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査頓 아가씨
고 승 희
삶 속에서 비유되는 옛 속담은 그럴듯하게 잘 맞아서 고개가 저절로 끄떡여질 때가 많지만, 속담과는 달리 좋은 방향으로 길 드려지는 때도 있다. “사돈댁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 물론 이 속담은 사돈 관계가 어렵고 불편한 사이임을 비유하는 은유에 가까운 말이리라. 사람들 간에는 우연히나 필연적으로 인연을 맺고 그 관계를 곱게 가꾸어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결코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마음을 터놓고 서로 이해하며 노력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외동딸 아이를 시집보내 놓고 사돈댁과 인연을 쌓은 지도 어느새 수년이 흘렀다. 사돈댁 내외분과 우리 내외는 각각 한 살씩의 차이로 만나서 다 성장시킨 자녀의 행복을 지켜주는 동반자로 새로운 인연에 큰 변화를 맞이하였다. 딸 사위가 결혼식을 마친 며칠 후, 사돈댁으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았다.
사돈이라는 어휘 앞에 상견례 치르던 날처럼 며칠 전 부터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그렇다고 달리 뭘 준비할 것도 없고 초조한 시간은 다가왔다. 무남독녀로 키워 시집보낸 딸아이가 시부모님 마음에 안 들어 하면 어떡하나.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딸를 보내놓고 불안한 마음에 안절부절못하여 도무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제야, 나를 시집보내고 조바심하셨을 지금은 안 계신 친정 부모님이 문득 떠올라 코끝이 시 큰 해 옴을 느꼈다. 초대받은 날, 예약된 식당에서 사돈 내외분과 사위 딸 이렇게 만나 상견례 이후 두 번째로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나도 모르게 차츰 몸 태질이 나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덕담이 오고 가는 사이 불편하고 어색한 분위기는 눈 녹듯 사라지고 음식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할 무렵 바깥사돈이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어. 그래 승희냐? 지금 다 모였으니 얼른 와라.” 서울서 직장 다니는 사돈 아가씨가
방금 청주에 도착하였는데 주말이라 길이 막힌다는 연락 같았다. 딸아이가 결혼하기 전 사돈 아가씨가 내 이름과 똑같다는 걸 미리 알았었다. 사돈께서는 무심코 승희야 하고 부르셨지만 내 이름을 금방 알아차리고 미안해할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하였다. 주위를 살펴보니 다른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고 당사자인 나만 쩔쩔맨 채 내색도 못 하고 얼굴만 달라 올라 아래 입술만 쿡쿡 깨물고 있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기고 지글지글 갈빗살이 구수하게 익어 가고 부딪치는 술잔 소리에 식사 시간이 무르익어 갔다. 잠시 후, 드디어 사돈 아가씨가 등장하였다. 반갑다는 목례의 인사를 나누고 난 후, 서로 권하면서 다시 식사하는데 열중하기 시작 했다. 이번에는 사돈께서 식탁 반대편 쪽으로 떨어져 앉아 있는 사돈 아가씨에게 더 큰 목소리로 “승희야~ 배고플 텐데 많이 먹어라. 적으면 더 시켜서 실컷 먹어라~“
조금 전에 사돈이 통화할 때는 못 들어서 가만히 있던 남편이 화들짝 놀라서 한마디 했다.
“아니. 사돈^^ 승희 는 집사람 이름인 데요.”
이 말에 소스라치게 당황한 사돈은 “ 아 참 그렇지요! 미쳐 생각을 못해서 실수했습니다.”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나를 힐끔 바라보는 사돈 때문에 한동안 박장대소 웃음바다가 되었다. 사돈 관계는 먼 친척이 아닌 자녀의 혼인으로 맺은 특별하고도 소중한 인연이다.
그렇게 귀한 인연 속엔 무언의 저울질이 있고 새 정도 생기지만 딸아이를 시집보낸 어미 입장으로선 늘 꿀리고 위축되는 심정은 숨길 수가 없다. 그래서, 그 아이가 시집살이를 슬기롭게 잘 견뎌내고 인정을 받을 때, 비소서 떳떳한 마음이 되고 대리만족을 느끼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 일이 있고 나서도 딸 내외가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사위가 여동생 얘기하느라 곧잘 내 이름이 나오곤 한다. 사위 입에서 장모이름이 스스럼없이 나올 때면 거북스럽더니 이젠 만성이 되어 속으로 빙그레 웃는다. 여자는 출가하여 나이가 듦에 으레 이름이 희미해져 가는데 아무나 사위한테 이름 불려 보는 건 아니니 말이다.
