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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를 찾아서
김방순
나이가 들어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 감사하며 살고 있다. 14명의 동창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좋아하는 맛 집을 찾는 여유로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건강도 챙기고 부담 없는 대화도 즐긴다.
온화하고 따뜻한 봄날! 철쭉꽃이 아름답게 피어날 때 만연사를 계획했으나 어버이날과 겹친데다 교통 혼잡으로 회원전체는 못가고, 운전을 잘하는 규당의 도움으로 여자회원들은 눈요기를 했다. 어렸을 때 함께한 친구는 서로의 사정을 잘 알기에 작은 기쁨에 서로 감사하고 마음의 상처도 쉽게 이야기하며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무더운 여름날엔 도심을 떠나 담양 숯불갈비구이 맛 집을 찾았다. 시야가 확 트인 야외 정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며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긴다. 모두가 그 옛날의 학창 시절 속에 타임머신을 타는 느낌이다.
지난해 가을 단풍이 울긋불긋 물들어 절정을 이룰 때 고창 우체국 수련원을 향해 5대의 승용차가 1박2일의 여행을 갔다. 가는 도중 전망 좋은 주차장에 차를 세워 망루에 올라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만경강 강줄기를 바라보니 마치 우리나라 지도모양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띄었다.
평촌님 자제분 덕분에 객실을 무상으로 대여 받은 호사를 누리며, 삭막한 도시생활에서 늘 그리워하는 편안함을 만끽하며, 삶에 여유가 생기고 회원들의 좋은 점 멋있는 모습을 그리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다양한 생각들을 모아 보았다.
선운사 가을 단풍! 자연 그대로 수채화를 눈에 담으며 추억을 간직하려 카메라의 셔터가 바쁘게 눌러졌다. 아름다운 단풍잎은 계곡이 있는 곳에서 더욱 수채화의 한폭처럼 화려한 변신을 하며 계절의 감각을 일깨워 주는 느낌이디. 떨어져 가는 단풍잎들은 나눔의 기쁨을 벌써 알고 있는 듯 소리 없이 친구 따라 바람결에 빙글빙글 제자리를 찾아 쌓여간다.
저녁 파티는 수련원에서 마더 테레사 같은 친구 현애가 직접 기른 싱싱한 야채와 광주에서 광어회를 준비하였고 여자 회원들의 맛깔스런 요리 실력이 발휘되어 푸짐한 밥상이 차려져 눈도 즐겁고 귀도 즐거운 식사가 되었다.
설거지 봉사는 남자 동창들이 도맡아 마무리 했다. 식사 후 저녁 산책을 마치고 친구들의 노래방 서비스로 즐거움이 무르익어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했다. 분위기 메이커 취은님의 다양한 노래 가락이 울려 퍼지고 회장의 구수한 말 솜씨에 모두 배꼽을 움켜쥐었다.
연수원에 돌아와 한방에 모여앉아 수학여행 온 학생처럼 수다를 떨며 화투놀이에 환호성을 울렸다. 돌아올 때 점심으로 백합죽을 먹었는데 더없이 구수하고 맛있었다.
9월의 첫 모임을 포도 농장을 하는 동창의 초대로 포도 농장에서 삼겹살 파티를 했다. 주렁주렁 무공해 포도를 맛보며 모두가 웃음꽃이 만발했다. 남자 회원들이 고기를 굽고 여자 회원들은 상추 밎 된장 장아찌 등을 준비하여 쟁반에 가득 채웠다. 우리는 부담 없이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그동안의 보이지 않은 땀의 결실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9월 첫 주 일요일에 회장의 특별 이벤트 제안으로 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기아와 롯데의 야구 경기를 귀빈석에서 젊은이들의 함성과 에너지를 한 몸에 받으며 박진감 있는 경기를 회원들과 함께 보게 되었다. 경기 결과가 기아타이거즈가 4:3으로 승리하게 되어 더욱 기뻤다. 처음 가보는 경기장의 환호성이 박진감이 넘쳤다.
