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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길도 예송리는 임철우에게
모성의 고향같은 공간이다. 그는 80년 5월 이후 예송리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다스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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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섬’ 전문) 임철우의 소설 《그 섬에 가고 싶다》에 등장하는 섬은
정현종 시인이 노래한 섬과 같은 의미선상에 놓여진 공간이다. 그 섬 안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만들어진 또 다른 섬이 있고, 그곳은 이상을 향해 뻗어 있으면서도 버젓한 현실의
공간이다.
임철우 소설이 간직하는 자산은 기억의 뭉치들이다. 그의 소설에 유독 바다와
섬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자라온 환경에 기인한다. 그는 유년의 대부분을 고향 완도의 외딴 섬
평일도에서 보냈고, 80년 오월 이후 영혼이 공백상태에 빠져든 10년 동안의 시간은 보길도와 제주도에
몸을 의탁하며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다스렸다. 임철우가 써낸 대부분의 소설은 이런 자전적 기억의
토대 위에 놓여져 있다.
90년대 초반 세상에 나온 《그 섬에…》는 낙일도라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섬사람들의 삶이 때로는 동화처럼, 때로는 풍랑 같은 격정으로 그려진다. 낙일도는 현실
속에 존재하는 두 개의 섬이 합쳐져 만들어진 상징적 공간으로 임철우에게는 두 섬 모두 ‘고향’이라는
공통분모 위에 놓인다. 하나는 유년의 고향 평일도이고 다른 하나는 임철우가 “모성의 고향”으로 칭하는
보길도다.
“평일도에서 살던 시절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나고 자란 고향 평일도를
생각하면 상처와 결핍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런 사정 때문일 것이다. 85년부터 살았던 보길도는
고향에 대한 묘한 착각을 일으킨다. 언제나 따스한 숨결로 나를 품어준 모성의 고향은 오히려 보길도에
가깝다.”
상추 한 포기에 큰 싸움 나는
섬 임철우에게 보길도의 바다는 삶의 숨결을 새롭게 일깨워준 공간이다. 소설이
<모든 인간은 별이다>는 동화적 상상력으로 시작하는 것도 섬의 따스한 생명력에 기인한다.
그는 보길도라는 공간을 통해 80년 오월 광주가 남긴 상처를 치유했으며 그가 써낸 대다수의 소설도
보길도 예송리에 있는 집의 기운을 받아 탄생했다.
지난 85년 임철우가 처음 보길도
들었던 무렵 그 섬은 세상과 저만치 떨어져 낮게 가라앉은 공간이었다. 섬 전체를 돌아도 아스팔트
포장된 길을 찾을 수 없었고, 섬을 채우고 있는 집의 팔할이 초가였을 정도로 가난한
살림살이들뿐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보길도는 소설에 등장하는 공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90년대 초반부터 보길도가 여름 한 철 관광지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섬에 있는 거의 모든
집들이 민박 간판을 달고 있다. 전통의 초가 지붕은 단 한 곳도 남아있지 않으며 현대식으로 지어진
대형 건물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변화는 서막에 불과하다. 인접 노화도와
보길도를 잇는 연도교가 완공되면 뱃길이 두 배 가까이 빨라지고, 보길도는 육지사람의 발아래 놓일
운명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그 섬에…》에 등장하는 넙도댁,
벌떡녀, 업순네 등 억척으로 무장했지만 지극히 순박한 촌 아낙들의 모습을 만나볼 수 없다는 거였다.
소설이 보길도에 사는(정확히 말하자면 보길면 예송리이다) 사람들의 걸쭉한 이야기들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음에도 그들을 만나볼 수 없는 이유는 이미 유명 관광지로 변모해버린 보길도의 현재에서 찾을
수 있다.
“개발이 얼마나 인간의 본성을 추악하게 파괴시키는지 보길도의 지나온 시간들을
들여다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불과 80년대만 해도 섬에 있는 모든 것이 서로에게 공유됐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몰리는 피서철이면 남의 밭에서 상추 하나만 뽑아도 큰 싸움이 일어난다.”
