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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선집 [밀짚모자 영화관]의 시선집 박스 표지(좌)와 시선집 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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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짚모자 영화관]
박제천 시선집 / 출판 시월, 활판공방(2011.11.30) / 값 5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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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짚모자 영화관
박제천
밀짚모자 영화관을 아시는지요
토막 낸 16밀리 영화필름으로 양테를 두른 밀짚모자,
그 모자 덮어쓰면, 차르르 돌아가는 햇빛 영사기,
내 머릿속 내 일생은 아랑곳없이 밀쳐내고
영화 한 편 돌아갑니다
한 남자에 두 여자거나 한 여자에 두 남자
그도 아니면 환과고독, 하나같이
멋지고 슬픈, 비극이고 희극인 인생이랍니다
세상에 나지 말라 그 죽기가 괴로우니
세상을 버리지 말라 새로 나기가 괴로우니
더 줄이면, 죽기도 살기도 모두 괴로워라
원효스님의 한 말씀 생각납니다
나도 한 말씀, 죽고 삶을 나눔이 부질없는 일,
기분나면 영화 필름 갈아 끼고
마음대로 인생을 골라 사는 이 재미,
그 밀짚모자, 40년 지난
오늘, 내 추억 모니터에 나타났어요
오늘부터 저 밀짚모자, 잠잘 때마다 쓰고 자렵니다
*『碧巖錄』5則「雪峰粟粒」』
무지개 도둑
박제천
무지개, 하늘에 뜬 날,
그 무지개 훔쳐다 얼굴 몇 개를 만들었다
혼자서
노엽고 슬프고 외롭고 기쁘고 황홀한 얼굴 가면
번갈아 쓰고 놀았다
내 안에 사는 저리 많은 얼굴, 처음 만났다
혼자 노는
강물 친구, 벌레 친구, 염소 친구, 다람쥐 친구들에게도]
무지개 얼굴 나눠주자
내 것이 아니야 그냥 이 얼굴이 더 좋아
모드들 하늘로 던져버린다
나도 그만, 얼굴 벌개져서
하느님께 무지개를 돌려드렸다
보기만 하는 건 괜찮다 괜찮다 하시며
가끔씩 보여주셔도 언감생심,
바라보지 못한다 바라보지 않아도
나를 내려다보시는 그 무지개,
알고 있기에 황감하다.
*『碧巖錄』74則「金牛作舞」』
연꽃 - 심우도
박제천
연꽃 보러 간 연꽃늪에 연꽃은 보이지 않고
우산만한 연잎에 모여든 빗방울들만
비에 젖은 나를 기다리네
어떤 빗방울은 제 몸 속에 피보다 붉은 연꽃을 피워내고
어떤 빗방울은 아직 피워내지 않은 꽃줄기마다
가시를 번쩍이고 있네
어떤 빗방울은 바람에 날리는 꽃술마다 눈을 달아서
늪 가득히 띄운 채
연꽃 보러 온 사람들 하나하나를 지켜보느니
연꽃 보러 간 연꽃늪에서
보지도 못한 연꽃 속 연실처럼 자라나는
내 얼굴, 내 마음 속 죄만 들키고 말았네
군데군데 입을 벌린 구멍 사이로 드러난
땅속 진흙처럼 어지러운
내 마음의 진창을 들키고 말았네.
물의 집
박제천
빈 방에서 새소리가 도란도란 흘러나온다
들여다보니 백자주전자에서 퍼져 나오는 은은한 향기
새소리는 간 데 없다
작설차를 우리는 동안
참새 입술 닮은 잎들이 정담을 나누었나
무심히 주전자 안을 들여다보니
물 속에 무슨 소리의 무늬가 설핏 보이는 듯싶다
우듬지 가득 받아든 햇빛,
뿌리가 탱탱하게 빨아올린 땅속 어둠이
서로 섞여들며
물이 하고 싶은 소리, 잎이 하고 싶은 소리를
물무늬 지어 주거니 받거니 하는 중이다
사람 몸속 어둠을 다 씻어야 해
맑은 기운으로 온몸을 감싸돌아야 해
그 소리 귀 기울이다보니 참 착하다. 참 맛있다
백자 주전자를 기울여 맛깔난 소리를
잔에 가득 채우는 이 황홀
나는 오늘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물의 말을,
새소리처럼 맑은 잎들의 말을 배부르게 먹었다.
