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도 모른다> 일본, 드라마, 2004년, 고레에다 히로카츠 감독
아름답고 정감 있게 시작해 점점 처절해지더니 거대한 슬픔으로 끝나는 영화다. 버려진 아이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감독의 냉정한 시선이 얄밉도록 섬세하다.
1988년 일본 '나시 스가모의 버림받은 4남매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서로 다른 아버지에게서 난 4명의 아이들이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고 학교에도 다니지 않다가 결국 엄마에게서 버림받은 후 6개월 동안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다가, 막내 여동생이 죽음으로써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지만, 같은 동의 이웃들은 큰 아이 외 세 아이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며 나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도시 한복판에서 가난에 무너지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역시 괴롭다. 순진무구한 눈빛과 웃음을 가졌기 때문에 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무너지기 때문에 더욱.
우리 사회에도 이런 사건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무일푼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이 도시에선 정글보다 어렵고 낯선 일이라는 걸 실감하면서 봤다. 도시인이 냉담하려고 해서 냉담한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너무나 튼튼한 시간표와 담으로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돈으로 행복과 필요를 충당하고 완벽히 차단된 자신의 공간으로 피신한다. 진짜 무장해제된 채 남을 보는 시간이 전무하다. 직업, 직책, 돈 등 뭔가를 걸치고 있어야 통화가치를 부여받는다는듯.
지금은 사라졌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지하철에서 앵벌이 꼬마들이 많았다. 아기를 엎은 소년, 전철 안에서 온몸을 던지며 구걸하던 소년, 시커먼 맨발에 슬리퍼를 끌며, 그때 그 아이들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지나치게 조숙하고 차가운 시선, 더 이상 상처받을 수 없다는 듯 닫혀진 유리창같이 튕겨질 듯 날카론 눈빛! 영화를 보며 그 눈빛이 자꾸 생각났다.
가난이 무엇일까?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정상가정과 안정이란 실은 얼마나 냉혹하고 불완전한 것인가?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판단하고 행동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직장이 있어야 하고, 학교에 다녀야 하고, 부모가 있어야 하고, 돈이 있어야 하고 …… 있어야 하고 있어야 한다. 있어야 할 것이 너무 많은데 모두 그리고 달려가고 똑같아지니 그래야만하고 그것이 당연한 조건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방식 다른 가능성, 다른 삶을 통 상상하지 못한다.
하나 둘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진다. 돈이 떨어지고, 먹을 것이 없어지고, 가스가 나가고, 전기가 끊기고, 수도가 끊기고 무덥고 어두운 방안에 널부러진 아이들. 영화는 그걸 관객에게 다 지켜보라고 말한다. 몰랐던 것이니 이제 보라고.
결국 ‘아무도 모른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비극이 벌어지고, 누군가는 처절하게 고독해서 죽어간다. 그렇지만 ‘몰랐어’라는 말로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기엔 우리는 너무 잔인하게 행복하지 않은가? 때론 안온하고 평범한 일상 자체가 남에게 폭력이 되고 있다니, 우리의 쉬운 웃음 속에 잔인한 비수가 숨겨 있다니.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우리가 지향하는 도시적 라이프스타일은 분명 본질적 삶의 방향으로 향하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그것을 방해한다. 하지만 우리는 벌써 도시 밖의 삶을 가정할 수 없다.
아스팔트 사이 피어난 잡초씨를 받아 빈 컵라면 통에 심고, 하늘로 날아다니던 홀씨을 잡으며 놀던 아이들의 시선과 마음에서 커다란 것을 배울 수 없다면, 우린 이미 불가능한 사람들일 것이다.
줄거리
가을. 도쿄의 한 작은 아파트에 네 남매와 젊은 엄마가 이사를 온다. 집주인에게는 식구가 적은 척 해야 하기 때문에 엄마와 12살 장남 아키라는 몰래 동생들을 짐 속에 숨겨 들여온다. 엄마는 아이가 넷이나 딸린 싱글맘이라는 것이 발각되면 아파트에서 쫓겨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 말 것, 밖에 나가지 말 것 등등의 규칙을 정한다. 또 이 철없어 보이는 엄마는 아이들(심지어 네 아이들 모두 아버지가 다르다)을 학교에 보내지도 않는다. 집안에서만 갇힌 듯 살아가지만 아이들은 엄마와 행복한 보금자리를 꾸려간다. 어느 날, 엄마는 아키라에게 동생들을 부탁한다는 쪽지와 약간의 돈을 남기고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이제부터 아무도 모르게 네 남매 스스로 살아가기 위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모험이 시작된다.
겨울. 엄마가 사라진 지 한 달이 지났어도 여전히 네 아이들은 집안의 특별한 규칙을 지키며 지내고 있다. 어느 날, 아무렇지않게 엄마는 선물을 사 들고 불쑥 나타난다. 하지만 머무는 것도 잠시, 그녀는 서둘러 짐을 챙겨가지고 크리스마스 전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집을 나서지만 역시 돌아오지 않는다. 섣달 그믐까지도 엄마가 돌아오지 않자, 아키라는 엄마가 보내온 편지 주소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전화를 걸지만, 엄마의 성이 바뀐 것을 알고는 전화를 끊어버린다. 엄마가 자신들을 버렸다는 것을 깨닫지만 동생들에게는 이 사실을 숨긴다.
봄. 엄마가 보내온 돈도 바닥나고 편지도 끊기고, 밀린 세금 영수증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네 남매가 더 굳게 뭉쳐야 한다고 느낀 아키라는 더욱 적극적으로 동생들을 돌본다. 네 아이들은 처음으로 함께 밖에 나가 편의점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사고 공원에서 놀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여름. 이제 아이들은 매일매일 공원을 찾는다. 집에는 전기도 수도도 모두 끊겼기 때문에 공원에서 머리를 감고 빨래를 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언제나 학교를 빼먹고 벤치에 않아있는 소녀 사키가 있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그녀는 아키라와 친해지고 네 남매의 친구가 된다. 아키라는 동생들을 굶기지 않고 보호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만 결국 절망적인 사건을 맞이하게 되는데… - <네이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