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자 |
지 역 |
교 통 |
시간 |
주요여행일정 |
제1일, 26일 (월요일) |
부 산
호치민 씨엠립 |
VN 9711
VN 829 전용차량 |
09:00 11:20 14:00 16:30 17:20
|
부산 김해공항 국제선 1층 집결 부산출발/호치민 향발 호치민 탄손누트 국제공항 도착 호치민 출발/씨엠립 향발 씨엠립공항 도착, 식당 이동후 석식 호텔(골디아나 호텔) 투숙 |
제2일, 27일 (화요일) |
씨엠립 |
전용차량 |
08:30
14:00 19:00
|
조식후 앙코르 유적지 관광 -앙코르 톰, 바이욘 사원, 비프욘 사원, 타프롬 사원 등 중식후 앙코르와트 사원 관광 석식과 압살라 민속디너쇼 관광후 호텔 투숙 |
제3일, 28일 (수요일) |
씨엠립
하노이
|
선 편
VN 842
|
08:00 08:30 14:00 16:30 17:50 19:40
|
조식후 체크아웃 톤레샵 호수, 수상가옥촌 관광 중식후 캄보디아 민속촌 관광 석식후 공항으로 이동 씨엠립 출발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 도착 석식후 호텔(대우호텔) 투숙 |
제4일, 29일 (목요일) |
하노이
하롱베이
|
전용차량 |
09:30 15:30 19:00
|
호치민영묘, 호치민박물관 등 관광 중식후 하롱베이로 이동 하롱베이 도착후 석식 호텔(사이공 하롱호텔) 투숙 |
제5일, 30일 (금요일) |
하롱베이
하노이
|
유람선 전용차량
|
08:50 13:00 19:00 22:00 |
조식후 하롱베이 유람 하노이로 출발 하노이 이동후 석식, 수중인형극 관람 공항 이동 |
제6일, 1일 (토요일) |
하노이 인 천
부 산 |
VN 936
KE 1401
|
00:30 07:00 10:00 11:00 |
호치민 출발/인천향발 인천도착 인천출발/부산향발 부산도착후 해산 |
□ 방문국 기본현황
1. 베트남
○ 국 명 :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
○ 정 체 : 사회주의공화제(공산당이 유일 정당)
○ 독 립 일 : 1945. 9. 2
○ 위 치 : 인도지나반도 동부,중국,라오스,캄보디아 인접
○ 기 후 : 북부지역(아열대성), 남부지역(열대몬순)
○ 인 구 : 8,300만명
○ 면 적 : 330,341㎢(한반도의 1.5배)
○ 행정구역 : 4개의 중앙직할시와 57개의 성으로 구성
○ 수 도 : Hanoi
○ 언 어 : 베트남어
2. 캄보디아
○ 국 가 명 : The Kingdom Of Cambodia
○ 면 적 : 181,035㎢
○ 기 후 : 열대 몬순 기후
○ 언 어 : 크메르어
○ 국 교 : 소승불교
○ 인 구 : 약 천백4십만명
○ 인구구성 : 크메르족 80%,베트남인,화교,소수의 고산족
○ 수 도 : 프놈펜
○ 정치체제 : 입헌 군주제
○ 국가원수 : 노로돔 시하눅 국왕
○ 수 상 : 훈센
□ 여행후기
중구의회 사무과장이자 영이회 회장이시며 한길산악회 고문이신 김경헌님의 올해 12월말 정년기념인 배낭여행이 1년전부터의 목표였는데 새해들어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 어느듯 9월하순하고도 마지막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 하루앞에 다가왔다. 가슴이 설렌다하면 지나친 말일까?
직원들과 평소 구정에 열성적으로 봉사해 오신 주민 여러분들을 포함 22명의 대군(?)이 아직까지는 다소 생소하지만 여행의 묘미를 맛볼수 있는 베트남, 캄보디아로 떠나고자한다. 배낭여행이라함은 배낭하나 달랑매고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여행이지만 많은 인원이 준비하다보니 보다더 많은 것을 얻고자 여행사를 통하여 출발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베트남 출국시 김해공항에서의 직항로는 없었으나 부산시와 호치민시가 자매결연후 일주일에 한번 김해에서 호치민 직항로가 열려 인천을 통하지 않고 곧장 직항하게 되었다. 참고로 베트남, 캄보디아는 우리와는 시차가 2시간 차이가 난다.