햇빛 복권
박제천
햇빛복권을 아시는지요
새해 새아침 해와 눈맞추는 순간
눈길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복권
우리들 눈과 눈으로 무지개다리를 타고 들어오는
햇빛복권을 받으셨는지요
가슴속 가득 고인 고통의 담을 녹여버리고
핏줄 속 마디마디 엉기는 노여움을 풀어버리는
하느님의 햇빛복권
새해 새아침 새해와 눈만 마주치면
누구나 당첨되는 햇빛복권을 아시는지요
이세상 살아 있는 것들, 유정한 것들의 때에 찌들은 온몸 온마음
옹이 지고 응어리진 미움과 슬픔 단숨에 녹여버리고
눈부시게 눈부시게 떠오르는 새해 새아침의 해
햇님이 주시는 햇빛복권을 받으셨는지요
새해 새아침 눈으로 받아 눈으로 전해주는,
받기만 하면 온마음 환희에 차오르는,
온세상 광명으로 바뀌어지는 햇빛복권을
마음껏 가지세요
새와 함께
박제천
나무에 돋아나는 새 잎을 보면
작은 새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회중시계의 문자판인양
나무의 가지들이 서로 얽혀 보여주는
초침의 숫자를 지켜보면
언제라도 나무를 떠나 하늘로 날아오를 자세이다
나 역시 그 나무의 문자판을 지켜본다
아마도 그 숫자들은 나무가 커갈수록 결 속으로 숨어들어가
마침내는 잘린 널의 무늬로 남아
그때도 누군가 새처럼 날아갈 시간을 알려줄 것이다
흙의 뿌리에서
눈처럼
잎처럼 돋아나는 것들은
언제나 처음부터
저와 같은 비행을 꿈꾸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차를 마시며
박제천
나는 너를 내 안에 받아들인다
네 숨소리 네 눈빛 네 향기가 내 안에 가득 찬다
태양의 원소가 흰피톨에, 명왕성의 정령이
붉은 피톨에 뒤섞이면서
이미 은하수의 한 개 별이 되어 끝나고 있다
너의 생애를 내 것으로 바꾼다
나는 너를 내 안에 깊이 받아들인다
신경의 가느단 선을 통해 전해 오는
혼자 깨어서 겪는 땅 아래의 어둠과 추위와 고통을 듣는다
혼자서 더듬어가고 기어가고 뛰어가다 엎어져
깨어진 무릎을 껴안고 웅크린 침묵의 시간을 느낀다
나는 내 안의 너를, 너는 네 안의 나를 서서히 잊어간다
달아오른 숨소리 향기로운 눈빛 부드러운 공기에 싸여
지나간 날의 삶 속에 버려지고 흩어져 뒹구는 것들을
하나씩 일으켜 세워서
영육靈肉의 켜켜이 절어 있는 고통을
빛나는 잠의 불로 씻어 낸다
한 잔의 차를 마시며 이따금
잠들어 있는 별을 바라다 보며,
연꽃을 보며
박제천
머리가 띵하도록 더운 날엔
얼음 채운 소주로 불을 달구고
가쁜 숨 몰아쉬며 너에게 찾아가리
가슴에 들끓는 욕정, 부르르 떨리는 핏줄이
손목이며 목줄기에 퍼렇게 드러나도록
추슬리며 너에게 달려가리
달려가
거추장스러운 옷가지 벗어제치고
불덩이가 된 이 내 몸을 너에게 던져주리
손톱 끝에 발톱 끝에
수만 개의 머리카락 끝에 전기가 일도록
네 속에 이 내 몸을 잠기우리
모든 불을 재우고
너와 함께 쉬다가 깔깔거리며 달겨드는 내 영혼을
살껍질로 다시 싸 안으리
물이여.