11월에는 3박4일의 대만 여행이 예정 되어있어 더욱 기다려진다. 세상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결코 지워지지 않을 그 무엇인가 함께 하려는 뜻이 모아진 셈이다, 수정회원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있기 때문에 밝게 보고 즐겁게 살아가는 지혜와 여유가 플러스되어 세상과 자신 사이의 균형을 잡아가는 끊임없는 과정 그것이 우리들이 얻고자 하는 것 들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힘이 우리들을 하나로 뭉치게 한다.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지혜와 여유로움으로 생기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아니 조금씩 젊어지고 있다.
부담을 주지 않고 마음이 편한 이것이 친구들과 함께 하는 이유와 보고 들은 것 만으로 충분히 가슴 설레는 것들이 아닐까요?
금호 아쿠아나를 찾아가다
화순에 있는 금호 아쿠아나를 가기위해 서둘렀지만 늦은 밤까지 재잘대던 아이들은 11시가 넘어 불을 켰더니 잠이 들었다. 잠에 취한 아이들을 깨우고 물놀이 준비를 위해 간단하게 준비했지만 짐이 올망졸망 차에 가득 했다.
백일홍이 창 밖 가로수에 펼쳐지고 아름다운 숲길을 지나 도착시간은 11시 30분이 되었다. 농협 회원권으로 30% 할인 받아 1인당 32000원 씩 16만원을 주고 입장했다.
아이들과 처음 들어간 워터파크엔 실내와 실외로 구분되어 있었다. 실내의 락카함은 여자 1500개 남자 1500개 하루 3000명의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10m 높이 천장은 하늘이 투명해 햇빛을 투과하고 수중에 설치된 맛사지 기구들은 떠밀려 갈 정도의 수압이 높았다. 튜브로 타는 아이들 물속을 걷는 사람 10m 높이의 물 미끄럼을 순식간에 떨어지며 짜릿한 기쁨과 시원함을 보는 사람까지 즐겁게 했다. 2년간이나 수영을 배운 은호는 자유형 배영 접영을 능숙하게 뽐내었고 유치원 다닌 은엽은 제법 잠수도 하고 형처럼 수영연습도 자신감 있게 해냈다.
막내 시연이는 튜브에 몸을 의지하고 환하게 웃다가 인공폭포가 떨어지는 물 미끄럼에 도전했다. 오빠를 따라 물놀이를 즐겼고 엄마를 따라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녔다. 은호와 은엽이는 아쿠아 플롯트 시설이 설치된 곳에 관심을 보였다. 위로는 유격대의 밧줄이 생명줄처럼 흔들거리고 두 손을 꼬옥 붙들어 잡고 아래로는 풀 위의 원형 모양의 플롯트로 징검다리처럼 흔들리는 원반 위를 걸어야 한다.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고 물속에 빠지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처음에는 움직이는 원반을 잡아 주다가 실패를 하더라도 자신감을 회복하라고 멀리서 지켜보았다. 수중으로 떨어져도 커다란 사고는 없으니 재미삼아 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수영장 안에 있으니 시원함 그대로를 즐길 수가 있다.
1시가 넘어서 2층에 마련된 푸드코드 음식점에서 닭튀김과 돈가스 우동으로 점심을 해결하니 뱃속이 든든해졌다.
실외 수영장으로 가 보았더니 녹차탕, 구기자탕, 백년초 열매를 풀어 놓은듯한 빠알간 약초탕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옥빛 깨끗한 온천탕으로 몸을 담그자 하얀색 길다란 수면의자가 임대용으로 펼쳐져 있고 그 옆에서 아이들의 신나는 비명소리와 함께 파도타기 체험이 전개되었다. 바닷가처럼 격렬한 파도를 타며 어른도 아이도 하나 되어 물놀이를 즐기는 공간이었다. 30분 정도 가동되었다가 잠깐의 휴식이 오면 다시 야외 수영장을 이용해 수영을 즐긴다. 110cm 정도의 낮은 수영장엔 아이들도 안심하고 즐길 수가 있다. 야외용 텐트 원형텐트가 설치된 곳에서 12만원의 사용료를 지불하면 쉴 수 있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버섯 모양의 분수 물줄기가 크게 작게 하늘을 향해 샘솟고 타잔 모양 개구리 모양의 놀이터 공간을 올라서면 두레박에 물을 모았다가 물 폭탄을 선물하고 동굴 속 같은 미끄럼에 들어 누우면 빙글빙글 아래로 회전하며 물 미끄럼을 즐긴다.