(예 : 한국 10:00, 베트남, 캄보디아 08:00)
◈ 첫째날(9.26, 월요일)
월요일 오전 김해공항 10:50발 비행기에 탑승하고자 09:00까지 국제선 대합실 1층에 모여 수속을 마치고 모두들 들뜬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라탔다. 중급정도의 베트남항공비행기는 한국사람들로 빈자리가 없을정도로 가득찼으나 기내방송은 영어와 베트남어로만 방송하니 쇠귀에 경읽기라, 그냥 베트남 승무원들이 하는데로 맡길 수밖에 없었다. 출발예정시간보다 30여분늦은 11:20에 출발.
5시간여만인 14:00경에 호치민 탄손누트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공항내에서 다시 캄보디아로 출국수속후 16:30에 호치민 공항을 출발하여 캄보디아 씨엠립 인터내셔날 국제공항에 도착(17:20), 숙소에서 체크인하고 오늘의 식사장소인 평양식당으로 향했다. 씨엠립 국제공항은 공항이라기보다 우리네 시골 버스터미널같은 분위기로 사람당 2$을 지불하고서야 빠져나올수 있었다. 이게 낙후된 나라의 실상이 아닌가 한다.
▷ 베트남 호치민 탄손누트 국제공항 대합실
▷ 캄보디아 씨엠립 인터내셔날 국제공항
평양식당은 북한당국에서 운영하는 식당으로 여성들이 식당을 운영하면서 공연(노래, 춤)도 함께하는 그런곳이었다. 넓은 식당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부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19:00-19:30).
▷ 씨엠립의 평양식당
▷ 씨엠립 평양식당 공연장면
이번 여행의 첫밤을 숙소에서 그냥 보낼려하니 잠이 올리만무하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가자니 가이드가 극구 말린다. 범죄의 발생율은 적으나 아무래도 야밤에 외국인이 버젓이 나다니는 것은 위험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몬묵어도 고우...
□ 둘째날(9.27, 화요일)
우리 날씨하고는 또 틀린 후덥지근한 날씨로 거의 새벽잠을 설치다시피한 하루가 허무하게(?) 깨지고 태양이 떠오르는 아침이 밝았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일찌감치 일어나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등 부산하게 움직이지만 우리야 원체 게으르다보니까 일어나자마자 비몽사몽간에 식당으로 직행한다.
▷ 캄보디아 씨엠립의 고요한 아침
여기도 베트남하고는 비교가 되지않지만 오토바이가 제법 많고 신호등이 없어도 나름대로 그들대로의 교통질서를 잘 지키고 있었다.(씨엠립에는 신호등 있는곳이 1개소 있음)
오늘 오전에는 앙코르 톰과 주변 유적지를, 오후에는 앙코르와트를 관광하는 날이다. 먼저 앙코르 유적지를 들어가려면 자국민은 무료이나 외국인은 20$를 입장료로 지불해야한다. 하루종일 둘러보는 와중에 입장권을 몇 번이나 검사하는 과정을 거쳤으며 짜증나는 후덥지근한 날씨였으나 가이드 말로는 다른날보다 신선하고 좋은 날이었다하니 평소의 하루가 얼마나 더운지 짐작이 간다.
▷ 앙코르 톰 입구
▷ 앙코르 톰 남문입구
앙코르 톰은 12세기말~13세기초에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하여 세워진 ‘거대한 도시’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큰 성곽도시다. 이곳에는 왕궁은 물론, 종교 건물과 관청 건물도 있었던 앙코르 제국의 중심지였다. 앙코르 톰은 동일한 시기에 존재한 유럽의 어떠한 도시보다도 큰 도시였고, 인구도 거의 100만에 이르렀다한다. 진짜 굉장한 도시였다.