붉은 울음꽃
박제천
검붉게 색이 바뀌고 때 묻어 내용을 알 길 없는 동판화 하나 내게 있습니다 선을 따라 손톱으로 때를 후벼내다 보면 어렴풋이 떠오르는 그림 하나 내게 있습니다
어린 짐승 한 마리가 홀로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 온몸으로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낱낱의 그 소리를 들춰보는 밝은 햇빛이 너무나 눈부셨습니다
둘러보면 모래밖에 보이지 않는 모래구덩이에 들어앉아, 차라리 이렇듯 스스로를 놓아둔다면 모래알이 이윽고 몸을 덮어버리고 지상에는 어디 누가 있었던 자취조차 보이지 않을 모래밭이었습니다
죽어서 땅에 묻어도 심장이 썩지 않아 죽은 지 120년이면 되살아난다는 무계국 사람인양 동판화 속의 모래밭에 파묻은 열아홉 살의 내가 웬일로 오늘 되살아나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외로움의 어떤 풀은 잎이 둥글고 줄기가 없으며 붉은 울음 꽃을 피울 뿐 열매를 맺지 않으며 너무 먼 곳에 있어 다만 바라만 볼 뿐 가질 수 없다 합니다
꽈리
박제천
마른 꽈리 한 가지로 너는 내 앞에 나타났다
그날 밤 나는
너의 전신을 구석구석 더듬었다
땀에 밴 손길이
어느 마디인가 불거진 영혼을 툭 건드리기도 했고
입술을 헤치며 빠져 나오는 잇바디로
방울 속에 굴러다니는 심장을 깨물기도 했다
금방이라도 숨이 살 것 같은
여기쯤이 너의 유방이고, 저기가 너의 팔다리라면
너의 눈, 너의 눈썹은 또 어디인가
나는 불타올라
푸른 여름밤의 냉정한 달빛 아래
너의 전생애를 한 소절의 소리로 짜아내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몸부림치다가
내 몸의 물기를 모조리 수액으로 바꾸고
내 안의 빛이 터져나오는 곳마다 눈을 단 채
마침내
마른 꽈리 한 가지로 네 앞에 나타났다
나는.
새
박제천
이제 내가 날리는 시들은 자연自然의 새들이 아니어라
하늘 높이, 거기 떠 있는 별들을 지나 또 다른
하늘 로 날아가는
저 새를 무어라 이름지어야 할지 몰라라
죽지며 부리며 머리에 여벌의 날개며 혀며 뇌를 단 채
빛보다 빨리, 어둠보다 멀리
이 마음의 구석구석을 떠돌아다녀라
새여,
뜻이 있을 수 없는 이 손길 가리키는 대로
이 눈길 주어지는 대로
날아간 새여
오늘 내가 문득 새가 되어 전속력을 다해 날아가 보아라
하늘 높이 거기 떠 있는 별들을 지나 또 다른 하늘에
별로 떠 있어라
전신全身으로 우는 네 소리가
혹은 높아지고 낮아지고
그때마다 혹은 밝아지고 희미해지는 별빛이어라.
사기 등잔과 함께
박제천
이미 불태운 것들은 사라져버린 지 오래라
이제 불타고 있는 것들은 사라져 또 어디로 가리
닳아버린 심지, 거뭇거뭇 남아 있는 석유 찌꺼기,
군데군데 흠이 간 싸구려
등잔 하나를 닦으며
불꽃 한 줄기 피워 손에 들고 있느니
불타오를수록
남아 있는 뼈와 살의 무게를 또한 느끼느니
어느 별의 회답이 이리 더딘가
한밤중이면 깨어나 앉아
지난 시간의 그림자들을 개어 먹을 가느니
밤을 밝힐수록 검게 빛나는 이 어둠을 온몸에 받아들이며
내가 만들어 띄우는 불꽃
한 줄기
언뜻언뜻 별처럼 어려보여라.
유수流水
박제천
흘러가는 것이 어디 물뿐이랴
가도 다함이 없으며 다하여도 이르지 못하는 것이 어디 물뿐이랴
온몸으로 흐느껴도 들리지 않으며 온몸으로 춤을 춰도 보이지 않는 것이 어디 물뿐이랴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며 더러움은 거르고 모래알은 노래로 바꾸는 것이 어디 물 뿐이랴
어느 날 물이 전하는 말씀을 나는 이러히 들었읍니다.
근황近況
박제천
밤마다 배를 몇 척씩 꾸려서 떠나 보낸다
오늘 내가 만난 물빛 한 지게, 달빛 두 지게만으로도
만선滿船이 되는 나의 작은 배들이여
그대들 물길의 안전을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물빛 1천 척, 달빛 2천 척의 배를
하염없이 떠나보낼 뿐이다.
어둠마저 가서 돌아오지 못하는 그곳에
사리舍利 몇 알로 길을 밝히며 찾아나설 그날까지
다만 밤마다 배를 몇 척씩 꾸릴 뿐이다.
