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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역사적인 현장이었다. (당시 1992년도에는...^^)
개인용 컴퓨터(PC)를 이용해 한 사람은 서울에서 다른 한 사람은 전주에서 온라인으로 대국을 한다.
굳이 멀리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는 구한말 노사초 국수쯤의 계보 세대들이 오늘날 되돌아와 봤다면 표정이 어떠했을까. 포복절도했을 터이다.
나무바둑판에서만 행해지던 5천년 바둑문화가 고도로 발달된 과학에 의해 전극선관 위로 마침내 바둑돌이 옮겨지게 된 시대 - 그 첨단의 컴퓨터시대 첫머리에 우리는 서 있다.
유창혁五단(당시)이 서울 공릉동 자신의 집 안방에 설치된 PC의 키보드 커서(방향키)를 움직여 첫수를 우상귀 화점을 선택했을때 화면의 바둑판 우측에 아래의 문자가 새겨졌다.
<<한국PC통신 창립기념대국>>
[2번 대국실] 호선(5집반 공제)
흑: 유창혁(Ukisung) 5단
백: 이창호(ikuksu) 5단
해설: 김수영(kimsu@)
사석: 흑(@) / 백(@)
현재:1수(4,d)
순번:백번
그리고 그 첫수는 모뎀과 연결된 전화선을 타고 한국 PC통신의 중앙 서비스호스트를 거쳐 즉각 전주의 이창호五단(당시) 안방으로 전달된다.
이五단은 (16,p), 즉 좌하귀 화점에 백돌을 맞추고 엔터 키를 눌러 화답한다.
세계최초로 기록될 프로간의 PC대국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를 두고 김수영六단은 다음과 같이 타이핑해 해설했다.
"오늘 두 대국자는 이 행사에 아주 어울리는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컴퓨터 세대이기 때문이지요."
이 바둑은 각자 제한시간이 2시간. 1분 초읽기 5회가 주어졌는데 커서를 조정해 돌을 착수해야 하므로 약간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10초전 계시자가 "50초 방향키를 움직여주십시요"라는 경고를 반드시 넣도록 규정해 놓았다.
또한 양 대국자가 20인치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수읽기를 해야 하는 까닭에 다소 생소하고 눈이 피로할 것을 감안, 정확히 대국시작 2시간 후에 20분간 중간휴식을 취하게 했다.
이날 입회인은 유五단쪽에 최규병五단이 이五단쪽은 고광명三단이 맡았다.
한편 신사동의 한국PC통신 본사에 마련된 해설장에서는 김수영六단이 전국 13만 '코텔' 회원들을 대상으로 신명난 해설을 펼치고 있었다.
전주대국장과 서울대국장 상황을 체크하며 대국의 추이를(육성이 아닌 문자로)전국 사용자들에게 전송했는데, 물론 대국 당사자들의 화면엔 해설내용이 비칠 까닭이 없다.
원래 이 대국은 3월 29일 오후1시를 기해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전국에서 너무나 많은 통신인구들이 일시에 '코텔'PC바둑통신망을 개설하는 바람에 회선(전화)이 폭주, 40분간 지연되었다.
이전삼전, 흑151까지 백 두점이 고스란히 뜯기게 되어서는 백은 더이상 희망도 없다. 백이 어떻게 해도 1집반의 차를 줄이는 수순이 없다.
[계가를 위해 사석을 처리하겠습니다]라는 종국동의가 오가고서 계가를 끝낸시간이 오후 7시10분경. 장장 6시간여의 대혈투였다.
놀라운것은, 두 기사가 생전 처음 나무바둑판이 아닌 PC화면의 손바닥만한 바둑판에 커서를 움직여 대국했음에도 단 한번의 에러도 없이 그 어느때보다 훌륭한 명국을 연출했다는 사실이다.
해설도 재미있었다. 비록 참고도 수순은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프로들의 착점을 즉각즉각 안방에 앉아서 지켜보며 설명을 듣게되는 흥분이 단시간에 끝내야 하는 TV바둑과는 또다른 묘미가 있었다.
종반에 이르러 초읽기에 의해 착수가 빨라지자 해설(김六단이 구술하면 옆의 오퍼레이터가 타자해 전송)이 진행을 못따라 잡아 생기는 촌극이 여러번 연출돼 폭소를 자아냈다.
가령 김六단이 다음수를 예상, 마악 타이핑을 끝내고 전송하는 순간에 바로 그점이 놓여져 화면에 나타나는식의...
"이제 흑은 11,K에 호구치는 수뿐입니다. 아, 또 해설이 한발 늦었습니다. 그러나 오해는 마십시요. 보고 나서 한것은 아닙니다.^^"
당시 우리보다 컴퓨터문화가 훨씬 앞서있는 일본에서조차 프로간에 PC로 바둑을 두었다는 기록은 없었다.
바둑문화가 동양에 비해 비교적 대중화되지못한 서구는 말할것도 없고 따라서 이 통신대국은 기네스북에 오를 초유의 본격PC기보로 기록될 것이다.
한국PC통신(주) 창사기념 온라인대국
백: 이 창 호 五단
흑: 유 창 혁 五단
(232수 이하줄임 흑1집반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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