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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동의
김 동 리
황혼이 될 때까지 소녀들은 마을 어귀에 서 있었다―(장익)
장익(張翊)이 그동안 교편을 잡고 있던 G여대에 사표를 냈을 때는, 문아당(文雅堂)이라는 출판사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리만치 이미 모든 주선은 끝나 있었다. 늘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듯한 깊숙한 두 눈 위에 길고 느긋한 눈썹하며, 희고 높은 이마하며, 누가 보던지 일견에 학문이나 예술 하는 사람이란 인상쯤 가지게 되어 있었으나, 그의 성격에는 또 그러한 예술과는 동뜬 현실에 대한 관심과 타산도 자못 질기고 치밀한 바 없지 않아―이것은 아마 어느 관상쟁이 말마따나 그의 둥그런 관골¹과 두툼한 입술의 소치인지도 몰랐다―남들이 항용 그를 가리켜 문인이 돼서 살림을 모른다 하고 걱정해줄 때마다, 자기의 그렇기만도 하지 않은 일면을 모르는 그들이 도리어 너무 단순한 것만 같아서 맘속으로 은근히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흥, 내가 얼마나 상식적이고 타산적이라고 그래.’
그는 혼자 속으로 이렇게 코웃음을 치고 싶으리만치 공연히 든든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 해방 후 이렇게도 격동하는 현실 속에서 신문사로 학교로 또 출판사로 계속해서 꾸준히 직장을 가져왔으며 부지런히 원고도 써온 것이 아닌가. 가난과 타산은 별도다. 아무리 현실에 신경을 쓰고 타산에 무심찮다 하더라도 월급과 원고료로써 역시 가난하다면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수입은 학교가 낫지 않을까?”
하고, 그가 이번에 출판사로 전직한다는 말을 들은 그의 아내가 이렇게 물었을 때에도
“월급보다도 원고료 수입이 나을 테니까.”
하고, 전직의 이유가 전혀 수입 문제에 있는 것처럼 대답함으로써, 밖에 떠도는 말썽에 대하여 슬그머니 연막을 쳐두는 셈이었고, 그러니까 그는 매사에 이와 같이 치밀하고 단순치 않다는 자부심을 또 한번 깨닫게 되는 것이기도 하였다.
이임(離任) 인사를 하려고 3학년 B클래스에 들어온 그는 교단에 올라선 채 한참 동안 묵묵히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그냥 훌쩍 지나가는 인사말이나 하고 내려와버리기가 싫었던 것이다.
‘무슨 말부터 먼저 할까?’
흥분이 치밀수록 그의 머릿속은 자꾸 더 몽홍해져갈 뿐이었다.
“나 이번에 건강이 좋지 못해서 학교를 쉬게 됐습니다.”
그의 입에서는 결론인지 허둔지도 알 수 없는 이런 말이 불쑥 나와버렸다. 그와 동시 그의 시선은 바른손 쪽으로 한 번 번쩍했다. 앞에서 넷째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은 이지애(李知愛)는 턱 끝이 책상 위에 닿으리만치 허리를 꼬부린 채 그 선연한 두 눈으로 익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순간 그의 등골엔 난데없는 슬픔이 구불텅하며 지나갔다.
“나는 본래 교육자이기보다 문인이었으니까 집에서 글이나 쓰고 있었어야 했을 터인데 글 쓰는 것만으로는 생활이 안 돼서 할 수없이 학교로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동기부터가 썩 좋지는 못했던 거지요. 따라서 내가 교편을 잡아온 그동안 한 사람의 교육자로서 볼 때 여러 가지 미급하고 부족한 점이 많았을 줄 생각합니다.”
이까지 말하는 동안 그는 앞으로 이 말을 어떻게 끝맺을 것인가 하는 것도 생각하며 있었다. 여기서 그가 교육자로서의 자격이 부족했다는 의미만을 강조한다면 학생들의 오해를 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지금까지 이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생의 한 사람으로 모든 학생의 존경과 흠모를 아낌없이 받아온 터라 지금 학교를 떠나는 이 자리에서 새삼스레 ‘교육자로서의 자격 부족’만을 운운함은 무슨 곡절이 있다, 즉 글만 가르치는 것이 교육자가 아니라 모든 행동에 있어 사표(師表)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는 어떤가. 여기서 학생들은 지애와 그의 관계를 과장적으로 상상하여 그의 이임의 원인은 실상, 여기 있다고, 이렇게들 보게 된다면, 학생들에게 이렇게 보여져서는 물론 익도 익이지만 지애에게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처음에 입을 떼기도 ‘건강’ 때문이라고 벌써 해두지 않았나.
“이와 같이 문인이 교육자를 겸한 데 무리가 있었던 모양입다. 처음부터 그것이 무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까도 말한 거와 같이 생활을 위하여 하는 수 없이 나왔던 것입니다. 지금 새삼스레 그 무리를 깨닫게 되어 학교를 쉰다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내 건강이 그 무리를 더 밀고 나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뿐입니다.”
사흘째 되던 날 저녁때 익이 ‘향원('郎園)’에 있으니 지애가 찾아왔다. 익이 지애를 데리고 두어 번 온 적이 있는, 익에게 있어서는 단골 다방이었다.
“어떻게 알고 왔어?”
“어저께도 그저께도 들렀어요…… 선생님 안 계셔서 그냥 돌아갔어요.”
“어저껜 다른 데서 저녁을 먹었어.”
“네에……”
하며, 지애는 약간 입을 벌린 채 익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렇게 지애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으면 익은 이내 이것은 꿈이다, 현실이 아니다, 하는 종류의 어떤 착각에 잠겨버리곤 하였다. 그만치 지애가 정면으로 그를 바라볼 때의 아름다움은, 그에게 있어 무슨 마약과도 같았다. 그 유달리 희고 깨끗한 얼굴에 빛나는 두 눈이 그랬다. 그 두 눈에 두렷이 물려 있는 큼직한 윤이 흐르는 새카만 동자가 그랬다.
꿈인지 현실인지를 이제 한번 분별하려는 듯이 익도 그 깊숙하게 빛나는 두 눈을 대담스레 부릅뜬 채 지애의 두 눈 속에 시선을 쏟았다.
한 십 초 동안 말이 없었다.
“어저께도 혼자서?”
“옥순이하고 둘이 왔어요…… 왜, 저 혼자 오면 안 돼요?”
“……”
익은 말없이 곁에 놓인 상록수 위에다 시선을 돌렸다. 지애도 더 그것을 추궁하려 하지는 않았다.
카운터 쪽의 전축(電蓄)에서는 고요한 실내악이 흘러나왔다.
익이 이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지애는 건너편 벽에 붙은 베토벤의 ‘데스마스크’에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은 아무래도 끝장을 내야지.’
익은 일어났다.
두 사람만이 조용히 이야기할 수 있는 중국집을 찾아갔다. 익의 생각으로는 지애도 이미 약혼을 정한 터요 자기도 이제 학교를 그만두었으니 이것으로 두 사람이 따로 만나는 일은 어떻게 끝장을 내었으면 했던 것이다.
“혼자 오면 안 되느냐고 아까 지애가 물었지?”
“네, 물었어요.”
“지금 내가 그걸 대답하려고 그래.”
“……”
지애는 말없이, 그 두 눈 한가운데 두렷이 물려 있는 윤이 흐르는 새카만 동자로 익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지에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어…… 우리는 언젠가 한번은 헤어지고 만다고, 그리고 또 우리는 서로 알지 못한 것만 같지 못하다고…….”
익의 음성에는 지애에 대한 원망이 품어져 있었다.
“그래서 , 헤어지자 이 말씀이세요?”
지애의 음성에도 약간 성이 나 있었다.
“그럼 지애가 ‘언젠가 한번’이라고 한 그 ‘언젠가’는 어떤 기횔까?”
“선생님이 싫으실 때죠. 선생님이 바빠서 저 같은 거 만나서 말씀해주실 시간이 없으실 때죠.”
“그런 거는 얼마나 계속할 수 있을까?”
“어떤 거요? 제가 선생님 찾아뵙는 거 말씀예요?”
“……”
익은 고개질로 그렇다는 뜻을 표했다. 그러자 지애는 그 희고 가직한² 이를 보이며 한 번 생긋 웃고 나서
“저 죽을 때까지.”
했다.
익은 냉정한 태도를 지으며,
“결혼해도?”
하고 추궁했다.
“저 결혼 안 해요.”
지애는 그렇게 묻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한 또렷한 목소리로 이내 이렇게 대답했다. 여기서 익은 갑자기 행복의 흥수 속에 혼곤히 잠기는 듯했다. 다음 순간 그는 정신을 가다듬어
“왜?”
하고, 또다시 추궁했다.
“그 이유는 절로 아시게 될 거 예요.”
“일시적 기분 아닌가?”
“두고 보시면 알죠.”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어?”
“어저께…… 아니 오늘부터요.”
여기서 익은 또 무엇을 한참 동안 생각하고 나서,
“약혼한 건 어떡하고?”
“말했어요, 그만두기로.”
“그건 또 언제?”
익은 또 한번 놀란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그건, 어저께.”
‘왜?’
하고, 익은 더 추궁해서 물으려다, 그것은 으레 자기(익) 때문이리라는 예상이 머릿속에 있어, 그것을 머릿속에 넣은 채 묻는다는 것은 떳떳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말머리를 돌렸다.
“상대자는 뭐라고 그래?”
“좋도록 하라고, 그랬어요.”
“뭐, 법률하는 사람이랬지?”
“네. 금년에 첨으로 변호사 개업했어요.”
중국인이 우동을 날라왔다.
익은 젓가락을 집어 우동 그릇에 가져가며,
“그럼 결혼도 안 하고 평생 공부만 하려나?”
하고 물었다.
“평생 공부만 해서 뭐 박사님 되게요?”
“그럼?”
“제가 어쩌면 좋을는지 모르겠어요…… 제일 좋은 건…… 죽어버렸으면 좋겠어요.”
“흥!”
어쩐지 익은 코웃음이 쳐졌다. 우동도 반쯤 먹다 말고 젓가락을 놓아버렸다. 그는 지금 그가 어째서 코웃음을 치게 되었는지 그것을 생각했다. 우선은, 지애의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대한 부정이리라,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도 품어져 있었으리라 했다.
여기서 익은 자기가 선생 이란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살아서 어떠한 비극과 고초를 겪는다고 하더라도 죽고 없기보다는 나아.”
“싫어요, 전 죽는 게 제일 좋겠어요.”
“……”
익은 입을 다물어버렸다. 처음 어떻게 끝장을 내었으면 생각해 봤을 때도 익은 자기 자신에게 꼭 자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 이렇게 말하는 지애를 앞에 두고는 차라리 이대로 심장이 찢어질지언정……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자, 이제 일어나.”