앙코르 톰은 각변이 약3km인 정사각형으로 되어있으며, 라테라이트로 쌓은 성벽의 높이는 약8m, 내부 넓이는 145.8ha(약44만 2천평)에 달한다. 앙코르 톰 남문을 통해 숲이 무성한 길을 따라 들어가면 바이욘사원이 나오고 근처에 바푸욘사원, 왕궁, 코끼리 테라스, 피에아나카스 등의 유적지가 있다.
앙코르 톰의 거대한 성벽과 그 안의 중심사원인 바이욘 사원은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서 만들어졌지만 그 안의 다른 유적지들은 그 전에 이미 만들어졌다고 한다.
▷ 앙코르 톰
▷ 사랑의 세레나데(시바왕과 왕비의 사랑나누기)
▷ 앙코르 톰
▷ 앙코르 톰에서 기념촬영
바이욘 사원은 앙코르 와트와 함께 가장 유명한 앙코르 유적지 가운데 하나이다. 바이욘의 건축 규모와 구조는 다방면에서 장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으며 각 부분들은 균형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서로 평행으로 맞추어져 있다.
이 사원의 특징은 54개의 탑에 200여개의 큰 얼굴이 사면으로 조각되어 이 사원을 위엄이 가득한 곳으로 보이게 한다. 약간 굴곡진 입술과 위 눈꺼풀을 내리감아 그늘진 눈을 한 이 얼굴은 그 표정을 읽기 어렵게 한다. 흔히 관음보살이라고 믿어지고 있지만,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라고도 한다.
▷바이욘 사원의 얼굴조각상
▷ 바이욘 사원의 얼굴조각상
▷ 피에아나카스사원
따프롬사원은 통행로만 만들어 놓은 것을 빼고는 전혀 복구를 하지 않은 사원이다. 자연이 어떻게 사원을 무너지게 했는지 그 과정과 결과들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하여 일부러 복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방문객들은 사원을 처음 탐험한 사람들의 감흥을 느낄 수 있는 여지도 많이 있다.
바푸욘사원은 바이욘사원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보면 긴 다리너머로 보이는 복구중인 높은 사원이다. 이 사원은 현재 프랑스 복구팀이 몇십년에 걸쳐서 복구하고 있다. 과거에는 이 사원을 오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복구가 진행중이라 출입을 금하고 있다. 단지 둘레를 한 번 돌아보는 것에 만족해야 할 듯...
▷ 공사중인 바푸욘 사원
가이드가 구석구석 조각품들이 있는곳에서 입에 침을 튀기면서 열심히 설명하고있지만 완전 오리무중이다. 해석이 안되니 그냥 귀동냥만 할 뿐이다. 그렇게 해서 이곳 저곳을 둘러보니 어린이들이 팜플렛 등을 팔고자 ‘1$, 1,000원, 2,000원’ 등 무조건 1$를 기준으로 물건을 흥정한다.
▷ 캄보디아 상이용사들(우리가 지나가니 아리랑을 연주해주고 있다)
오전은 이렇게 하여 마무리짓고 식사후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앙코르 와트로 출발했다. 앙코르유적지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인공 해자속에 둘러싸인 앙코르 와트가 나온다. 앙코르 와트는 앙코르 유적지 중 가장 큰 사원이며 또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크메르 건축 예술의 극치를 이루는 역사적인 예술품이다.
앙코르 와트는 약 210ha 넓이의 사각형의 땅을 성벽으로 쌓고 그 안에 지어졌다. 이 사원부지의 규모는 우선 사암으로 만든 긴 입구 통로(250m)와 해자가 말해준다. 구성, 균형, 설계 기술, 조각과 부조 등의 완벽함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앙코르의 모든 건축물들은 생명을 뜻하는 동쪽이 정문인데 반해, 이곳만이 죽음을 뜻하는 서쪽이 정문이 나 있다. 사원 자체가 너무 거대하여 내부를 다니면서 앙코르 와트의 설계구조를 이해하기에는 매우 힘들다. 복잡함과 아름다움은 정말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멀리서 이 사원을 보노라면 긴 통로가 중앙으로 연결되는 지상의 거대한 석조물로 보이기도 하나, 가까이 가서 보면 수많은 층을 이루는 탑들로서, 많은 예술적인 조각과 방, 베란다, 정원 등이 계단으로 이어지는 각각 다른 층, 단에 구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누구나 여기오면 사진을 찍는다하여 우리도 단체사진 1컷. 3개의 파고다가 우뚝 서 있는 앙코르 와트는 이곳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전망도 좋다. 앙코르 와트의 감격은 기기묘묘한 앙코르 톰, ‘황성옛터’가 돼버린 왕궁, 인디아나 존스의 모험영화에 나오는 신비의 사원같은 타프롬을 둘러보는 동안 더욱 깊어갔다.
