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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 머리말
불교에는 수많은 경전이 있다. 그리고 각 경전마다 大旨(대지) 또는 宗旨(종지)라고 하는 큰 주제가 있다.
옛 사람들은 유마경의 큰 뜻을 유마 거사의 침묵으로 표현되는 不二法門(불이법문)에 두었으나 필자는 “사람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생명들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산천초목들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라는 가르침으로 그 큰 뜻을 삼는다.
불교 교리가 아무리 뛰어나다한들 아파하는 생명들을 외면한다면 그 심오한 교리가 무슨 가치가 있겠으며 무슨 쓸데가 있겠는가. 그러나 유마경이 어찌 그와 같은 의미뿐이겠는가. 불교를 어설프게 공부한 사람들의 편협하고 치우친 안목을 여지없이 깨트리고, 허공처럼 드넓고 툭 터진 인간의 본성을 깨우치며, 대승불교의 근본과 줄기들을 총망라하여 불교공부의 진실로 돌아갈 바를 남김없이 제시하고 있다. 거기에 더하여 유마 거사가 한번 입을 열어 법을 설하면 그 화려하기가 저 화엄경에 사양하지 않는다. 참으로 화려하다 못해 현란하다고 서슴없이 표현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유마경을 읽다 보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다.
필자는 2009년 10월 28일 3일간 서울에 있는 비구니회관 법융사에서 전국의 비구니 스님들과 신도님들을 대상으로 유마경 강설법회를 하게 되었다. 請法(청법)의 부탁을 받고 법회를 준비하면서 ‘미리 번역과 강설을 했었더라면 더 훌륭한 법회가 되었을 텐데’ 라고 하는 생각을 하였는데 그때 그 마음이 지금에 이르러 이 강설을 쓰게 되었다.
유마거사는 자신의 병고를 통하여 만고의 절창 유마경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천하의 둔재인 필자는 2003년 7월 25일부터 앓아 온 병고 덕분으로 하찮은 공부지만 불법에 대해서 그나마 좀 더 깊고 넓어지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이 몹쓸 병고도 참으로 고마운 경책의 스승이며 선지식이다. 火中生蓮(화중생련)이라는 말 그대로 불꽃 속의 연꽃이요, 病苦中(병고중)의 공부다. 지금까지 10년째 앓고 있으며 또한 세납 칠순을 맞는 해다. 필자는 자신의 병고 덕분에 유마 거사의 병고에 관한 경전을 강설하게 되었으니 이 또한 무슨 정해진 인연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사 세상사가 모두 인연이라 하던가. 병고를 이기려고 진통제 삼아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것이 이렇게 출판을 하기에 이르렀으니 물 한 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이치가 실로 헛말이 아님을 알겠다.
그동안 병고 때문에 알게 모르게 고생한 사람들도 많고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도 대단히 많다. 언제나 생각하는 일이지만 세상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불법문중에 몸을 담고 살아오면서 참으로 과분하게 빚을 지며 은혜를 입었다. 부처님과 조사님들의 은혜와 스승님들과 도반들의 은혜와, 신도님들의 그 많은 빚과 은혜를 아무래도 갚을 길이 없다. 그래서 아픈 몸을 이끌고라도 인연이 닿는 대로 법회를 하며, 다음 카페 “염화실” 을 통해서 열심히 傳法(전법)을 하고, 한편 힘이 닿는 대로 경전을 출판하고 寫經本(사경본)을 만들어 법공양을 올리고, 또 이렇게 좁은 안목으로라도 능력이 미치는 데까지 부처님과 조사님들의 말씀을 이 시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새롭게 풀어서 널리 전하는 일에 매진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이렇게 회향하는 일을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할 때까지 하고자 하는 마음 간절하여 길이길이 이어지기를 서원하는 바다.
이 인연의 공덕으로 모든 사람 모든 생명들의 마음이 태양처럼 밝아지고 지혜가 툭 터져서 항상 해탈감이 넘쳐나서 매일 매일이 평화롭고 행복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다시 한 번 불보살님들과 수많은 분들의 은혜에 진심으로 진심을 다해서 깊이 감사를 드린다.
2012년 하안거 중에
화엄전에서 如天 無比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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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유마경 출판기념법회는 간단하게 마치겠습니다.