활동에 지칠 때 쯤 스넥 코너에 간식거리를 사먹고 시연이는 물 위 튜브에서 잠이 들었다. 20분 정도 자다가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또다시 잠이 들었다. 무척 피곤한 듯 했다. 한참을 기다리다 튜브의 바람을 빼고 돌아오니 기다리던 가족들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 난감해 이리저리 살피다가 2층으로 올라가 보고 다시 한 바퀴 회전을 해 보았다. 아마 아이들이 보채 자리를 옮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락카함이 있는 곳에 가면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락카함이 있는 출구가 생가나지 않아 직원에게 묻고 방향을 찾았다. 중앙 계단 다리를 건너니 비로소 출구가 보이고 기억이 되살아났다. 판단력이 흐려져 방향 감각을 잠시 잃었다. 최후 락카함에 가면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락카함 주변에도 온천탕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있는 머리가 긴 여인네는 모두가 딸과 손주로 보이는 착각이 있었다. 포기하고 간단한 샤워를 하고 락카함에 도착하니 밖에서 찾다가 지쳐 있었다. 순간의 선택이 서로를 힘들게 했나보다. 사연을 들어보니 손주가 배고파하여 스넥 코너에 갔고 남편과 두 아이는 물속에서 수영을 하며 기다렸단다. 나의 눈에는 많은 아이들이 있는 물속을 발견하지 못한 실수였다. 남편을 만나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고 투정을 했다. 그럴 수도 있는 일 서로를 힘들게 했지만 워터파크 사건은 색다른 체험이었다. 아이들 어른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존의 공간이었다. 서로를 보듬어 주고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 영원히 기억의 저장창고에 기억 될 것이다.
요양병원을 가면서
완연한 봄날이다. 아침부터 아버지는 식사를 하자마자 양복을 차려입고 중절모를 쓰고 안경을 쓰셨다. 20분을 달리면 수완지구 청연 요양병원에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다.
삼년 전 노인성 치매로 92세까지 집에 계셨는데 입술이 새파랗게 변하면서 음식을 삼키지 못하자 한국병원에서 치료를 하고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매일 아침이면 시아버지와 남편과 나까지 셋이서 병원에 출근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병원에 도착하면 간호사들이 아버지를 반기면서 어머니와 함께 계시기를 권한다. 어머니께 이름도 물어보고 누구인지 확인하면 대답을 하신다. 5층 병실에는 6명이 병상에 누워 있다. 어머니는 밖을 내다 볼 수 있는 창가로 자리를 정했다. 병실 문을 열자 지린내가 진하게 풍겨온다. 옆자리에 있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할머니는 몸을 기우뚱하더니 자기 통제가 안 되어 간호사를 부른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또 한 사람은 침대를 위로 올려 달라고 하면서 소리를 지른다. 나무토막처럼 말라가는 어머니에게 피부에 로션을 발라 드리고 티슈로 얼굴을 닦아 드렸다. 바짝 마른 피부 사이로 욕창이 생겨 몸을 뒤척여 주고 소독도 해드렸다. 욕창 매트를 깔았지만 별 효능이 안 보인다. 치매에 걸려 자꾸 일어나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자꾸 넘어지기도 한다. 다행히 어머니는 식구들의 얼굴을 알아본다.
그렇게도 기억이 좋았던 어머니는 말 수가 적어지고 남이 하는 말은 알아듣고 고개만 끄덕인다. 시샘도 많고 남 앞에서 두 번째 가기를 싫어했던 시어머니가 병실에 누워 계신다. 외모를 가꾸기를 좋아해서 사람들은 멋쟁이 할머니라고 불렀다. 가구점에서도 사모님 사모님하면서 비위를 잘 맞추었다. 어느 날 부턴가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 식사를 하고도 또 밥을 달라고 하셨다. 현관 앞에 우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기도 했다. 아무도 없다고 하면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망상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치매 교육을 받은 요양사는 그 사람 혼내서 쫓아버렸다고 말한다. 어머니의 대화를 인정해 주고 어머니편이 되어 주는 것이다.