익이 지애를 건너다보며 이렇게 말했을 때는 그의 마음속에 평소부터 운무(雲霧)같이 끼어 있던 상념(想念) 하나가 의지(意志)를 향해 굳어지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익이 오버를 벗으려는데, 뒤에 선 그의 아내가 그것을 벗겨주려고 그러는지 오버 소매에 손을 대었다. 그러나 익은 벗은 오버를 아내에게 주지 않고 이불 위에 던져버렸다. 자기 자신이 무언지 너무 야박하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그러면서 그의 아내가 친절을 베풀면 베풀수록 비위가 틀어지는 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아침으로 계집아이ㅡ부엌 일을 하는―를 시켜서나 혹은 그의 아내가 손수 그의 구두를 닦아주는 것까지도 늘 달갑지 않았다. 더구나 오늘밤과 같이 오버를 벗겨주려 하거나 곁에 서서 그것을 받아 걸려거나 할 때엔 바로 그 즉석에서 저쪽의 친절을 받느냐 물리치느냐 행동으로써 나타내어야 하게 되는 것이 못 견디게 그의 신경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상대자의 호의와 친절을 고맙거나 덤덤이가 아니라 무심히라도 받을 수 없는 경우 여기서 주저하거나 고려할 여지도 없이 그의 면전에서 그것을 거절함으로써, 그가 자신의 잔인하고 야박한 성미를 가차 없이 나타내지 아니치 못하게 되는―그러한 그의 아내의 호의와 친절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도 결혼 이래의 습관이라거나 근년에 와서라도 매일 하는 행습이라면 또 모르지만 이것은 으레 아침에 싸우고 나갔다 돌아오는 날 밤이라든지 전날 밤에 월급이나 원고료 봉투를 내놓은 이튿날, 혹은 그 며칠 동안이라든지 하는 그러한 빤한 까닭이 있는 데서 우러나는 친절과 호의라는 것이 한층 그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익은 그의 아내가 다른 여자들에 비겨서 특별히 ‘현금주의’라든지 속이 빤히 들여다뵈는 가면적 인 친절을 베푼다든지 그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었다. 본래 마음이 올바르고 허영심이 없는 경선(景善) ―그의 아내의 이름―은 그동안의 너무나 참혹한 살림살이에 찌들대로 찌들어 항용 처녀들이 꿈꾸는 ‘재미’라든지 ‘이상(理想)’이라든지 하는 것을 생각해볼 여지는 없었고, 따라서 시체³ 여성들에게 있어 마땅히 한 개 의무라고 생각되는 일상생활에 있어 남편에 대한 여러 가지 서비스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시체 남성들에게 있어 한 개 의무라고 생각되는 일상생활에 있어 그 아내에 대한 여러 가지 서비스에 익이 무심한 것만치나 무심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러나 여성에게 있어서는 그것(친절 따위)이 좀더 본능적인 점도 있는 것이어서 익으로부터 월급이나 원고료 봉투를 받든지 아침에 싸움을 하고 나간 날 밤이든지쯤 되면 이러한 평소에 잠들어 있던 본능적인 친절성이 눈을 떠서 시체 여성에게 있어 마땅히 한 개 의무라고 생각되는, 남편에 대한 몇 가지 서비스에 손을 대어보는―그 정도의 삶에 대한 성의와 긴장이 소생되는 것이라고쯤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는 익과 결혼한 지 팔 년이나 되는 동안 제법 나들이옷을 떨쳐입고 놀이란 것을 가본 적이 없었으리만치 언제나 어린것을 거두고 빨래를 하고 양말 뒤꿈치를 깁고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본래 소학 교원으로 있었던 경선은 나중 익이 수리조합 서기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을 때까지는 결혼을 한 뒤에도 두 해 동안이나 그들의 생계를 위하여 교원 노릇을 그대로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으로, 익은 그의 아내가 임신 팔 개월이나 된 큰 배를 안고 여름철에 땀을 쪼르르 흘리며, 그즈음, 학교에서 집으로 왔다 갔다 하던 것을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뒤 익이 수리조합 서기가 되었어도 얼마 되지 않는 월급으로 어린것을 데리고 살아가느라고 매일같이 누더기를 깁고 문구멍을 바르고 방바닥을 때우고 하면서, 그러나, 그 고생에 못 이겨 남편과 헤어질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다. 고생 할 마련이거니 했다.
그렇다고 해서 경선은 그러한 남편을 가지게 된 것이 자랑이나 다행이 된다거나 후회가 되지 않는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었다. 디른 남자와 결혼을 했더라면 이보다는 아무래도 나았을 게라는, 자기의 복분⁴은 분명히 이보다는 더 타고났으리라는 그러한 생각이 노상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이 결혼 직후부터 시작한 싸움질의 원인은 경선의 그러한 ‘후회’라든지 불행감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었다. 연애라고 할지 연분이라고 할지 경선의 오빠 정수(政洙)가 마침 서울 갔던 길에 그즈음 하숙에서 시(詩)니 수필이니 하는 것을 써서 하숙비를 벌기에 콧물을 싸고 있는 그의 옛날 중학 동창인 장익을 만나 함께 대전―정수네 고향―으로 내려와서 처음 경선에게 인사를 시켰을 때 경선은 :그때 이미 소학 교원 노릇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첨으로 남성을 대한 것 같은 가슴의 두근거림을 어찌할 수 없었으며 익 역시 경선이가 그 오빠인 정수와는 딴판으로 얼굴이며 어깨며 엉덩이께며 전적으로 너무 팡파짐하고 따분하다는 인상이긴 하였으나 며칠 두고 사귀는 동안 그 올바르고 착실한 마음씨에 은근한 호의와 또 그 이상의 것을 가졌던 터라 그뒤 정수의 알선으로 결혼한 그들이, 익도 익이지만 특히 경선이가 결혼한 직후부터 무슨 뼈아ㅍᅟᅳᆫ 후회와 불행만을 느꼈다거나 그러한 형편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성격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그들의 싸움질의 원인은 지극히 평범하고 하잘것없는 작은 일에서 시작되었다. 결혼한 지 달포가 되어서, 봄날 석양인데, 익이 그의 아내더러 함께 산보를 나가자고 한 것이, 경선으로 볼 때는 그곳이 자기의 고장이요 동시에 근무지이기도 하여 신혼한 남편과 산보를 다닌다는 것이 어쩐지 거북하고 남부끄럽게 생각이 들어 거절을 하자, 익은 속으로 내가 군청 관리나 학교 훈도⁵쯤만 되어도 그 부끄러움의 성질은 다를 테지, 네가 언젠가 여기 사람들은 면서기만 되어도 떠받치고 야단이라고 하던 말뜻도 나는 잊은 것이 아니다, 하고 고깝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럼 좋다, 너와는 평생 산보를 하지 않을 것이다―이것도 속으로만 혼자 결의하고 겉으로는 경선의 거절이 대수롭지도 않은 듯이
“해가 퍽 길군.”
하면서 자리에 슬그머니 누워버 렸던 것이다.
당시에 한글로 시를 좀 쓴다는 것이 남에게 사람 구실이 된다고 인정 될 리 없었지마는 시를 쓰는 쪽에서는 그와 반비례로 자존심이 도고⁶했고 또 젊은 객기도 있어, 익은 군청 관리나 학교 훈도쯤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군수나 교장도 그의 안중에는 있을 턱 없었다. 경선은 이러한 그의 남편이 못마땅했다. 같은 값이면 익이군 서기나 훈도쯤 되었으면 오죽 좋으랴 하는 생각은 절실하였고, 그러지 않아도 자기 남편이야 어디까지나 자기 남편이요 또 자기가 좋아할 수 있는 남편이기도 하지만 그렇지만…… 자격이 없거든 허세라도 부리지 말아주었으면…… 자기는 그만도 못하면서 왜 남의 말을 저렇게 할까 하는 생각이었다.
아침을 먹다가, 그것도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경선이가 자기 학교 교장 이야기를 하는데 익이 있다
“그까짓 자식이 뭘 안다고?”
하자 이날따라 경선도 못내 아니꼬운 생각이 들었던지
“당신은 무에 그리 잘나서 말끝마다 그까짓 자식들이라고만 해요?”
하는 목소리에 가시가 들어 있었다.
“뭐?”
익의 얼굴빛이 질렸다.
“그러면 당신 인격만 얕뵈어요.”
경선은 비웃는 듯한 동그만 얼굴로 익을 말끄러미 쳐다보는 것이다. 익은 숟가락을 놓고 일어났다.
싸움은 그날 밤에 다시 계속되었다.
“상전 욕을 해서 미안하오.”
“……”
“절이나 몇 번 더 하고 오지.”
“되잖은 소리 말아요.”
“왜놈의 종질하는 게 그렇게 기센가?”
“당신은 종질할 자격이나 있소?”
“없지.”
“없는 게 그렇게 기센가?”
“당연하지, 홍 자기는 소사⁷질 할 자격도 없으면서…….”
“그래.”
익은 입을 닫쳐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싸움은 해와 달이 갈수록 자꾸 더 잦고 심각해졌다. 그리고 싸움에 있어서는 경선이 한 걸음도 익에게 양보하려 하지는 않았다. 익의 인격이나 자격을 멸시하는 데서보다는 경선 자신이 어딘지 한번 건드리기만 해놓으면 뾰로통하게 부풀어오르게 마련인 성 미 탓인 듯했다.
그것이 경선의 성미 탓인 줄만 알았어도 익은 그를 그렇게 괘씸하게 얄밉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분은 하루도 풀리는 날이 없이 쌓인 위에 자꾸 더 쌓여갈 뿐이었다. 저 어깨와 엉덩이가 팡파짐한 꼭 남 같기만 한 여자가 어떻게 자기의 아내일 수 있을까, 익 에게는 그것이 곧장 거짓말 같기만 했다.
그러는 중에서도 그들은 아들을 낳고 딸을 낳고 또 아들을 낳았다. 그러면서 그들은 싸움 중독이나 들린 것처럼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라도 눈에 불길만 번쩍하면 당장에 욕질을 하고 손질을 하고 세간을 부수었다. 아이들이 어리둥절해서 앉아 있는 앞에서 욕질을 하고 손질을 하고 세간을 부수면서, 그러는 중에서도, 또, 익은 이것은 전세의 무슨 잘못된 업보(業報)로 생기는 아귀(餓鬼) 수라장(修羅場)이지 사람 사는 것은 아니다 하는 이런 것을 느끼다. 그뿐 아니라 그렇게 괘씸하게 얄밉게 생각하고 욕질을 하고 손질을 하고 발질을 하고, 그러면서도, 그렇지만 이 여자는 마음씨가 올바르고 허영심이 적고 가난한 살림에 무진 고생을 하며 남편과 아이들을 위하여 날마다 헌 옷 꾸러미를 들추고 양말 뒤꿈치를 깁고 문구멍을 바르고 방바닥을 때우는 사람이다 하는 것을 잊는 것도 아니다.
해방이 되자 그들의 싸움질은 뚝 그치고 말았다. 익은 그동안의 묵은 원고를 정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서울로 이사를 온 뒤부터 더구나 경선은 익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는 모양이었고 익은 익대로 매일같이 친구를 만나고 강연에 나가고 모임을 열고 하느라고 집에 붙어 있을 날이 없었다. 그의 아내가 집을 무슨 숙박소로 아느냐고 항의를 해도 익은 그것을 상대하지도 않았다. 아내가 넋두리를 하거나 욕질을 걸어도 성을 내지 않았다. 못 들은 척하고 귀에 담아 듣지도 않는 것이 무어 익이 점잖아서가 아니라 그의 아내를 남의 집 식모나 보듯 무시하는 데서 오는 무관심 같았다.
험악한 얼굴로 저녁상을 들고 들어온 아내는,
“배 맞는 여자 있으면 얻어서 나가라는데 누가 붙잡나 왜 공연한 사람을 못살게 굴어?”
또 이렇게 시작했다.
해방 이래 이미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오는 아내의 넋두리다. 이것은 물론 익이 지애를 알게 되면서부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전에는 익의 막연한 감정 ㅡ아내에 대한 무심과 아울러 일어나는 다른 이성에 대한 동경―에 대한 아내의 반발적 감정에서 일어나는 것이었을 뿐, 익이 정말 어디 마음 두는 데가 있거니 하고 하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이쪽에서도 건성으로, 어쩌면 그럴는지도 모른다고 농담 삼아 받아넘기기도 하였으나 그뒤 그의 감정이 지애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향하여 엉기게 되자 전과 같이 가볍게 농담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
익은 겨우 두어 숟가락 밥을 뜬 채 잠자코 상을 내밀었다. 아내의 분은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요즘 학생은 아이 딸린 남자하고라도 정만 들면 산다면서?”