大方廣佛華嚴經 疏序 清涼山 大華嚴寺沙門 澄觀撰述
往復이 無際나 動靜은 一源이라
含衆妙而有餘하고 超言思而迥出者는 其唯法界歟며
剖裂玄微하고 昭廓心境하며 窮理盡性하고 徹果該因하며
汪洋冲融하고 廣大悉備者는 其唯大方廣佛華嚴經焉인저
故我世尊이 十身初滿에 正覺始成하사 乘 願行以彌綸하시며
渾 虛空爲體性하시니 富有萬德이요 蕩無纖塵이로다
湛智海之澄波가 虛含萬象이요 皎性空之滿月이
頓落百川이로다
不起樹王하사 羅七處於法界하시며
無違後際하사 暢九會於初成이로다
盡宏廓之幽宗하사 被難思之海會하시니
圓音落落하사 該十刹而頓周하시고
主伴重重하사 極十方而齊唱이로다
雖空空絶跡이나 而義天之星象이 燦然이요
湛湛亡言이나 而敎海之波瀾이 浩澣이로다
若乃千門潛注라 與衆典爲洪源이요 萬德交歸나
攝群經爲眷屬이로다
其爲旨也가 冥眞體於萬化之域하고 顯德相於重玄之門이로다
用繁興以恒如하고 智周鑑而常靜이로다
眞妄交徹이라 卽凡心而見佛心이요
事理雙修라 依本智而求佛智로다
理隨事變이라 卽一多緣起之無邊이요
事得理融이라 則千差涉入而無礙로다
故得十身歷然而相作하고 六位不亂而更收로다
廣大卽入於無間이요 塵毛包納而無外로다
炳然齊現은 猶彼芥甁이요 具足同時는 方之海滴이로다
一多無礙는 等虛室之千燈이요
隱顯俱成은 似秋空之片月이로다
重重交暎은 若帝網之垂珠요 念念圓融은 類夕夢之經世로다
法門重疊은 若雲起長空이요 萬行芬披는 比華開錦上이로다
若夫高不可仰이라 則積行菩薩도 曝鰓鱗於龍門이요
深不可闚라 則上德聲聞도 杜視聽於嘉會로다
見聞爲種이라 八難에 超十地之階하고 解行在躬이라
一生에 圓曠劫之果로다
師子奮迅에 衆海頓證於林中이요
象王廻旋에 六千이 道成於言下로다
啓明東廟하니 智滿不異於初心이요
寄位南求하니 因圓不逾於毛孔이로다
剖微塵之經卷 則念念果成하고
盡衆生之願門 則塵塵行滿이로다
眞可謂常恒之妙說이요 通方之洪規며 稱性之極談이며
一乘之要軌也로다
尋斯玄旨하고 却覽餘經하니 其猶杲日麗天에
奪衆景之耀요 須彌橫海에 落群峯之高로다
是以로 菩薩이 搜祕於龍宮이요 大賢闡揚於東夏로다
顧惟正法之代에도 尙匿淸輝러니 幸哉라 像季之時에
偶斯玄化하고 況逢聖主하며 得在靈山하야
竭思幽宗하니 豈無慶躍이리요
題稱大方廣佛華嚴經者는 卽無盡修多羅之總名이요
世主妙嚴品第一者는 卽衆篇義類之別目이니
大以曠兼無際하고 方以正法自持하고 廣則稱體而周하고
佛謂覺斯玄妙하고 華喩功德萬行하고 嚴謂飾法成人하고
經乃注無竭之涌泉이로다 貫玄凝之妙義하며 攝無邊之海會하며
作終古之常規로다 佛及諸王을 並稱世主오
法門依正을 俱曰妙嚴이니 分義類以彰品名할새
冠群篇而稱第一이니라 斯經이 有三十九品하니
此品이 建初일새
故云大方廣佛華嚴經世主妙嚴品第一이라 하니라
299쪽 光明覺品,
여섯 번째 世尊威德(세존위덕). 세존이 덕을 이루는데 대한 설명입니다.
光明徧照라. 지난 시간의 光明覺品은 아주 그 조직이 대개 똑같은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다만 增光(증광). 나아갈수록 百世界ㆍ千世界ㆍ百千世界ㆍ一億世界ㆍ十億世界ㆍ千億世界 이런 식으로 增光이 되는 그것만 차이가 있고 내용은 똑같습니다.
六. 世尊威德(세존위덕)
1 光明徧照(광명변조)
爾時에 光明이 過十千世界하야 徧照東方百千世界하고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시니 彼一一世界中에
皆有百億閻浮提와 乃至百億色究竟天이라 其中所有가
悉皆明現하니
爾時에, 그 때에 光明이
過十千世界(과십천세계)하야, 10천세계를 지나서
徧照東方百千世界(변조동방백세계)하고, 동방으로 100천세계를 비추고
南西北方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시니,
남 서 북 방과 사유상하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
彼一一世界中에 皆有百億閻浮提와,
저 낱낱 세계가운데 다 100억 염부제와
乃至百億色究竟天이라. 100억 색구경천이 있다.