어제 부친 일편一片의 고뇌
일편一片의 연
아직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나의 작은 배들이
싣고 가는 밤마다의 밤
그것이 오직 나의 재력財力일 뿐이다.
지상地上
박제천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별을 가지고 있다 잃어버렸다가도 다시 찾게 된다. 개중엔 이승의 몸을 버리고서야 자기의 별을 찾기도 한다. 어느 날 무심히 밤하늘을 바라볼 때 갑자기 한 줄기 불꽃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면 그대 곁의 어느 누가 또 보이지 않으리라 사람들은 누구나 별과 운명을 같이한다 사람들은 그러나 별에 이르지 못한다 별은 언제나 사람들의 머리 위에 떠 있다 사닥다리를 두어 올라도 움켜쥘 수 없다 피와 살의 무게가 사람들을 지상에 있게 한다 그것들을 버린다 해도 별빛이 너무 눈이 부시다 오늘밤은 별도 보이지 않고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먼 곳에서 한줄기 등불만 몸을 떨고 있고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한다.
장자시莊子詩 *연작
박제천
장자시 그 하나
전신을만월의활로꾸부려
음악의불붙는시위에살을먹이네
배는한몫의악기
현과현사이에노를넣어휘저을적마다
밤무지개를타오르다떨어지는파도소리
못보던새들의울음이천지에가득차고새들의깃은
물살속에서퍼덕이네
항해중의배는
무심히돛폭을펼쳐바람의공규를채우네.
장자시 그 둘
지나쳐가고지나쳐가는상형의아름다운음정들
고물께서소리죽이고흐느끼는바닷물문득
머리위에높이떠피어나는물보라꽃에저희넋을실으나
뉘라볼수있으랴
허공에서서꽃잎날리고꽃잎날려꽃잎날거니
바다아래꽃게의거품이그꽃잎들을삼킬뿐이네.
장자시 그 셋
바닥모를깊이의안을헛짚을때가바로병의처음이네
바다가까운낭떠러지의풀집에누워
바닷속의한점바위의검은돌빛으로꿈을굳히네
사뭇소용돌이를이루는깊이에돌뿌리를내리고
가슴을흔드는피는그대로금이되어
금마다바닷물을들이네
우뢰가말하는천상의소문
어신魚身에번뜩이는용궁의빛깔
병의처음에마지막을알때뉘라몸을도사리지않으리.
장자시 그 넷
꾸겨둔선하나가녹이슨채바람에실려떠나가거니
잘가거라
만리의뱃길을도는만년이한마리누에잠이언만
뉘라손을붙잡으랴
가까이갈수록뜨거워지는한덩이금은의말조차
수천수만의그림자로
이세상의여기저기를떠돌고있느니.
장자시 그 여섯
마른번개빛에드러난바다의척추
희디흰뼈사이에발을딛고서서비를맞네
하나하나의빗방울속에들끓는새들8만4천가지새들이
일시에날개를펴나를나르네
용골을돌린뒤의물이랑으로.
장자시 그 일곱
물고기의청신한몸뚱아리를오려내는가위
비늘을터는에스프리
금을그어만월을도려내는콤파스
망사로거는달빛
비타민병에서숨쉬는일광을촬영하네바다에서떠오르는붉은해
구식의내사진기안에서춤추는피사체
벽에는중국의관운장청룡도
번뜩이는칼날끝에바다가몸져앓고있네.
장자시 그 여덟
꿈의위촉에매여벌거벗은겨울의아이들은비둘기
비둘기의나래에묻혀하늘은색채를뒤집어쓰네
겨울의아이들은유인된꿈의말저바다의하나섬이네
용의구름을지즐타고겨울의아이들은눈멀리
중앙아세아의바람실은저바다의깨어있는섬이네
기러기길을쓸어가는물결이네
별들이하나씩떨어져불붙을때저바다의살아있는섬
겨울의아이들은어둠의주름주름에서스스로의발견으로
번뜩이는등아래내가풀어놓은꿈의말
바닷물을밀어내는저희탄력으로부딪치고부딪치다가
포말로부딪쳐부딪치고있네.
장자시 그 열 하나
한적漢籍갈피에서날리는지혜의숨소리
깨어있는나의안에서해를길어올리는두레박소리
출렁이는물속의아픔이손가락끝에서얼굴을드러내네
거슬러오를수없는시대
내여윈늑골의틈에서해를밀어올리는장자莊子
그의바람이산山갈치를떨어뜨리네산갈치가퍼덕이고햇빛은
창처럼그것의등을꿰어바다로도로던질것이네.
