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초에 처음 내주신 과제인데 지금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어요.
추석연휴때라 책을 읽긴 했는데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막막해서 미루
다보니 벌써 한학기가 다 갔네요.^^
BC 399년 소크라테스는 국가의 신(神)들을 믿지 않고, 청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는 혐의로 멜레토스에 의해 고발되었으나, 그는 이에 대하여 당당한 변론을 시도하였다. 이 변론은 최초의 변론, 유죄선고 후의 변론, 사형선고 후의 변론의 세 부분으로 되었다. 플라톤이 본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진수(眞髓)로서, 또한 소크라테스의 고발·판결·사형의 관련을 밝히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것이다. 플라톤에 의한 소크라테스 문학은 때로 작자의 창작이 섞인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 저작의 주요 부분은 역사적으로도 충실하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문체로서는 플라톤의 작품 중 백미(白眉)에 속하고, 예로부터 그리스 문학사상 산문문학의 주옥편으로 중히 여겨왔다. 현자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는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 사형을 언도받는다. 대화편 '변명'은 이러한 죄명에 맞서서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행한 변론이다. 변론에도 불구하고, 500인의 법정은 소크라테스에게 360:240 으로 사형을 선고한다. 그러나 이러한 판결은 아테네 민주정치에 우민 통치라는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오늘날 누구도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소크라테스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의 원인은 아테네의 우매한 민중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민중의 어리석음을 일깨우는 '등에'이고자 했던 소크라테스는 결국 민중의 어리석음으로 죽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선고받은 그 순간에서도, '등에'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았다. 그는 재판관들에게 눈물로 자비를 호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릇된 판단을 하고 있는 재판관들이 '옳고 그른 것을 음미하고 옳은 것을 선택하게 하도록'노력했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재판관들의 그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을 극복하지 못해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임박해서도 자신의 이로움보다도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그의 모습은 순간의 이익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를 준다. 그는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옳음'을 위해서 죽었다. 그의 죽음은 광신적인 믿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였다. 소크라테스는 사형외에도 원한다면 국외에 나가서 살 수 있었지만 그가 거절했다고 한다. 그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 되므로 자신은 당당히 죽음을 택하겠다고 했다. 자신의 행동에 끝까지 책임지고 밀고 나가는 그의 모습이 어떻게 보면 꽉 막혀있어 답답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것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해 본다. 안일한 사고에 빠져서 남들이 하는 것을 답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학자들이 많은 오늘날. 그와 같이 고집있고 자신의 학문적 철학을 꾿꾿이 지켜나가는 모습이 진정한 학문의 자세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