림길에 이르렀다. 솔피노 카페 방향으로 200m 내려가면 솔피노 카페와 도투매기 해변에 이르는데 이곳은 72코스 탐방에서 만나게 된다.
서해랑길 73코스는 임도를 따라 계속 직진한다. 산제산 등산로 출입구가 보인다. 꾸지나무골 버스정류장 위쪽에 산제산 등산로 출입구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산제산을 오르면 이곳으로 내려오는 것 같다. 산제산은 후망지맥에 속한다. 서해랑길 73코스는 지금부터 후망지맥과 동행하는데 잠시 뒤 후망지맥은 임도를 벗어나 능선으로 오른다. 서해랑길을 따라 임도를 따라갈까? 후망지맥 능선을 따라갈까? 후망산 능선을 따라가며 동쪽 가로림만과 서쪽 서해 바다를 조망하는 환희를 즐기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판단으로 후망지맥 능선으로 올라갔다.
예상대로 가로림만과 서해 바다를 모두 조망할 수 있어 가슴이 뜨거웠다. 그런데 짙은 미세먼지는 투명한 풍경을 가로막았다. 바로서해 바다 큰어리골 해변의 자드락 펜션은 보이지만 서남쪽의 태안화력발전소와 학암포 분점도는 보이지 않았다. 동쪽으로는 가로림만의 피도 섬과, 내리석산과 솔섬, 가느실과 남산골이 가늠되지만 남쪽으로 펼쳐지는 광대한 가로림만 바다는 미세먼지에 덮여 잿빛으로 빛날 뿐이다. 그리고 북쪽에는 후망산의 표지물이 되는 하얀 송신탑이 미지의 길을 가는 길손의 마음을 안심시킨다.
후망산으로 이어지는 후망지맥을 따라가다가 후망지맥 능선을 벗어나 임도로 내려왔다. 임도를 따라 북진한다. 떨기나무들이 길을 막는 후망지맥 능선을 갈 때의 불안감은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홀로 가는 미지의 길에는 두려움이 앞서고 일행이 걸어가는 길은 길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안심감 때문일 것이다. 임도에서 앞서가는 일행의 꼬리 서해 바다 작은어리골 해변의 샛별수산으로 내려가는 갈림길, 가로림만 남산골 마을로 이어지는 갈림길, 후망산 갈림길 사거리 고개에 이른다. 오른쪽 가까이에 있는 후망산에 올라야 하는데 마음이 급하여 고개를 넘어 가로림 양식장과 중막골 펜션단지 방향으로 직진한다.
가로림 양식장 갈림길을 지나 서해 바다 차돌백이 갈림길에서 서해랑길 73코스는 72코스와 만나 잠시 동행한다. 자라 한 쌍이 살고 있다고 하여, 자라 鱉, 둘 雙, 별쌍(鱉雙)금이라 불리는 별쌍금 해변을 내려볼 수 있는 별쌍금 일몰전망대 쉼터에 이른다. 트레킹팀 일행이 쉼터의자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일행의 뒤를 힘겹게 좇아와 낯선 일행을 만나지만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전망대에서 서해 바다를 조망하지만 해변의 갯바위들이 보일 뿐 바다는 미세먼지에 덮여 잿빛으로 부옇다. 파란 빛 바다에 새처럼 내러앉은 섬들이 떠있는 서해 바다의 풍경은 꼭꼭 숨어 있다. 썰물 때여서 별쌍금 해변에는 갯바위와 갯돌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조그만 갯돌이 마치 자라가 해변으로 기어오르는 모습처럼 보인다. 자라가 토끼의 유혹을 받아 지상으로 나오는 것일까?
용난굴 입구에서 머뭇거렸다. 용난굴을 살피러 해변으로 나갈까? 72코스 역방향 탐방 때 이곳으로 지나오니 72코스 탐방 때 용난굴을 탐방하자. 이렇게 결정하고 용난굴 탐방을 미루었다. 그런데 72코스 역방향 탐방 때 용난굴을 살피고자 하였을 때는 밀물 때여서 용난굴에 접근할 수 없었다. 아쉬움이 크다. 마음 먹은 것은 그때 그때 실행해야 함을 다시 깨달았다. 청춘여관이 보이는 중막골해변 갈림길에서 73코스는 72코스와 작별한다. 72코스는 중막골 해변으로 내려가고 73코스는 임도를 따라 중막골 펜션단지 방향으로 이어간다.
펜션단지 가는 길에 문학의쉼터 건물이 있다. 문학의쉼터 표지판을 보고 공공건물인 줄 알았는데, 건물 앞 게시판의 게시글을 읽고서 개인 주택으로 문학의쉼터를 겸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시글의 문학적 완성도나 예술적 성취 수준을 떠나 개인적 특수한 삶의 상처와 주제 의식 '젊은이여 사랑하라'가 길손의 마음을 잠시 붙들었다.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여!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오늘은 마음껏 사랑하여라!" 태안 이원반도 북쪽 중막골에서 서해 바다를 바라보며 노년의 삶을 살아가는 무명 문학인을 존경하며 문학의쉼터를 지나 펜션단지로 향한다.
