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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의 꼬마야! 하느님은 어디 계시지? …
"하느님은 세상 어디나 다 계셔요. 저 푸른 하늘 천국에도." (1877년3월4일)
질문: 데레사 수녀는 자기에게 맡겨진 직책에서 어떻게 행동하였습니까?
답변: 그녀는 마음에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자신에게 어떠한 희생이 되든 간에
아무 것도 겁내지 않고 수련자들의 잘못을 교정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대단히 신중하고도
현명하게 실행하였습니다.
그녀는 "어떤 이는 목덜미를 쥐고 있어야 하고, 어떤 이는 날갯죽지를 붙잡고 있어야만 해요"라며 유머스
런 말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결코 자신의 걱정거리들이나 고통스러움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고 자기의 호
기심을 만족시킬 만한 질문이란 수련자들에게 절대로 하지 않았으며 그들에게 인정받으려고도 하지 않았
습니다. 그녀는 모든 어려움 중에서 하느님께 전적으로 신뢰했고 성모님께는 보다 더 열렬하게 의탁하였
습니다. 이에 관해 어느 날 그녀가 내게 말한 것이 있어 나는 그 즉시로 가서 기록해 두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좋은 씨를 나의 작은 새들에게 뿌려 줍니다. 그리고 나서는 결과를 걱정하지
않고 일이 되어 가는 대로 내버려 둡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내가 아무 것도 뿌리지 않았다고 생각하겠지
만 하느님께서는 계속해서 주기만 하고 그밖에 다른 일일랑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녀는 수련자들에게 자기에 대해서 좋지 않게 보이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말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사실상 그녀는 수련장도 아니었고 또 수련자들보다도 더 어렸다는 것이 물론 이렇게 하는 데 있어 보다 더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내가 그녀를 만나기 바로 전에 한 수련자가 그녀에게 와서 아주 모욕적인 태도로 말하고는 돌아간
때였습니다. 나는 그녀에게서 좀 흥분된 듯한 모습이 보이기에 무슨 일이 있는가 아니면 몸이 좀 피곤하가
를 물었더니, "하느님께서 방금 나에게 자신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나는 대단히 기뻐요. 내
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과 아무런 덕행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나는 다윗에게 욕을 퍼붓던 시므이를 생각하고 혼잣말로, 네 정말 그 자매님에게 그렇게 말하도록 명한 분
은 바로 하느님이셨지요. 나는 오늘 아침 몹시 모욕받기를 원하였으므로 방금 일어난 일들은 바로 하느님께
서 명하신 것임에 틀림없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라고 그녀가 대답하였습니다(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
데레사를 알고 있던 사람들의 증언들- 가르멜회 예수의 데레사 수녀, 가톨릭출판사, P.40)
cf.예수의 데레사 수녀는 성녀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작은 엄마 역할을 한 둘째 언니였고, 성녀의 언니 4명은 수도회에 있
었다(셋째 언니만 방문회이고 다른 분들은 모두 리지외의 가르멜회)
성심의 마리아 수녀에게
예수님†. 사랑하는 언니, 언니에게 답장을 쓰는 게 난처하지 않아요.… 제가 하느님을 사랑하듯이 언니
도 그분을 사랑하실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어떻게 하실 수가 있어요?… 작은 새의 이야기를 이해하셨다면
그런 질문은 안하셨을 겁니다. 순교하고 싶다는 제 소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 소망들이 제 마음 속에 무한한 신뢰를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사실 이런 소망을 지닌 것을 흐뭇해하며 마음을 놓거나, 그런 것을 뭔가 위대한 것처럼 여긴다면, 그런
소망은 우리를 불의하게 만드는1) 영적 재산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소망들은 예수님께서 가끔 저처럼 약
한 영혼 -이런 영혼이 많답니다- 에게 주시는 위로입니다. 그러나 이런 위로를 안 주신다면 그건 특별
한 은혜입니다. "순교자들은 기쁘게 고난을 겪었지만 순교자의 인금님은 슬퍼하시며 고난을 겪으셨다"
고 하신 신부님의2) 말씀을 기억해 보세요.
그래요, 예수님은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치워 주십시오"라고3) 하셨어요. 사랑하는 언니, 그런데 어
떻게 제 소망이 제 사랑의 증거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세요?