“……”
“아이 셋 맡을 사람만 있거든 데리고 살지.”
“……”
익은 잠자코 있었다. 그의 아내가 이렇게 자꾸 ‘아이 셋’을 관련시켜 들먹이는 것은 그의 말뜻과는 반대로 익의 관심을 아이들에게 기울도록 하려는, 그에 대한 일종의 경고(警告)와 계책(計策)에 지나지 않았다.
“성우(成祐)도 인제 곧 젖 뗄 때가 됐으니까 아무 걱정 없고…….”
“……”
익은 그대로 자리에 누워버린다. 눈을 감고 잠이 든 척하고 있는 익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아내는 가벼운 한숨을 짓고 나서 벽에 걸린 묵주를 떼어 쥐며 신공⁸을 들이기 시작한다. (그의 아내가 천주교를 믿기 시작한 것은 결혼 이전부터다. 그래서 익도 결혼할 때 결혼하는 한 개 수속이거니 하고 ‘영세’를 받고 ‘혼배’를 했다.)
“성총을 가득히 입으신 마리아여 네게 하례하나이다. 주 너와 한가지로 계시니 여인 중에 너 총복(寵福)을 받으시며 네 복중에 나신 예수 또한 총복을 받아 계시도소이다…… 오 주 전능하신 천주와 평생 동정이신 성 마리아와 성 미가옐 대천신과 성 요한 세자와 종도¹⁰ 성 베드로 성 바오로와…… 나 천지를 조성하신 전능천주 성부를 믿으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
아내가 ‘성모경’과 ‘천주경’ ‘종도신경’ 들을 자꾸자꾸 외며 무수히 묵주를 세고 있다는 것은 익이 보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익은 그런 것은 일절 못 듣는 척하고 벽을 향해 누운 채 이따금씩 끄응 끙 신음 소리를 낼 뿐이다. 아내는 아내대로 그렇게 일심으로 ‘성모경’ ‘천주경’ ‘종도신경’ 들을 외며 묵주를 돌리며 성호를 놓으며, 하면서도 한쪽 귀로는 역시 익의 그 끄응 끙하는 신음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며 그것이 아내에게는 또 그가 외는 ‘성모경’이나 ‘고죄경’에 지지 않는 무서운 주문(呪文)이 되어 그의 신경을 여지없이 무찌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내는 그러한 익의 ‘주문’을 말살이라도 하려는 듯이 점점 더 빨리 점점 더 열중하여 ‘성모경’을 외고 ‘묵주’를 세고 ‘성호’를 놓고…… 하는 것인데 아무래도 익의 신음 소리가 그치지 않으면 그는 몇 번이던지 ‘예수,마리아!’를 되풀이해 부르고 눈을 감고 묵념을 들이고 또다시 성호를 놓고…… 그러다가는 지쳐서 묵주도 놓아버린 채 그 자리에 깜박 잠이 들어버리는 수도 종종 있으나…… 익은 그러한 아내를 위하여 ‘주문’을 삼가는 동정을 갖느니보다 스스로 받는 잔인하고 가혹한 형벌에 자기 자신을 맡겨버림으로써 차라리 잠자리의 휴식을 취하는 셈이었다.
깜박 졸던 아내는 또다시 눈을 뜨며 “오 주 전능하신…….” 하고 ‘고죄경’을 외며 ‘묵주’를 돌리며 ‘성호’를 놓고 하더니 이번에는 ‘신공’이 끝났는지 ‘묵주’를 도로 벽에 결고 공과책을 벽장 속에 놓고는, 겉에 둘렀던 치마를 홀홀 벗는다. 치마를 벗으면 그 속에 그의 아내가 ‘즈로스’¹⁰ 겸 잠방이같이 입는 낡고 때 묻은 내복이 나온다. 이것은 지난해 가을 그의 아내가 남대문시장인지 하는 데서 일금 삼천 원을 들여 광목 여섯 마를 떠다가 아이들의 옷을 마련하고 남은 것으로 지어 입은 뒤 또 한 벌의 ‘즈로스’ㅡ이것은 메리야스로 된 것이라 외출이나 할 때 속에 입을 양으로 되도록이면 광목 잠방이를 입기로 하고 이쪽은 아껴두는 것이다ㅡ와 바꿔가며 입어온 그의 유일한 자리옷이라 익이 새삼스레 몸을 돌려 보지 않더라도 눈에 선하다.
“끄응…….”
익의 가슴에서는 또 신음 소리가 났다.
“이 봐요.”
그의 아내는 익의 곁에 누워 자는 큰아이를 한쪽으로 밀치고 그 자리에 들어앉으며 그의 어깨를 흔든다.
“……”
익은 모르는 척한다.
"이 좀 봐요.”
그의 아내는 잔뜩 상냥한 목소리를 지어 부르며 또 그의 어깨를 흔든다.
“……”
익은 역시 그대로 있다.
“흥 자는 척하고 그렇게 능구렁이같이 누워 있어도 내가 다 모를 줄 아나? 더럽고 아니꼽게……●.”
일껏 맘먹었던 그 ‘상냥’이 순간에 사라지고 아내의 심정은 단번에 휙 뒤집 어지는 모양이다.
“좋은 여자 있거든 정해서 살라는데 왜 이러고 누워서 사람의 간을 뒤집는 거야 응?”
아내는 익의 한쪽 어깨를 잡아 젖힌다.
“끄응…….”
익은 또 이렇게 ‘주문’을 외며 본래대로 돌아누워버린다.
“안 된다 안 돼! 결판을 지어야 되지 이대로 못 잔다! 일어나요, 일어나! 흥, 어떤 썩은 년이 일 년 열두 달 삼백예순 날 이 꼴만 보고 살 줄 아나?”
이렇게 넋두리를 하며 획 잡아 젖혀버린다.
“왜 이래?”
익이 꽥 소리를 지른다.
“안 된다 안 돼! 오늘 밤엔 기어이 결판을 짓고 말지 나는 두 번 다시 그 꼴 못 보겠다!”
아내는 익의 뒷덜미를 잡아 일으킨다.
“가만있어!”
“가만있는 게 뭐야? 어느 년은 속이 없어서 그 한숨 쉬는 꼴을 가만 듣고 있어? 일어나요! 자 좋은 여자 있거든 정해서 살라는데 왜 그래? 자 일어나서 결판을 지읍시다! 빨리! 나는 한시도 그 꼴 못 보겠어!”
“어떻게 하면 결판을 짓나?”
익의 나직한 목소리다.
“그거야 당신 맘이지.”
익의 엄숙한 표정에 아내도 갑자기 풀이 꺾이는 모양이다.
“그럼 내 말할게.”
익의 목소리는 돌연 흥분으로 떨리기 시작한다.
“내가 당신한테 정을 못 느낀다는 건 당신도 알 거야. 내 가슴은 완전히 싸늘한 얼음덩이나 식은 재같이 되어 있어. 그리고 이것은 벌써 오래된 일이야. 우리가 결혼한 지 올해 여덟 해짼가? 올해 내가 서른셋이니 꼭 그렇게 되는군. 그런데 우리는 결혼하자마자 곧 싸우기 시작했어. 알지? 그 싸움이 어떠했나 하는 건.”
“지금부터는 조심해서 싸움하지 않으면 되잖아?”
아내는 미안한 듯한 음성으로, 어느덧 이렇게 풀이 죽어서 말했다.
“우리 싸움은 성질이 달랐어. 당신이 나더러 국민학교 소사 노릇이나 하라고 무슨 자격이 있느냐고 이런 말을 했을 때 내 인격 전부는 당신한테서 완전히 떠나고 말았어. 맘으로 그렇게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내 핏줄에, 혈구(血球)에 그렇게 맺히고 말았어. 당신이 내가 써내는 시나 평론 같은 것을 한번 거들떠보려고 하지 않는 것을 나는 탄하지 않아. 그것은 처음부터 각오한 거야. 나는 처음부터 당신에게 내 하는 일을 이해해주고 도와주고 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어. 그러나 내 하는 일이 그 시절에 맞지 않고 돈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내 인격까지를 도외시하는 데서 아마 우리는 그렇게 싸울 때마다 극도로 미워하고 저주하게 되었던가 봐. 지금 생각하면 물론 내 잘못도 많아. 그뒤 당신이 나와 아이들을 위하여 꾸준히 고생해온 것을 보면, 그때 나에게 소사 노릇이나 하라고 한 것도 우리는 남이 아니라고,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말한 걸 거야. 그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제 와서는 내 가슴이 완전히 얼어붙고 말았어. 영원히 당신을 향해서는 풀리지 않을 거야.”
익의 이 말은 물론 전부가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말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금 그가 경선에게서 떠나고 싶어하는 원인이 또는 그 동기가 과연 여기 있을까 하는 것은 자기 자신도 믿어지지 않았다. 자기 자신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자기의 야박한 마음을 이러한 구실에 붙여서밖에는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정이라는 것도 노력하면 되지 정이 없으니 인제는 그만이라고만 생각하면 점점 더 멀어지지 않아?”
“그렇지 않아…….”
익은 고개를 돌렸다.
“노력해도 안 돼. 당신은 그것이 해방된 뒤부터인 줄 알지만 실상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야. 그때 내가 ‘주의 인물’로 경찰 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었고 언제 무슨 박해를 당하게 될는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나는 어쩌든지 목숨이나 부지해나갔으면 했을 뿐이지 가정 문제에 대수술을 생각할 만한 정신적 현실적 여유가 없었어. 그러던 것이 해방이 돼서 새 세상이 열리니까 그동안 봉쇄되어 있던 감정이 밖으로 쏟아진 거뿐이야.”
“그럼 어쩔 참이요? 혼배까지 해놓고 당신은 여기서 헤어져야만 되겠다고 생각해요?”
아내의 목소리는 떨렸다. 이 물음에 대한 익의 대답은 이미 그의 가슴속에 준비되어 있었다. 다만 그것을 기술적으로 어떻게 나타내나 하는 것만 문제다. 익은 지극히 침착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을 시작했다.
“당신이 얼마나 진실하고 똑똑하다는 건 내가 잘 알아요. 당신이 상당한 인격자라는 것도 잘 알아요.”
“그런 말은 하지 말고…….”
경선은 익의 말이 거짓말인 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내 말은 정말이야, 당신이 인격자라는 건. 나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당신은 반드시 행복되게 살 수 있었을 거야. 그러나 당신은 나하고 사는 동안에 가난한 살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고 하느라고 많은 고생을 했어. 그리고 현재 아이들이 이렇게 셋이나 누워 있어. 이것이 문제야. 나는 지금 당신과 꼭 헤어지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야. 물론 구체적인 다른 상대자가 있는 것도 아니야. 그렇지만 헤어질 수 있으면 헤어지는 것이 우리 두 사람이 다 구원받는 길이 아닐까. 현재의 나의 이 얼음 같은 가슴으로는 당신과 같이 산다는 것이 너무도 아득해.”
익은 어느 정도 흥분한 김에 이렇게 끝까지 다 말해버렸다.
“그럼 아이들은 어떡하고”
아내의 목소리는 역시 떨렸다.
“당신이 맡든지 내가 맡든지 그건 당신 맘대로 하고.”
“……”
아내는 더 묻지 않았다.
익도 물론 이런 말이 어디까지가 정말이고 어디까지가 거짓말인지 자기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현재, 그의 아내가 싫다는 것, 그러나 버려야 할 객관적 이유는 거의 없다는 것, 이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아내는 한참 동안 무엇을 생각하고 나더니 울음 섞인 목소리로
“그럼 지금이라도 내가 조심해서 무엇이든지 당신 시키는 대로 하고 아이들이나 기르고 있으면 가라고 하지는 않겠소?”
했다.
