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31.
사성암 운해
가시거리는 100m를 넘지 못한다. 자동차는 안개등을 켜고 시속 30km 이하의 속도로 느리게 달린다. 구례읍을 지나 문척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더욱 짙어진다. 큰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에서는 밤새 차가운 기운이 가라앉았다가 큰 강 섬진에서 맑은 날 새벽에 피어오르는 증기안개 때문이다. 최근 들어 12℃ 이상의 큰 일교차로 복사 안개를 생성했을 수도 있다.
가슴이 쿵쾅거린다. 내 이럴 줄 알고 있었다. 문척면 죽마리에서 사성암 오르막길을 5분도 채 안 되어 맑고 쾌청한 하늘이 펼쳐진다. 사성암에서 보게 될 운해(雲海)를 생각하니 가슴이 뛰어 액셀러레이터 밟는 발바닥의 힘이 조절되지 않는다. 운전이 거칠어진다. 굽어진 길을 돌다 언 듯 바라본 구름바다는 흥분에 흥분을 곱한다.
온 천지가 운해다. 오산 정상으로 향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산동면에서 시작하여 광의, 마산, 토지면까지 이어지는 지리산 노고단 아랫동네의 운해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더하여 섬진강 건너 오산 아래쪽 문척과 간전면의 골짜기까지 합쳐진 운해는 눈으로 본 사람이 아니면 이야기해 줘도 소귀에 경 읽기나 마찬가지다. 구례의 7할이 새하얀 융단 아래 깔렸으니 가히 가관이랄 수밖에 없다. 울퉁불퉁. 파도가 겹치고 어우러진 모양새가 오늘따라 더욱 기묘하다.
흥분을 추스를 수가 없다. 도선굴과 소원 바위를 지나 계단을 내릴 때도 시선은 자꾸만 운해에 꽂힌다. “제발 좀 천천히.” 자칫 헛디뎌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 낭패가 된다. 호사다마(好事多魔)! 그렇다. 이런 좋은 일에는 예상치 못한 액이 끼는 경우가 허다함을 안다. 차분히 가라앉힌 마음으로 만족함을 되뇐다.
유리광전으로 발길을 잡는다. 사성암은 연기조사가 544년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암벽에 약사여래 부처님이 선각되어 있다. 선을 따라 개금불사하여 우아하며 쳐다만 봐도 하나의 소원은 들어주실법하다. 원효, 도선, 진각, 의상 등 네 명의 성인이 수도했다 하여 사성암이라 부른다고 알려져 있다.
선경이다. 유리광전에서 내려다보는 운해는 둥주리봉 아래 골짜기마다 스며든 모양새가 아름답다 못해 신비하다. 멀리 섬진강 건너편 봉두산과 별봉산 자락의 봉우리들만 솟아올랐다. 등 뒤에서 때늦은 해가 솟는다. 그림자 진 깊은 곳은 더욱 짙어지고 붉으락푸르락하는 안개가 산 아래로 깊이 추락한다. 출렁인다. 저만치에 구례구역이 있을 테고 저쯤엔 섬진강 벚꽃길이 있을 때다. 저기엔 십리대숲일 텐데 모두가 하얗다. 사성암 운해의 3할은 유리광전 편액 아래에 서면 볼 수 있다.
가을날 노랗고 붉은 단풍과 사성암 운해를 함께 볼 수 있는 아침을 선물하고 싶다. 이 격한 흥분을 함께 나눌 지인을 기다린다.
첫댓글 글을 읽어가는데 바뿌다
차보다 내가 더 속도을 내고
내가 다 흥분이 된다
에잇 직접 눈으로 봐야하는데ᆢ
와야찌. 봐야지요.
언제 올래? 일교차가 심한날 와야 되는데... 이건 정말 장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