서해 바다를 내려보는 중막골 펜션단지는 아름답다. 펜션단지 아래 중막골 해변에는 해랑해 카페가 자리한다. 그 남쪽에 용난굴과 별쌍금이 있는데, 72코스에서 탐방하게 될 것이다. 펜션단지에서 갯바위들이 늘어선 중막골 해변과 잿빛 서해 바다를 내려보고서 중막골 언덕을 넘는다. 이 언덕은 후망산에서 내려오는 후망지맥 산줄기로서 언덕을 가로질러 서해 바다 해안으로 이어져 이원반도 북쪽 끝 만대부리에서 맥을 끝낸다. 후망지맥 능선과 해안의 언덕길은 72코스 탐방로와 동행한다. 중막골 언덕을 넘어 서쪽으로 후망지맥 능선이 지나고 동쪽에는 가로림만 바다가 펼쳐지는 이원반도 북쪽 내리2리 지역으로 내려간다.
원이로 목로골 버스정류소 앞으로 나왔다. 꾸지나무골 입구에서 헤어진 원이로와 재회하여 지금부터는 73코스 시작 지점인 만대항까지 원이로를 따라간다. 가로림만 해안에는 큰 염전이 있었던 것 같다. 내리석산 남쪽에 이화염전과 장구섬 염전, 내리석산 북쪽으로 백화염전, 내리염전, 만대염전 등이 있었는데 이들은 폐업하고 그중에 만대솔향기염전만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다. 목로골 앞 백화염전도 지금은 양식장으로 변화하여 대형 양식장이 가로림만 해안을 차지하고 있다.
원이로를 따라 목로골 언덕을 넘으면 못재골, 옛날에 이곳에 띠풀(모茅)이 무성하여 띠로 작은 초막집을 지어 사람들이 살아서 모(茅)재골이라 했는데 지금은 모재꼴, 못재골이라 불리는 곳이다. 왼쪽 서쪽에는 후망지맥 능선이 자리하고 그 동쪽 기슭에 못재골 마을이 자리한다. 오른쪽 동쪽에는 가로림만 해안에 솔향기염전을 포함한 내리염전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만대솔향기염전 창고벽에는 이상수 사진가의 '노부부의 염전' 사진촬영 이야기가 감동을 준다. 솔향기염전은 70대 정갑훈씨 노부부가 40여 년째 운영하는 염전이라고 한다. 솔양기염전을 일구고 염전체험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운영하는 정갑훈 사장님을 뵙게 되었다. 염전체험 교육실에서 소금 생산과정, 염전과 천일염의 종류 등 염전에 관한 여러 말씀을 해 주셨다. 벽에 붙은 정갑훈님의 '백금순' 시가 가슴을 울린다. "소금아 소금아/ 사랑하는 내 백금순/ 세상을 맛나게 만들어 주는 너/ 바다에서 태어나 내게로 온 너/ 내 어릴 적 맛이야/ 밥 한 공기에 넣은 너의 소금맛/ 오늘도 내 입가에 떠오르네"
만대솔향기염전에서 나와 원이로를 따라 만대항으로 향한다. 서쪽에는 후망지맥 산줄기와 그 기슭에 자리한 마을들이 각각의 지명을 달고 자리하고 있다. 중말, 동사골, 돌앙뗑이, 악너머, 가마봉, 노루금, 근욱골, 한장부리, 회목쟁이, 수문머리, 진창무이, 입성끝, 세막금, 당봉전망대 등 지명과 버스정류장 이름을 확인하며 원이로를 따라간다. 이 지명은 산기슭 마을을 지칭하기도 하고, 후망지맥 능선 또는 능선 너머의 해안 지역을 이르는 것도 같다. 그래서 72코스 탐방 때 다시 이들 지명을 확인하며 걸으면 해안에서 가로림만 지역을 어림하며 탐방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이다.
가로림만 만대항에서 남서쪽을 조망하며 위치를 확인해 본다. 바다에는 대섬이라고도 불리는 솔섬이 만대항 남쪽에 떠 있고, 그 남쪽에는 내리에서 가장 높아 큰산이라고도 불리는 내리석산, 그 남서쪽에 방금 거쳐온 후망산이 가로림만을 굽어본다. 만대항 서쪽으로는 바다가 깊숙하게 파고 들어 갯벌을 형성하여 양식장들이 자리하고 있다. 미세먼지가 짙어서 가로림만의 이 아름다운 풍경을 투명하게 조망할 수 없어 안타깝다.
만대항 동쪽 방파제에는 만대항경제공동센터 건립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름이 거창한 만대항경제공동센터는 무엇일까? 알아보니 지역민들의 근린생활시설을 이른다고 한다. 만대항경제공동센터 이름 대신에 좀더 익숙하고 친근한 이름을 쓰면 좋을 것 같다. 공사 현장 가림막을 통과하여 솔향기길 1코스와 서해랑길 73코스의 시작 지점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숨가쁘게 걸어온 73코스 역방향 탐방을 마쳤다. 자랑스럽다. 벅차다.
미세먼지가 헤살을 부리는 바람에 73코스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투명하게 살피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걸어온 그 길에서 마주친 한 순간, 순간은 모두 아름다운 꽃봉오리로 가슴에 피어 있다. 이제 곧바로 72코스를 역방향으로 출발해야 한다. 72코스 역방향 탐방을 출발하기 전 가로림만 만입부인 북쪽 바다와 가로림만 동쪽 해안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 일대를 조망한다. 이원반도 북쪽 끝 가로림만 만입부는 활짝 열린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작은구매수동 해변의 삼형제 바위가 손짓한다. 건너편 서산시의 황금산 능선, 대산산업단지 굴뚝의 흰 연기가 솟아오르는 모습도 흐릿하지만 시야에 들어온다.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과 힘찬 역동성이 느껴진다. 걷자. 감각을 키우자. 내 국토를 배우자.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12.14km
전체 소요 시간 : 3시간 8분
왼쪽 200m 아래에 솔피노 카페가 있으며 그 앞은 도투매기 해변이다. 서해랑길은 오른쪽 임도로 올라간다.
