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09)
2009-02-23 14:14:40
232차 청계산 산행기
1. 일시 : 2009. 2. 22(일)
2. 참가 : 덕영(대장), 문수, 경림, 민영, 길래, 해정, 광용, 병욱, 상국, 인섭(10명)
3. 코스 : 옛골 - 이수봉 - 석기봉 - 혈읍재 - 매봉 - 옛골
30산우회, 많이 쎄졌다. 231차 산행은 비행기를 타고 1박 2일로 제주도를 다녀오다니...
친구들이 제주도를 재주넘고 있을 때 호주머니가 비어 제주도에 못 간 나는 광용이 꾐에 빠져 애꿎은 남한산성만 디귿잔지 리을잔지 쌔빠지게 돌았었다.
232차는 청계산이라는데, 산우회 게시판을 보니 <준비물 : 행동식, 아이젠, 방한복>
‘어쭈, 이게 뭐냐? 회비가 없다!’ 정기산행 게시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대장이 세상만사 천하태평 덕영이다. 일마 이거는 요새 춤추러 다닌다꼬 정신이 없어 보이더니, 춤을 열심히 추니까 3개월만에 허리가 2인치나 줄었다고 산에서 휴식취할 때마다 맨날 흘러내리는 바지를 추스르느라 그러는지 뭘 주물럭대느라 그러는지는 몰라도 하여간 한 손은 아예 바지춤에 쑥 들어가 있지 않으면 아예 허리띠를 끌러 언제라도 바지를 내릴(?) 준비를 하는 요상한 폼이라, 모르는 아줌씨들이 보면 성도착증 환자가 틀림없다며 의심받을만하다.
허리가 주는 것 하고 돈이 많은 것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참가 대원들에게 회비를 안 받겠다는 의도를 파악한 나는 “아싸!”를 부르짖으며 참가 신청을 했다.
그걸 보고 날파리(?)들이 들끓었다. 블러그에 참가 신청 안하고 온 광용이나 길래 해정이는 졸지에 날파리가 되었다. 크크.
옛골에서 인섭이를 만난다. 인섭이는 대학원 동기들과 친목차 청계산을 타는 모양인데 나중에 우리와 뒷풀이에 합류하기로 했다. 면면을 보아하니 인섭이 빠른 걸음에, 급한 성격에 그네들 보조 맞춰주려면 욕 꽤나 보겠다는 생각이 들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만나서 하는 이야기. “아 참... 땀도 안 나고 이 사람들이 실실 오르다가 쉬고, 좀 가다가 또 쉬자카고... 산도 제대로 못 타고 시간만 보냈네. 쩝쩝. 동동주나 묵자.”
옛골에서 9시 20분 산행을 시작해서 뒷풀이 장소에 앉은 것이 오후 1시 20분경.
다 아는 코스, 산행기도 뭐 별 것 있겠냐? 그냥 날파리 세 마리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하자.
날파리 하나, 길래는 특유의 포즈, 뒷짐을 지고 설래설래 발이 땅에 닿는지 마는지 신선처럼 쉽게 앞서가면서, 연방 “이거 뭐 땀도 안 나네?”
날파리 둘, 해정이는 그 긴 학다리로 성큼성큼 앞서가더니 모르는 아줌마에게 “아줌마 억수로 잘 가네요?” 하고 싱겁게 말을 건다. 나중에 매봉에서 내려가는 길, 또 다른 아줌마 혼자 내려오는 걸 보더니 “아줌마, 어데로 내려가요?” 말을 붙이더라.
키 큰 놈 치고 안 싱거운 놈 없다던 옛말, 하나도 그른 게 없다.
옆에서 보던 민영이, 놀란 눈으로 “야, 니는 모르는 아줌씨들한테 말도 반말 비스무리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어데 가요 그라네? 철판이 두껍나? 가만... 니... 선수제?”
“아니, 아무 흑심 없으면 말이 쉽게 나오는 기라. 민영이 니, 말 안 나온다는 건 니가 흑심 품었겠지.”
