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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 강화(16)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행하실 심판 : 양과 염소를 갈라놓듯이 하실 것임
마태복음 25장 31-33절/ 31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33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예수님은 종말론 강화를 통해서 인자의 오실 날과 관련하여서 여러 가르침을 주었었습니다. 인자의 오실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아시는데 이 날과 관련해서 세상은 종말적 상태에 놓여 있음으로 인하여 있는 일과 인자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때에 오심을 통해서 하실 일, 그리고 인자가 주인이신 천국이 인자가 오실 날까지 하고 있는 일을 각각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종말론 강화의 결론 부분에 이르러 이곳에서는 그 모든 일이 있어 오며, 그래서 마침내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셔서 하실 일을 말씀해 주십니다.
인자가 이처럼 하시는 것은, 다시 말해서 마침내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시는 것은 심판을 행하시기 위하여서입니다. 인자는 천국에 데려갈 자와 천국 밖의 어두운 곳으로 내쫓아 버릴 자를 각각 드러내심에 따라서 모든 민족을 자신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갈라 놓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심으로써 심판을 행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세상을 심판하기 위하여 다시 오실 자신에 대하여 말씀하시길 ‘인자’(the Son of Man)라고 호칭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자신을 인자라고 호칭한 것은 이번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라고 종종 호칭하셨습니다. 인자란 말 그 자체는 단순히 ‘사람’(man)을 의미한다. 그런데 예수께서 자신을 ‘인자’라고 호칭하셨을 때의 그 인자는 ‘the Son of Man', 그러니까 ‘그 사람의 아들’로 언급하고 있어서 인자가 단순히 ‘사람의 아들’(son of man)인 ‘사람’(man)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어떤 특정한 분이심을 염두에 두고서 사용하시고 있습니다. 가장 적합한 해석은 다니엘 7장 13-14절의 ‘인자 같은 이’가 오실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을 취하여 자신을 그 인물과 동일시하심으로써 예수 자신이 영원히 살아 계시는 하나님 앞으로 인도되어 그분에게서 권세를 받은 존귀하신 분으로써 영원히 쇠하지 않는 나라와 민족을 다스릴 권세를 받으신 분이심을 계시해 주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주가 되신 분으로서 사람으로서 그의 높으신 메시야직을 여호와의 고난 받는 종으로 수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인자되심은 구약의 메시야 예언에 의한 소망이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진행되어감에 따라 여호와의 고난 받는 종의 낮아지심에서 확연해집니다. 이런 까닭에 예수께서 종말론 강화의 결론을 말씀하시는 것에서 자신의 재림에 대하여 자신에 대한 호칭을 ‘인자’라고 말씀하신 것은 적절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예언된 인자로 오셔서 그에게 주어진 심판을 행하십니다. 이때 그 광경을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모든 민족을 분별하여 갈라 놓음으로써 서로를 구분 지을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예수께서 모든 민족의 사람을 분별하는데 양들을 분별하여서 좋은 양과 그렇지 못한 나쁜 양을 갈라놓아서 따로이 세워 놓듯이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양과 염소를 분별하듯이 하여서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각각 둔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 신자를 좋은 믿음의 신자, 나쁜 믿음의 신자, 이렇게 분별하여서 따로이 구분 짓고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의 조치를 취하는 그런 심판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통해서 천국이 세상에 침투해 들어옴으로써 주의 나라에서 주님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어 즐길 자와 주의 나라 밖의 어두움의 세계에로 쫓겨나 슬픔으로 가슴을 치며 영원히 통곡할 자로 그들의 실체의 모습을 드러냄에 따라서 마침내 그들을 분별하여서 자신의 오른편에 서게 하고 또한 왼편에 서게 하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인자가 하실 일을 하게 되는 심판은 이처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듯이 하여서 각각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세워두시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모든 사람은 그들이 각각 양으로, 그리고 염소로 있어온 데 따라서 그것에 합당한 분별을 짓는 것인 악한 자는 사망의 부활을 하는 것이며, 의로운 자는 생명의 부활을 하는 것입니다.
양과 염소, 이 서로 다른 존재가 다 같이 한 곳인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양이 들어갈 장소가 정해져 있어 왔고 또한 염소가 들어갈 장소가 정해져 준비되어 왔었습니다. 그에 따라서 양이 들어갈 장소에 양이 들어가는 것이며, 염소가 들어갈 장소에 염소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각각 자신들이 들어갈 장소가 처음부터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곳에 각각 들어갈 합당한 자로 예수님을 통해서 양을 길러오는 일을 하셨으며 또한 염소를 길러오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양과 염소를 자기 앞에 모으고 그들을 분별하여 따로이 세우는 목자로 비유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민족을 모으고 그들을 분별하여 영생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갈 자와 영멸의 나라인 지옥에 들어갈 자를 길러오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에 따라서 양이 들어갈 영생의 나라인 천국에 염소가 따라 들어가지 못하며, 염소가 들어갈 나라인 지옥에 양이 휩쓸려 섞여서 들어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모든 민족은 처음부터 영생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갈 자와 영멸의 나라인 지옥에 들어갈 자로 각각 구분된 존재로 있어오는 것이며, 그에 따라서 그들에게 합당한 나라에로 각각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34절과 41절에서 각각 말씀하시기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라고 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16절에서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라고 말씀하셨으며, 그래서 18절, 21절에서는 “세상에 속한 자”가 되지 않고 “내게 속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2절에서는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성경의 예언대로 멸망의 자식 외에는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게 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 곧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보내신 자들은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게 그들과 함께 하시며 안전하게 보호하였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2절에서는 예수님은 아버지 안에 자신이 있고 자신 안에 아버지께서 게신 것 같이, 그래서 본래 아버지와 자신이 하나이듯이,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자들이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서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에게도 주었다고 말씀합니다.