임도를 계속해서 따라가면 산제산 등산로 출입구가 나온다.
꾸지나무골 해수욕장 버스정류장 위쪽에 산제산 등산로 남쪽 출입구가 있다. 그곳에서 올라오면 이곳으로 내려오는 듯.
솔피노 카페 입구에서 임도를 따라 올라오면 산제산 등산로 북쪽 출입구가 나온다.
서해랑길은 왼쪽 임도를 계속 따라가지만 서해랑길을 벗어나 오른쪽 후망지맥 산줄기로 올라간다.
후망지맥 능선에서 동쪽 가로림만의 피도(皮島) 섬을 조망한다. 오른쪽의 장구섬(부도缶島) 마을 북동쪽에 있다.
피섬은 피도(皮島). 장구섬 북동쪽 약 200m 전방에 있는 섬으로서, 면적이 67.81㎡에 높이가 80.1m로 이원면에서 세 번째로 큼. 부도마을 앞 해안에 할미섬, 장구섬, 피섬이 마을의 보호막처럼 있는데, 3개 중 가장 큰 피섬이 그 밖에 있어서 부도마을의 겉옷 역할을 해준다 하여 가죽·겉의 한자 피皮를 섬의 이름으로 붙이게 됨.(태안군지)
후망지맥 능선에서 서쪽의 서해 바다와 큰어리골 해변의 자드락 펜션을 조망한다.
중앙 뒤쪽에 산제산이 어림된다. 왼쪽의 후망지맥 능선을 따라왔다. 서해랑길 정코스는 아래 임도로 진행한다.
후망지맥 능선에서 오른쪽 뒤의 송신탑과 그 뒤의 후망산을 조망한다. "후망산(候望山)은 안골 서남쪽에 있는 산으로서 높이가 102m이며 이 산에 오르면 사방이 환하게 바라다 보임."(태안군지)
후망지맥 능선에서 다시 피도 섬을 바라본다. 왼쪽은 가느실 마을, 오른쪽은 문드럼 마을이다.
내리석산이 솟아 있고, 왼쪽 뒤에는 솔섬이 보인다. 바로 아래 지역은 가느실 마을이다. 가느실 마을 왼쪽 위에 수억 마을이 있는 것 같다.
"가니실(細絲谷)은 내2리 수억마을 남쪽의 마을.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의 지형으로서 남쪽이 길고 가늘게 바다로 돌출해 있어서 ‘가느실’이라 부르다가 ‘가니실’로 전성됨." "수억말은 만대 남동쪽, 후망산 동북쪽에 있는 마을. 이 마을에서 수억 원이 나온다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태안군지)
후망지맥 능선을 타고 내려와 임도와 만난다. 서해랑길은 오른쪽으로 이어가는데, 잠시 왼쪽으로 내려가 위치를 확인한다.
후망지맥 능선에서 임도와 만나 잠시 진행 반대 방향으로 내려와 위치를 확인한다. 서해랑길 73코스 역방향을 정코스로 탐방하면 왼쪽 임도를 걸어와 이 도로와 만나고,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면 큰어리골 해변의 자드락 펜션으로 내려간다.
후망지맥 능선에서 내려와 임도를 따라 고개를 넘으면 샛별수산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작은어리골 해변의 샛별수산 양식장으로 내려가고, 서해랑길은 오른쪽 임도를 따라간다.
후망지맥 능선에서 임도와 만나서 왼쪽의 임도를 따라 고개를 넘어 내려왔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작은어리골 해변 샛별수산이다. 샛별수산 가는 길은 이곳 이외에 후망산 갈림길에서도 작은어리골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내려갈 수 있다.
위쪽 길은 내리석산 가느실 마을과 인접한 남산골 마을로 가는 길, 서해랑길은 왼쪽 가로림 양식장 방향으로 이어간다.
작은어리골 해변 샛별수산 갈림길에서 왼쪽 길을 따라 올라와 가로림 양식장 방향으로 꺾어간다.
사거리 고개에 이른다. 왼쪽은 작은어리골 샛별수산, 오른쪽은 후망산, 직진하면 중막골 펜션단지, 서해랑길은 직진한다.
이 길을 따라가면 샛별수산 양식장&종묘배양장이 있는 작은어리골 해변으로 내려간다.
이 길은 송신탑이 있는 후망산으로 올라가는 길로 계속 따라가면 내리석산 아래 가느실 마을로 이어진다.
서해랑길은 가로림 양식장과 중막골 펜션단지 방향으로 내려간다.
왼쪽은 가로림 양식장 가는 길, 서해랑길은 오른쪽 별쌍금일몰전망대와 중막골 펜션 단지 방향으로 진행한다.
왼쪽은 72코스 탐방로이며 내려가면 뱃면 해안 차돌백이 해변이다. 서해랑길 72코스와 73코스는 이곳에서 만나서 중막골 입구까지 동행한다.