아! 제 작은 영혼 안에서 하느님의 마음에 드시는 것은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저는 깨닫고 있어요. 그분
마음에 드시는 것은 제가 자신의 작음과 가난함을 사랑하고 주님의 자비를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것을
보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제 유일한 보화예요. 사랑하는 대모님, 왜 이 보화가 언니의 것이 될
수 없단 말이에요?…
언니는 좋으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면 무엇이나 다 참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세요? 언니는 그러시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만일 언니가 고통 속에서 기쁨을 느끼고 고통에 마음이 끌리게 되고 싶어하신다면 언니가 찾는 것은 언니 자신의 위로입니다. 어떤 것을 사랑하게 되면 고통은 사라지기 때문이지요. 만일 우리가 지금의 마음 상태로 함께 순교하러 간다면 언니는 커다란 공덕을 쌓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예수님께서 이 마음 상태를 바꾸어 주고 싶어하시지 않는 한 틀림없이 아무 공덕도 없을 거예요.
아, 사랑하는 언니. 언니 동생의 말을 알아들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 이외의) 아무 소망도 공로도 없는4) 약한 사람이 사랑을 불사르고 변화시키는 일에 더 적합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제물이 되고 싶은 소망은 그 소망 자체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언제까지나 가난하고 힘없는 자로 남아 있는 것을 동의해야 하는데 바로 그게 어려운 일입니다. 시편 저자는5) 정말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먼 데까지 찾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으니까요. 그 저자는 그런 사람을 위대한 영혼들 가운데서 찾아야 한다고 하지 않고 "먼 데서", 즉 비천함 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 빛나는 온갖 것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습시다. 자신의 작음을 사랑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을 좋아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될 것이고, 우리가 아무리 먼 데 있어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사랑의 불꽃 속에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아!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언니가 깨닫게 해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를 사랑에게 인도해 주는 것은 신뢰, 오직 신뢰뿐입니다.… 두려움은 정의에로 이끌어 줄 뿐입니다. (성녀 자신의 주석. 여기서 말하는 정의란 죄인에게 보이시는 엄격한 정의를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보이실 그 정의는 아닙니다)
길이 보이니 함께 달립시다. 그래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똑같은 은혜를 베풀고 싶어하십니다. 당신의 천국을 공짜 선물로 주고 싶어하십니다. 오! 사랑하는 언니, 언니가 제 말을 알아듣지 못하신다면 그건 언니가 너무나 위대한 영혼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제가 저 자신을 잘 설명하지 못해서겠지요. 왜냐하면, 만일 하느님께서 이 은혜를 언니를 위해 마련해 두지 않으셨다면, 언니가 그분에게, 그분의 자비로운 사랑에 사로잡히고 싶다는 소망을 주시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하니까요. 아니 그보다 하느님께선 어니에게 이미 이 은혜를 주셨다고 확신해요. 언니는 자신을 주님께 맡기시며, 주님께서 불태워주시게 되기를 원하고 계시니까요. 좋으신 하느님께서는 이루어주실 수 없는 소망을 주시는 법이 없으시답니다.…
아홉시를 치네요. 이제 헤어져야겠어요. 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나 제가 쓸 수 없는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언니 마음 속에 넣어주실 것입니다. 감사에 넘치는 아이의 작은 마음으로 모든 정을 다해 언니를 사랑하는 예수 아기의 데레사, rel. Carm. ind.
1896년 9월 17일
1) 루가 16,11 참조
2) 예수회 피숑 신부가 1887년 10월 리지외 가르멜회에서 피정 지도 때 하신 말씀
3) 마르 14,36; 마태 26,39; 루가 22,42 참조
4) (사랑 이외의) 삽입은 발췌자 본인의 주. 성녀는 사랑(애덕)의 부르심을 받았고 그 사랑 안에 거닐었던 것 같다. 성녀는 1895년 6월 14일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다가 사랑의 상처의 은혜를 받았고, 1896년 4월 5일 부활 대축일 이후에 시작되어 1897년 9월 30일 사랑의 탈혼 중에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신덕과 망덕에 대한 유혹의 내적 시련이 있었다. 편지의 둘째 셋째 단락에서는 9월 초순 피정기간 중 자기성소에 대한 커다란 빛을 받은 것이 확신으로 드러나고 있다.