其中所有(기중소유)가, 그 가운데 있는 바가
悉皆明現(실개명현)하니. 모두 다 환하게 나타났다.
2. 世尊坐座
彼一一閻浮提中에 悉見如來가 坐蓮華藏師子之座어시든
十佛刹微塵數菩薩의 所共圍遶라 悉以佛神力故로
十方各有一大菩薩이 一一各與十佛刹微塵數諸菩薩로 俱하야
來詣佛所하시니 其大菩薩은 謂文殊師利等이며 所從來國은
謂金色世界等이며 本所事佛은 謂不動智如來等이니라
彼一一閻浮提中(피일일염부제중)에, 저 낱낱염부제 가운데
悉見如來(실견여래)가, 여래께서 다 보니
坐蓮華藏師子之座(좌연화장사자지좌)어시든,
연화장 사자좌에 앉아계시니라.
十佛刹微塵數菩薩(십불찰미진수보살)의 所共圍遶(소공위요)라.
10불찰 미진 수 보살들이 모두 에워싸고 있다.
悉以佛神力故(실이불신력고)로, 모두 다 부처님의 神力을 쓴 고로
十方各有一大菩薩(시방각유일대보살)이,
시방에 각각 한 大菩薩이 있어서
一一各與十佛刹微塵數諸菩薩로 俱(구)하야
來詣佛所(내예불소)하시니,
낱낱이 각각 10불찰 미진 수 보살로 더불어 부처님처소에 함께 오시니
其大菩薩은, 그 대보살은
謂文殊師利等(위문수사리등)이며, 이를테면 문수사리 등이며
所從來國(소종래국)은, 쫓아온 바의 국토는
謂金色世界等(위금색세계등)이며, 금색세계 등이며
本所事佛(본소사불)은, 본래 섬긴 바 부처님은
謂不動智如來等(위부동지여래등)이니라.
한결같이 大菩薩 = 우두머리 보살은 문수사리고, 불 국토는 金色世界.
그 다음에 여래는, 섬기고 있는 부처님은 항상 不動智如來다.
법성게에서 舊來不動名爲佛(구래부동명위불) 이라고 하는 그 不動과 똑 같은 의미입니다. 또 一切處文殊師利菩薩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지요.
3. 文殊菩薩의 偈頌
爾時에 一切處文殊師利菩薩이 各於佛所에 同時發聲하사
說此頌言하사대
爾時에 一切處文殊師利菩薩(일체처문수사리보살)이
各於佛所(각어불소)에서, 각각 부처님처소에서
同時發聲(동시발성)하사
說此頌言(설차송언)하사대, 게송을 설해 말했는데, 뭡니까?
一切處文殊師利라.
그 전에 제가 한 둬 번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임제록을 배웠습니다.
참석하신 분도 있고, 참석 못하신 분도 있었습니다만, 거기에 보면 임제스님이 말씀하시는 문수보살이란 이야기가 있지요.
역사적으로 신심 지극하기로 소문나 있는 무착선사 오대산을 향해서 일보 일 배를 하면서 자기 신심을 표현하면서 문수보살을 친견하러 가는데, 그 사실에 대해서 임제스님이 오대산에 문수보살이 없다ㆍ오대산에 無 문수다. 문수가 없다 말입니다. 그 문수를 찾아가는 당신이야말로 진짜 살아있는 문수다. 라고 하는 그 문수입니다. 이것이...
문수보살을 찾아가는 그 사람 당사자. 그가 바로 진정한 문수다.
그 문수 외에 달리 무슨 문수가 있겠으며, 또 문수가 있다한들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 오대산에 문수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 이냐? 뭐 그런 말은 안 하지요. 그것은 제가 하는 소리고요. 임제스님은 문수보살을 찾아가는 너야말로 진정한 문수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이것을 이해해야 됩니다.
一切處文殊師利菩薩. 일체 처ㆍ일체 인.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대로 文殊師利菩薩이다. 이런 표현 아닙니까? 이것이 한 두 곳입니까? 뭐라고 헤아릴 수 없을 만치 많은 곳에...