"밧면(背面) 마을은 만대의 서남쪽 마을로, 안마을의 등진 뒤쪽에 있다 해서 한자로 등 '배(背)'자를 써서 ‘배면’이라 하다가 ‘뱃면’, ‘밧면’으로 전성되었다."(태안군지)
별쌍금 일몰전망대에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별쌍(鱉雙)금은 자라 한 쌍이 산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왼쪽의 해변은 차돌백이 해변, 오른쪽 해변은 용난굴 해변과 중막골 해변이다. 바다는 미세먼지 탓에 잿빛이다.
앞에는 만대평강수련원 현판이 붙어 있고, 뒤쪽은 별쌍금펜션이다. 만대평강교회 수련원과 별쌍금 펜션을 겸하는 것 같다.
이곳에서 별쌍금 캠핑장 방향으로 내려가 북쪽 해변으로 조금 올라가면 용난굴을 탐방할 수 있다.
"옛날에 용이 나와 승천한 곳이라 하여 용난굴(용이 나온 굴)이라 전해 내려오고 있다. 동굴 속으로 18m쯤 들어가면 양쪽으로 두 개의 굴로 나누어진다. 두 마리 용이 한 굴씩 자리를 잡고 하늘로 오르기 위해 도를 닦았는데 우측의 용이 먼저 하늘로 승천하니 좌측의 용은 승천길이 막혀 버렸다. 갈 곳이 없는 좌측의 용은 돌로 변하여 망부석이 되어 용굴을 지키고 있다. 명소가 있는곳엔 명물이 있는 법, 망부석 주위에 곰바위, 거북바위가 같이 있다."(설명안내판)
이곳에서 서해랑길 72코스는 청춘여관 방향으로 내려가 중막골 해변으로 이어가고, 73코스는 72코스와 헤어져 오른쪽 임도를 따라 펜션단지를 거쳐 언덕을 넘어 지레너머로 내려간다.
솔향기길과 서해랑길 72코스는 중막골 해변으로 내려가 만대항까지 이어가지만, 서해랑길 73코스는 마을 방향으로 이어가 원이로를 따라 만대항까지 이어간다.
개인이 운영하는 듯한 문학의 쉼터 건물 앞 게시판의 게시물을 읽어 보았다. '돌'이라는 필명으로 '사랑하는 젊은이여!'라는 글을 게시하였는데, 한 개인의 특수한 삶을 기록하고 있지만 문학적 향기는 높지 않다. '젊은이여 사랑하라'는 주제 의식을 전하기 위해 전문을 소개한다.
사랑하는 젊은이들이여! - 돌 : 뜨거운 피를 가진 젊은이들이여! 사랑하는 젊은이들이여! 지금 한밤중, 솔베이지송을 듣고 있는 나는 옛날 20대 후반에 한 처녀를 사랑했었답니다. 나는 실패한 과거를 간직한 남자입니다. 우리는 사랑했기에 결혼을 기약했으며 밤과 낮을 마다 않고 비원이며 덕수궁을 오가면서 사랑을 꽃 피웠답니다. 돈이 없어 싸구려 여인숙을 드나들며 빈대, 벼룩과 싸워야 했고 끼니는 라면을 주식으로 했었지만 우리는 꿀처럼 달콤한 사랑에 만족하며 앞으로의 희망에 부풀어 마냥 즐겁고 행복했었답니 다. "아! 쇼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다." "아니야, 인생처럼 슬픈 쇼는 없어" *격한 풍방 거친 파도, 우리의 항해 박막을 순 없지."
어느 날, 창밖엔 봄볕이 내려 온 세상 천지에 새 싹이 돋고 파릇한 가지에 멧새가 앉아 정답게 희망을 지저귀던 축복의 아침, 서울 적선동 어느 여인숙에서 일어나 아침을 먹지도 않은 채 회사로 출근하려던 그 때, 그녀는 문 밖으로 나가려면 아침, 그녀는 문 밖으로 나가려던 나의 어깨에 매달리며 마치 애원하듯 얼굴을 바라보면서 나지막이 속삭였습니다. "당신" 이라고... 평생에 단 한 번 느껴 본 은은하고 따듯한 음성, 신비로운 그 첫사랑 맹서의 의미. 그러나 우리의 운명은 결코 순탄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들의 뜻과는 달리 그녀의 부모는 내가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결혼을 결사 반대하다니 급기야 자신의 딸을 집 안에 감금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만으로는 우리의 깊은 사랑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숨바꼭질 끝에 몰래 빠져 나와 근처 다방에서 만난 우리는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를 부르며 눈물로 서로를 위로하기도 했으나, 결국 앞으로의 무가치한 삶에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약속하는 순간, 그녀의 가족들이 찾아와 밖으로 끌어내더니 번잡한 길거리에서 자신의 딸을 발길로 걷어차며 무자비하게 짓밟아 버렸습니다. 참담한 현실 앞에서 그냥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나약하기만 한 나는 무기력하기만 했던 자신을 자책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 날 이후 슬픔에 잠겨 밥도 먹지 못하고 술로 하루하루를 달래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은 흐르고 흘러 유행가의 가사처럼 약이었습니다. 해와 달이 바뀌어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면서 그녀는 시집을 갔고 나 또한 결혼을 준비하였습니다. 80년대 초, 어수선한 시국 속에서 다니던 직장에서 강제 해직된 나는 쓸쓸한 결혼식을 하루 앞둔 어느 날 아버님마저 돌아가서 슬픔에 잠겨 있을 때 한 여성으로부터 조문전화가 걸러 왔으니, 그녀는 다름 아닌 죽음을 마다하고 사랑했던 바로그 여인이었습니다. 거듭하여 복받쳐 오르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더욱 큰소리로 통곡하며 두 번 울고 말았으나, 그토록 숨겼던 두 번째 이유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또다시 시간은 세월을 재촉하며 백발이 가까운 현재에 이르렀으나 그 슬픈 로맨스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뇌리에 생생합니다. 무수한 별빛들이 흘러간 아득한 기억 속에서, 속삭이던 그 날들을 잊지 못해 틈 날 때마다 먼 하늘을 쳐다보면서도 결코 더 이상 누구에게도 듣거나 말할 수도 없었던 "당신"이라는 그 마지막 남긴 한 마디는 끝끝내 가슴에 선명한 낙인이 되어 한 평생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후회는 없고 지금 나는 평안합니다. 나는 스스로 반문합니다. 지금 제아무리 호화로운 부귀영화를 누린다 할지라도 젊음을 불태웠던 목숨 건 사랑, 그러한 과거도 없는 밋밋한 삶이 결코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를... 사랑은 맺지 못하여 슬펐다 하지만, 죽음마저 무릅쓰고 사랑하였던 그 추억의 인내는 쓰리도록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여! 이제 나는 그대들에게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오늘은 마음껏 사랑하여라!"