장자시 그 열 둘
미명의하늘을거둬들이는저것명료히빛나는저것이태양일까
무슨패옥처럼귀를기울이고어두운방에앉아
손톱끝의어둠은손톱속에발톱끝의어둠은발톱속에거둬들이며
오롯한광채로빛나는나도태양일까
푸른해오라기의날개를단해바라기가눈높이를날아다니고
한톨빛의씨앗은눈에서익어
수천수만의민들레꽃실을방가득히뿜어내는데.
장자시 그 열 셋
꿈의열쇠를달궈내는풀무속불붙는방의불붙는쇳조각
불붙는보석의심장에서낱낱이뛰어나와내살로파고들던
유년의쇳조각
머루나다래모양의그흔적에확대경을비추면
달빛속에목금소리로근교의나무들도다가오고
청산별곡도다가오고
나무들의수액에젖은손가락집게에집혀
나도수액으로풀려지고마는
한폭의묵화
내검은핏속을떠도는금은의
별들은모두유년의선물이네.
장자시 그 열 넷
스스로의노래에홀린채외곬으로뛰어가는이질주
나를비추는거울이여너의무서운침실에갇혀서
나의질주는끝없으나시렁위의불빛은
언제나그그림자를펄럭이네.
장자시 그 열 여섯
몇억광년의별빛을받아그대의심장을뚫는나의총소리로
코일처럼꿈을몰아감은그대의신경이풀려지는소리로
죽어서사수좌로날아가는그대의마지막목소리로
피를흘리는풀들의번뜩임조차사람을다치게하는데
그대의넋은유유히시야를떠돌아다니네
희미한빛인채죽은살속의납도들여다보고납속의무엇과입도맞추네
스타라이트스코프로도보이지않던그대의넋과내넋의싸움이시작되네
장자시 그 열 일곱
물결들이서로부딪쳐높이키를세울때그머리에
관冠으로서리는바람은
노래부르는아뽈리네에르의장미꽃
말의춤을짜넣은아뽈리네에르의비단
문득가벼이웃으며풋물같은빛의속을더듬어어디엔가
금金으로괴는나의오늘을드러내보이기도하네.
장자시 그 열 아홉
생목울타리엮어물기듣는달을걸고사향노루구름뛰고
산간약수개울비구니꽃가슴흐르고
경소리제등하고
환영만남은남근한뿌리남몰래처녀림곳곳에심고
목어두들기는풍경은은하고.
장자시 그 스물 하나
홍역앓는나의뿔피리소리는뜨거워라
드문진통의손뼈를꺾으며어머니의손뼈를꺾으며
뿔피리소리는삐이삐이울어라나이든내가슴속의
이무기처럼슬픈날이면하늘에서땅에서울어라
어린바다의물구비가혈관속을흘러라.
장자시 그 스물 둘
무지개의가파른벼랑을기어오르네벗겨진
손바닥으로일곱개의허리에혈인을찍네
이세상의어디에서도부르면달려올나의것이네
가장치열한연소를겪은뒤의내가슴이네.
장자시 그 스물 다섯
어둠은늙은나무도불붙이네
아닌밤의정염에창포물에머리채를씻다가
나래옷만걸친알몸의여자들은은하가까이흰젖줄을뿜어올리네
능금한알을던져도점점점부풀어오르는원이되어도화색
이상李箱의69인양두근거리며거기가득차있네.
장자시 그 스물 일곱
경쾌한휘파람을불며여인은꽃이되누나
단추와같은꽃방울흔들며
타누나
잠자는듯한팔이꽃가지에에테르처럼
취해
꽃가지에남실이는영혼불꽃타누나
열병들린여인은마침내타누나.
장자시 그 스물 아홉
프리즘속의한올거미줄에매달린무명의벌레
나의생애는움직일수없네
이왕국의거미는보이지않고
하릴없이거미줄에뿌리를내리고
내머리는기묘한꽃으로피어보지만향과꿀이없다네
가다가프리즘이
아득한하늘용의눈알처럼
전갈좌나카시오페아좌의미리내를떠돌다
골수의오뇌를짜내어새별을만들어띄울때나
나도더듬이를하나잘라분가를시킬뿐이네.