(1) 法身(법신)
若以威德色種族으로 而見人中調御師인댄
是爲病眼顚倒見이라 彼不能知最勝法이로다 ←32-1
↓32-2
如來色形諸相等을 一切世間莫能測이라
億那由劫共思量하야도 色相威德轉無邊이로다
如來非以相爲體라 但是無相寂滅法이로다
身相威儀悉具足하시니 世間隨樂皆得見이로다
佛法微妙難可量이라 一切言說莫能及이니
非是和合非不合일새 體性寂滅無諸相이로다
佛身無生超戲論하사 非是蘊聚差別法이라
得自在力決定見하시니 所行無畏離言道로다
若以威德色種族(약이위덕색종족)으로
而見人中調御師(이견인중조어사)인댄, 그랬습니다.
만약에 威德과, 그 석가모니부처님. 아주 참, 한번 모습만 봐도 누구든지 감화를 받는 그런 威德. 그리고 그 잘 생긴, 32상과 80종호.
그 다음에 種族은 뭡니까? 석가 족. 인도역사에서 대대로 왕족입니다. 비록 小國이지만 대대로 왕족, 석가 족의 출신이다. 이것은 뭡니까? 역사적인 사실로서의 부처님. 이 말입니다. 역사적인 사실로서의 부처님.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겁니다. 불교가 부정해도 인도역사가 증명하고 세계역사가 증명하는 그런 부처님입니다. 만약에 그런 역사적인 사실로서의 부처님을 본다면 見人中調御師. 사람 가운데 調御師. 사람 잘 다루는 사람.
調御師라는 말은 본래는 말몰이 꾼. 이 뜻입니다. 말을 잘 다루는 사람.
말이라는 것이 본래 야생마지요. 사람이 키운지가 얼마나 됐습니까?
그런데 그 야생마를 말몰이꾼이 목에 잡아타고 밧줄로 목을 감고 그러면서 달려가지고 결국은 그 야생마를 항복시키는 그것은 보통 솜씨 가지고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보통 솜씨 가지고는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정도로 사람을 잘 다스리고ㆍ제도하고ㆍ관리하고ㆍ감동을 주는 사람. 그것이 調御師입니다. 부처님 10호 중에 아주 정말 근사한 표현 아닙니까? 부처님을 사람 중에서 역사적인 사실로서 부처님을 만약에 본다면 뭐라고요?
是爲病眼顚倒見(시위병안전도견)이라. 그랬습니다.
이것은 병든 눈이다. 그리고 顚倒된 견해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병든 눈으로 顚倒된 견해다. 그래서
彼不能知最勝法(피불능지최승법)이로다.
그는 능히 最勝法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랬습니다. 정말 뛰어난 법은 알지 못할 것이다. 뛰어난 부처님. 最勝法도 모르려니와, 최승 불도 몰라요.
진짜 부처님, 사실 대승불교에서는요? 역사적인 부처님은 별로 높이 평가 안 합니다. 그런 역사적인 석가모니가 있음으로 해서, 역사적인 부처님보다 더 위대한 진짜 살아있는 부처를 우리가 만나게 되긴 했습니다.
모든 諸佛(제불)되는, 사실 역사적인 석가모니지요. 그렇지만 석가모니라고 하는 그 역사적인 인물에 한정시켜 가지고 부처님을 이해한다면 그것은 병든 눈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부처님을 보는 관점인데요. 그것을 경전 상에서는 見佛(견불) 그럽니다.
통현장자가 화엄론을 쓰면서 앞에 보면 부처님을 보는 그 안목의 차이를 열 가지로 쫙~~ 나열 한 것이 있습니다. 물론 역사적인 부처님으로 보는 그런 안목도 있고요. 그것은 소승적인 안목이지요. 그리고 소승들은 부처님을 어디까지 보고, 그 다음에 아라한은 어디까지 보고, 수다원은 어디까지 보고, 어디서는 어디까지 보고, 대승경전에서는 어디까지 보고, 열반경에서는 어디까지 보고, 이런 차원이 열 가지 차원으로 쭉~~ 나열 한 것이 있는데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부처님ㆍ부처님” 할 때 물론 석가모니부처님을 포함한 우리들 자신. 그리고 우리의 마음. 불성 그리고 이 우주 삼라만상이, 우주 삼라만상으로 존재하게 하는 그 본성. 그 원리. 개개자성. 꽃은 꽃대로, 여기에 꽃이 수 십 가지가 있지만, 그 낱낱 꽃대로의 그 자성ㆍ사람은 사람대로의 자성. 그것은 크게는 동일한 겁니다. 동일하면서 꽃의 경우는 꽃의 어떤 인연과 어떤 그 본성에 의해서 꽃으로 표현 되고, 나는 나의 마음에 의해서 나로 이렇게 표현 되고, 모든 사람들은 그 사람의 마음으로 그렇게 표현 되고, 모든 식물ㆍ동물이 전부 그렇게 표현 되지만 그 근본 성품. 본성자리는 하나다 하는 것입니다. 마치 저 바다에 물은 하나지요.