익은 무어라고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던지 헤어져주었으면 하는 생각은 가슴속에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나오는 데야 차마 안 된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단결에 그렇게 야박하게 굴 수도 없고 해서
“글쎄 나도 지금 꼭 그렇게 결심을 하고 있다는 건 아니지만…….”
하고 어름한 대답을 해두었다.
아내는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아내와는 이혼을 하리라, 지애와는 결혼을 하리라, 이렇게 결심을 한 뒤부터는 익도 차츰 새로운 용기와 희망이 솟곤 하였다. 이것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그다음 문제였다. 이혼에 따르는 구체적인 난관, 아이들을 어떻게 하며 아내의 양해를 어떻게 얻으며 그리고 자기를 따라 팔 년 동안이나 굶주리며 헐벗으며 피와 기름을 다 말린 저 불쌍한 아내에 대한 윤리적 부채는 어떻게 하나 하는 우울하고 암담한 문제에 부닥쳐 다시금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질지언정 ―그렇게 구체적인 문제에까지 생각이 미치기 전에는―어쨌든, 어떤, 행동하고 도달해야 할 목표가 정 해졌다는 의식에서 한결 가각(苛刻)¹¹이 덜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애는 매일같이 그를 찾아왔다. 그때마다 반드시 익에게 책을 빌린다든지 그것을 돌려준다든지 혹은 학교의 숙제가 있어 그것을 의논하러 왔다든지 하는 따위 용건을 가져왔다. 익은 처음 그렇게 번번이 ‘용건’을 내세우고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으나 젖족에서 시치미 똑 떼고 하는 노릇이라 이쪽에서도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간 지내는 동안에 처음 겸엱적게 느꼈던 것도 절로 사라지고 지애처럼 그렇게 매일같이 익의 직장을 찾아오려면 그러한 방편이 역시 필요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애가 오는 시간은 대개 다섯시 넘어 직원들이 퇴근한 뒤였다.
“선생님 왜 약주 안 잡수세요?”
하루는 다섯시 반도 더 지나, 익이 혼자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까 지애가 찾아와서 이렇게 물었다. 밖에는 눈보라가 친다면서 몹시 고달픈 얼굴이었다.
“왜?”
“선생님처럼 약주도 담배도 안 하시면 너무 쓸쓸하시잖아요?”
“지애는?”
“네?”
지애는 깜짝 놀란 듯이 되물었다.
“아니 약주를 왜 안 하느냐고 물은 게 아니야.”
“네에, 쓸쓸하잖느냐고요?”
“응.”
“신생님이 더하실 것 같아요.”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 웬 까닭인지는 모르겠는데, 지애보다도 확실히 내가 더 고단해.”
그러고 나서 익은 그것을 부정하는 뜻인지, 모르겠다는 뜻인지, 고개를 설 레설레 내저었다.
“전 알아요.”
지애가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익은 또 먼저와 같이 고개질을 설레설레했다. 지애가 익의 고단함을 알아준다는 데서 익은 지금 흥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말을 할까?’
익은 맘속으로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물었다. 지금과 같이 지애가 자기의 고단함을 잘 알아준다고 할 때 ‘그 말’을 해서 자기의 짐을 좀 덜어달라고 할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언제나 그의 머릿속에 왕래하고 있는 저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지애에게 토로하고 싶은 감정 이었다. 그리하여 지애의 동의와 위로와 격려를 받았으면 하는 감정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자기는 얼마나 더 용기가 나고 자신이 굳어질 것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이것을 지애에게 토로했으면 하는 충동을 느낀 것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되는지 몰랐다. 그러나 막상 지애와 단둘이 대면을 하게 되면 차마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지애의 성격으로는 그야말로 자기가 말라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익으로 하여금 현재의 그의 아내를 쫓게 하고 아이 셋을 희생시키도록 하는 일에 동의하거나 약속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흥 거기다 지애가 ‘위로’를 하고 ‘격려’를 해? 그는 자기 자신의 야비한 생각을 스스로 비웃고 싶었다. 이리하여 그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을 언제나 발설하지 못하고 도로 삼켜오곤 하였던 것이다.
지애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의 말과 행동을 믿는다면 거기서 더 다른 것을 의심할 여지는 없고, 요구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ㅡ익은 지금 또 자기 자신의 야비한 감정에 대하여 이렇게 문책하는 것이었다. 자기는 다만 지애에게 결혼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준비하면 그만이 아닌가. 그 자격을 획득하게 될 때까지 그 말을 입 밖에 내비칠 수 없는 것이며, 가사¹² 지애의 동의와 약속을 얻는다손 치더라도 여기 (자격)에 성공할 수 없는 한 결과에 있어서는 마찬가지 아닌가. 더 꼴 사나울 뿐이 아닌가. 익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들어 가!”
익은 가방을 들고 일어났다.
자리에는 진눈깨비가 치고 있었다.
익의 사무소(직장)는 을지로 이가요 집은 영천 쪽, 그리고 지애는 청파동이었다. 그들은 익의 사무소에서 대한문 앞까지 진눈깨비를 맞으며 말 한마디 없이 걸어나왔다.
“오늘은 제가 선생님 모셔다드리겠어요.”
“……”
익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대한문 앞 전차 안전대 위에 선 채 전차 선로만 멍 하니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늘은 제가 선생님 모셔다드려요.”
지애가 두번째 이렇게 말했을 때, 익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곁에 선 지애를 한 번 흘깃 보고 나서, 지애의 제안에 별 이의도 없이, 광화문 쪽을 향해 터벅터벅 걷기 시작하였다.
광화문통에서 서 대문, 서 대문에서 영천까지 그들은 진눈깨비에 마구 머리를 적시며 겉어갔다. 지애는 머플러로 머리를 쌌으나 머플러 속으로 스며들어오는 물을 씻기 위하여 이따금씩 손으로 이마와 귀밑을 스쳤다. 익의 더부룩한 머리 위에도 희끗희끗 눈이 얹히었다가는 이내 녹곤 하였다. 그는 이따금씩 손수건으로 이마와 목덜미를 씻었다.
익은 웬일인지 성난 사람처럼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지애가 서대문 로터리를 지나면서
“선생님 댁 영천 종점에서도 더 들어가세요?”
하고, 물었을 적에도 그저 고개만 끄떡 할 뿐이었다.
그들이 영천 종점까지 왔을 때는 진눈깨비도 어느덧 함박눈으로 변해 있었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비칠 때마다 검은 하늘에는 불빛 뻗치는 대로 새하얀 꽃잎이 반짝이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 십 분간이나 퍼붓는 눈 속에 말 한마디 없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지애는 이따금씩 몸을 돌이켜 익의 집이 있을 듯한 방향을 찾아보는지 건너편 동네를 바라보곤 하였다.
“여기서 전찰 타고 가.”
“싫어요, 저 걸어가겠어요.”
그러자 익도 또 거기서 도로 서대문 쪽을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눈이 오시니 선생님 사시는 동네 퍽 정다워 보였어요.”
지애는 서대문 가까이 와서 영천 쪽을 돌아다보며 이런 말을 했다.
“여기서 전찰 타고 가…… 서울역 가는 거.”
익은 광화문통에 나오자 이렇게 말했다.
중앙청 쪽에서 텅 빈 차가 왔다.
“빨리 타!”
익은 머뭇거리는 지애더러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지애는 탔다.
지애는 전차에 오르자 창문을 내다보며 또 절을 했다. 익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성난 얼굴로 그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전차가 떠난 뒤에도 익은 움직이지 않았다. 화석이나 된 것처럼 꼼짝 않고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자 거기 기적이 일어났다. 한 오십 미터나 좋게 가던 전차가 정거를 하며 지애가 거기서 내리지 않는가. 지애가 곁에 올 때까지 익은 움직이지 않았다.
익은 지애더러 왜 도로 내렸느냐고 그런 것은 묻지도 않았다. 지애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돌았다. 익의 찌푸렸던 얼굴도 확 펴진듯했다. 그들은 또 걷기 시작하였다.
“시장하지?”
‘대한문’ 앞을 지나며 익이 물었다.
“시장한 줄 모르겠어요.”
그들은 우동집으로 갔다. 우동을 시키고 나서 두 사람은 각기 머리와 오버 위의 눈을 털었다. 지애는 머리에 썼던 머플러를 벗어 물을 짰다. 그러면서 그는 또 웃어 보였다. 익도 웬일인지 즐거워 견딜 수 없었다.
“저 내릴 줄 알았어요?”
지애가 물었다. 알았을 리가 없었다. 다만 그 전차가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아니 그뒤까지라도 그의 발이 움직여질 때까지 그대로 서 있었던 것뿐이다.
그러나 거기는 대답이 없이,
“그런데 그렇게 내려주던가?”
하고, 딴전을 쳤다.
“거짓말했지요, 금방 탈 때 안전대 위에 지갑을 떨어뜨렸다고.”
“그럼, 그렇게 되겠군.”
두 사람은 또 기쁨에 빛나는 얼굴로 서로 바라보았다.
중국 사람이 우동을 날라왔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아무도 젓가락에 손을 대려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또 서로 바라보았다. 순간 익의 두 눈에 이상한 불이 켜지며 동시에 그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새어나왔다. (그 자신도 뜻하지 않았던 말이었다.)
“지애, 나 같은 사람이라도 독신자라면 결혼할 수 있겠나?”
“……”
지애의 입술 위에는 순간적으로나마 은은한 미소가 비쳤다. 그러고는 이내 사라져버렸다. 그는 고개를 수그린 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때 익은 이미 의식을 거의 잃고 있었다. 그만치 그의 가슴은 울렁거리고 그의 두 눈에는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이혼하기로 했어!·……나는 현재의 여자와는 지애가 아니라도 헤어질 마련이야!”
그는 비극 배우가 자기 자신을 향해 독백을 외듯 했다. 지애는 말없이, 그 큼직하고 윤이 흐르는 새카만 동자(瞳子)가 한가운데 두렷이 물린 아름다운 두 눈으로 익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애! 나하고 약속해주어! 나하고 결혼한다고…… 나는 그렇게 결심했어……나는 지금…….”
이때 익은 이미 지애의 곁에 와 있었다. 보들보들 떨리는 손으로 지애의 양편 손목을…… 그다음엔 팔을 벌려 지애의 어깨를 쓸어안았다. 그러고는 그의 불을 끼얹는 듯한 뜨거운 입술이 지애의 볼을 스쳤다. 그러나 그 분명히 지애의 입술을 찾으려던 그의 입술은, 거기서 홀연 한 가닥의 가느다란 이성(理性)의 투사(投射)를 받아 방향을 바꾸었다. 그는 그 긴 팔로, 새가 알을 품듯, 지애의 상반신 전부를 싸안고, 지애의 관자놀이께에 자기의 볼을 댄 채 정신 나간 사람처럼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애기 생각나지 않으세요?”
지애가 익의 포옹을 풀며 묻는 말이었다. 익은 무엇에 얻어맞은 듯이 ‘음’하고 고개를 쳐들다가, 거기서 또 지애의 그 아름다운 두 눈과 마주치자, 돌연히 분개한 듯한 얼굴이 되며 이번에는 거칠게 지애의 손목을 잡아 나꾸었다.
“뭐? 뭣 이 어째?”
그는 누구와 시비를 캐듯 한 음성이었다.
“애기 생각나시지 않느냐구요.”
지애는 눈을 사르르 내리감으며 이렇게 되풀이했다.
“애기?……그렇다, 애기는 미결이다! 나는 그 애기를 내 손으로 길렀으면 좋겠어!”
이 말에 대해서 지애는 무어라고 비판을 하지는 않았다. 지애는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수그린 채 자기의 오버자락 한 점 위에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익은 이때야 정신이 돌아오는지 자기의 울렁거리는 가슴과 함께 ‘하아, 하아’할 정도의 가쁜 숨결을 깨달았다.
