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세계 공용어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외국어 전파담 : 로보트 파우저 저
https://youtu.be/9JnvmnzRbIA
책을 펴내며 / Preface /
01 외국어 전파의 첫 순간, 그 시작에 관하여
중세 이전, 국가라는 개념의 등장 이전 외국어는 어떤 의미였을까. 외국어 전파의 출발은 문명권마다 다른 듯 같았다. 최초의 학습 대상은 말이 아닌 문자였다.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을 만날 일은 거의 없었다. 주로 문헌을 읽기 위해 외국어를 배웠다. 그들에게 외국어란 어떤 의미였으며, 그 전파의 양상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02 제국주의와 문화 이식의 첨병, 외국어
외국어는 국가 개념의 탄생과 연동된다. 르네상스 이후 유럽 각국의 지배층은 먼저 국어를 결정하고 보급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제국주의의 깃발을 들면서 언어는 무역을 위해, 선교를 위해 이곳에서 저곳으로 퍼져 나갔다. 침략과 약탈이 동반되었다. 외국어 전파의 과정은 평등과 평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외국어 전파 과정, 그 이면에는 어떤 의미가 감춰져 있는가.
03 혁명과 전쟁, 그리고 외국어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전환기, 역사는 온통 혁명과 전쟁으로 점철되었다. 언어는
시대를 반영한다. 언어는 단지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었다. 민족 정체성의 상징, 국가 결속의 강화 장치, 국가의 힘을 강제하는 수단이었다. 지배국은 피지배국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국어를 강요했다. 외국어 전파는 언어를 둘러싼 강요와 투쟁, 저항과 분투의 역사였다.
04 외국어 전파의 역사는 곧 학습 방법의 변천사
어른도 노력하면 외국어를 잘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약 100여 년 전부터 나왔다. 산업혁명과 제국주의로 인해 다른 언어권과의 접촉이 잦아졌다. 강대국의 언어는 신분 상승의 도구로 여겨졌다. 글만이 아닌 말을 배울 필요가 대두되었고, 새로운 학습 방법이 등장하고 사라지고 다시 등장했다. 언어에 부여된 권위는 곧 국가의 힘이었다.
05 신자유주의 시대, 영어 패권의 시대
글로벌 시대의 도래로, 제국을 건설하려던 국가들은 신자유주의 물결을 주도했다. 자국어를 널리 퍼뜨리는 국가가 곧 세계 경제 질서를 주도했다. 각 국의 발 빠른 노력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승부는 이미 결정되었다. 대영제국 시절부터 씨 뿌려진 영어의 패권은 최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에 의해 더욱 강고해졌다. 영어는 국제공통어의 권위를 획득했다. 한편으로 국어와 외국어의 경계도 희미해졌다. 21세기 외국어는 어떤 양상으로 전파될 것인가.
06 21세기, 외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의 의미
권력의 획득과 자본의 축적은 외국어 학습의 강력한 동기였다. 주류 언어는 매우 유의미한 상징으로 작동했다. 문화권마다 서로 다른 주류 언어가 있었다. 이제는 대륙의 경계를 넘어 영어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과연 영어의 패권이 꺾일 날이 올까? 그러나 인류는 새로운 국면 앞에 다다랐다. 영어가 독점하던 지위는 인공지능이 차지할 것이다. 이제 외국어 전파의 방향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어떻게 그 방향을 만들어나가야 하는가.
저자 로버트 파우저 Robert J. Fouser 독립학자
그는 각국 도시 생활자다. 미국에서 태어났으나 미국 밖에서 주로 살았다. 고교 시절 일본에 두 달 머문 것을 계기로 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하면서, 기회가 닿는 대로 멕시코와 스페인, 일본, 한국 등에 머물며 그 나라 언어를 익혔다. 대학 졸업 후 한국에서 한국어를 배웠고, 미국으로 돌아가 대학원에서 응용언어학을 공부했다. 라틴어와 소멸해가는 북미 선주민 언어를 공부한 것이 이 무렵이다. 대학원 졸업 후 다시 한국에 온 그는 고려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남산 독일문화원에서 독일어를, 『맹자』를 읽으며 한문을, 시조時調를 읽으며 중세 한국어를 익혔다. 언어에 대한 호기심은 무척이나 왕성하여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이곳에서 이번에는 프랑스어를 익혔다. 이후 1995년 아시아로 귀환한 그는 교토, 구마모토, 가고시마 등의 대학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가르쳤다. 미국인이 일본에 살면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몹시 드문 풍경의 주인공이 된 그는 이 와중에 몽골어와 중국어를 배웠다. 2008년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부교수로 임용되어 서울로 거처를 옮긴 그는 그저 이방인으로 머물지 않았다. 한국 문화를 사랑하다 못해 한옥 관련 책을 영어로 쓰기도 하고, 직접 ‘어락당’ 語樂堂, 말을 즐기는 집이라는 당호의 한옥을 지어 살기도 했으며, 한옥 보존에 관한 여러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기도 했다. 새로운 삶을 위해 2014년 교수직을 떠나 2018년 현재 미국에서 독립학자로 지내며 집필 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그는 새로운 참여형 외국어교육법 개발에 골몰하는 한편으로 1980년대부터 다녀온 여러 도시의 골목길 답사 기록과 정취를 담은 책을 준비하고 있다.
1961년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 출생. 미시간 대학교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응용언어학 석사 과정을,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과정을 밟음.
1988년부터 1992년까지 고려대학교 영어교육과 객원 조교수 등으로, 1995년부터 2008년까지 일본 교토 대학 외국어 교육론 강좌 부교수, 가고시마 대학 교육센터 교양 한국어 부교수 등으로,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부교수로 재직함.
주요 저서로 『서촌 홀릭』, 『미래시민의 조건』, 『서울의 재발견』(공저),
『Hanok: The Korean House』 등이 있고, 『한국문학의 이해Understanding Korean Literature』(김흥규 지음)를 영어로 옮긴 바 있음.
『동아일보』, 『한국일보』, 『중앙선데이』, 『넥스트 데일리』 등 국내 지면 및 영자 신문 『코리아헤럴드』, 『코리아타임스』, 『코리아중앙데일리』 등에 꾸준히 칼럼을 게재해왔음.
2012년 한국어 교육과 관련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장을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