장자시 그 서른 하나
살속벌레마저꿈틀거리고되살아나는간지러움에
연록의눈을가느러이모으며나무들은꿈꾼다
천리안소소트리스부인夫人의재채기에나무들은노를젓는다
가장아름다운물소리가옆구리에서새어나오는선박이다.
장자시 그 서른 셋
천상의궤도마다장미밭을일궜네
내생애는바람의도포를입었네
가다오다장미꽃가지를치는
오오인연의칼끝에길이놓였네
바람속으로헤매이는내피의물살이여
흩날리는장미꽃잎이여.
*연작 33편 중 21편 수록
▲ 박제천시선집 [밀짚모자 영화관]의“박제천 시인상”과 육필시「꽃처럼 물처럼 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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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머리에
꽃처럼 물처럼 산처럼
꽃처럼 꽃을 보다가
물처럼 물을 보다가
산처럼 산에 남으리
산이 곧 꽃이니 山卽是芳
꽃이 곧 산이니 芳卽是山
시업 50년이 어느새 눈앞이다. 젊어 처음 시에 매달리던 때로서는 꿈조차 못 꾸던 일이다. 딴에는 부지런히 시에 전념한다 했지만, 1천 편이 겨우 남는 소출이니 햇수에 비해 턱없이 게으르다. 그나마 12권 시집을 통해 노장과 달마, 국학과 민속을 아우르고자 했고, 편편마다 혹은 상상력을 밀어붙이거나 이법과 직관을 다지고자 혼신을 다했던 흔적이나마 건질 수 있어 위안으로 삼는다.
한지며 양장입성에 사라져가는 활자로 하여 두드려지는 이번 시선집에는 자선 100편을 수록한다. 2005년에 전 5권의 『박제천 시전집』을 간행하고도 다시 이렇듯 호사스러운 선집은 분에 넘치는 일이다. 그래서 더욱 특색을 살리고자 그동안 선집에서 제외하였던 연작 시를 발췌 수록했다. 전작시집으로 발간하였던『노자시편』과 시극으로 공연하였던『판각사의 노래(46편)』및 장시『환각의 교실』등은 성격상 제외했어도 연작시에 힘을 쏟았던 젊은 날의 꿈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일하는 내내 흥취로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의 불꽃을 피워보자던 젊은 날의 내 다짐은 어리석기 그지없는 일, 그러나 시업 50년이 되도록 그 꿈을 지키는 미련함 또한 「호접몽」이 알려주듯 사람으로는 행불행을 따질 수 없는 일, 그런 내가 어느 때는 미욱스럽다가 어느 때는 대견해 보이기도 하니 참으로 알 수 없는 게 시인의 명운일까.
2011년 유월 어느 좋은 꿈 꾸는 날
박 제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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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제천의 시세계 ]
동양의 정신이 박제천을 만나면?
― 박제천 시전집 전 5권
尹錫山(시인, 한양대 한국언어문학과 교수)
1.
박제천 시인이 시업 40년을 맞아 다섯 권이라는 엄청난 분량의 전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 낱권 낱권이 팔힘 없는 사람은 한 손으로도 들기 힘든, 두껍고 무거운 다섯 권의 전집. 이들 전집 중 세 권은 박제천 시인이 40년 동안 써서 세상에 내놓은 시작품들이 된다. 또 권4는 박제천이 쓴 일종의 산문들인데, 이들 산문들이 모두 시에 관한 것, 또는 자신의 시에 대한 해설, 또는 시로 인하여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 등, ‘시’가 아니면 이야기될 수 없는 것들로 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나머지 권5는 시인 또는 평론가들이 박제천의 시에 관하여 자신들의 생각을 적은 글들이 된다.
이와 같은 면에서 본다면, 박제천의 전집은 ‘시가, 시를, 시에, 시와…’ 등등 온통 시에 관한 것들로 되어 있다고 하겠다. 물론 시인이, 그것도 시업 40년을 생각하며 만든 전집이 ‘시나 시에 관한 것’ 아니면, 또 무얼 싣겠는가마는, 그래도 이 전집을 보면서 박제천은 한 생애 동안 오로지 시만 생각하고, 시로 밥을 먹고, 시로 술 먹고, 시로 숨쉬고, 시로 잠자며 살던, 그런 사람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면 이와 같은 삶을 살아온 박제천은 행복한 사람인가, 아니면 불행한 사람인가? 알 수가 없다. 시인이 시만 생각하고, 시로 숨쉬고, 시로 술 먹고, 시로 밥 먹으며 살았으니 행복함이 의당한 것인데, 그래도 모르겠다. 시 말고는 다른 짓거리를 못했음직 하니, 이 또한 행복한 삶인지 아니면 불행한 삶인지 알 수가 없다.