'돌'이라는 필명으로 게시한 '사슴에게 2' 시 작품을 소개한다. 시적 완성도와 예술적 향기를 떠나서, 태안 이원반도를 지키는 무명의 시인에게 존경을 표한다.
한 하늘 아래 태어난 자매 모양의 별/ 그대를 끌어넣던 친구도 사라졌으리.// 같은 동산에 이끌리면서/ 색색의 야수들이 몰아칠 때마다/ 입김과 발톱에 빼앗기는 변절의 사랑/ 홀로 씹던 고통을 그 누가 알랴마는// 삼천리 강산에 새 날이 밝았어도/ 물결치는 깃발은 갈라지고/ 가냘픈 몸은 옷을 겨를도 없이/ 다투는 혓바닥들에 찔리며/ 비웃는 바람소리만 들렸어라.// 향을 피울 수 없는 외로운 장미는/ 지닐 때부터 가시가 없었고/ 뉘우침의 나날들은 자신의/ 슬픈 모가지 길이만큼도 견디지 못해/ 쓸쓸이 길가에 쓰려졌느니// 이 세상 일각 그대에게도/ 아름다운 새벽은 정녕 있었더란 말이냐.// 말하라 그대여/ 끌고 당기며 일어섰던 자 누구였던가./ 답답한 무덤 속은 대답이 없는데/ 저 멀리 언덕 위에/ 까마귀들만 수군대며 서성거리는구나.
청춘여관 앞에서 문학의 쉼터 앞으로 걸어왔다. 문학의 쉼터는 개인이 운영하는 것 같은데, 건물 앞 게시판에 두 편의 작품이 게시되어 있다. 게시물의 문학적 완성도를 떠나 그의 삶을 존경한다.
중막골 언덕에 여러 펜션들이 단지를 이루고 있다. 펜션 단지 옆에서 서해 바다를 조망한다.
펜션단지에서 중막골 해변을 내려본다. 해랑해 카페가 자리하고 있으며, 해변을 따라 왼쪽으로 내려가면 용난굴이 있다.
펜션단지를 지나 고개를 넘으며 가로림만을 내려본다. 중앙의 아래는 목로골, 오른쪽 맨 뒤에 만대항이 보인다.
'지레넘어'는 뒤쪽 언덕 너머에 있는 서해 바다 해안을 이른다. 안내판에는 '지레넘어'를 설명하지 않고 "그 옆엔 돌로 이루어진 낭떠러지가 있는 '돌앙뗑이'가 있다고 안내한다. 서해랑길 72코스에서 서해 바다 해안의 '지레너머'와 '돌앙뗑이'를 탐방한다.
지레넘어 안내판 앞에서 가로림만을 바라본다. 맨 오른쪽에 원이로의 목로골 버스정류소, 중앙 뒤에 양식장, 맨 뒤에 가로림만 만대항이 보인다. 앞의 들녘은 목로골 지역이다.
펜션단지를 지나 맨 왼쪽 위의 언덕을 넘어 맨 오른쪽 지레넘어 안내판 앞을 거쳐 원이로로 나가다가 뒤돌아본다. 오른쪽 언덕 뒤쪽의 서해 바다 해안 지역을 '지레넘어' 또는 '지레너머'라고 이른다면 이곳이 지레 지역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앞의 들녘과 그 뒤쪽 지역이 목로골이고 왼쪽 산등성이 뒤쪽의 서해 바다 해안에 지레너머와 돌앙뗑이가 있다.
목로골 버스정류소에서 꾸지나무길 입구에서 헤어졌던 원이로와 재회한다. 언덕 너머는 수억 마을과 가느실 마을일 것이다.
가로림만 바다 안쪽 원이로 옆에 대형 양식장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이 백화염전이었는데 양식장으로 바뀐 것 같다. "백화염전(白花鹽田)은 만대염전 남동쪽에 있는 염밭으로서 1959년 4월 16일에 완성되었음."(태안군지)
원이로 옆의 대형 양식장 앞에서 걸어온 길을 뒤돌아본다. 왼쪽에 원이로의 내리2리 목로골 버스정류소가 보인다. 후망지맥이 후망산에서 왼쪽으로 내려와 중막골 언덕을 가로질러 오른쪽 돌앙뗑이와 지레너머로 이어진다.
