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불교를 접하고 각 경전의 사경과 독송에 임한적이 있었읍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은 경전의 사경과 독송을 들라하면 지장경이라 말 할수 있다봅니다.
아버님이 췌장암 말기진단을 받으시고 의사로부터 얼마밖에 못사신다 라는 말을 듣고 그동안 아버님과 저와의 미묘한 흐름에 종지부를 찍었죠.
언제나 당당하시고 걸림이 없는분 이었지만 저의 적은 소견으로는 그분의 큰 그릇을 알 수가 없었고 그러다보니 아버님과 저와의 관계는 소원해졌고 점점 뜸해져 나중에는 서로 연락없이 몇 년을 보냈던적이 있었읍니다.
그러다가 그렇게 건강하시던 아버님이 갑자기 췌장암 말기진단을 받고 앞으로 잘 살아야 여섯달밖에 안남았다는 사형선고를 받았죠.
그 와중에 어머님의 쇼크사로 인한 갑작스러운 죽음과 아버님의 암 진단과 맞물렸읍니다.
돌아가신 어머님 사진을 보다가 저는 큰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대성통곡 하면서 울었읍니다.
비록 우리를 낳아주시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가 콧물 흘리던 어린시절 어머님이 되셔서 이렇게 장성할때까지 키워주셨는데 죄스러움이 하늘에 닿은 느낌이었죠.
파킨스씨병으로 근육이 제 몫을 못하는 그래서 병의 발병후 수술후 쇼크사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건 10년의 세월을 병의 고통속에서 살았다 봅니다.
좋아하시는 소주 한 잔 마음대로 마시지 못하고 좋아하는 여행 한번 제대로 못하시고 병원에서 쓸쓸히 자신의 생을 마쳤다 들었읍니다.
소식을 전해듣고 처음에는 큰 마음의 움직임을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터져나오는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대성통곡 하면서 울었읍니다.
그분도 저의 어머님인데 저의 짧은생각이 친모, 계모 구분을 나눴고 계모라하여 무시하고 박대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죄스러움을 지울수 없었읍니다.
그러던중 대구에 있는 친구(대 관음사 불자 ) 와 통화중 소리내서 엉 엉 우는 저에게 친구는 지장정근을 권하였고 그렇게 지장정근과 지장경은 저에게로 왔읍니다.
어느 보살님의 경전보시로 저는 지장경을 가질수 있었읍니다.
그후 저는 아버님을 만나서 용서를 빌어야 겠다 마음먹고 아버님이 계시는 큰 누님 집으로 가서 병의 고통으로 신음하시는 아버님께 무릅꿇고 아버님께 용서를 빌었읍니다
아버님. 저를 용서 해주십시요,
제가 옹졸하여 아버님 마음을 너무나도 아프게 하였읍니다.
저를 용서하여 주세요 하면서 엉 엉 울면서 아버님께 용서를 빌었고 아버님은 당신의 따뜻한 손으로 저를 감싸주셨죠.
그렇게 아버님 손이 따뜻한지는 그 때 처음 알았읍니다.
아버님은 저의 등을 다독이면서 괞챦다, 괞챦다, 하시었지요.
그렇게 저와 아버님 사이에 있던 제가 만든 철옹성은 무너져 내렸읍니다.
그후 저는 아버님의 쾌차를 바라는 뒤늦은 마음으로 아버님을 위해 지장경을 읽은적이 있읍니다.
그렇게 몇 번의 지장경을 읽었을까 아버님은 자신이 살아생전 자식들의 집을 방문하려고 저의집에 오셨던적이 있었읍니다.
한번 허물어진 철옹성은 아버님을 뵐 때마다 눈물로 되어서 나타났고 아버님이 저희집에 오신날 저는 아버님의 손을 잡고 엉엉 울었읍니다.
그런 저를 아버님은 다독여 주셨지요.
그렇게 아버님과의 대화가 끝나고 아버님이 주무실때 저는 아버님을 위해서 읽었던 지장경을 잊을수가 없읍니다.
그러다 2008년 3월 2일 아버님은 온몸으로 퍼진 암의 기운앞에 스러지셨고 저는 더 이상 아버지라고 부를수있는 존재를 잃어 버렸읍니다.
아버님은 자신의 평생 절반 가까이 반야심경을 사경하셨고 그분은 찰라 찰라 일어나는 자신만의 상념을 자르고자 끊임없이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신분 입니다.
요즘들어 반야심경을 다시 읽게 되었고 260자 반야심경의 깊은뜻과 도리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데 아버님은 자신의 空 자리로 空 을 풀기를 건 30년 정도 하셨으니 그분의 신심의 깊이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아버님은 평생 반야심경 한 편만을 사경 하셨지만 그분이 남긴 사경물은 단 오십편도 되지 않는다 봅니다.