“선생님 하신 말씀 저 그대로 믿어도 좋아요?”
지애는 돌연히 고개를 들어 익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다.
“믿어주어, 지애.”
익은 지애의 두 눈에 두렷이 물려 있는 그 윤이 흐르는 새카만 동자를 지그시 들여다보며 엄숙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지애와 그러한 약속을 가지게 되던 날 밤, 익은, 그의 집 들어가는 골목 어귀의 가게에 들러 사과 한 봉지를 사 들었다. 눈으로 덮인 낯익은 골목에 들어서자 난데없는 새로운 슬픔이 그의 가슴을 메워주는 것이었다. 승리와 행복을 향하여 첫걸음을 떼어놓은 그의 가슴속은, 어느 정도 안정과 새로운 의욕으로 한결 부드러워지는가 하면, 일방, 예기하지 않았던 새로운 슬픔이, 또한 그를 사로잡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버리기로 결심한 이제, 아내가 새삼 불쌍하다는 것보다도 어린것들 셋이 그의 가슴에 못을 박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어린것들과 동시에, 그것들이 속한 세상 전부와도 떠나게 된다는, 시집가려는 색시와도 같은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그의 가슴을 적셔주는 것이었다. 이 골목도, 그렇다. 이 골목과도 결별을 해야 한다 생각하니, 저녁때나 그럴 때마다 대개 연기가 끼어 있는, 아침저녁 으레 한 번씩은 밟고 지나 다니던 이 따분하고 어두운 골목도, 이날 밤따라, 새하얀 눈으로 단장을 한 탓인지, 어느 낯선 이국의 거리처럼 그리운 향수(鄕愁)로 젖어드는 것이었다.
가방과 함께 사과 봉지를 안은 익이 대문 밖에서 식모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데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식모 아이는 온종일 일을 하고 난 뒤라 저녁을 먹으면 곧 떨어져 잠이 드는 수가 흔히 있지만 그의 아내가 벌써 그렇게 깊은 잠이 들었을 리는 없다. 일부러 대답을 하지 않는 거라고 익은 생각했다. 세번째 큰 소리로 ‘순’의 이름을 불렀을 때 위 엣놈의 목소리로
“엄마 아부지 왔어…… 순아!…… 순아!”
하고 순을 깨우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렸다. 그러자 순이 눈을 비미며 나와 대문을 열었다.
익이 신돌 위에서 오버와 머리 위의 눈을 대강 털고 방으로 들어가자 아내는 윗목에서 눈을 감은 채 묵주를 들고 꿇어앉아 있는 것이, 아직도 무슨 기구(祈求)를 드리는 중인 모양이요, 큰놈은 제 어미 곁에 누워 있다가 내 손에 사과 봉지가 들려 있는 것을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 앉는다.
“아부지 그거 뭐야?”
“사과.”
“학교에서 돈 벌어서 샀지, 그지?”
“음.”
“우리들 먹으라고…… 그지?”
“음.”
익은 사과 봉지를 책상 위에 놓으며
“너 먹겠으면 와서 하나 먹어.”
했다. 큰놈은 이내 뽀르르 와서 새빨간 홍옥 한 개를 집어들더니, 어떻게 생각했던지, 그것을, 아직도 눈을 감고 꿇어앉아 있는 그의 어미의 코끝에 갖다 대었다. 사과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릴 겸 이것을 먹어도 좋으냐 하는 의미인 듯했다. 아내는 역시 눈을 감은 채 손으로 조용히 큰놈을 밀어내었다. 큰놈은 제 자리에 가 이불을 쓰고 앉아서 그것을 먹기 시작하였다. 그사이에 순이 다 식은 저녁 밥상을 차려 들고 들어왔다.
익이 막 밥숟가락을 잡으려는데, 그때까지 신공과 기구를 다 드리고 난 그의 아내는 묵주를 벽에 걸고 돌아서며
“이제 낼부터는 밤늦게 들어오면 대문도 안 열어줄 테야.”
한다. 이따금씩 하는 소리다. 익이 잠자코 있으려니까 이번에는 호령조로
“순아 저 사과 봉지 이리 가져와.”
하뎌니 한 알을 집어 순에게 주고 나서는 봉지째 자기 곁에 밀쳐두며,
“사과 같은 것도 사왔으면 나더러 한 개 먹어보라고 하면 뭐 제 이름이 떨어지나 제 계집년들이 배를 앓나…… 에잇! 몹시기도 해라! 독사 같은 인간!”
넋두리를 시작한다.
익은 아내의 넋두리를 한두 번 들어온 것이 아니요, 또 언제 들으나 모두가 비슷한 내용이요, 그러니까 그것을 별반 개의하지 않아도 좋겠는데, 그러면서도 어이한 셈인지 듣기만 하면 피가 머리끝까지 확확 치오름을 어찌할 수 없다. 어떻게 해서든지 귀에 담지 않는 것이 상수요 귀에 담겨도 거기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제일이다. 그래서 익은 숟가락을 놓고 곧 자리에 드러눕는다. 코끝이 벽에 닿을 만치 벽에 바싹 붙어 누워 있다. 그러한 익을 그의 아내는 그러나 버려두는 것이 아니다.
“누가 이혼을 안 해준대나? 아이 셋 데리고 나가, 더러운 당신 같은 사람 따라 살고 싶은 년도 없어!”
이것은 익을 불러일으키려는 꼬임수다. 이혼을 해준다고 하면 익이 귀가 번쩍해서 무어라고 응수를 해줄까 하고 하는 말이다. 경선은 익이 처음 들어오면서부터 자기를 완전히 무시하는 듯한 태도, 늦게 들어오게 된 이유를 한마디 변명하려도 하지 않고, 사과 하나 먹어보란 인사도 하지 않고, 그가 거는 말에 한마디 응수를 하는 법도 없이, 벽만 향해 돌아누워버리는 것이, 자기와의 충돌을 피하려는 태도라기보다도 도시 자기를 무시 하는 것같이만 보여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익으로서는 그의 아내에게 취할 수 있는 최대 악의의 하나인 것도 사실이다.
“이혼을 겁낼 어느 썩은 년도 없다, 이혼비 백만 원만 주고 아이 셋 데리고 나가렴, 나도 내 청춘 다 늙히고, 십 년 동안 당신 종질만 실컷 해주고 이대로 갈릴 수는 없잖아?”
경선의 푸념은 한마디도 빠지지 않고. 안 듣는 체하고 누워 있는 익의 귀로 쏙쏙 다 들어온다. 아무리 안 들으려야 귀로 들어오는 데는 하는 수 없다. 경선은 또, 익이 저러고 누워 있어도 자기의 말을 죄다 듣고 있으려니, 해서 그런지, 익의 고막을 제가 맘대로 가지고 노는 것같이, 어휘와 목소리에 다채로운 음영을 넣어 가며 자유자재다.
“당신이 그렇게 출세한 것도 다 누구 덕인 줄 알아, 내가 밤낮 당신 잘되라고 천주님 앞에 기도드린 덕택이지 당신 힘으로 그리된 줄 아나, 당신 시골 있을 때 거지같이 지내다가 서울 와서 내 덕으로 세상에 이름이나 좀 나고 하니 그만 인제 천주도 배반하고, 십 년 동안 단물 신물 다 빨아먹은 계집도 인제 너는 쓸데 없다고 하니 어떻게 벼락을 안 맞겠어, 조강지처(糟糠之妻) 박대하고 잘되는 놈 없단다, 당신도 나하고 이혼만 해봐, 그날로 눈깔이 하나 멀거나 발목이 하나 뿌러지거나 하지 않는가.”
이렇게 되면 익은 완전히 경선의 수중에 있다. 아무리 안 들으려야 안 들을 수도 없고, 들은 것을 그대로 삭일 수도 없고, 신경이 바늘 끝같이 되어 잠은 오지 않고 흡사 주문(呪文) 맞은 구렁이처럼 몸을 뒤틀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경선은 연방 기세를 올린다. 아주 죽여내고 싶은 충동 같다.
“당신 집 안은 피가 그런가 봐.”
경선의 저주의 대상이 익 개인에게서 그의 가문 전부로 비약을 하면, 두 사람의 숨결은 최고조로 가빠진다. 그것은 경선 쪽에서도 클라이맥스를 각오하고 하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를 들먹이면 익이 언제나 육박전을 시작한다는 것, 특히 익이 가장 아파하는, 그의 아버지의 방탕성, 즉 첩살림을 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 익의 가면은 여지없이 탄로되고 효과 백 퍼센트라는 것―이런 것까지 경선은 죄다 계산에 넣고, 그보다도 각오를 하고, 뛰어드는 것이다.
"당신 아범이 색마가 돼서 평생 첩질만 하고 당신 어멈을 학대 해놓으니 당신도 그 피를 받아서 단물 신물 다 빨아먹고 이제 와서 날 이혼하자는 게지, 당신 삼촌은 술주정뱅이지, 당신 사촌도 하나 내놓고는 모두 한다는 소리가 기생타령 술타령이지, 당신 집구석에 색마나 술주정뱅이 아닌 사람 몇이나 있어?”
여기서 익도 용감하게 뛰어 일어나, 발길과 주먹으로 경선의 머리와 어깨를 아낌없이 차고 때림으로써 드디어 실력전이 벌어지는 것이지만, 경선도 결코 비겁하지는 않다. 처음 돌연히 들어오는 익의 발길과 주먹만, 목을 움츠리고 손을 내밀고 하여 면하면, 그 다음 순간엔 그도 어느덧 익의 옷깃이나 손가락이나 어디 한두 군데 힘껏 틀어쥐고, 그것을 젖히든지 이로 물든지 익숙하게 응전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선이 아무리 선전분투해도 실력은 이미 정해진 것이다. 익의 맹렬한 공격이 삼 분간만 계속되면 경선은 그의 발 아래 습복되고 만다. 그러는 중에서도 익은 약자에 대한 동정인지, 불쌍한 생각이 들어, 뒤로 슬그머니 물러서려 하면, 이때쯤은 염통이 부풀대로 부풀어오른 경선은 물도 불도 가리지 않고 또 공격을 시작한다.
“당신 아범이 첩질을 하느라고 당신 어멈을 주야로 때리고 학대를 해놓으니 그 피를 받아서 또 날 이렇게 때리는 거지, 제 버릇 개 못 준단다! 이놈의 집구석은 피가 본래 술이나 처먹고 첩질이나 하고 집에 와서 계집이나 치고 하는 더러운 피야! 아야야야! 오냐, 또 쳐라! 자꾸 때려라! 그놈의 손모가지 인제 마막¹³이 들어서 톡 분질러질 게다! 눈깔이 하나 멀든지 앉은뱅이가 되든지 죽기 전에 그 보복 안 받을 줄 아나? 아야야야! 오냐, 또 쳐라! 자꾸 때려라!”
“이년아! 이 개 같은, 때려죽일 도적년아, 더러운 년아!”
익의 두 눈에도 미친개 같은 벌건 불이 켜지고, 입에서는 모든 욕설이 한꺼 번에 튀어나오려고 험 악하게 일그러진다.
“아이고, 아이고, 이놈아! 이 강도 같은 놈아!”
경선은 익의 완력에 못 이겨 이렇게 이를 갈며 신음하다가도 익이 조금 뒤로 물러서기만 하면 또 대든다. 더구나 이때쯤은 자던 아이들이 모두 놀라 깨어 일어나 울고, 경선의 눈시울에도 퍼렇게 멍이 들고 입술에 피가 터지고, 익 쪽에서도 가슴이 결리거나 손가락이 상하거나 하여 이제는 더 싸울 수 없어진다. 익은 한참 동안 멍청해서 서 있고, 경선은 그러나 익과는 반대로, 아이들이 일어나 앉아만 주면 또다시 용기와 투지는 배가하게 된다.