대형 양식장을 지나 원이로를 따라 목로골에서 못재골로 넘어간다.
원이로의 고개를 넘으면 못재골 마을이 왼쪽에 보이고, 오른쪽에는 만대솔향기 염전이 자리하고 있다.
원이로의 고개를 넘으면 오른쪽 마늘밭 뒤쪽으로 만대솔향기염전을 포함한 내리염전이 넓게 펼쳐져 있다. 중앙 맨 뒤쪽에 서해 바다가 살짝 보이는 곳은 근욱골 해변이고 뒤쪽의 산줄기는 후망지맥으로, 서해랑길 72코스 탐방로이다.
천일소금 솔향기염전 표석과 그 뒤에 송화소금과 탈수소금 목장승 한 쌍이 세워져 있다. 왼쪽 뒤는 못재골 마을이다.
이원면 내리2리 만대솔향기염전 입구에 쉼터정자가 있고, 그 양쪽에 솔향기염전 사무실과 소금창고가 있다.
만대솔향기염전 창고 벽에 솔향기 염전의 여러 홍보물이 붙어 있다.
여러 홍보물 중에 솔향기염전을 지금까지 운영해 온 이상수 사진가의 '노부부의 염전' 사진촬영 이야기가 감동을 준다.
솔향기 염전은 태안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70대 노부부가 40여 년째 운영하는 염전이다. 두 부부는 염전 일을 천직으로 여기며 일평생을 바쳐왔다. 녹록치 않은 세상살이였지만 남들 부럽지 않게 2남 3녀도 잘 키워냈다. 세월이 흘러 가정을 꾸리고 사는 자식들과 손주들을 바라보면 더없이 행복하지만 오늘도 염전을 놀릴 수 없어 연장을 들고 집을 나선다. 지인의 소개로 천일염의 제조과정과 노부부의 염전 사랑을 프레임에 담고 싶었던 나는 왕복 400km, 6시간을 오가며 3여 년 간 공을 들였다. 그렇게 삶의 전부였던 염전을 그들이 억척스럽게 일구어 내는 생활상을 담아 이제는 세상 밖에 내보이려 한다.
어느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이라고 앵글에 담아 시대, 문화, 역사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벅차 보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이들의 모습에서 삶에 대한 열정과 부부애, 가족애까지 느꼈다. 로버트 카파는 "사진이 좋지 않다면 충분히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나는 노부부의 일상과 더 근접한 곳에 있으려 그들과 함께 숙식을 하고 노동의 현장에서 그들의 땀과 노고를 담으려고 애썼다. 우리나라에도 한때는 천일염의 수요가 많아 호황을 누린 적도 있었지만 현재는 제염업의 사양 산업화에 따라 천일염을 생산하는 염전은 몇 개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요즘은 이웃나라 일본에서 방사능 오염수 방류로 소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고 하나 염전업의 미래는 그리 밝지만은 않다.
소금을 만드는 작업을 천직으로 여기며 평생을 사신 두 분의 삶을 제3자의 시선으로 관찰하고 사유하며 3년여의 기간 동안 사진 촬영을 해왔지만 진정으로 그 두 분의 삶을 나 스스로 잘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촬영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곁을 내어주신 두 분께 감사드린다. 2023년 8월 18일 사진가 이상수
만대솔향기염전이 가로림만 서쪽 해안에 자리하고 있다. 바닥이 타일과 황토인 타일염전과 황토염전이 각각 있다. 맨 왼쪽의 파란 지붕은 솔향기 염전 운영자 정갑훈님의 댁이고, 오른쪽 뒤에 만대항이 보인다. 뒤쪽 염전까지 모두 내리염전이라 이르는 듯.
정갑훈님이 솔향기 염전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실에서 염전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설명하신다.
소금아 소금아/ 사랑하는 내 백금순/ 세상을 맛나게 만들어 주는 너/ 바다에서 태어나 내게로 온 너/ 내 어릴 적 맛이야/ 밥 한 공기에 넣은 너의 소금맛/ 오늘도 내 입가에 떠오르네// 가끔은 너무 짜지 않았나/ 내 눈물이 흐르게 만들었던 그날/ 그래도 나는 널 사랑해/ 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백금순// 소금아 소금아/ 사랑하는 내 백금순/ 모든 것을 맛있게 만들어 주는 너/ 늘 내 곁에 있어 줘/ 나의 소중한 짜릿한 친구야
만대솔향기염전 사장님 정갑훈님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다. 왼쪽의 파란 지붕의 집이 정갑훈님의 주택이다.
모째골(못재골) 버스정류장에 만대마을 안내판과 못재골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1.만대마을은 행복마을 : 우리 마을은 2016년 행복마을 컨테스트에서 대통령상(문화복지분야)을 수상하였고, 주민의 애환과 삶이 묻어나는 “만대강강술래”는 주민인 최화정 무용가의 지도 안무와 마을 주민들이 함께 만든 작품으로 지역적 특색을 살린 민속예술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2.만대 녹색체험마을 소개 : 만대마을은 서울로부터 174km, 대전으로부터 181km 떨어진 태안군 최북단 이원면 내2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농·어촌이 복합된 마을 앞은 가로림만의 갯벌과 뒤는 갯바위가 있는 다양한 지리적 생태적 자원이 압축되어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마을의 특산품은 전국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만대 깜장굴, 마늘, 고구마, 쌀, 고사리 등이 있습니다. 체험으로는 농사체험, 바다체험, 예술과 자연치유가 접목된 다양한 체험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능선 뒤 서해 바다에 여섬이 있고 그 왼쪽 해안에 지레너머와 돌앙뗑이가 있는데, 서해랑길 72코스에서 탐방하게 된다.
