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 선교현장 방문기(양해룡 신부, 서울대교구 해외선교위원회 총무) 조형균(서울대교구) 신부가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동티모르 현지를 최근 다녀온 양해룡(서울대교구 해외선교위원회 총무ㆍ사진) 신부 방문기를 싣는다. 모든 것이 열악한 이역만리 타향에서 묵묵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선교사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해외 선교에 좀 더 적극 나서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고자 지난해 8월 신설된 서울대교구 해외선교위원회는 현재 동티모르를 비롯해 잠비아, 파푸아뉴기니, 미국, 일본, 프랑스 등 12개 나라에 선교사제 19명(파견대기 포함)을 파견했으며, 앞으로 선교사 파견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 후원 문의 : 02-757-1416(서울대교구 해외선교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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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형균 신부가 고해성사를 집전하고 있다. |
"본 디아, 아무(안녕하세요, 신부님)!" 동티모르 리퀴도이(Lequidoe) 지역 원주민들이 조 신부님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건네는 인사말이다. 사제에 대한 순박한 존경의 마음이 묻어나는 표현이다. 조 신부님은 선교하러 간 지 1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엄청난 노력으로 원주민 말인 테툼어(Tetum)를 통한 기본적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원주민들이 선교사제에게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기대하는 것은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해줄 착한 목자이리라. 조 신부님이 원주민들과 함께 삶을 나누고 참 사목을 실천하고 있는 곳을 서울대교구 해외선교후원회 도움으로 다녀왔다.
동티모르는 잘 알려진 대로 인도네시아에서 독립한 지 10년밖에 안 되는 신생 국가로, 국민의 90%가 가톨릭 신자다. 400년 동안 포르투갈 식민지, 인도네시아와의 독립전쟁과 내전…. 자신의 역사를 가질 수 없었던 불행한 식민지 동티모르의 역사이다. 동티모르인들은 비록 가난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고 나라를 건설했다는 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어 자존심이 강하다. 간혹 이것이 배타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과 관계는 유엔 파병과 원조를 통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동티모르가 주요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는 12개국으로, 그 중에서도 한국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 외교 관계에서 서경석(미카엘) 동티모르 한국대사님은 동티모르 선교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소중한 존재이다.
원주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옷, 신발, 이불 등 생필품이라는 것을 직감한 조 신부님은 대사님과의 협력을 통해 서울과 의정부교구 본당들 지원을 받아 다양한 물품을 동티모르인들에게 나눠준다. 조 신부님은 공소 방문 때마다 옷이랑 신발을 가득 싣고 가서 천주교 신자들뿐 아니라 리퀴도이 주민들, 심지어 개신교 신자들에게까지도 나눔을 실천한다. 옷을 받은 그들은 "아무, 오브리가도(신부님,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고마워한다. 조 신부님은 한국에서 온 박스를 분류, 정리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남성용과 여성용을 구분하고, 특별히 괜찮은 옷은 봉사자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따로 챙겨둔다.
이제는 사제관도 번듯하게 새로 지었다. 필자는 그곳에서 지냈으므로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한다. 물은 멀리서 등짐을 지고 길러와 사용해야 하고 쥐들과 함께 잠자리를 해야만 하는 낡은 사제관, 그 낡은 사제관에서 벗어나고자 새 사제관을 짓는 동안 조 신부님은 공사 인부들과 함께 원주민들이 먹는 음식을 나눠 먹었다. 원조받은 쌀과 나물을 삶은 것이 전부였다. 6개월 동안 이런 식사를 한 후 그만 영양실조에 걸렸다.
새로 지은 사제관에는 물도 나오고, 비록 저녁 동안이기는 하지만 전기가 들어온다고 좋아하지만 사실 책을 간신히 읽을 수 있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여전히 열악한 환경이다. 지속적 전기 공급이 불가능해 냉장고를 설치할 수 없어 음식물 보관에 한계가 있기에 먹거리가 제한된다는 문제가 늘 따른다. 이런 모든 어려움에도 조 신부님은 늘 활기차게 일한다. 요즘은 신학생들이 이곳에서 모라토리움(군 제대 후 현장체험)을 하고 있어, 그들과 함께하는 생활을 통해 큰 활력을 얻고 있다.