공동우물에 담긴 인간학 《그 섬에…》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아서는 안 될 것이 예송리에 하나밖에 없는
공동우물이다. 섬은 물이 귀한 탓에 눈만 뜨면 아낙들이 우물로 몰려 와 밥 짓는 물을 긷거나 밀린
빨래를 해결하며 무수한 음담을 주고받는다. 어느 때는 마누라 매타작을 밥먹듯이 하는 남정네를 도마에
올리고 몇 토막을 내기도 한다. 일테면 그 우물이 아낙네들에게는 지친 삶을 추스르는 활력의 공간인
셈이다.
우물을 통해 고달픈 삶의 아픔을 풀어내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걸은 입담으로
눈두덩이 파랗게 멍든 상대를 위로하기도 하고, 서로의 머리채를 부여잡고 한바탕 난장질을 펼치는 싸움
끝에 간드러진 웃음을 건져내기도 한다.
<“재 넘어 가기도 귀찮은디, 그냥 우리집
마당에서 할라요.” “거참 참말로 볼만한 굿이겄네 그랴. 마당 가운데서 자네들 두 내외가 절구공이를
쑥 집어넣어가지고설라무네, 오순도순 쿵더쿵 쿵덕 신나게 떡을 치는 꼴이 말여! 이히히힛.” 기어코
빨래터의 모든 아낙네들이 허리를 부둥켜안고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 섬에…》는 그렇게 바다에 남편을 수장시키고, 거친 남정네들의
등쌀에 매일 북어가 되는 섬 아낙네들의 아픔을 우물이라는 공간을 통해 해소시킨다. 누구는 남편 잘못
만나 힘든 김양식을 도맡아 하고, 또 누구는 첩 살림 차린 남편에게 발갛게 달아오른 화로를
뒤집어엎고는 묵사발이 되는 처지지만 아낙네들만의 공간인 우물에서만은 모두가
평등하다.
섬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공동우물은 지금도 여전히 예송리에
존재하고 있다. 다만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집집마다 수도펌프가 만들어져 아낙네들이 우물로 모일
일이 없어졌고, 아낙네들이 걸쭉한 입담으로 마음의 회포를 푸는 일도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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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넙도댁이 첩살림차린 남편에게
화로를 뒤집어엎은 꽃섬. 실제 지명은 예작도다. |
| 보길도 사람으로 채워진 소설 《그 섬에…》가 세상에 나온 시점은 90년대 초반이다. 《그 섬에…》는 이전에
그가 써낸 소설들과는 일정 부분 거리를 가지고 있다. 80년대 임철우가 써낸 소설들은 대부분
거대담론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한국전쟁의 아픔과 80년 오월은 그의 소설을 관통하는 가장 큰
획이었으며 어찌 보면 그가 소설가의 삶을 살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임철우의
변화는 90대 초반 우리 소설 문단에 불어닥친 개인의 소소한 일상 기록하기와는 변별점을 갖는다. 그는
다만 내면을 힘을 견고히 하기 위해 오랜 기억 저편에 묻혀진 고향을 현재의 시점으로 끄집어 올렸을
뿐이다.
임철우의 소설 가운데 《그 섬에…》와 같은 기조를 유지하는 것은 《등대 아래서
휘파람》 정도인데 이 작품도 장편 《봄날》이 고인 물처럼 막혀 있던 시간을 이용해 씌어졌으며 평일도
이후 자신의 삶을 기록했다 . 《그 섬에…》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예송리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실에 소설적 장치를 보탠 것이다. 자신을 덮친 옷장수에게 <“내 속치매, 내 빤쓰가
다 찢어져부렀다이! 와이고오, 어쩌까! 내 빤쓰 물어내”>라고 소리치던 옥님이도, 온몸이 묶인
채 육지 요양소 실려나간 넙도댁이나 업순네도 모두 현재까지 보길도에 살고 있거나 살았던 사람들이다.