▷ 앙코르 와트
▷ 앙코르 와트 입구에서 기념촬영
▷ 앙코르 벽면의 수많은 그때 그 시절의 조각들
▷ 가이드의 알듯 모를듯한 설명을 열심히 듣고있으나...
▷ 앙코르 와트내 탑의 급경사계단
▷ 앙코르 와트내 탑
▷ 앙코르 와트내 그들만의 신
▷ 앙코르 와트내부 전경
특히, 타프롬의 거대한 명주솔나무가 뿌리로 휘감아 사원을 부숴놓은 장면과 도굴되거나 파괴당한 불상과 유적들은 신기하다못해 기묘하기까지 했다. 10세기부터 15세기까지, 500여년 동안 동남아 최대의 제국으로 번창했던 크메르제국의 옛 수도였던 앙코르의 유적들은 방문객들을 여러차례 감탄시킨다.
▷ 기묘한 타프롬사원
▷ 기묘한 타프롬사원
▷ 기묘한 타프롬사원
▷ 기묘한 타프롬사원앞에서 박기윤동장
관광객들은 첫째로 웅장함에 혀를 내두른다. 지구촌 어디에선들 이같은 석조사원들을 구경할 수가 없다. 둘째는 스케일을 능가하는 섬세함에 감탄의 찬사를 자아낸다. 인도의 전통적 우주론에 입각해 세워진 건축물의 벽에는 신들의 도시처럼 우아하고 섬세한 조각들이 새겨져 있다.
세번째 놀라움은 미스테리다. 그 숱한 전쟁속에서도 폐허가 되지 않고 구조물이 남아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단순히 자연이 거대한 숲을 이뤄 이 위대한 문화유산을 지켜주었기 때문이었다고 짐작만 할 뿐 아직도 미스테리에 쌓여있다.
놀라움과 경이로움으로 하루를 마치고 온몸의 피로를 풀고자 동남아의 유명한 맛사지를 받게되었다. 1시간 30여분동안의 정성어린 온몸 맛사지를 받다보니 피로가 어느정도 풀린 것 같기도하다. 저녁에는 식사와 함께 캄보디아 전통무용인 압살라 디너 민속쇼를 관람하고(19:20~20:00) 동료들과 한잔의 술로 오늘 하루를 생각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 캄보디아의 전통 민속 공연
□ 셋째날(9.28, 수요일)
오늘의 일정은 동남아에서 가장 크다는 신비의 톤레샵호수와 수상촌을 둘러보는 것이다. 톤레샵호수주변에는 15,000여 주민들이 수상가옥촌을 형성하여 자기들 나름대로 생활 방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시엠립 중심에서 차로 30여분쯤 떨어진 톤레샵 호숫가의 나룻터에는 소형보트들이 줄줄이 매여있고 끼리끼리 관광객들로 다소 왁짜지끌했다.
▷ 톤레샵호수입구의 '1$ 줍쇼' 아이들
물가에다 배를 묶어놓고 배안에서 생활하는 베트남 원주민들의 삶은 색달랐다. 학교도 주유소(드럼통만 있는)도 생필품을 파는 가게들도 모두 배위에 떠 있었다.
