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에 대한 일화는 엄청나게 많다. 불당에서 한 달 동안이나 여인과 함께 지내던 경허를 두고 만공은 발을 동동 굴렀는데 나중에 여인이 나오는 것을 보니 얼굴이 다 뭉개진 문둥병환자였더라는 일화도 있고, 아름다운 아가씨가 강가에서 경허 일행을 만났는데 스님들에게 업어서 건너줄 수 없겠느냐 고 했을 때 경허의 제자들은 정색을 하며 처녀에게 화를 냈다는데, 경허는 아무 말도 없이 그 처녀를 업어서 강 건너편에 내려주었다고 한다. 그에 제자 중 하나가 화를 내며 불가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땡중이 아니냐고 따졌을 때 경허 曰, “이놈아! 난 그 처자를 한참 전에 강가에 내려놓고 왔는데, 네놈은 아직도 그 처자를 업고 있느냐?”.....하는 일화하며 많은 일화가 전해진다. 또 어느 날 밤, 만공이 등불을 켜고 큰방에 들어가니 경허가 누워있었는데 가만히 보니 경허의 배 위에 시커먼 독사가 또아리를 틀고 있길래 크게 놀라 “스님!, 스님 배위에 독사가 앉아 있습니다!” 소리쳤다는데, 그때 경허는 눈 하나 깜빡이지도 않고 담담히 “실컷 놀다가 가게 그냥 내버려 두어라” 라고 했다. 그 뒤 독사가 가고 난 뒤에 경허는 만공에게 “큰일을 당했을 때는 마음에 조금도 동요됨이 없어야 공부가 되느니라” 고 가르쳤다고 한다. 그 외 일화는 부지기수이다.
근세 한국불교의 중흥기를 열었던 성우 경허스님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근세불교는 그야말로 얼마나 적막강산이었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이는 경허 큰스님을 ‘한국의 달마대사’ 라 칭송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제2의 원효대사’로 추앙하기도 한다. 그 선승 경허가 있었던 곳이 바로 서산 천장사이다. 충남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 1번지이다. 이곳은 경허가 17년을 머물렀던 곳이다. 지금도 길이 구불하고 대중교통편도 없다. 장요리까지 버스를 타고 와도 40분 이상이나 넘게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 절 근처에서는 가파른 산길을 숨차게 올라야 한다. 불가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숙일만한 선지식들이 스쳐 지나간 하늘이 숨겨둔 절 천장암. 하지만 절은 초라하다. 문화재라고 할 만한 유적도 없다. 법당은 낡았고, 그 앞에 쓰러질 듯 세월을 안고 살아온 탑 한 기뿐이다. 경허가 장좌불와했던 작은 방 원성문이 그대로 있고, 최근 그 앞에 경허탑이 조성됐다. 그 옆방에는 수월, 혜월, 만공스님이 경허를 시봉하며 머물렀던 방이 있다. 최근 경허 입적 100주기를 맞아 경허기념관을 짓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