이렇게 나와 이름이 같아서 오묘한 인연이 두 번 겹친 사돈 아가씨는 딸아이의 수호천사 같은 시누이다. 고부간의 갈등, 시누와 올케 사이의 갈등, 등 우리 주변에는 쉽게 풀리지 않은 사연과 수수께끼들을 끌어안고 숙명처럼 살아간다. 흔히,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라든가, 날씨마저 우중충하면 골난 시누 같다, 등 시누이들을 빗대어 하는 말이 있다. 사실 시누이 처지에서 보면 오빠나 남자 동기간의 정을 한순간 빼앗겼다는 억울함에 심통을 부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므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안목으로 지혜로움을 발휘한다면 이 세상은 좀 더 편안해지지 않을까. 돌고 도는 게 인생이라서 누구나 분명히 시누이였다가 올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먼발치에서 딸을 둔 어미의 마음에서 보아온 사돈 아가씨는 어느 것 하나 나무랄 것 없이 마음 씀씀이가 훌륭한 규수 감이다. 그래서 종종 딸아이와 비교도 하게 되고 저절로 정이 간다.
재롱둥이 두 녀석의 조카들을 예뻐해 주고 챙기는 건 기본이고, 고민 거리나 사소한 일까지도 올케(딸아이)에게 의논을 한다. 안사돈은 사돈 아가씨의 사생활에 대해 궁금한 일이 있을 적마다 며느리에게 물어본단다. 혼자 커서 단점이 많을 올케인데도 사돈 아가씨는 늘 가까이 다가와 친절을 베풀며 자매처럼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이 늘 고맙고 예쁘다. 사돈 아가씨와 딸 사이가 미움의 골이 깊거나 늘 삐 그 덕 거린다면 그깟 이름이 나와 같다는 의미가 뭐 그리 대단하랴.
박꽃처럼 환하고 순박한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소견이 넓은 사돈 아가씨는 요리 육아 살림 솜씨까지 척척 해내서 서툰 게 없다는 딸아이의 시누이 자랑은 끝이 없다. 지난여름 백마 탄 배우자감이 나타나 혼담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사돈 아가씨의 영원한 행복과 사랑이 가득한 가정이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
세상은 한 손으로는 손뼉을 칠 수 없는 거와 같이, 서로 마음이 일치해야만 갈등도 미움도 생기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나를 미끼로 던져 우주를 낚아 올리듯 딸아이도 사돈 아가씨도 한 가정의 온화한 등불이 되기를 염원해 본다.
그리하여, 옛 속담과는 다르게 여전히 위대한 사돈 관계로 유지되었으면 한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양가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식으로 자주 자리를 함께하는 일이 변함없기를 바램 해 본다.
마음이 잘 통하는 오랜 벗처럼.
첫댓글 세상은 한 손으로는 손뼉을 칠 수 없는 거와 같이, 서로 마음이 일치해야만 갈등도 미움도 생기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나를 미끼로 던져 우주를 낚아 올리듯 딸아이도 사돈 아가씨도 한 가정의 온화한 등불이 되기를 염원해 본다.
"사돈댁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 옛말이지요.
사돈댁은 자식들에겐 조심스러우면서도 든든한 응원군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양가집의 화목이 느껴지는 정다운 글 감상 잘 하였습니다. 선생님 행복하세요...
"세상은 한 손으로는 손뼉을 칠 수 없는 거와 같이, 서로 마음이 일치해야만 갈등도 미움도 생기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나를 미끼로 던져 우주를 낚아 올리듯 딸아이도 사돈 아가씨도 한 가정의 온화한 등불이 되기를 염원해 본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승희선생님! 선생님 글은 팬중에 한사람입니다. 사위를 맞으신 분 같이 않게 너무 곱습니다. 참 재밌네요 저역시도 너무나 동감하는 내용인지라 감동받았습니다. 선생님 화잇팅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