1500m 고지, 건기가 막 시작하려는 때 필자가 도착했기에 산소가 듬뿍 담긴 공기는 참으로 신선했다. 그러나 그 고지를 넘어 불어오는 바람이 포장되지 않은 길과 산에 먼지를 일으키면서 인체에 유해한 것이 돼 버린다. 우기 때는 하늘에 구멍이 난 듯 집중적이고 국지적인 폭우가 쏟아진다. 그 열악한 기후와 환경을 뚫고 조 신부님이 최우선적으로 하는 일이 바로 5개 공소 방문이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공소부터 2시간의 대장정을 필요로 하는 먼 공소에 이르기까지 산 밑에 있는 공소에 도달하려면 움푹 파이고, 미끄럽고, 풀이 가득한 길을 통과해야만 한다. 그 공소들을 방문하는 것은 매번 생명을 담보로 하는 일이다. 원조 물품을 실은 4륜 트럭을 몰고 공소를 방문하면 그를 기다리는 영혼들이 있다.
인사를 나누고, 성사를 주고, 미사를 집전한 조 신부님에게 대접하는 특별 만찬이 있다. 원주민들이 준비하는 음식은 각자 형편에 따라 각기 다르다. 쌀과 고구마 비슷한 것, 라면과 간단한 국이 전부인 곳도 있고, 닭과 보신용 음식을 준비해 놓은 곳도 있다. 신부님이 서둘러 먹고 가야 원주민들이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조 신부님은 늘 "앙주(천사)!"하면서 아이들에게 인사한다. 조 신부님은 문화적 경험이 거의 없는 원주민 아이들에게 신학생들을 통해 리코더를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알려주려는 작은 선물이다.
8년 전, 조 신부님은 자원봉사자로 한 달 정도 동티모르에 머문 적이 있다. 그 때 만난 메리놀회 신부님의 설득을 통해 선교사제로 불림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는 여의치 않은 일이 생겨 포기했었지만 원주민 어린이들의 눈동자가 계속 밟혀 다시 오게 됐다고 한다. 아이들을 만나면 본디 천사 같은 조 신부님의 얼굴이 더욱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가득 찬다. 그 웃음 속에 진실과 진리가 담겨 있다.
조 신부님의 앞으로의 계획은 진실과 진리를 실천하기 위한 나눔에 집중된다. 첫째, 제대로 된 성사생활을 위해 열악한 성당과 공소들을 재건축하는 것이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공소 앞마당에 성모님을 모실 동굴을 이미 준비해 놓았다. 한국에서 온 성모상을 모시고 원주민들, 특히 순수한 눈빛의 아이들을 성모님 전구에 맡길 것이다.
둘째, 원주민들 건강을 위해 한국 의료봉사자들의 방문 기회를 좀 더 많이 마련하는 것이다. 또 한국 자원봉사자들이 원주민들과 함께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제관 옆에 봉사자들이 머물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목공소를 지어 원주민들에게 나무를 다루는 기술을 익히게 함으로써 원주민 생활 개선과 삶의 개척에 도움을 줄 계획도 갖고 있다.
필자는 이번 방문을 통해 착한 목자의 참다운 삶을 몸으로 느끼고 왔다. 호탕한 웃음을 통해 전해지는 조 신부님의 순박하고도 단순한 우직함. 양들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착한 목자. 아무런 문명의 혜택도 없고 지인들과 관계에서 오는 즐거움도 없지만, 언제나 조 신부님 마음에서 울려 나오는 맑고 따뜻한 한마디, "본 디아, 앙주!(안녕, 내 천사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기도로, 또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로 열심히 후원하는 것이리라. 바쁜 일정 속에서도 조 신부님을 끊임없이 돕고 계시는 대사님처럼, 원주민들의 영혼 구원과 생활 개선을 위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필요하다.
조형균 신부님, 동티모르에서 가장 험악한 지역인 리퀴도이의 거인. 조 신부님은 높이 13미터, 폭 7미터의 커다란 십자가를 마을 입구 언덕에 세웠다. 그 십자가는 바로 그의 마음일 것이다. 언제나 리퀴도이를 지키고 리퀴도이 사람들을 위해 살 것이라는 굳은 다짐이 담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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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퀴도이 신자들과 함께한 조형균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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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티모르 리퀴도이 지역 신자들이 미사에 참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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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해룡 신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