"못재골 : 이곳엔 나오리생태예술원, 솔향기염전, 여섬, 돌앙뗑이가 있다. 옛날에는 이곳에 띠(억새과 식물)가 무성하여 띠로 작은 초막집을 지어 모재골이라 했는데 지금은 못재골이 되었다."(태안군지)
못재골 입구에 나오리 생태 예술원이 있다. 이곳에서 400m 거리의 서해 바다에 여섬이 있는데, 72코스에서 탐방하게 된다.
목로골 입구에서 원이로를 따라 양식장을 지나 왼쪽 뒤의 고개를 넘어 만대솔향기염전을 살피고 못재골 앞으로 왔다.
왼쪽은 서해 해안의 후망지맥 능선 아래의 들녘, 오른쪽은 가로림만 해안의 내리염전, 그 사이로 난 지방도로 제603호선 원이로를 따라간다. 원이로 왼쪽의 파란 지붕은 솔향기염전 사장님 정갑훈님 댁이고, 오른쪽 뒤에 만대항이 보인다.
버스정류장 이름은 동사골, 이정목에는 중말이라 적혀 있으며, 노루금&승구지 700m, 가마봉 800m, 악넘어 850m 지점이라고 이정목 날개에 적혀 있다. 왼쪽 길을 따라가면 중말을 거쳐 서해 바다 노루금 해변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중말 뒤쪽 중앙에 솟은 산봉이 가마봉이 맞을까? 저 뒤에 여섬과 악너머 해변이 있을 것이다.
한국수산 종묘배양장 방향으로 들어가면 서해 바다 근욱골 해변으로 이어지는 것 같으며, 서해랑길 72코스에서 탐방한다. 오른쪽은 영림(조경수 식재) 사업장 부지를 조성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곳이 백화염전 저수지라고 한다. 백화염전은 만대염전 남동쪽에 있다고 하는데 이 뒤쪽에 백화염전이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백화염전(白花鹽田)은 예전에 가로림만에 넓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은데, 지금은 없어진 것 같다.
가무락 양식장 입구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가무락 양식장 앞으로 들어가 본다.
이 뒤쪽이 가무락 양식장인 것 같다. 왼쪽 뒤에 내리석산, 오른쪽 맨 뒤에 후망산이 가늠된다.
가무락양식장이 넓게 펼쳐져 있다. 맨 오른쪽 뒤는 못골재와 솔향기염전, 중앙 뒤는 양식장과 목로골, 그 뒤 언덕 너머에 중막골과 펜션단지가 있다.
가로림만 제방 안쪽에 넓은 습지가 형성되어 있다. 예전에 이곳이 만대염전이었을 것 같다. "만대염전은 만대 앞에 있는 염밭으로서 1957년 9월에 만들어짐."(태안군지)
왼쪽은 한장부리, 중앙은 진창무이 지역인 것 같다. 이곳이 만대 지역인 것 같다. 그래서 오른쪽 습지는 예전에 만대염전이었을 것이다. "만대(萬垈) 마을은 내리에서 가장 큰 마을. 만 채의 집이 세워질 터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태안군지)
이 지역을 한장부리라 이르는 듯. 중앙에 바다마을 펜션이 있고 그 왼쪽 뒤에, 바다에 들어가고 나오는 길이 좁고 잘룩해서 '회목쟁이'라 이르는 곳이 보이는데 '수문머리'도 있는 것 같다. 72코스 탐방에서 뒤쪽의 후망지맥 능선을 따라 회목쟁이를 지난다.
서해랑길은 원이로를 따라 진창무이 입구를 지난다. 왼쪽으로 끝까지 가면 군부대가 있는 태안기지일 것이다.
진창무이 입구에 이정목과 진창무이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진창무이 가까이엔 입성끝, 당봉전망대, 세막금이 있다고 한다. 당봉전망대 1km, 세막금 해변 1.2km, 입성끝전망대 1.5km 지점이다. 이 길을 계속 따라가면 태안기지에 이른다.
멋진 해송 한 그루가 진창무이와 태안기지 입구 언덕에서 자라고 있다.
원이로에 태안기지 입구 버스정류소가 있고, 중앙 뒤에 회목쟁이, 버스차고지 뒤에 진창무이 입구가 보인다.
만대항건설공사 현장사무소가 왼쪽에 있으며, 서해랑길은 원이로를 따라 만대항으로 이어간다.
가로림만의 만대항 부두 앞 거리가 보인다. 오른쪽으로 가로림만 바다가 펼쳐져 있다.
앞에 솔섬, 오른쪽 뒤에 내리석산이 보인다. "솔섬(松島)은 대섬(竹島)이라고도 한다. 수억 마을 북쪽의 섬. 이 섬에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태안군지)
왼쪽에 내리석산, 오른쪽 뒤에 후망산이 솟아 있다. 내리석산은 큰산이라고도 이르는 것 같다. "큰산은 수억 마을 동쪽, 장구섬 마을 북쪽에 있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산으로서 높이가 108m이다. 큰산뿌리(부리)는 큰산 동쪽에 있는 부리를 이른다. 큰수억 마을은 수억 마을 남쪽의 마을이다."(태안군지)
왼쪽 뒤에 후망산, 중앙 뒤에 중막골, 그 아래 목로골과 양식장, 맨 오른쪽 뒤에 솔향기 염전이 가늠된다. 예전에는 이곳이 모두 염전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후망산(候望山)은 안골 서남쪽에 있는 산으로서 높이가 102m이며 이 산에 오르면 사방이 환하게 바라다 보인다."(태안군지)
만대항 부두에 식당가와 편의점 시설이 있다.
