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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은 느리다. |
이렇게 형성된 인사동 길은 1988년 ‘전통문화거리’로 지정돼 오늘에 이른다.
전통의 거리 ‘인사동길’에선 피맛골을 빼놓을 수 없다. 피맛골 앞엔 ‘서민의 거리’란 수식어가 붙는데 그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10년 20년 전이 아니라 600년 전부터라 하니 말이다. 조선시대 이 일대의 큰 길은 양반들이 다녔던 길로 서민들은 양반을 피해 작은 골목으로 지나다녀야 했다고 한다. ‘양반들이 타고 다니던 말(馬)을 피(避)해 다녔다’는 데서 피맛골이 유래했다고. 피맛골에는 현대식 어원도 있다. 지엄한 대학선배가 알려줬던 피맛골의 어원은 이렇다. “술을 마시고 토하다 피맛이 날 때까지 술을 마시는 곳”. 그럴싸한 설명이었고 그렇게 알고 지내길 몇 년이었던가. 고갈비와 막걸리, 허름한 화장실,옷에 흠뻑 배이는 생선구이 냄새는 잊을 수 없는 피맛골의 피맛골스러운 흔적들이었다.
Scene NO. 2 종로 인사동 & 쌈지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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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던 인사동길에 변화를 꾀한 건 쌈지길이다.
변함없는, 전통의, 느릿한 인사동길 안에 있으면서도 쌈지길은 ‘그 밖에’ 존재하는 세상이다.
작게는 3평 밖에 되지 않는 작가공방에서 문화상품이 직거래 되는 형태인 쌈지길에선 작가별, 분야별, 다양한 형태의 매장을 만날 수 있다. ‘길’ 이라 하기에 낯설어 보이지만, 쌈지길에 들어서면 길이라 칭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쌈지길은 인사동의 작은 골목길들을 나선형으로 연결해 쌓아올린 공간으로, 층 개념이 아니라 길이 이어진 수직적인 골목길 건물이다.
첫걸음길, 두오름길, 세오름길, 네오름길 등으로 이름 붙여진 쌈지길에 서면 평소 보지 못한 이색적인 풍경을 만난다. 각 길 마다 줄지은 가게와 그 가게를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열린 가게가 그것이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소설의 관찰자 시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곳이다. 다름과 낯섦이 어색하지 않는 열린 공간 쌈지길은 2008년 전통의 거리 인사동의 다른 길이다.
Scene NO. 3 일산백마역과 화사랑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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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역을 향하는 경의선 열차는 40분간의 짧은여행 |
백마역 카페촌의 원조, 화사랑의 내부 모습 |
경의선, 신촌역, 백마역, 통기타, 화사랑.
열거한 단어들에 설레었다면 짐작컨대 80년대 대학생이었을 게다. 신촌역에서 백마역까지 경의선 열차가 달리는 40분 동안 통기타를 치며 노래한 추억을 공유한 세대일 게다. 백마역은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백마역의 모습도 변하고 카페촌의 모습도 조금씩 변했다. 소위 ‘일산이 신도시로 뜨면서’ 백마역 주변이 아파트로 둘러싸이게 된 것. 간이역이었던 백마역 대신 임시백마역이 세워졌고, 이는 내년 전철역이 완공될 때까지만 운영하는 시한부 신세다.
카페촌도 본래 거리에서 2km 가량 옮겨 온 것이라 한다. 현재는 풍동 ‘애니골’로 불리고 있다. 그래도 백마역 주변 카페촌을 견인했던 화사랑은 옛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창틀가득 빼곡히 적힌 낙서가 그렇고, 도토리묵과 파전 안주가 그렇고 무엇보다 화사랑을 찾는 사람들이 그렇다. 20대였던 그들이 30대 40대가 되어 찾고 있는 화사랑은 이제 청춘의 공간에서 가족 공간으로 조금씩 옮겨가고 있었다. 지금도 라이브카페들을 어렵잖게 찾을 수 있지만,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식점들도 못지않게 많다.
Scene NO. 4 일산 라페스타거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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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스트리트형 쇼핑몰이라는 다소간 낯선 수식어를 가진 라페스타는 실제 거리에 들어서면 다른 세상에 온 듯 시선을 떼기 힘들다. 넓은 광장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총 6개 동이 들어서 있다. 건물은 각기 구름다리가 연결돼 있어 이동이 자유롭다.
원색간판, 발랄한 외관 안에는 각양각색의 매점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의류와 소품, 카페와 서점 뿐 아니라 멀티플렉스 영화관 까지 없는 게 없다. 라페스타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영화표를 예매하는 모습은 백마역행 기차표를 끊던 80년대 청춘의 모습과 다름 아니었다. 화사랑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던 청춘은 라페스타 거리에서 힙합공연을 하는 20대와 다름 아니었다. 추억의 장소에서 새로운 추억은 그렇게 또 생겨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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