널찍한 병실에서 음식도 드시고 기저귀도 갈고 하는 저 요양원 환우들의 얼굴에 주름살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정신이 초롱초롱한 사람들도, 치매에 걸려 마냥 평화롭게 보이는 사람들도 안타깝기만 하다.
늙음의 문제는 육체가 아니라 마음에서 온다고 ‘앙드레 소루아’는 이야기 한다. 노화에 따르는 가장 나쁜 것은 육체가 쇠약해 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무관심 해지는 것이라고 한다. 인생의 기간이 한정 되어 있으니 슬프지 않게 받아들이고 마음과 몸이 모두 건강하게 유지해야겠다.
한밤중에 울린 방울소리
나의 시아버지는 첫 발령을 받은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시다. 부지런하고 청렴한 아버지는 주민들의 찬사를 받아 14년간을 산골 초등학교에 정착하여 크고 작은 일들을 추진하였다.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먹던 시절(1969년) 학교에 수도관을 설치하기 위해 먼 곳까지 가서 자문을 구하기도 하였다. 저 멀리 저수지에서 학교까지 물길을 끌어들이는 공사를 위해 봉사하는 학부모들의 땅 파는 작업이 계속되고 부락별로 울력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부락 주민들의 순수함과 열정이 이루어낸 작품으로 수돗물이 콸콸 쏟아졌다. 서울신문사 표창과 공로패를 받았고 광의초등학교 교문 오른쪽에 공적비도 세워졌다. 아이들이 뛰어놀던 운동장에 숲속처럼 수목을 심고 연못가엔 분수와 함께 연꽃이 피어있고 사육장에는 노루며 꿩 토끼 닭이 사육되어 아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나는 5년간 근무하고 광주로 이동했을 때 교감선생님의 소개로 다시 만나게 된 남편도 첫 발령지의 인연이 되었던 것이다.
젊은 나이에 일본에 유학 가 교장이 된 시아버지는 일본어를 유창하게 잘 하셨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96세가 된 시아버지는 3년 전 93세의 어머니를 먼저 하늘나라에 보내시고 혼자가 되어 너무 외롭게 보였다.
정직하고 남을 배려하는 속 깊은 아버지는 같이 늙어 가며 시중을 들어주고 말벗이 되었던 어머니를 보내고 치매증상을 보였다. 요양등급 3급 진단을 받아 낮엔 요양사가 와 말벗도 해 주었다. 고향의 봄, 도라지, 아리랑 등 귀에 익은 노래를 부르며 전국 노래자랑에 나가 송해 선생님의 얼굴도 보고 상금도 타자 하니 환하게 웃던 얼굴! 어린 아이처럼 순박하기만 했다.
워커를 밀며 거실을 한 바퀴 돌 때 자기도 모르게 오줌 방울이 뚝뚝 떨어져 지도가 그려진다. 말씀이 없던 아버지의 자존심을 상할까봐 뒤처리를 소리 없이 감당했다. 식사 후엔 신경통약 관절염약 정신과 치매약 전립선약을 시간 맞추어 드린다. 가끔씩 두통이 올 땐 머리를 싸매고 진통제 한 알씩을 드리기도 한다. 그래도 걸을 수 있고 식사를 혼자서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방문만 열면 바로 앞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으며 서성거리다 위치파악을 잘못하고 기억력이 5분을 지속하지 못한다.
마음을 활짝 열고 반겨주는 요양사가 3시간 반 있다가 돌아가면 대소변 수발과 목욕은 보호자의 몫이 되고 화장실 출입구를 찾지 못해 안쪽으로 들어 되돌아오지 못하고 큰 소리로 외친다. 내가 외출이라도 한 번 하면 빨리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마음에 조급증이 생긴다.