남편의 첩 살림과 매타작에 정신이 나간 넙도댁과 업순네가 공통적으로 불렀던 남도의 한
‘목포의 눈물’까지도 우연처럼 실제 있었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소설에 나오는 대부분의 인물이
보길도 사람”이라는 것이 임철우의 말이다.
<얘야. 잊지 말아라. 예전에 너는
별이었단다. 저 한량없이 넓고 높은 하늘에 떠서 반짝이고 있다가, 어느 날 땅으로 내려와 우리집에
다시 생겨난 그런 귀하고 소중한 별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이.
알았지야?>
《그 섬에…》는 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별로 끝을 맺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소설 자체가 세상 모든 인간들에게 던지는 희망의 노래인 것이다. <모든 인간은
별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품안에서 들을 때는 사실로 인정되는 그 말이 어른이 된 후에는
오로지 상상의 산물로 치부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별에 대한 그리움까지를 부인하지는 못한다. 믿을
수 없거나 혹은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랬으면 하는 바람, 《그 섬에…》는 그 희망에
대한 기록이다.
보길도 해안을 거닐며 임철우는 이미 지나간 시간 속에 서 있는 섬을
끊임없이 되새겼다. 소설을 가득 채운 섬사람들의 질펀한 웃음과 투명한 눈물도 따지고 보면 지나간 시간
속에 남아 있는 ‘희망’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임철우는 평생을 떠돌며
살았다. 80년 오월이 남긴 절망감은 그에게 시도 때도 없는 눈물
로 변했고, 어딘가로 훌쩍
떠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먼저 떠난 자
들에 대한 부채의식의 표현인
장편 《봄날》의 절반은 분노로 나머지 절반은 시대에 대
한 요구로 완성됐다.
<눈부시게 맑은, 늦은 봄날의 아침이었다>는 봄날의 마지막 문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임 철우는 꼬박 10년의 시간을 죽은 영혼들과 교류하며 살았다. 82년 어느
봄날 “하느님. 제 가 그 날을 소설로 쓰겠습니다. 목숨을 바치라면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라는 간절한 기도로부터 시작한 《봄날》은 임철우 자신만이 아닌 망월동에
누워있는 망자들과 함께 씨줄 날줄을 엮었다.
“무엇 때문에 그토록 지긋지긋하게 매달렸는지 내 스스로도 언뜻
이해할 수 없다. 차라리 편집증이라고 해야 할 《봄날》은 오롯이 내 것만이 아니다. 나는
다만 수많은 원혼들의 육성을 대신 전해주는 무당의 역할만 맡았을
뿐이다.”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돌아섰던 자신의 비겁함을 갚아내기 위해
임철우는 소설을 쓰는 동안 단 하루도 편한 잠을 자보지 못했다. 심지어 친구들과 술 한
잔을 마시는 동안에도 내내 직무유기에 대한 강박증에 시달려야 했다. 마음의 빚은 결국
치열함으로 바뀌었고 《봄날》은 광주시민들 뿐만 아니라 공수부대원들의 공포까지도 한 데
엮어냈다. 자료를 찾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정신병원과 군부대의 기밀문서까지
훔쳐봤다. 80년 오월에서 18년의 시간이 지난 1998년 《봄날》은 그렇게 풍문으로만
광주의 소식을 전해 들었던 사람들의 손에 놓여지게 된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듬해 완도 평일도에서 태어난 임철우는 전남대
영문과를 나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개도둑>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이후
《아버지의 땅》 《그리운 남쪽》 《달빛밟기》 등의 소설집과 《붉은山, 흰새》 《그 섬에
가고 싶다》 《등대 아래서 휘파람》 《봄날 》등의 장편소설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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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섬에 가고 싶네요 .....시인이 아니드라도 시인이 되고 시퍼라 ...이가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