그에 따라서 말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으로 그분 앞에 집합하여 서게 될 모든 민족은 그들에게 지워진 각각의 운명에 따라서 살아온 대로 각각 자신들이 서게 될 위치에 있으며 그 자리에 서 있게 됩니다. 양의 운명이든, 염소의 운명이든 그들의 실체는 그들 자신에 의해서 결정되고 그들이 어떻게 살겠다는 생각에 의해서 그들의 운명이 바뀌면서 달라져 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택정하심을 따라서 양과 염소로 결정되었으며, 그러한 자신의 실체된 모습을 드러내어 왔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일을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에 의한 ‘그리스도의 의’를 가지고 하셨으며, 이 의가 양에게서는 천국의 의로 힘께 하며 염소에게는 지옥의 저주로 함께 합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드신 양과 염소의 비유와 똑같은 성격으로 드신 비유가 있습니다. ‘좋은 씨와 가라지 비유’가 그것입니다.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 13:38-43)
여기에 보면, ‘좋은 씨’와 ‘가라지’로 비유되는 천국의 아들들과 악한 자의 아들들은 전혀 서로 다른 것으로서 처음부터 분별이 되고 그래서 또한 구분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좋은 씨이며 처음부터 가라지입니다. 이 둘은 추숫군이 각각 거두어서 가라지는 불살라버리고 좋은 씨에 의해서 결실된 알곡의 열매는 곳간에 저장이 됩니다. 그와 같이 세상 끝 날도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말인가요? 세상 끝날이 오면 ‘좋은 씨와 가라지 비유’로 비유되고 있는 것에서 가라지를 따로 뽑아 묶어서 불 살라버리듯이 인자가 그의 천사들을 보내 악한 자의 아들들을 추려 내어서 불구덩이 속에 던져 넣을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산 천국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이렇게 천국의 아들들인 좋은 씨와 악한 자의 아들들인 가라지는 각각 그 정체를 그대로 지니고서 세상 끝날이 오기까지 존재하며 그들이 각각 천국의 아들들인 좋은 씨와 악한 자의 아들들인 가라지로 존재하는 결정에 따른 운명이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영원히 갑니다. 그래서 좋은 씨와 가라지의 정체를 띤 실체로 그 모습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며, 천국과 지옥에서 그들이 좋은 씨와 가라지로 있는 운명이 영원히 가는 것입니다.
양과 염소를 가지고 비유를 들었거나 또는 좋은 씨와 가라지를 가지고 비유를 들었거나 이 모두의 비유에서 공통된 사실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곧 인자가 오시는 날인 세상 끝날에는 예수께서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를 거느리고 와서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으시고는 모든 민족을 자신 앞에 불러 모으시고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듯이 모든 사람들을 분별하여서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듯이 사람들을 각각 그렇게 갈라 놓을 것이며, 왼편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라고 심판을 행하실 것이며 또한 “그 때에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라고 말씀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심판을 행하심에 아무도 항변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양과 염소로 비유되고 있는 천국의 아들들과 악한 자의 아들들이 행해온 행위에 의해서 천국과 지옥이 그들에게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에서 나타내신 ‘그리스도의 의’를 가지고 이 일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의를 죄값으로 인하여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양에게 덧입히시기 위하여 그들을 대신해서 속죄의 죽음을 당하셨으며, 그래서 이 의를 덧입는 자에게는 다시는 정죄받지 못하게 그들을 위하여 변호해 주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의가 거부되고 배척되는 염소에게는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당하시기까지 흘리신 피 값을 그들의 생명에게서 찾으십니다. 이 생명에 이르게 하고 또한 죽음에 이르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의가 발휘하는 능력에 모든 사람은 복종하게 됩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바울은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능력이 죄와 죽음이 악순환하는 고리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으므로 다시는 정죄받는 일이 결코 없다는 것을 말하면서(롬 8:1-2), 이런 놀라운 은혜를 입은 우리를 대적하며,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하늘의 천사들도 지옥의 모든 세력도 그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기에 오늘에 대한 우리의 염려도 내일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과 공포도 또는 하늘 높이 올라가거나 바다 깊은 곳에 들어가거나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우리 주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실 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롬 8:31, 38-39).
이러하기에 예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제자들에게 그들이 의를 인하여 고난을 받으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였습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을 소유하고 있기에 고난 속에서 천국의 복을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을 소유하지 못한 자는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그것이 재물이면 재물로 명예이면 명예로 권세이면 권세로 그 어떤 것으로서의 부귀이든지 간에 그것으로 고통을 당할 때 즐길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천국을 소유한 자는 이것을 인하여 재물이든 명예이든 권세이든 그 모든 것을 다 빼앗기며 낙망에 빠지고 또한 박해의 현실을 당해도 이것에서 기쁨을 가지며 즐거워하는 가치를 보지를 않고 천국이 발휘하는 능력에 사로잡혀 있어 그 천국을 즐깁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가 실현이 되며,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희락과 화평이다”는 것이 실감 있게 진행됩니다. 인자가 오시는 날인 세상 끝날에까지 말입니다. 예수님의 오른편에 있는 자들일 우리들에게서 보게 되는 모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