얼마큼 사경하여 사경물의 무덤을 이루면 다 태워 버리셨고 지금도 표구상 주인들에게 아버님의 글을 보여주면 표구상 사장님들은 글을 보고 난 뒤에 한국에 이런 분이 계셨냐 하면서 감탄을 하시고 후에 저를 만나면 먼저 그분이 저에게 인사를 하십니다
그분들은 제가 한번 보여드린 그 반야심경 사경물에게 예의를 표하시는것 이겠지요.
아버님의 49 재중 저는 아버님의 극락왕생을 바라는 마음으로 지장경 49번의 독송을 하게 되었고 49재가 끝나서 아버님 49재 회향을 할때 그때 저희 아버님을 천도 해주신 스님께 아버님의 오십편중 한편을 공양 올렸읍니다.
그후 아는 보살님의 손녀딸이 어린나이에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저는 그 손녀딸이 지장경의 내용과 일치하는 면이 있는지라 그 손녀딸을 위해 지장경을 한 권 한문으로 사경한적이 있었읍니다.
그렇게 읽고 쓰다가 한 귀절에서 저의 마음이 멈추었는데요.
지장경의 몇 품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귀절이 있었지요.
절을 짓는 불사나 혹은 그에 상응하는 불사를 하고 자신에게 회향하면 공덕은 삼세에 미칠 것이지만 법계를 위해 회향하면 공덕은 무한하다는 내용입니다.
제가 지장경을 읽은지 2 년이 넘었기에 혹시 틀린귀절이 있더라도 용서바랍니다.
저는 그러한 귀절을 읽고 귀절내용을 잊을수가 없었고 귀절의 내용을 한번 해보자 마음먹었지요.
그래서 저는 초 발심 발원때 이런 발원을 하였읍니다.
산꼭대기에 올라가 저쪽편에 있는 산에 소리를 지르면 소리는 맞은편 산에 부딪혀서 메아리가 되어서 메아리는 소리를 지르는이를 감싸고 또 모두를 다 감쌀것이다 라고 생각하였고 그렇게 한번 해보기로 발원을 하였읍니다.
그러한 발원은 지금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읍니다....
제가 4월말 금양 98호 선원들의 극락왕생을 위해 저만의 49재를 시작하였고 영가천도 기도중 중간 중간 저의 기도를 글로올려서 지대방(각 사찰의 사이트)에 올림도 초발심발원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봅니다.
제가 처음 저만의 49재를 발원할때 이런 마음이었죠.
시작은 제가 먼저 하였지만 기도에 동참하시는 수 많은 법우님들이 복덕과 공덕을 다받게 하여 주십시요 하면서 불 보살님들께 기도 드렸으며 이런 저의 기도를 불보살님들이 들어주셔서 많은 법우님들의 동참과 금양호 관련 천도법회가 이뤄진다 봅니다.
(처음에는 저만의 기도 이었으나 여러분의 큰 스님이 마음속으로 도와주셨으며 또 서울 불광사 법우님들과. 능인선원 법우님들과 강남포교원 법우님들과 인천 용화선원 법우님들이 힘을 실어주셔서 홀로한 기도가 회향할때에는 수 천명의 법우님들의 간절함이 되었다 봅니다. 금양호 천도법회에 참여하여 주신 수 많은 법우님들과 여러분의 큰 스님들께 감사함을 전하여 봅니다. 감사합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_()()()_ )
이 기도를 행하면서 저는 불보살님들의 무한한 가피와 위신력을 수 없이 느낍니다.
불보살님들의 가피와 위신력이 없다면 이일은 애초에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천도법회가 치뤄진다는 소식을 듣고 이 천도법회가 왜 시작되는가에 대해서 다른절 불자님들과 대화를 하면 모두 이런 반응 이십니다.
불가능이 가능으로 화했다고요.
그럼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것은 불 보살님들의 무한한 가피와 위신력이라 봅니다.
무한한 부처님의 기피와 위신력만이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 봅니다.
이제 날이 밝으면 나라를 위해서 일을 하다가 서해의 차가운 바다속으로 산화한 아홉분의 불쌍한 금양98호 영가님들과 46명의 천안함 장병들과 동료와 자식같은 이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살신성인한 고 한주호 준위의 천도법회가 열립니다.
56명의 영가님들의 극락왕생을 간절히 간절하게 빌어 봅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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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망상과 분별을 냄을 용서 바랍니다.
바보같이 살고져 한이 바보같은 분별을 냅니다.
PS: 영가천도 49재 기도를 시작할때 같이 기도에 임하시면서 힘을 실어주신 가락동시장에서 감자를 파시는 교회 집사님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종교는 서로 같지않지만 한결같은 마음으로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위하여 하루에 얼마간의 시간을 내서 기도에 임한다고 하셨고 또 그 말씀을 실천에 옮기셨다고 봅니다.
천안함 관련 천도제는 종교의 유무와 관련없이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해야하는 행 이라고 저는 봅니다.
그리 보고 그리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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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진심이 묻어있는 진솔한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수행을 중생에게 회향하시는 모습이 감동입니다.성불하십시요.
부족합니다.. _()_
저도 감사히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