▷ 톨레샵호수의 보트에서 서로 폼잡고
▷ 톤레샵호수내 보트에서 우리가락 좋을시고 노래판도 벌리고
특히, 여기서 우리의 눈을 끄는 것은 호수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물위를 꼬마들이 다라이(대야)안에 들어가 파도치는 호수위에 떠있는 것이었다. 아니 호수위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배가 지나가니 배 주위에 파도가 제법 치는데도 배를 따라잡기 위해 허리를 좌우로 흔들며 막대기는 노 대용으로 저으면서 그야말로 쏜살같이 따라와 유람선옆에 갖다대는것이었다.
그 기술(?)에 기가 막힌다. 그러곤 무조건 ‘1달라 내나라’다. 안주면 줄때까지 다라이안에서 요리조리 허리를 흔들며 좌우 조정하면서 빠른 속도로 따라왔다. 다라이안에 물이 차면 숙달된 요령에 의해 두손으로 다라이 물을 빼면서 따라오고 있었다. 1달라를 주니 어떤애는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하며 서비스 차원에서 그 자리에서 즉석 다이빙의 묘기를 선보이고있었다.
어쨌든 이번 여행에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이 이 ‘1달라 줍쇼’였다. 앙코르 와트나 다른 지역에서는 가지고있는 물건을 파면서 ‘1달라’를 외쳤는데 여기는 무조건 ‘1달라 주라’다. 허기사 비록 ‘1달라’라도 그 애들한테는 아주 큰 것일것이다.
▷ 톤레샵호수내 물위학교
▷ 톤레샵호수내 물위식당
▷ 영호성님 완전 겁 무웃따
▷ 톤레샵호수의 보트피플 아이들(다라이를 타고 호수내를 기차게 누빈다), 다라이 물빼라.
▷ 톤레샵호수의 보트피플 아이들(열심히 다라이 물빼고 있는 작은 피플)
톤레샵 호수와 이어진 수로의 끝에는 베트남 ‘보트 피플’들이 살고 있었는데 극빈자중에서도 극빈자인 보트 피플들은 여행객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수입과 호숫가의 고기를 잡아 생업을 유지하는데 남자들은 먹고 놀고 자는 생활이 반복되고, 생업은 주로 여자와 어린이들이 책임을 지는 것이었다.
보트피플의 수상가옥을 뒤로하며 앞으로 나아가니 바다처럼 끝없이 탁 트인 호수가 프놈펜시까지 이어지는데 호수의 길이는 100㎞, 수평선은 끝이 없었다.
▷ 톤레샵호수내 수상가옥
▷ 톤레샵호수내 수상가옥
1시간여의 수상가옥을 둘러보고 점심식사전에 시엠립주변의 20세기 최대의 참극인 킬링 필드사원이 있는 한곳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숙연해지는 분위기가 엄습해온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즈가 저질렀던 동족 학살극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잔혹하고 집요했다. 200여만명의 자국민을 살해했던 크메르루즈의 잔학했던 실상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갖가지 사진과 땅속에 묻힌 사람들의 해골, 뼈들... 그때의 주민들에게는 하루하루의 공포가 극에 달하였을 것이다. 전쟁은 절대로 없어야한다는게 다시한번 되새겨지는 순간이었다.
▷ 비극적인 킬링필더 희생자들 유골
▷ 킬링필더의 희생자들을 기리며
점심식사후 노곤한 몸을 이끌고 캄보디아의 민속촌을 관람하였다. 시대별 캄보디아의 생활상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역사관을 관람하고 캄보디아의 전통 결혼식과 민속공연을 관람한후 씨엠립공항으로 이동하여 다시 베트남 하노이로 출발한다. 이제가면 언제 캄보디아에 오겠나 싶다. 캄보디아여, 안녕!
▷ 씨엠립 민속촌의 그 옛날 왕과 왕비
▷ 민속촌내의 전통 결혼식장면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어둠속에 비가왔는지 선선한 기운이 감돈다. 사실 며칠전에 태풍이 올라와 많은 비를 뿌리고 지나갔다한다.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오늘의 숙소인 대우 호텔은 대우건설에서 건설한 특급호텔이었다.