5) 잠언 31,10; 준주성범 제2권 11,3
출처: 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의 편지 (앙드레 꽁브 엮음 / 부산 가르멜회, 분도출판사)
나는 그녀가 임종할 때 그 자리에 있으면서 매우 특이한 현상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녀의 고개가 아래로 숙여져서 임종하였다고 생각하였는데 어느새 그녀가 다시 머리를 쳐들고 눈을 뜬 채 상당히 오랫동안 위쪽을 응시하였습니다. 그녀가 응시하는 눈길 속에는 너무나도 깊은 그 무엇이 담겨져 있어 나는 거의 압도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고 다른 데로 눈을 돌려야만 했었습니다(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 데레사를 알고 있던 사람들의 증언들-가르멜회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데레사, 가톨릭출판사, P.282)
성인 성녀라고 해서 내가 그 사람들을 다 존경하고 잘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래도록 소화 데레사 성녀에 대해 궁금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었다. 평생 로마를 한번 순례한 것 외에는 고향을 떠나보지도 못한 처녀, 어릴 때부터 성모님의 미소를 보고 병이 나았던 소녀, 가르멜이라는 봉쇄 수도원에 들어가기를 원해 기어이 어린 나이에 거기에 들어가 버린 소녀, 가르멜의 생활 속에서 누군가가 소소하게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자신의 인격 완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 무조건적 성녀, 차라리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이 방황하다가 성인이 된 사람이면 몰라도, 아빌라의 데레사처럼 가시적인 성과를 가지고 있지도 않은 사람이 교회의 그토록 큰 성녀가 되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참으로 궁금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하느님이 이미 성녀가 되도록 만들어 놓으신 거 아니야'라는 심술맞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도 소화 데레사의 전기를 가지고 만든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 감독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고, 단순히 소화 데레사의 일생에서 기적을 빼고 만든 영화라고 했다. 특별한 생각없이 영화를 보고 있다가 마지막에 가서 나는 결국 엉엉 울고 말았다. 거기서 나는 데레사를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옆에서 함께 보던 친구들이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대답했었다. "저 사람, 심장이 터져 죽은 거야, 너무나 사랑해서 심장이 터져 죽은 거라구. 이 세상에 사랑 때문에 심장이 터져서 죽은 사람이 또 있나 싶어서..."라고.
그 이후, 그 성녀에 대한 생각은 많이 수정된다. 자신을 하느님의 아기처럼 여겼던 사람, 그래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오직 불완전할 뿐이니 하느님께 모든 것을(정말 모든 것을!) 맡겨 드렸던 사람...죽기 전 쇄약해진 몸뚱이로 누워서, 그녀는 시편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님을 보거든 전해 다오.. 내가 그대로 인해 병들었다고." "주님 제가 드릴 것은 찢겨진 마음뿐, 찢겨진 마음뿐입니다."
가끔 기도하면서 내 마음대로 해 달라고 하고픈 충동을 느낀다. '이건 이렇게 해 주시고 그건 그렇게 처리해 주시고 걔는 잘 되게 해 주시고, 저 사람은 혼 좀 나봐야 되겠지요..' 생각하다가 웃고 마는 까닭은 하느님이 가끔 그런 내 기도를 들어 주셨을 때 내가 느꼈던 황망함 때문이었다. 내 머리가 잘난 줄 알고 기껏 꾀를 내어 말씀드리고 나서 막상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그것이 실은 내가 궁극으로 원했던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신비라고나 할까.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면서, "하느님 오늘 하루도 당신의 뜻이 제게 이루어지는 날이기를 빕니다"라고 기도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지만 실은, 그렇게 밖에 기도할 방법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하느님은 우리를 샅샅이 보고 아시기 때문에 앉거나 서거나 매양 저를 아시고, 멀리서도 제 생각을 꿰뚫으신다" "걸을 때도 누울 때도 환히 아시고, 말소리 혀끝에 채 오르기 전에, 주님께서는 벌써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을 내가 겨우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그것이 지금 우리의 눈에는 저주와 비탄으로 보인다 해도, 아니 그를 더 지나 내가 지금 가장 비참한 형상으로 죽어간다 해도, (그건 정말 무섭고 싫지만) 그래도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시며, 심지어 나를 한번도 사랑이 아닌 것으로 대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세상의 모든 두려움이 사라진다.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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