방파제가 양쪽에 시설되어 있고 그 사이에 선착장이 있다. 오른쪽에 대섬이라고도 불리는 솔섬이 있다.
만대항 부두에 식당가와 위락시설이 있다. 건너편 방파제에 만대경제공동센터 건립 공사가 진행 중이다.
왼쪽에 만대항 쉼터, 오른쪽에 만대항 동방파제가 있으며, 동방파제에 만대경제공동센터 건립 공사가 진행 중이다.
가로림만 개펄은 만대선착장과 그 서쪽으로 더 파고 든다. 중앙 왼쪽뒤에 후망산이 솟아 있다.
왼쪽에 만대선착장 동방파제, 중앙에 솔섬이 있으며, 가로림만은 정면 남쪽 끝으로 호리병처럼 이어진다.
만대항 쉼터에 태안종합관광안내도, 솔향기길 1코스 안내도, 만대마을 설명안내판, 만대항 설명안내판 등이 세워져 있다.
1.만대마을은 행복마을 : 우리 마을은 2016년 행복마을 컨테스트에서 대통령상(문화복지분야)을 수상하였고, 주민의 애환과 삶이 묻어나는 “만대강강술래”는 주민인 최화정 무용가의 지도 안무와 마을 주민들이 함께 만든 작품으로 지역적 특색을 살린 민속예술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2.만대 녹색체험마을 소개 : 만대마을은 서울로부터 174km, 대전으로부터 181km 떨어진 태안군 최북단 이원면 내2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농·어촌이 복합된 마을 앞은 가로림만의 갯벌과 뒤는 갯바위가 있는 다양한 지리적 생태적 자원이 압축되어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마을의 특산품은 전국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만대 깜장굴, 마늘, 고구마, 쌀, 고사리 등이 있습니다. 체험으로는 농사체험, 바다체험, 예술과 자연치유가 접목된 다양한 체험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3.만대항은 예전에는 작은 배 몇 척이 있는 포구였으나, 배들이 점점 많아지다 보니 2004년 어촌 정주항으로 지정되었고 2010년에는 지방어항으로 승격되었다.
서해랑길 73코스 시작 지점은 솔향기길 입구를 지나 있으며 오른쪽에 만대경제공동센터 건립 공사가 진행 중이다.
솔향기길 소개안내판 옆에 서해랑길 72·73코스 안내도와 스탬프함, 그 옆에 태안절경천삼백리 솔향기길 안내도, 그 옆에 솔향기길 문주(門柱)가 설치되어 있다.
솔향기길 소개 : 2007년 12월 7일 허베이 스피릿호와 중공업 바지선이 충돌하면서 원유가 태안 인근 해역으로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었습니다. 이러한 비보가 보도되자 전국에서 120여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모여들었고, 원유가 뒤덮였던 바위, 자갈, 모래를 하나하나 정성으로 닦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태안의 해역은 다시 자연의 색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솔향기길은 이 때 이용하던 오솔길이 연결된 곳으로 120여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보은의 길입니다. 민대항부터 꾸지나무골 해수욕장까지 약3~4시간 정도 소요되며, 이름 모를 예쁜 식물들과 아름다운 풍경을 가득 품은 마음의 쉼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서해랑길 태안 72·73코스 안내도와 스탬프함이 태안절경천삼백리 솔향기길 안내도 옆에 세워져 있다.
거리 11.7km, 소요시간 4시간, 난도 보통이라고 적혀 있다. 실제 탐방한 결과는 전체 탐방거리는 12.14km, 전체 소요시간은 3시간 8분이 걸렸다.
솔향기길 안내도를 살피면 서해랑길은 솔향기길과 동행하지만 솔향기길 5코스에서 서로 다른 길을 가는 것 같다.
서해랑길 태안 73코스를 역방향으로마치고 서해랑길 태안 72·73코스 안내도와 함께 기념한다.
가로림만 만대 해변에 해상보도교가 설치되어 있다. 서해랑길 72코스 역방향은 해상보도교를 따라가다가 해변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만조 때는 해변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왼쪽 언덕을 넘어 작은구수매동 해변으로 이어간다.
중앙 뒤는, 태안군 이원면 내리 만대부리와 오른쪽 건너편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 황금산 사이의 가로림만 만입부이다. 중앙 앞에 삼형제 바위가 보인다. 서해랑길 72코스는 작은구매수동 해변에서 삼형제 바위 왼쪽 언덕을 넘어 큰구매수동 해변으로 내려간다.
왼쪽에 삼형제 바위가 있고, 건너편은 가로림만 동쪽 해안으로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 황금산과 그 오른쪽에 대산산업단지가 흐릿하게 보인다.
오른쪽 방파제에는 만대경제공동센터를 건립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건너편은 서산시 대산읍 가로림만 동쪽 해안이다.
서해랑길 73코스를 역방향으로 탐방한 뒤 곧바로 서해랑길 72코스 역방향 탐방을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