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부터 우리 승우를 봐야하는 형편이라 이번 주밖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안식구와 함께 나들이 길을 나섰다. 처음에는 곤지암에 있는 화담숲이라는 식물원으로 가려고 하였으나 가까운 곳인데다가 한 곳만 다녀오기가 서운하여 나도 아직 가보지 못한 여주의 신륵사를 찾아갔다. 신륵사는 신라 원효대사 창건하였다고 하나 확실하지가 않고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고 한다. 여주의 팔경 중 신륵사의 저녁 종소리가 들어갈 정도로 여주의 대표적인 명소가 되었고, 남한강 변의 절벽위에 자리를 잡은 자연과의 조화가 절묘하게 잘 어울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내에 들어서니 귀청을 울리는 확성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서 절의 분위기가 나지 않고 시끄러운 장터 같은 느낌이 들어서 선입견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가까이 가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고 무대에서는 악기를 연주하며 여승 두 분이 춤을 추고 있었다. 취재진들도 많고 카메라가 연신 행사를 촬영하고 있어서 진행을 돕는 분에게 물어봤더니 세계3대 광고 페스티벌의 하나인 뉴욕페스티벌이 여주에 오게 되었으며 7월1일부터 5일까지 행사를 하는데 그 개막행사 중의 하나를 신륵사에서 하는 중이라고 하며 안내장을 주면서 한 번 읽어보라고 하였다. 무대에서 추는 춤이 바로 승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참을 보았지만 나도 처음 보는 것이라서 잘 모르긴 하지만 생각한 것과는 너무 다른 느낌이 들었고 조금은 실망을 하였다. 조지훈의 “얇은 사 하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고 노래에서와는 다른 전혀 서럽지가 않았다. 조지훈의 시가 너무 아름답게 미화를 한 것인가? 아름답고 멋진 동작은 보이지 않고 춤을 추는 여승도 시 속의 여승과는 너무나 차별화된 느낌이었다. 조금은 실망을 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 강변으로 가니 2층으로 된 정자가 있고, 옆에는 상단부가 훼손된 탑이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래로는 절벽이고 남한강의 물과 언덕의 정경이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웠다. 바로 그날 아침 kbs 인간극장에서 여주에 사는 주인공 두 분이 나들이를 가서 보여주던 그 장면이어서 반갑기도 하고 멋진 경치와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니 마음속까지 시원하고 상쾌하였다. 사찰은 대개가 산속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정밀의 미를 느끼는 것이 보통인데 신륵사는 강변에 있는 것이 특이하고 마침 절에서 큰 행사를 하는 바람에 시끄러워서 첫 인상이 좋지 않았다. 잠시 둘러보고는 시내로 나와서 뉴욕페스티벌 지정 식당이라는 안내판이 적힌 식당에서 삼계탕으로 여름날의 기를 보충하였다.
그 다음으로 찾아 간 곳이 英陵이다. 조선 4대왕인 세종대왕의 무덤으로 40년 전에 가보고 다시 가니 모든 것이 처음이나 마찬가지로 느껴졌다. 드넓은 면적에 쭉쭉 뻗은 소나무와 푸른 잔디가 주변의 자연과 어울려 너무나 멋진 공원이 되었다. 무덤은 소헌왕후와 합장을 했다고 한다. 메르스 여파로 모든 국립공원과 고궁을 7월 한 달 무료로 개방을 한다고 하여 500원의 입장료를 내지 않고 들어가니 그것도 작은 기쁨이었다. 세종대왕은 역대 왕들 중에서 과학적 업적을 가장 많이 남긴 분이다. 해시계인 앙부일기, 물시계인 자격루, 한양의 물깊이를 재던 수표, 음악에서도 편견이라는 악기를 만드는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고 그 모형물을 전시를 해놓은 것이 다른 왕릉이나 묘소와는 색다른 모습이었다. 세종대왕은 무엇보다 최대 업적은 훈민창제라고 할 것이다. 세계사에도 없는 집현전 학사들의 노력과 중국 음운서를 공부하여 위대한 한글을 만들어서 지금 우리는 무한한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아이티(I.T) 시대에 세계 어느 문자와 비교해도 월등한 문자라는 것을 실감하며 세계인들이 놀라고 있으니 세종대왕의 뛰어난 정신과 업적을 높이 기리며 감사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세종대왕전이라는 건물 안에는 작품들을 전시해 놓았고 맞은편에는 영릉의 사계를 그린 그림과 사진이 전시되어 있어서 한 자리에서 네 계절을 감상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 아름답고 멋진 공원이요, 역사의 장소인 영릉을 찾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잠시 머물렀지만 찾아 온 사람은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세종대왕은 누구나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업적을 제대로 알고 그 뜻을 기리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역사 교육의 부재 탓일까?
근처 700m를 더 가면 또 다른 영릉이 있다. 조선 17대 임금 효종의 무덤인 寧陵이 있는데 안식구가 힘들어서 가지 말자고 하여 발길을 돌려서 나오니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아내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세 여자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먼저 아내의 말을 잘 듣고, 다음은 어머니의 말을 잘 들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네비 아가씨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우스개소리까지 나오니 말이다.
마지막 코스는 곤지암의 화담숲이라는 곳으로 새로 뜨는 식물원이다. 일전에 신문에도 소개를 하였고 우리 집 큰 아이가 추천을 해주어서 한 번 들려보기로 하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한 사람당 9,000원(경로7,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산비탈을 그대로 식물원으로 꾸며놓았다. 제법 높은 산 정상 근처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서 모노레일을 타고 갔다. 표를 미리 사지 않아서 내려서 직원의 도움으로 다시 6,000원을 결제를 하고, 위에서부터 구경을 하면서 내려오는데, 어느 누가 꾸미고 가꾸었는지 대단한 자금과 노력과 심혈을 기울인 것 같았다. 산골짜기의 자연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곳곳에 꽃과 나무를 심고 동물도 몇 마리가 보이고 갈지자로 길을 만들어 편안하게 내려갈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암석원과 연못, 그리고 쉼터가 군데군데 있어서 전혀 힘들지 않고 걸으면서 구경을 할 수 있도록 아주 잘 꾸민 식물원이었다.
수많은 꽃과 나무의 이름을 다시 보면서 외우고 사진도 찍고 하였지만 돌아서니 생각이 잘 나지를 않는다. 이름과 특징을 알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 내려와서 깔끔하고 아담한 까페에서 잠시 쉬면서 빙수(6,500원) 하나을 시켜 먹었다. 양도 많고 콩가루를 넣어서 아주 고소하고 단팥과 찰떡 맛이 달콤하고 쫀득한 것이 둘이서 먹어도 넉넉하였고 입도 개운하게 맛있는 빙수를 먹고 나니 기분이 상쾌해지는 느낌이었다.
이제 다음 부터는 손주 승우를 보게 되면 꼼짝하지 못하고 두 사람이 매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마음의 여유를 찾고 안식구에게 기를 넣어주려는 마음으로 나들이를 하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멋진 곳을 다녀오게 되어서 아내도, 나도 흐뭇한 마음으로 하루나들이를 마무리 하였다.
2015. 7.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