“왜 더 못 때려? 응? 고놈의 손모가지 딱 안 분질러질 줄 아나? 아이들 보는데 부끄럽지도 안하나? 아비가 무슨 놈의 아비, 침을 뱉어줘라! 영우야, 윤경아 너들 모두 침 뱉어줘라! 저까짓 게 아비야? 아야야야! 이놈아! 이 강도 같은 놈아! 또 때려라! 자꾸 쳐라! 아야야! 이놈아! 아이고, 아이고!”
아이들 셋은 익이 저희 어미를 죽이는 줄이나 알고 깜박 숨이 넘어갈 듯이 운다. 위 옛놈은 대개
“아버지 참아! 응! 아버지! 아버지 ! 응?”
처음은 익의 허리를 안고 말린다고 해보다가 안 되면, 두 인간이 싸우는 곁에서, 도글도글 굴며 울고, 그 아래, 딸년은 익의 허리나 다리 어디를 손이 닿는 대로 힘껏 꼬집어 비틀고, 끝엣놈은 자[尺]나 가위 같은 것을 익에게 집어던지고 한다. 아이들에 대해서는 또 각별 신경을 쓰는 익은, 그러는 중에서도, 이것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다, 아귀 수라장의 꿈속이다,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타이르며, 목이 메일 듯한 비분과 절망으로 어린것들을 둘러보고 있노라면, 이때쯤은 경선이 쪽에서도 한껏 부풀었던 염통이 부풀어 터졌는지, 어느덧 무릎을 꿇고 합장을 하고 앉아,
“에수 마리아! 예수 마리아! 예수 마리아!”
미 것처럼 ‘예수 마리아’를 연발하며 있는 것이다.
진눈깨비가 내리던 날 밤에 헤어진 뒤 지애는 사흘 동안이나 익을 찾아오지 않았다. 지애가 기분을 상했나 병이 났나 꾸지람을 들었나, 익은 온갖 걱정이 다 들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초조와 불안이 가득 찬 눈으로 그는 쉴 새 없이 창문께로만 시선을 돌리곤 했다.
나흘째 되던 날, 그날은 퇴근을 하는 대로 그의 집을 찾아가보리라 하고 막 가방을 챙기고 있는데 지애가 나타났다. 또 가슴이 무엇에 찔리는 듯 찌르르했다.
“오늘은 내가 가려고 했어.”
“……”
지애는 희고 가직한 이를 보이며 생긋이 웃어 보였다. 치마저고리 위에 암록색 두루마기를 입고 머리에는 흰 수건을 쓰고 있었다.
“그동안 앓았어?”
익은 지애의 두 눈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물었다.
“아니에요.”
하며 지애도 익의 얼굴을 대담스레 바라보는 것이었다. 지애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새카맣고 두렷한, 윤이 흐르는 두 눈동자는 익을 향하여 바라보고 있다는 것보다는 스며들고 있는 듯, 그렇게 그는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저, 일본 가기로 했어요.”
지애는 익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무슨 선고나 내리듯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익은 또 한번 간이 선뜩했다. 그 말이 너무 의외였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어디로 떠난다는 말에 간이 찔렸던 것이다.
“왜?”
익은 노기(怒氣) 가득한 두 눈으로 지애를 바라보았다.
“공부하러요.”
“공부?”
익은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지애는 말없이, 그 새카만 두 눈동자로 익의 얼굴만 말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 학교는?”
먼저보다는 좀 낮은 목소리로 익은 또 이렇게 물었다.
“그만두었어요.”
지애는 맘속에, 무슨 결의를 가진 사람처림 지극히 또렷한 목소리로 결론 같은 것만 또박또박 대답하였다.
익은 몹시 성난 사람처럼 이맛살을 불끈 찌푸리고 앉아 있었다. 그는 지애가 그렇게 중대한 일을 자기와 먼저 상의도 없이 척척 결정해버린 것이 무척 불쾌한 모양이었다.
“선생님.”
지애의 몹시 가냘픈 목소리였다. (어딘지 약간 떨리는 듯했다.)
익이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저, 오늘까지, 며칠이나 안 나올 수 있나 그것을 시험해봤어요. 저 지금부터는 이제 전에처럼 선생님 뵈러 올 수 없잖아요?”
“……?”
익은 아직도 지애의 말뜻을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께 밤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실행하시려면 제가 어떻게 그전처럼 선생님을 뵈러 다니겠어요?…… 그래서 처음엔 그 동안 얼마나 되든지간에 아주 집 안에만 꼭 들어앉아 있어보려고 했어요.”
여기서 지애는 무슨 설움이 복받치는 것처럼 수건을 뭉쳐서 입과 코를 가렸다.
“그래서 오늘까지 참아봤어요. 이 위에 더 참으라고 하면 꼭 무슨 큰 병이 날 것만 같아요. 저, 이 서울에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겠어요. 그건 더 물어보실 필요도 없어요. 그리고 참을 수 있다고 해도…… 무슨 체면으로 서울 바닥에서 뻐젓이 기다리고 앉아 있겠어요? 빨리 이혼만 해라, 하고 물러나 기다리고 있을 심장이 어딨겠어요? 사람 허울을 쓰고…….”
지애는 고개를 돌려 수건으로 눈물을 닦은 뒤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저희 사돈집에 일본 건너다니며 장사하는 이가 있어요. 저희 언니의 시고모뻘 되는 이에요. 그래서 언니와 의논하고 그이를 만났어요. 염려 말라고 그래요…….”
지애가 이까지 말했을 때, 익은 무엇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같이 정신이 멍해졌다. 익은 테이블 위에 팔을 뻗치고 그 팔 위에 얼굴을 댄 채 한참 동안 엎드려 있었다.
익이 겨우 고개를 들었을 때 지애는 또 말을 계속하였다.
“일본만 가놓으면 아무리 뵙고 싶어도 맘대로 나을 수는 없지 않아요.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건 있지만…….”
“그건 뭔데?”
“……”
지애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지애!”
익의 목소리도 떨렸다.
“가지 마. 여기 있어.”
“……”
지애는 두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 한 채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병이라도 나면 어떡해? 나도 병이 날 거야. 여기 있어, 여기서 가끔만 만나면 되잖아? 여기서도 우리는 이미 받을 형벌을 다 받고 있어. 우리가 얼마나 괴로워하며 심장과 두뇌를 썩이고 있나, 생각해봐요.”
“선생님과 저는 또 달라요. 저는, 일본이라도 가 있지 않고는 벌 받는다고 할 수 없어요. 제가 사모님이 되어 생각하더라도 저를 용서할 수 없겠어요. 여기서 어떻게 제가 지금 선생님께서 실행하시려는 것을 제 귀로 듣고 혹은 눈으로 보고하며 앉아 있겠어요?”
"지애, 그렇지만 이건, 난 견딜 수 없어! 여기서 안 만나도 좋아! 안 만나도 여기서 나하고 같이 있어. 같은 서울 안에만 있어줘!“
“여기 있으면서 전 선생님 안 뵙고는 못 참아요. 그건 열 배도 더 괴로워요.”
“지애!”
익이 지애의 손목을 잡았다. 다음 순간 바른팔을 돌려 지애의 목을 쓸어안았다. 그러고는 한참 동안 지애의 두 눈을 들여다보았다.
“지애!”
목이 메어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난 안 돼! 난 어떻게 견디겠어? 난 어떻게 응?”
익은 흡사 어린애가 투정을 하듯 했다.
“그러니까 저를 빨리 불러 내어주세요.”
지애는 두 눈을 똑바로 뜬 채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결연(決然)히 말했다. 이 말에 익은 다시 정신이 돌아오는지, 놀란 듯이 지애의 곁에서 주춤 물러서버렸다. 그리하여 도로 자기의 자리에 돌아온 익은 먼저와 같이 또 테이블 위에 팔을 뻗치고 그 팔 위에 자기의 얼굴을 갖다 대었다.
“그럼 저 다녀오겠어요,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지애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곧 떠나는 건 아니지?”
익이 얼굴을 들며 이렇게 물었다.
“대체로 한 열흘 안에 떠나게 될 거라고 그랬어요.”
“그럼 그 안에 물론 또 보겠지?”
“……”
지애는 입가에 쓸쓸한 미소를 띨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떠나기 전에 아무래도 한 번은 더 보겠지?”
“기다리지 마세요. 저 오늘도 실상 제가 못 견뎌서 나온 거예요. 저 본래는 아주 일본 간 뒤에나 편지로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선생님이 만약 서울역이나 부산 부두 같은 데 따라나오셔서 저를 보내주신다면 전 도저히 못 떠나고 말아요.”
지애의 두 눈에 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지애!”
익이 지애의 두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의 두 눈에도 눈물이 빛나고 있었으나 그의 음성은 아까와는 딴판으로 침착하였다.
“부디, 부디. 잘 갔다 와요. 내가 오라고 할 때까지. 응, 부디, 부디……”
그의 두 볼 위로는 뜨거운 눈물 두 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으나 그는 그것을 닦으려 하지도 않고, 그 비쭉거리는 입술을 그대로 지애에게로 가져갔다.
지애가 마지막으로 익의 사무소를 찾아왔다 돌아간 지 일주일 만에, 지애는 그의 언니의 시고모뻘 되는 여자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기별을 그의 언니 되는 사람이 익에게 전해주었다. 지애의 언니는 나이 서른 남짓 되어 뵈는 유복하게 생긴, 그리고 역시 지애 비슷한 데가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지애를 통하여 이야기는 다 들었다고 지애의 성질을 아는 터라 아무리 형이지만 무슨 말을 하겠더냐고 손수건을 자꾸만 눈에 갖다 대며, 부탁한다고 했다. 익의 눈에도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처음 보는 낯선 부인이건만, 흡사 자기의 누이나, 가까운 고모를 대한 듯한 친밀감이 느껴지며, 남이 보는 앞만 아니라면 그 앞에서 엉엉 목을 놓아 울고 싶었다. 밀항(密航)이 되어서 위험하지 않겠느냐고 익이 묻자, 여인은 그러지 않아도 자기도 그런 말을 했더니 지애는 목숨이 문제냐고 하더라는 말을 했다. 익은 먼저 이 여인의 주소 성명을 묻고, 다음엔 지애를 데리고 간 여자의 그것을 묻고 나중엔 그 여자가 일본 가면 유숙하는 장소까지를 다 물은 뒤, 부탁한다고, 자기도 같은 말을 했다.
그날 밤이었다. ……익이 의자에 앉아 있는데 지애의 언니가 문 밖에 와서, “선생님!”
했다. 몹시 당황한 목소리였다. 익은 즉각적으로, 아, 큰일났구나, 했다. 더 들어볼 여지도 없었다. 지애의 언니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 그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이, 그 비탄(悲嘆)에 잠긴 두 눈이 이미 모든 것을 다 말하고 있었다. 익은 자기 자신을 꼬집어 보며 이건 분명히 꿈이 아니라 했다. 익은 자기의 왼쪽 손을 들어서 눈앞에 갖다 대며, 이것은 분명히 내 손이요, 왼쪽 손이요, 내
눈은 분명히 내 손을 보고 있다, 나는 분명히 정신을 잃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하며, 그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배는 몇 톤짜린 데.’
‘칠괄십 톤짜리 됐나 봐요…… 폭풍이 불어서 암초에 결려서 …’
여기서 익은 또다시, 음, 그 며칠 동안 바람이 몹시 불더니…… 음, 겨우 세 사람밖에 구출되지 못했다…… 음 시체도 못 건졌다, 음. ……그는 층계를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의 발이 층계에서 미끄러지는 순간 뒤에서
‘선생님!’