예전 베트남과의 교역에서 선발주자라 할 수 있는 업체가 대우였다한다. 지금은 수많은 기업체가 베트남에 진출해 있지만 초창기에 대우가 베트남에 진출할때는 많은 고생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 넷째날(9.29, 목요일)
아침식사후 거리에 나와보니 수많은 오토바이 행렬로 인하여 말 그대로 좋은말로 하면 장관이요 나쁜말로 하면 개판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복잡하고 아주 무질서하게 보이는데 사고가 거의 나질않고 자기네 말로는 무질서속에 질서가 잡혀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 실정으로보면 한마디로 어지럽고 엉망진창이었다. 저 많은 오토바이들이 모두 어디로 가고있을까하는 의문부터 앞서나 베트남인에게는 그냥 일상 생활일뿐이다.
▷ 하노이시의 어지러운 오토바이 행렬
그리고, 집들의 구조가 거의 비슷하다.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땅은 개인소유가 가능하며 국가에서 분양할 때 가로 4m 세로 8m이하로 제한하니 건물구조가 대부분 폭이 좁고 길이가 긴 것이 특징이었다. 이런 배경에는 프랑스의 식민지 영향이 있었다고 한다.
하노이 중심가는 프랑스 식민지시절에 도시 계획이 이뤄져 길이 비교적 시원하게 잘 뚫려있고, 도시 계획도 잘 돼 있었다. 백밀러도 없이 쌩쌩 내달리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끼어드는 오토바이들 때문에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은 시속 15∼30㎞로 말 그대로 응금응금(?) 기어다니고 있었다.
거두절미하고 곧 바로 시내관광에 나섰다. 시내관광이래야 틀에 짜인 일정대로 어디가고 거기서 또 어디로 하는 식이었다. 먼저 베트남의 영웅인 호치민의 영묘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호치민 영묘는 레닌을 비롯한 공산국가 지도자들과 같이 시신을 방부처리하여 엄격히 관리되고 있었다.
영묘출입자체도 쉬운게 아니었는데 카메라, 음식물, 물 등의 반입이 일절 금지되고 반바지나 짧은 옷 등의 복장도 출입이 금지되며 아주 작은 가방말고는 가방자체도 들고 들어갈수 없었다. 또한 줄을 서서 기다려야했으며 질서정연한 침묵속에 영묘를 구경하고 나올수있었다.
미화한것도 적지않겠지만 그는 평생 혼자살면서 권력욕과 사치와는 거리가 먼 아주 검소하게 일생을 보낸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적어도 베트남인에게는 진정한 영웅으로 묘사된 걸출한 인물이었다한다.
호치민 영묘앞에는 더 넓은 광장인 바딩광장이 있고 맞은편에는 국회의사당이 있는데 국회의원이 450여명이 되는데도 의사당 규모는 생각보다 작았다.
▷ 하노이의 호치민 영묘앞에서
▷ 호치민 영묘 맞은편의 국회의사당
주변에는 대사관 등 외교시설과 공관 등이 많았고 조금 옆으로는 프랑스풍의 주석궁이 아담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주석이 살고있지는 않고 요즘은 영빈관으로 사용된다한다. 이리저리 둘러보다보니 베트남이 사회주의국가라기 보다 자유국가라는게 더 맞는말일 것 같다. 사람들의 차림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표정의 활기찬 모습이나 자유분방한 행동들은 우리네 젊은이 못지않았다.
▷ 주석궁(영빈관)
오전은 다가고 식사시간이 되어 한인식당에서 식사후 베트남에서 명물인 씨클로를 타게 되었다. 씨클로는 자전거뒤에 사람이 앉을수있도록 한 자전거 택시인데 가까운 거리나 시내관광시 필요할 것 같았다. 30여분 주변 사거리를 둘러보는데 그놈의 수많은 오토바이가 그냥 앞으로만 보고 마냥 달린다. 오토바이에 백밀러가 거의 없는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접촉사고가 빈번할것 같은데도 없는것을 보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 베트남의 명물 씨클로
하노이를 출발하기전 한번더 발맛사지 서비스를 받았다. ‘으이구 시원해’ 오후 3시경 하노이를 출발하여 하롱베이로 향한다. 하노이에서 하롱베이는 서에서 동으로 4시간정도 걸린다는데 가는게 세월이라 마냥 슬로우다.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가 베트남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가다가 지겨운 나머지 버스내에서 노래자랑대회도 하는 등 시간을 때우며 어둠이 사방을 적실즈음 하롱베이에 도착했다. 아, 지겨운 지고.