식사를 금방하고도 뒤돌아서면 밥은 언제 먹느냐고 묻는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폭력을 휘두른다거나 거리를 방황하지 않으니 그나마 착한 치매임에 다소 위안이 된다. 세끼를 꼬박꼬박 거르지 않고 소화를 잘 시키는 아버지는 밥 따로 국 따로 드시며 앞치마를 두르고 식사를 하지만 밥상 주변은 음식을 흘려 음식찌꺼기들이 즐비하다. 늙어 가면서 겪는 자연현상을 인정하며 수시로 청소를 한다.
저녁때가 되면 혼자 있는 방안에서 망상증에 시달렸는지 큰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우리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한다. 어느 날 “너희 어머니 먹을 것을 갖다 주어라”고 요구도 하고 “너희 어머니가 말없이 나갔다. 참 이상하다”고 한다. 돌아가신지 3년인데 인지기능이 없어진 것이다. 어쩌면 혼자서 외로워하는 것보다 망각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듯하다.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게 하려고 서울 딸집에 가셨다고 한다. 한 밤중에 성큼성큼 걸어와 우리가 자고 있는 방문을 열기도 하는 아버지. 어느 날은 거실에 앉아 용변을 시원스럽게 보기도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가 되어버린 아버지를 효자 아들은 목욕을 시키고 난 바닥의 오물을 처리한다.
새벽 2시경 잠이 깨어 아버지의 방을 들여다보면 머리 밑에 있는 서랍 속을 들여다보고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고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무언가 혼잣말을 하기도 한다.
밤잠을 설치는 일이 계속되자 70살 중반이 된 남편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워커에 방울을 달아 소리가 나면 실수 할 일이 적고 우리가 화장실 가는 걸 도울 것 같아서였다. 당장 백화점의 문구점을 찾았다. 적당한 게 없어 매장 직원에게 물으니 금호전자월드에 가면 살 수 있으리라는 귀띔을 해 주었다.
전자월드에 들려 옷에 다는 작은 방울과 상점 출입구에 다는 인테리어 풍경소리를 16000원 주고 워커에 달았다. 한 밤중에 풍경소리가 울리면 아버지가 화장실 가는 소리이다. 워낙 조심스레 워커를 밀면 소리가 잘 안 들렸다. 소리의 강도를 높여 소의 워낭을 사자고 했다. 인생의 여정에서 조금 더 편하게 조금이라도 더 웃을 수 있게 해 드림이 자식 된 도리인 것 같다. 마지막까지 아버지의 마음속에 우리 가족의 따뜻함이 늘 함께 하기를 바라며 최선을 다해 보려고 했다.
폐지 줍는 할머니
수레가 무겁다
삶의 세월
하루 벌어 사는
가난한 이들의 생활
종이박스에 달린
팔순 노인의 생명줄
버림도 나눔이라
감사하시는 할머니의 미소
두 손 꼭 잡는다.
한가위
서울에서 KTX 타고온 손주
저멀리 환한 미소로 달려온다
두 팔 벌려 껴안고 하늘 높이 번쩍
손주도 웃고 나도 웃는다
오랜만에 만난 손주
이리 보아도 예쁘고 저리 보아도 예쁜 모습
깔깔깔 까르르 호호호
재롱잔치에 모두가 한마음
엘리베이터 앞 화살표 보고 꾹
계단 오르기를 좋아해 몇 번이고
되돌아 오르는 계단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
세 살 베기 어린아이 말은 못해도
손짓 눈짓 발짓 우리는 서로 통하는 사이
떠들썩한 집안 분위기
푸짐한 음식 오랜만의 만남
서로를 알아가는 넉넉한 마음
마음 가득 보름달이 두둥실
그리움
바람이 머무른 그 자리
다가오는 설레임이 맴돈다.
제주도의 바닷가
파도가 포말되어 밀려온다
떠들썩한 그 자리
아직도 그 때의 숨결이
살아 숨쉰다
사랑으로 가득채운 여행길
두 손 모아 부푼 꿈을 가득 담았다.
꿈처럼 살아 움직이는
당신의 마음
자꾸만 다독여 주는 마음
되돌아 가는 필름 속에
따뜻함이 베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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