하는 소리가 들렸다. 모여든 사람들은 모두들 큰일났다고 했다. 그러나 자기는 절대로 정신을 잃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정신을 잃지 않았다는 것은 내 자신이 알고 있다고 그는 혼자 속으로 부르짖었다. 나는 입원할 필요가 없다, 나는 내일부터라도 출근을 한다, 나는 얼마든지 의자에 앉아 있을 자신이 있다, 지배인과 의논해서 이 달 안에 여섯 권의 ‘현대과학 총서’를 낼 수도 있다……
“예수 마리아. 예수 마리아.”
아내의 기도 소리가 났다. 익은 눈을 떴다. 다시 눈을 떴다. 순간, 익은 견딜 수 없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 겐지 알 수가 없었다. 뇌신경에 전기가 동한 듯했다. 일찰나도 견딜 수 없는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 물론 그는 이미 문을 열고 마루로 뛰어나가 있었다. 변소에 뛰어가 있었다. 변소에서 도로 마루로 뛰어왔다. 마루에서 건넌방으로 뛰어갔다. 건넌방에 놓인 그의 테이블의 서랍을 열었다. 서랍을 닫쳤다. 또 서랍을 열었다. 또 서랍을 닫쳤다. 서가에서 책을 집어던졌다. 던졌다, 던졌다……
“예수 마리아! 예수 마리아! 예수 마리아!”
아내도 허겁지겁 연달아 성호를 놓았다. 그는 드디어 자기가 집어던진 책 무더기 위에 쓰러졌다.
“그것 봐요, 천벌을 받아서 그래요!”
익의 아내는 이튿날 아침 이렇게 말했다. 익은 무어라고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러한 아픔이 삼십 분 동안만 계속되었다면 자기는 그대로 해골이 되고 말았을 게라는 그러한 절망적인 무서움뿐이었다. 그러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익에게 이 병이 생긴 것은 지애가 일본으로 떠나기 전후부터인 듯했다. 무어라고 딱 집어 말할 수 없는, 뇌수에다 고열의 전기를 갖다 대는 듯한, 그저 저리고 쑤시고 미칠 것만 같은, 한순간도 견딜 수 없는 그러한 아픔이었다. 이러한 ‘발작’이 일주일에 정기적으로 한 번씩만 일어난대도 자기는 도저히 한 달 이상을 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해서든지 한시바삐 해결을 짓지 않으면 자기는 그 병으로 멀지 않은 날에 확실히 쓰러지고 말 것만 같은 무서운 강박관념 같은 것이 익의 머릿속에서 잠시도 며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아내가 최후까지 이혼을 승낙해주지 않는 경우 그는 어떻게 하리라는 그 어떠한 성산도 복안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는 그의 아내의 푸념이 물론 침소봉대로 과장된 점도 있었지만 근본에 있어 거짓이라거나 경위가 서지 않는다거나 할 것은 한 가지도 없다고 생각했다. 경선의 처지에서는 모두 피를 토하는 듯한 진담이요 마땅한 말이리라고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기어이 그와는 이혼을 하고 지애와는 결혼을 해야만 살 것 같은, 염치없고 경위 없고 부량¹⁴하고 죄 많은 그의 이 심정을 그 자신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는 지금도 가끔 그가 경선과 처음 결혼하고 났을 때의 그 종신 금고를 받은 듯한 아득하고 절망적이던 감상을 생각하고는, 그러면 그것이 오늘에 와서 이러한 갈등을 일으킬 장본이었던가 하는 데 생각이 미치자 부르르 절로 몸이 떨리는 것이다. 그들은 그때 이미 충분히 사귄 뒤라 상대자가 서로 아쉬울 만치는 아쉬워서 맺은 인연임에도 불구하고, 한 십 년간 종같이 부려먹고, 병과 가난으로 시들 대로 시든 이제 와서, 기어이 버려주고 싶다는, 그를 버려야 자기가 살겠다는 이 무섭고 저주받은 감정이란 대체 어디서 온단 말인가? 이것이 자기가 그렇게도 아끼고 그렇게도 사랑하고 그렇게도 위하는, 이 우주 전부와도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그 하나뿐인 자기의 생명에서 오는 것인가? 어쩌면 사람이란 한 사람의 여인을 상대로 평온히 늙어 질 수 없는가? 어쩌면 생애의 한복판을 두 동강으로 분지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련인가?
하루를 이렇게 신음하고 난 다음 익은 최후 담판과도 같은 비장한 심정으로 입을 비쭉거리며, 미안하다,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당신에 대하여 나는 유황불에 살라도 모자랄 죄인이란 것도 천만번 안다, 날 살려주는 셈치고 헤어져달라, 내 당신을 위해서 평생 '기구’를 드려달라고 하면 그렇게 해도 좋다, 그 밖에 나에게 가능한 일이면 무엇이든지 당신 원대로 하겠다, ……이렇게 눈물을 머금고 통정을 하고 애걸을 해보았으나, 경선은 처음 좀 거북한 듯이 비죽이 웃으며 일어나더니 이내 그 거북한 듯한 웃음마저 사라지며, 참 미쳐도 더럽게 미쳤다, 지금까지 희망을 바라고 살아온 결과가 이것이란 말이냐, 이 아이들을 좀 보라, 눈이 퍼렇게 해서들 누워 있지 않나, 하고, 묵주를 떼어 들며, 혼배까지 다 하고 나서 죄를 얼마나 지으려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일축을 해버렸다.
지애가 떠난 지 달포 남짓하였을 때 그의 언니를 통하여 지애의 편지가 왔다.
추위에 선생님 귀하신 몸 상하시지나 않았는지 늘 걱정됩니다. 저는 떠나온 이후 아무 하는 일도 없이, 이곳 이층 사조(四疊) 다다미방에 밤낮없이 누워 있습니다. 밤낮 선생님을 생각하며 누워있습니다. 밤, 낮, 시간마다 선생님이 기다려집니다. 매일 편지를 쓰려다가는 그만둡니다. 편지를 쓰느니보다 그만 뛰어가 한 번 더 뵙고 오기라도 했으면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고는 해서 편지를 쓰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는 여기서 이렇게 선생님만 생각하고 누워있다가 이대로 죽어버린다 해도 제가 이 세상에 나서 선생님을 뵈옵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밤낮 생각합니다, 제가 이 세상에 난 것은 다행이라고, 그리고 제가 선생님을 뵈온 것은 더없는 다행이라고, 저는 선생님을 뵈옵게 되어서 알게 된 모든 슬픔과 외로움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을 생각함으로써 얻는 이 슬픔과 이 외로움은 저의 양식입니다. 이제 저는 선생님을 모시게 될 때까지 이 슬픔과 외로움에서 떠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후마다 열이 납니다. 제가 여기 와서 이 주간쯤 지났을 때부터 의사는 저에게 늑막염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늑막염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병도 넉넉히 견딜 수 있습니다. 병보다 더 무서운 거라도 저는 견딜 수 있습니다. 저는 무엇이라도 견딜 수 있습니다. 선생님 부디 감기 들지 마시기 원합니다.
○월 ○일 이지애 상서
지애의 편지는 칼로 새긴 듯한 또렷또렷한 글씨로 씌어져 있었다.
익은 곧 답장을 썼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따금씩 편지를 써서 지애의 형 되는 이에게 부쳐달라고 보내었으나 웬 까닭인지 일절 회답이 없었다.
지애의 편지가 온 지도 달 반이나 더 지났을 무렵이었다.
울타리마다 개나리가 노랗게 피고 거리에는 버들가지가 땅 위에 닿도록 척척 늘어진 봄이 되어 있었다.
익이 출근하여 의자에 앉아 있는데 노크 소리가 났다. 그 ‘노크’의 음향에 웬일인지 가슴이 찔끔하며 얼굴을 치켜드니, 도어가 빙긋이 열리며 거기 뜻 아니한 지애가 나타났다.
“지애!”
익은 부지중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지애는 작년 이맘때 익이 학교에서 처음 그와 말을 건넜을 때 입었던 그 감장 비로드 치마에 크림빛 뉴똥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선생님 그동안 안녕 하셨어요?”
지애가 그 몹시 파리해진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렇게 인사를 했다.
“……”
익은 혀가 굳어진 것처럼 입을 닫친 채 지애의 얼굴만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지애의 두 눈이 자기의 두 눈 속으로 완전히 옮겨오는 것 같았다. 지애의 목소리는 마력을 가진 향수처럼 그의 전신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두 사람은 그들이 전에 자주 다니던 중국집으로 갔다. 익은 말없이 지애의 목을 쓸어안은 채 언젠가처럼 그의 관자놀이에 자기의 볼을 대고 한 십 분간이나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익의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층계에 발소리가 들려 익이 포옹을 풀었을 때 지애는 창문께로 가서 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지애는 제가 약속을 깨트려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 다음, 꼭 이번에 한 번만 다녀가려고 온 것이라 하였다. 거기서 무엇을 했느냐는 물음에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나서, 아무것 하는 일도 없이 이층 다다미방에 주야로 혼자 가만히 누워만 있었노라고 했다. 늑막염을 앓고 있었노라고 했다.
익은 지애가 겪은 그 정신적 고독과 육체적 고통을 생각하고 다시금 가슴이 메어지는 듯했다.
“지애, 인제는 가지 말아, 모두가 나의 죄야. 한두 달에 해결질 형편도 아니면서 지애만이 그렇게 병과 고독에 썩어야 할 이유가 어딨단 말인고? 이제부턴 내가 이혼한다 한 말을 믿지 말아. 취소한 거로 해. 그러면 일본 가지 않아도 되잖아? 그리고 나와 매일 만나도 되잖아? 그렇게 해줘, 응, 지애! 그전 상태로 돌아가줘. 나의 이번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으로 해줘, 응, 지애!…… 그때 내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거야.”
“……”
지애는 잠자코 고개를 저었다. 말은 하지 않아도 어딘지 몹시 못마땅한 데가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안 들은 거로만 해줘, 내가 말 안 한 거로만 해줘!”
“……”
지애는 또 고개를 저었다. 분명히 무엇이 노여운 듯한 얼굴이었다.
“응, 지애!”
“전 그렇게 하기 싫어요. 선생님이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만 분명히 말씀해주세요. 저는 선생님을 잊어야 하는지 또는 기다려야 하는지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만 분명히 말씀해주세요. 저는 어느 것도 그다지 놀라지 않아요.”
"지애는 나를 잊을 수 있나?”
익이 목 멘 소리로 물었다.
"저는 이미 모든 것을 각오하고 있어요. 언제든지 필요한 때, KI 는, 한꺼번에,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어요.”
지애는 정면으로 익을 노려보며 결연히 말했다.
“그럼 기다려!”
익이 소리를 질렀다.
“그것은 시일 문제야! 다만 지애를 막연히 기다리게 하는 것이 너무도 괴로워서 말한 것뿐이야. 오월 그믐까지만! 오월 그믐까지 해결되지 않으면 그때는 나도 일본으로 갈 테야! 지애에게로 갈 테야!”
“그렇더라도 선생님은 오시지 마세요, 꼭 오시지 마세요, 네!”
“……”
“첫째 선생님의 성격이 그렇게 사실 수는 없잖아요? 저도 그래요. 못 살게 되면 죽더라도…….”
“이제는 성격도 변했어! 죽음만치 싫은 건 세상에 없어!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살 테야! 살 테야! 나는 살아보겠어! 이 환한 햇빛, 이 많은 사람들, 이 많은 나무들 이런 것 다두고 이 좋은 세상을 왜 버린단 말인가, 왜? 응, 왜?”
익은 반 미친 사람처럼 외쳤다.
“그럼, 저 오월 그믐까지만 기다리면 돼요?”
“오월 그믐까지!”