저녁식사후 곧 바로 숙소로 가서 방 배정받고 야외 노래방으로가서 다른 팀들에 뒤섞여 발바닥 땀좀내고 목청 좀 다듬는 등 끼리끼리 모여 즐기다가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녘에야 잠자리에 들었으니 이건 여행온건지 다른 목적이 있어 온건지 구분이 안되는 생활이 며칠동안 반복되고 있었다.
□ 다섯째날(9.30, 금요일)
오늘은 이번 여행의 마지막이자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하롱베이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는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 14층 스카이라운지(식당)에 올라가보니 하롱베이에서는 그래도 제일 규모가 큰 호텔에 투숙하여 마지막밤을 비록 새벽녘에 잠들었지만 포근하게 보낸것 같다.
어제까지만해도 잔뜩 찌푸린 날씨였지만 오늘은 조망을 확실히 보여주고자 파란 하늘에 상쾌한 공기까지 가미되어 기분좋은 하루가 시작되는 날이다. 뜨거운 햇살아래 아침 일찍 일어나 스카이라운지에서 뷔페식의 간단한 아침을 든후 체크아웃을 하고 하롱의 선착장으로 떠난다.
▷ 하롱베이 선착장
호텔에서 10여분거리에 있는 선착장은 배를 타려는 관광객들로 다소 분주하다. 하롱베이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아닌가? 선착장에 떠있는 수많은 유람선이 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아주 이색적인 유람선 한척을 전세내어 하롱의 유명한 섬을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하롱 주변에는 3,000여개의 섬이 있다는데 말이 3,000개지 상상도 할수없고 우리는 그중 극히 일부분만 조망할수있을 것이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 바다속에 떠있는 수많은 섬을 뚜렷하게 볼 수 있는 행운도 가질수 있었다. 얼마간 나아가니 우측으로 조그마한 섬이 보이는데 별장도 있는게 무척 낭만적으로 느껴지는데 개인소유란다. 돈이 있으면 안되는게 없네. 내참 더러워서... 소위 영화에서나 본적이 있는 뱃머리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주변의 멋진 경치도 조망하면서 뱃놀이를 즐기는 낭만적인 시간이 계속되었다. 이대로 여기서 계속 주저앉아삐까.
▷ 하롱베이의 사유지 섬(직이주네)
▷ 널널 유랑하고있는 영이회원들(폼 좋고)
여기도 어김없이 ‘1달라, 1달라’가 따라붙었다. 이번에는 제법 엔진이 달린 통통배를 끌고 유람선에 바짝 대어 과일과 생선 등을 팔고 있었다. 물위에 떠있는 어느 식당앞에 배를 대고 횟거리를 흥정하니 kg당 30$ 달란다. 고기 한 마리를 저울에 달아보니 7kg다. 그러면 200여$인데 저울이란게 또 우리로 치면 완전 6~70년대 구닥다리 저울인데 녹이 슬어 엉망이다. 그래도 할수있나, 이런재미로 사는건데... 회를 떠 먹어보니 제법 감칠맛이 난다.
▷ 여기서도 어김없이 1$
▷ 하롱의 멋진 섬
▷ 모두들 회 한사리한다고 정신없네
▷ 하롱의 멋진 섬
▷ 하롱의 멋진 섬
관광 코스로 지정된 곳중 석회동굴이 있는데 여기는 선착장도 마련되어있고 관광객은 반드시 둘러보는 곳인 모양이다. 배에서 내려 산을 조금 오르니 동굴 입구가 보이고 안으로 들어가니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그냥 우리네 강원도의 어느 동굴로 치면 별 볼만한게 없었다. 동굴이름이 항 다우 고(?) 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동굴이 두세군데 있다하니 그중 하나일것이나 별 감흥이 없는 동굴이었다.