그러나 바람에 의해서 물결이 치면 그 물결이 크고 작고ㆍ또 높고 낮고 어떤 방향에서 어디로 치느냐 하는 것. 전부 다릅니다. 각양각색입니다.
그 바람이란 뭡니까? 業風(업풍)이지요. 업의 바람. 인연의 바람이요 업의 바람. 그래서 세상만사가 전부 업과 인연의 바람에 의해서 달리 나타나는 겁니다. 현상이 이렇게 전부 달리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 성품은 하나라는 겁니다. 사람의 성품이나ㆍ동물의 성품이나ㆍ식물의 성품이나ㆍ저~ 근본자리에서는 동일합니다. 물이 온갖 물결을 만들어 내지만, 물이라고 하는 사실에 있어서는 하나인 것입니다. 그것을 부처라고 하는 것입니다. 대승불교에 가장 궁극적인 안목으로서의 부처님을 이야기할 때는 바로 그 점을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기 역사적인 사실가지고 부처님이라고 하면 이것은 병든 눈이라 그래버렸습니다.
이것이 아주, 소승도 아닙니다. ‘속인 눈이다.’ 이 뜻입니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는 “역사적인 사실로서의 부처님”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이 경전은 이렇게 확실하게 짚어줬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것을 근거로 해서 어떤 교리강좌라든지 법회를 하든지 이야기를 확실하게 짚어줘야 됩니다. 역사적인 부처님을 우리가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화엄경에서는 역사적인 부처님 가지고 부처라고 보면 병든 눈이라고 이렇게 확실하게 표현했습니다. 사실은 그것은 하나의 좀 특징 있는 물결에 불과합니다. 특징 있는 물결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석가모니는 위대하지요. 대단히 위대하신 분입니다. 파도라 하더라도 수 100미터 높이의 파도와 같다고 이렇게 표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인 물이라고 하는 이 사실에서 하나의 佛業(불업).
부처의 업과 부처라고 하는 어떤 인연을 통해서 그와 같은 높은 부처의 파도를 일으켰을 뿐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화엄경에서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하다 보니까 이런 표현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 참, 경전에서 이런 구절을 보기는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最勝法. 불교 안에서 훌륭한 법을 못 만나는 겁니다. 그런 안목 가지고는 못 본다고요.
그렇습니다. 불교를 역사적인 사실로만 평가하면요? 그것은 어떤 역사서에 불과한 것이고 그렇지요. 사실은 불교 안에서 깨우쳐주고자 하는 그런 이치는 이야기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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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_()()()_
一切處文殊師利菩薩..
석대원성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_()()()_
???
다시 제가 들어보니 '그 원리'로 들립니다.
녜. 그렇습니다. 저도 이제 뚜렷이 그렇게 들립니다.
'그저껜 왜 안 들렸지? 기류탓인가?'
고맙습니다. 덕분에 몇 군데 더 수정합니다.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불교적 안목...고맙습니다 _()()()_
一切處文殊師利菩薩...우리들 각자가 문수보살...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_()()()_
대원성님,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_()()()_
쉽지 않은 일인데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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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切處文殊師利菩薩...釋대원성 님! 수고하셨습니다..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_()()()_
화중생련.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대로 文殊師利菩薩이다.
세상만사가 전부 업과 인연의 바람에 의해서 달리 나타나는 겁니다.
근본 성품은 하나라는 것._()()()_
삭제된 댓글 입니다.
[사람사는 이야기]에 글번 3269번을 꼭 보시기 바랍니다.
유마경;불이 법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아파서 나도 아프다.생명들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산천 초목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는 것으로 큰 뜻을 삼아야 한다
사람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생명들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산천초목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천지동근 만물동체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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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래부동명위불 나무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역사적인 부처님은 특징있는 물결~ 어쩜 이런 멋진 비유를.. 역시 무비스님이십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감사합니다.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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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대로 文殊師利菩薩이다.
세상만사가 전부 업과 인연의 바람에 의해서 달리 나타나는 겁니다.
근본 성품은 하나라는 것
_()()()_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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