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민엽이 할머니 집에 품앗이를 갔다. 비닐하우스에 비닐을 씌우는 일이다. 바람이 불면 비닐을 씌우는 일이 곱절로 힘들기 때문에 해가 뜨자마자 일을 시작했다. 아침에 바람이 덜 불기 때문이란다. 이것도 삶의 지혜다. 아침도 거른채 일을 시작 했다. 오늘 따라 안개가 짙게 끼었다. 차에서 비닐을 내려서 듬성듬성 옮긴다. 먼저 하우스 안쪽에 씌울 비닐을 펼쳐 하우스 기둥 사이로 끼운다. 다음에 바깥에 씌울 비닐을 펼쳐서 씌우기 시작한다. 하우스 길이만큼 펼친 뒤에 한쪽 끝을 반대쪽으로 끌고 가 하우스 끝 쪽부터 펼치면서 한사람이 뛰어가면 맞은쪽에선 앞서 뛰어가며 비닐이 잘 펴지도록 비닐의 접힌 곳을 털어서 펴준다. 비닐을 씌운 뒤에는 흙을 한 삽씩 퍼서 비닐이 날아가지 않도록 비닐 위에 붓는다. 예전엔 사람들이 삽으로 흙을 퍼서 하우스 양옆의 비닐 끝단 위를 다졌단다. 요즘은 로터리로 하우스와 하우스 사이를 밀고 가면 도랑을 파며 흙을 덮어준다. 서너 번 로터리가 지나가자 비닐을 단단히 덮어준다.
우리 마을은 넓은 평야지대가 아니라 논농사나 밭농사를 그저 식구들 먹고 살고 조금 남을 정도만 짓는다. 과수원을 크게 하는 곳도 없고, 하우스 농사도 짓지 않는다. 젊은 사람도 없고 산과 계곡을 낀 곳이라 크게 농사를 짓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하지만 민엽이 할머니가 사시는 의령은 농지 정리가 잘되어 있고 평야지대라 농사를 크게 짓는다. 여름에 나락 농사를 지으면 겨울엔 논에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참외 농사, 수박 농사를 짓는다. 땅이 쉴 짬이 없다. 그러다보니 비료도 우리 마을보다 많이 주어야 농사가 된단다. 하우스 농사는 큰 돈을 쥘 수 있지만 그만큼 빚도 많단다. 그 빚에 힘이 들어도 하우스 농사를 짓지 않으면 안 된단다. 빚으로 하는 농사는 멈추는 순간 이자 갚을 일도 막막해지니 어쩔 수 없이 돈이 남든 밑지든 사시사철 농사에 목을 맨단다. 참외를 짓고 나면 수박을 심고 하다보면 하우스 하는 사람들은 살이 쑥 빠진단다. 그러다가 나락을 심고 나면 살이 좀 붙다가 다시 나락 추수를 하고 하우스를 하면 살이 빠지고를 거듭한단다.
땅도 사람도 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쉴 수 없다는 것은 삶을 꾸려 나가는 것이 아니라 끌려가는 거다. 자본에 늘 소외되며 노동을 하듯, 제 땅이든 소작이든 농사도 돈에 끌려가면 이미 노예가 되는 거다. 사람만이 아니라 땅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부화장의 달걀이 스물 네 시간 내내 전등불에 시달리듯 땅도 봄여름가을겨울 없이 시달려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철도 아닌 과일을 만들다 보니 땅도 열을 받아 제 맛을 낼 수 있게 하겠는가.
오전 열시가 되어 아침을 먹고 텃밭 옆 감나무로 갔다. 대나무 끝단을 안쪽으로 비스듬히 잘라 가운데를 자른 뒤에 잘린 끝을 줄로 단단히 묶어 감을 딸 장대를 만들었다. 감이 달린 가지를 장대 사이 틈에 끼워 비틀면 가지와 함께 감을 딴다. 감이 꽂힌 장대를 쑥 옆으로 내리면 겨리가 빼내 바구니에 담는다. 내 하는 것이 재밌어 보이는지 겨리도 해보겠단다. 하지만 마음뿐 무거운 장대를 겨누지 못하고 허우적댄다. 내가 함께 잡아 주어 감을 하나 따더니 그도 힘든지 감 따기는 포기한다. 큰 광주리와 작은 대바구니 가득히 감을 따 돌아오니 좌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오늘 뽑았다고 배추 씻은 것을 한웅큼 주시며 점심에 쌈을 싸 먹으란다. 나도 알이 굵직한 감을 골라 한 소쿠리 갔다 드렸다. 며칠 전부터 좌촌 할머니가 당신의 밭에 감을 따 우리도 먹고 인부들 주게 몇 알을 남겨 달라고 했다. 이제 나이도 있고 밭농사도 바쁘다보니 감 딸 짬도 여력도 없으신가 보다.
따온 감을 서울의 겨리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댁에 보낼까 하다 곶감을 만들기로 했다. 곶감을 만들어 설날에 고마운 분들께 선물 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일 것 같다. 내일 민엽이 엄마와 아내가 감을 깎아 처마에 매달기로 하고, 저녁에 마산 할머니 댁에 떡국을 먹으러 갔다. 오늘은 마산 할머니 댁 아들이 중국에 사는 조선 아가씨를 신부로 맞이한 날이라 저녁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떡국을 먹기로 했다. 하루 종일 바쁘게 돌아다니다 보니 배가 촐촐하다. 떡국이 더욱 맛있을 날일 것이다. (2003.11.2)
첫댓글 보고간다
오돌시인이 장대를 들고 겨리와 함께 감따는 모습이 선합니다. 쉰듯 째지는 목소리로 겨리를 얼마나 야단쳤을까, 야단치다가 겨리 눈에 눈물이 해서야 잘못을 깨닫고 '내가잘못했다'고 행복하지는 않았을까. 동네 또 경사가 났으니 얼마나 많은 정담이 추녀끝을 울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