익의 계획은, 오월 십오일까지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결말을 지으려 했다. 밀항으로 가려면 나머지 보름은 아무래도 여유를 두어야 할 것 같았다.
사월 십일에서 사월 그믐까지 익은 그의 아내에게, 어느 한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체의 친절을 성의껏 했다. 처음 그의 아내는 남편의 표변한 행동을 해괴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었으나 익의 꾸준하고 진실한 친절에, 인제, 어느 좋아하던 여자를 단념했나 보다, 하는 정도로 안심하는 모양이었다.
사월 그믐날 밤에 익이 통성을 했다. 실상은 오랫동안 당신을 너무 고생만 시켜놓고 헤어지자고 하기가 죄송해서 그동안 내 힘껏 남편의 의무를 지켜보느라고 해본 것인데 지극히 염치없고 야박한 노릇이지만 자기를 살려주려면 이혼에 협력해달라고 또 한 번 호소를 했다.
아내는, 오늘 하룻밤만 더 생각해볼 여유를 달라고 했다. 익은 좋은 빛으로 승낙을 했다. 내일 아침이면 아내가 이혼을 승낙하거니 하고, 그러한 아내가 불쌍하기만 해서 그는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았다.
아내도 자지 않는 모양이었다. 밤새도록 ‘성모경’ 외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이따금씩 ‘이것들아!’ ‘이것들아!’ 하고 어린것들을 들여다보며 혀를 차는 소리도 들렸다.
이튿날, 그러니까 오월 초하릇날 새벽, 아내는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얼굴로 익이 있는 건넌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순간 익의 두 눈에는 이상한 불이 켜지며 가슴에 방망이질이 일어났다.
아내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당신이 나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살아도 나는 그것까지 용서할 수는 있어요. 그렇지만 천주님 앞에서 맹서한 신성한 계약을 나는 당신 때문에 취소하기는 싫어요. 그렇게 하면 당신이 죄를 짓는데 내가 협력한 것이 돼서 나도 천주님 앞에 벌을 받아야 해요. 내 조금도 탓하지 않을 테니 같이 살고 싶은 사람 있거든 정해서 살아요.”
아내는 말을 마치자 또 눈을 감으며 무엇을 몇 마디 입 속으로 외고 성호를 놓았다.
익은 그날부터 사흘 동안 음식을 끊고 자리에 누워 있었다. 이렛날 밤에 그는 돌연히 아내의 목을 눌렀다. 아내는 눈을 떠서 익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으나 항거하지는 않았다. 아내는 다시 눈을 감았다. 조금 있으니 아내의 얼굴빛이 변했다. 익은 당황히 손을 떼었다. 한 시간쯤 지난 뒤 아내는 일어나더니 또 눈을 감고 기구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그날부터 아내의 음성은 언제나 잠겨 있었다. 그날 밤 그의 아내는 역시 잠긴 목소리로, 그러지 않아도 자기는 천주님께 자기를 빨리 천주님 앞으로 데려가줍시사고 기구를 드리는 중이니 잠깐만 더 기다려보라고 하였다.
열흘날 익은 한 사백여 권이나 되는 그의 책을 다 팔았다. 출판사에는 사표를 내고 사무를 정리했다. 그리고 그때까지의 그의 저작권 전부를 어느 출판사에 넘기고 약간의 금액을 얻는 데도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도합 십구만 원의 여비가 변통되었다. 그러나 열나흗날까지 천주님께서는 그의 아내를 ‘데려가주시지는’ 않았다. 그는 조그만 트렁크에 양복 한 벌 그리고 현금 십사만 원을 넣었다. 손가방에는 비누와 칫솔과 타월과 손수건과 그리고 면도칼과―평소에 쓰던 것을 모두 그대로 넣었다.
아내는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느라고 어정어정하면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모양으로 이따금씩 익이 짐 챙기는 쪽을 흘낏흘낏 눈을 떠 보곤 하였다.
순은 마루에다 여럿이 먹을 둥그런 밥상을 보고 있었다. 아내는 김치 그릇을 들고 나오더니, 순이 찌개 그릇을 밑받침 없이 그대로 상 위에 놓은 것을 보자 깜짝 질색을 하며,
“조런 빌어먹을 계집애 상을 버리려고 찌개 그릇을 마구 놓아? 왜 밤낮 일러주는 걸 잊어먹느냐 말야!”
이렇게 호통을 놓는다, 이 상이란 것이 오 년 전에 일금 이 원에서도 이십 전을 빼고 산 가장 헐값짜리 칠상〔漆床〕으로, 살 때부터 흠이 있어서 특별히 헐값으로 산 것이지만, 그동안 아침저녁 써먹어서 지금은 칠도 거의 벗겨지고 웬만하면 부서져서 아궁이에라도 넣어버릴 폐물인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이렇게 끔찍하게 질색을 하는 것은 물론 지지리 가난한 살림을 해오는 데서 얻은 습성이겠지마는 또 일방 무엇에든지 화풀이를 하고 싶도록 염통이 부풀어오른 증거이기도 하다. 익은 마지막으로 또 그와 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시치미를 뜩 떼고 짐을 들고 나서며 그의 아내에게 현금 오만 원을 주며 자기는 여행을 떠나노라고 했다. 그리고 아이들 셋에게는 하나씩하나씩 손목을 쥐어 보고 안아서 볼을 비벼주며 맘속으로 하직을 했다. 익이 가방을 마루 끝에 내놓고 구두를 신으려 했을 때 그의 아내는 두 눈에 눈물을 담은 채 하룻밤만 더 생각해볼 여유를 달라고 했다. 익은 노여움이 가득 찬 두 눈으로 그의 아내를 흘낏 보며 그저 고맙다고 인사만을 했다.
영우(永祐)가 먼저
“아버지 안녕히 다녀오세요.”
하고 절을 했다. 그러자 윤경(允卿)이와 성우도 영우의 흉내를 내었다.
익은 이날 밤을 여관에서 자고 이튿날 저녁 때는 부산에 내렸다. 부두 가까운 곳에 여관을 정하고 보이를 통하여 밀항에 대한 예비 지식을 준비해두었다. 내일 밤이면 떠나는 배가 있다고 했다.
바다를 보자 몹시 초조한 맘이 들며 한시바삐 지애가 보고 싶었다. 외로운 다다미방에 병든 몸으로 밤낮없이 자기를 기다리고 누워 있을 지애를 생각하니 다시금 가슴이 메어지는 듯했다.
'아, 그리운 지애, 이제 며칠만 더 참아라. 나는 영원히 너의 곁에 있을 것이다!’
익은 혼자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어도 보았다. 그러나 무엇인지 그의 가슴속에는 납덩이가 든 것처럼 뭉클하게 무겁고 아픈 것이 있었다. 자기는 이렇게 해서 지애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은 잠시도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와 동시 그의 아내에 대한 노여움의 불길은 그의 모든 신경을 항거와 복수의 구렁텅이로만 몰아넣고 있었다. 지애가 얼마나 실망하며 자기들의
불운을 슬퍼할 것인가. 타협과 비굴을 모르는 지애의 성격이 이것을 받으려 할 것인가. 아니 지애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문제다, 지애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선생님은 그렇게 사실 수 있어요? 지애의 목소리는 지금도 그의 귀에 또랑또랑 들리는 듯했다, 그렇다. 자기는 그렇게 살려고 하지는 않았다. 이혼이 안 되면 지애를 놓아주려고 했다. 그 가슴속에 언제나 넣여 있는 미국제 수면제(세콜나사쥼)로 지애가 편안히 잠들 수 있게, 저어 말대로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잊을 수’ 있게. 익은 지애를 차라리 놓아주려고 했다. 지애를 꼬여서 도망쳐볼 생각은 언제나 타기(唾棄)와 혐오(嫌惡)로써 말소되었다. 그러나, 이제 결과에 있어 자기는 그 타기와 혐오를 취하게 되지 않는가. 끝까지 헤어져주지 않으려는 아내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거나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당연한 권리요, 자기를 배반하려는 사람을 위하여 그가 그의 당연한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는 이유가 있을 수 없었다. 다만 익이 지애를 사랑하되 그 감정을 합리적인 행동에까지 옮겨야 한다는 그의 성격과 그의 욕심이 문제였다. 사랑하되 그것이 정신면에만 그칠 수 있다면, 행동하되 그것이 감정에만 압도될 수 있다면, 처음부터 지애가 일본으로 건너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며, 익이 이렇게 아내의 목을 누르기까지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었다. 한순간도 자기의 감정을 자기의 이성(理性)의 감시와 비판에 맡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러면서 끝까지 버리지 못하는 그의 감정이 문제였다. 그러한 익에게 지애가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끝까지 잊을 수 없고 한순간도 쉴 수 없는 감정의 불길이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아, 지애, 지애…… 익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튿날 밤 밀선은 떠나지 않았다. 다시 하루가 연기되었다는 것이다. 익은 여러 날 수면 부족과 신경 흥분으로 몸이 극도로 쇠약해졌다는 것을 깨닫고 그날은 저녁부터 자리에 들어 있었다. 열두시쯤 눈을 붙였는데 또 지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하기에 돌아다보니 수박색 저고리에 흰 옥양목 긴 치마를 입은 지애가 잠방이에 셔츠를 입은 영우의 손목을 잡고 대한문 앞에 서 있었다. 영우의 한쪽 손에는 개나리꽃이 들려 있고 지애는 그것을 자기의 머리에도 꽂고 있었다. 그러자 어느덧 윤경이와 성우도 대한문에서 나오고 있었다.
“너희들 모두 어떻게 알고 왔니?’
익이 뛰어가 성우를 안으려 했을 때, 익의 아내가 덕수궁에서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아내는 겸연쩍은 듯이 신들신들 웃고 있었다.
‘앗!’
익은 가슴이 꽉 막혔다.
익은 불에 덴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 겐지 알 수가 없었다. 심장인지 뇌신경인지 어디에 고열의 전기가 통한 듯했다. 일찰나도 견딜 수 없는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 물론 익은 이미 문을 열고 뜰로 뛰어나와 있었다. 변소로 뛰어갔다. 도로 방으로 뛰어왔다. 다시 변소로 뛰어갔다. 다시 방으로 뛰어왔다. 또다시 변소로 뛰어갔다. 또다시 방으로 뛰어왔다. 익은 이불을 뒤쳤다. 또 요를 뒤쳤다. 책상 서랍을 찾았다. 책상 서랍이 없다. 서랍 속에 언제나 들어 있는 그 동그란 통의 치약도 새카만 자루의 면도칼도 보이지 않는다. 트렁크를 둘러엎었다. 트렁크에서 지폐와 양복과 내복이 쏟아졌다. 손가방을 털었다. 손가방에서 타월과 손수건과 칫솔과 치분과 그리고 그 새카만 자루의 면도칼도 나왔다. 면도칼을 집어 들었다.
……익! 차가운 얼음이다. 차가운 얼음물이 전신에 흘러든다. 뼈가 시리다. 아아, 시려라! 시려라! 시원해라!……
이튿날 아침 보이가 방문을 열었을 때 온 방엔 피가 흥건하고 익은 책상(서람 없는) 위에 엎드려 있었다.
지폐 뭉치와 양복과 내복과 타월과 손수건과 치분 칫솔 면도칼 그런 것이 모두 피 속에 젖어 있었다. 이불도 요도 피투성이였다. 조금 뒤 달려온 순경은 오히려 심상한 듯이
“흠 동맥 출혈!……왼 팔목을 끊었군!”
하며 책상 위에 엎드려진 익의 얼굴을 잦혔다. 순간, 그것을 본 사람들이 한꺼번에 몸이 ‘오싹’했을 정도로, 익의 부릅뜬 두 눈에는 무서운 노여움의 불길이 상기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끝-
2016년 5월 17일 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