날파리 셋, 이 놈은 이쁜 아지매를 봤는지 한눈팔고 가다가, 큰 나무둥걸에 대가리를 쾅! 박았다. 앞서가던 우리들은 ‘어디서 날벼락이 떨어졌나?’하고 뒤돌아보았더니 벼락 떨어졌을만한 곳에 대가리를 아래위로 감싸쥐고는 이빨까지 흔들린다며 울상을 짓는 어디서 많이 보던 놈이 서 있다. 광용이다. 가발을 썼기에 망정이지 맨대가리로 왔었다면 119에 실려갈 뻔 했다.
잘못해 대가리를 박은 놈은 그래도 덜 억울하지, 청계산에 뿌리 내리고 처음으로 일진이 사나웠던지 모진 놈 만나 가만히 서 있다가 졸지에 습격을 받은 죄없는 나무는... 꽝! 하는 소리에 걸맞게 엄청난 충격에 몸을 부르르 떨며 마지막 남은 이파리까지 떨구고는 눈물 흘리는 나무 심정은 어떻겠냐구?
이상 날파리 셋을 관찰한 결과 내리는 결론,
날파리는 평소 땀도 잘 안 나는데 엄청 빠르다. 그리고 다리가 긴 날파리는 흑심을 품진 않으나 싱겁기 그지없다. 그리고 또 날파리는 한눈을 잘 팔고 대머리에, 대가리는 아주 야물다.
이수봉을 거쳐 헬기장에서 자리를 펴고 간식을 먹었다. 역시 움직이는 냉장고 병욱이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집에서 쪄온 찐만두가 아직 온기가 남았다. 재빨리 두어 개씩 확보를 하면서, 30산우회 확보 대장 인섭이 얘기를 꺼낸다. 인섭이 귀가 좀 간지러웠을끼다.
병욱이 말을 들어보면 우리 모두 머리가 헷갈린다.
언젠가 관악산에서 효용이가 따라주던 코코아를 먹고 맛있어 죽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맨날 찾는 게, “그 머꼬? 전에 효용이가 가져온 시커멓고 달달한 거.”라고 해서 우리 모두 배를 잡아쥐게 하더니만 콩팥 하나 떼버리고 나니 더 헷갈린다. 지가 떼낸 게 콩인지 팥인지 구별을 못하는 증상이 아닐까?
지난 번 산에 갔다가 뒷풀이 할 때 호프집에서 비싼 생맥주를 마셨다는데 자기 말로는 생맥주에 뭘 탔었다는데...
그 자리에 없었던 나에게 뜬금없이 “그 머꼬?” 되풀이한다.
“그 머꼬... 생맥주에 노랗고 시큼한 거를 탔던데. 그 머꼬?”
“비타민?”
“아니 그 말고... 노란 거 있잖아. 묵으몬 신거 있잖아...”
“레몬?
“아 맞다. 레몬! 레몬.... 야... 니는 안 보고도 우찌 그리 잘 아노?”
친구들은 둘이서 선문답하는 것도 아니고 이상하게 묻고 답하는 저런 놈들이 친구인 게 한심해진 것도 있고, 제주도에서 가져온 술 세병, 아까부터 배낭에 넣어오면서 무겁다고 자꾸 다 묵고 가자던 경림이를 생각해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뒷풀이 자리, 요즘 세간에 떠도는 재벌가의 이혼 이야기에 잠시 갑론을박하다가 돈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면 길래가 걸레가 될 지도 모른다고 놀리고, 지난 제주도 산행 사진에 갑자기 나타난 진홍이 얼굴에 깜짝 놀라 그 연유를 듣다보니 진홍이는 누구랑 한몸이 아닐까? 하며 많이들 웃었다.
회비 안내는 산행인줄 알고 따라왔다가 회비는 회비대로 내고, 이수봉이 사람 이름인줄 알았다는, 이름만 대장인 덕영이 옆에 앉았다가 졸지에 산행기 쓰라는 지명까지 받고, 문수한테 끌려간 양재동 당구장에서 무참히 깨지고 게임비까지 덤탱이 써버렸네. 그래도 집에서 굴러다닌 것보다는 잘 보낸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