▷ 석회 동굴이 있는 선착장
▷ 석회동굴옆의 암봉
▷ 석회동굴내부
▷ 하롱의 멋진 섬
▷ 하롱의 멋진 섬
▷ 하롱의 멋진 섬
유람선에 올라 조금 더 진행하니 오늘 하롱베이의 하이라이트인 전망대가 있는 산이 나오는데 정상에서 사방 시야를 넓히면 조망이 기가 막힌다는데 높이가 글쎄 지표면상으로 한 100m정도 되겠나싶은 산의 정상에 팔각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그것도 산이라고 더운 날씨에 오르니 땀이 방울방울 맺힌다.
역시 하롱베이의 수많은 섬의 조망은 범상치 않았다. 필설로 어찌 나타내겠는가? 오직 백문의 불여일견이라. 사진으로 담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 팔각정이 있는 전망대
▷ 전망대에서
▷ 전망대에서
▷ 전망대에서 우리의 호프 영주2동 사무장 한폼잡고
▷ 전망대에서
▷ 전망대에서
▷ 전망대에서
▷ 전망대에서
▷ 전망대에서
▷ 전망대에서
▷ 전망대에서
3,000여개의 섬들이 줄줄이 기기묘묘하게 솟아있는 하롱의 만(灣). 극히 일부분만, 아니 허울좋은 겉치레만 눈도장 찍은 그런 관광이었지만 이런 아름다운 기암괴석의 수많은 섬들을 실제로 볼수있었다는것에 크나큰 위안이 되는 그런 하루였다. 비록 하롱베이를 떠나면서 아쉬움을 지울수없었지만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하롱베이에만 일주일정도 머물면서 섬의 내면까지 파헤쳐보는것도 괜찮으리라...
▷ 끝없이 펼쳐지는 하롱의 섬...
▷ 하롱의 선착장
하노이 공항에서 여기 올때는 조금 지겨웠지만 갈때는 모두가 조용히 꿈나라로 여행가느라 지겨울수도 없었고 어둠이 찾아올 무렵 하노이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오늘의 마지막 공연인 수상인형극을 관람했다. 베트남의 수상인형극은 그래도 1,000여년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아주 유서깊은 인형극이다고하는데 우리를 비롯한 외국인들이 관람석을 가득매운 인형극을 40여분간 공연하면서 시종일관 눈을 때지 못하게하는, 한번정도는 관람해도 괜찮을 것 같은 인상깊은 인형극이었다.
▷ 하노이의 어지러운 오토바이 행렬
▷ 야간에도 오토바이 행렬은 변함없고
▷ 베트남의 수상인형극
▷ 1$
▷ 1$
하노이에서 김해공항으로 비행하는 직항로는 없어 공항내에서 배회하다가 새벽 0시 30분 인천공항으로 날라가 새벽(07:00)에 도착하니 비가 꾸역꾸역 내리고 있었다. 인천에서 김해로 다시 출발하여 드뎌 김해공항에 도착하니 오전 11시였다. 예정보다 한시간정도 지체된 시간이었다.
자, 이번 베트남, 캄보디아 여행은 이것으로 종결지을까한다. 비록 지금은 개발도상국 수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있지만 베트남은 무한한 잠재능력이 있는 경제적으로 아주 발전할 수 있는 나라였으나 캄보디아는 크나큰 내전의 홍역을 겪어 아직도 치유가 필요한 나라인 것 같다. 22명의 비교적 많은 인원이 일사불란하고 아무 사고없이 안전하게 움직일수 있었던 것은 여행객 모두가 하나가 되어 단합이 잘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첫댓글 베트남과 캄보디아 답사기를 넘 잘 꾸며놓으셨네요. 잠시나마 여행했던 그시간으로 돌아가 볼수있어서 행복합니다.
너무 멋진 기행기 잘보았습니다. 꼭 한번 가보고싶어지네요. 멋진 추억으로 남으시길 바랍니다
구본칠님 너무너무 수고많으셨습니다 이글을 보고있으니 다시여행지로 돌아간 기분이네요^*^정말^*^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