실상 우리의 삶에서 행불행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못된다. 행불행보다는 얼마만큼이나 열심히 살았느냐가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견해에서 본다면, 한 생애를 보여주는 전집이란 곧 이 전집의 주인인 박제천의 삶에 대한 모습과 또 그 마음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아닌가 생각된다. 즉 한 순간도 그저 허술하게 보내지 않으려는, 한 시인의 시인으로서의 모습을 우리는 바로 이 전집에서 읽을 수가 있고, 그리고 그가 한 순간도 허술하게 살지 않으려고 노력했음을 이 전집에서 읽을 수가 있다.
박제천도 전집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예로부터 전집은 그 사람의 사후(死後)에, 그 사람의 학문이나 문학을 높이 생각하여 제자들이나 또는 관련이 있는 후인들이 만드는 것이 일반이다. 따라서 대부분 옛 분들의 전집은 그 사람 사후, 어떤 경우에는 사후 100년이 훨씬 지난 후에 나오는 경우도 왕왕 있다.
고려조의 문신 이규보(李奎報)는 수많은 시와 글을 쓴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평소 자신이 쓴 시나 글들을 잘 보관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나이 74세에 이르러 병을 얻게 되어 자리에 눕게 되자, 평소 이규보를 아끼던 당시의 무신 권력자 최이(崔怡)가 이를 안타까이 여겨, 이규보의 시와 글들을 아들에게 모으게 하여 서둘러 판각하도록 지시를 하였다. 문집을 이규보 살아생전에 간행하여, 한번 보게 하는 기쁨을 이규보에게 안겨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병을 얻은 지 두 달이 못 되어 이규보는 그만 눈을 감게 되고, 끝내 자신의 문집을 자신의 눈으로 보는 기쁨을 얻지 못하였다. 또한 최이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규보가 자신의 문집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전집은 바로 이와 같이 그 사람의 값진 전생이며, 또 그 사람의 모두가 담긴 기쁨이기도 하다. 박제천의 전집 역시 이와 같은 면에서 참으로 축하를 해야 할 경사라고 하겠다.
2.
1960년대에 등단하여, 70년대에 『장자시(莊子詩)』를 발표하며, 박제천은 사람들로부터 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60년, 70년대 초반은 아직 우리의 것에 대한, 또는 동양에 것에 대한 그 인식의 도가 그리 높지 않을 때였다. 인식이 높지 않다기보다는, 오랫동안 우리를 침식하고 또 억눌렀던 서양의 철학이나 유행의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것이 혹은 동양적인 것이 조금씩 보이지 않게 그 인식의 눈을 뜨기 시작하던 때였었다.
이러한 시대에 동양적인 깊이와 사유를 지닌 ‘장자’를 시의 제목으로 올린다는 사실 자체가 남다르고 또 새로운 일이기도 했다. 따라서 ‘장자시’를 발표하면서, 이와 같은 새로운 시적 대상을 취했다는 면만 가지고도 박제천의『장자시(莊子詩)』는 당시로는 세인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다음과 같은 정한모의 술회는 바로 이와 같은 면을 잘 나타내고 있다.
장자시는 동양적인 것, 한국적인 것을 현대시로 표현하는 데 성공한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쉬르에 가까운 표현기법을 주로 하여 매편마다 독립된 한 편으로서의 통일과 조화에 흐트러짐이 없다.… 이미지를 구성하고 있는 감각들이 신선하고, 쌓아 올리는 이미지와 이미지의 봐리에떼도 다양하다. 상상의 세계로 터무니없이 비약하지 않고, 필연적인 확대와 비약을 하고 있다. 감각과 상상과 언어 구사, 이 세 가지가 모두 든든한 바탕 위에 자리하고 서로 유기적인 연관성을 잃지 않고 하나의 표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 박제천의 시는 구문이 정확하고 메타포에 의한 이미지들이 劾明하여 그 전달성이 강하다. 불투명한 이미지, 그것을 은폐하려는 구문의 不具性, 이런 것으로 현대시의 난해성에 편승하려는 사이비 시와 대조해보면 박제천의 시가 지니고 있는 安定性과 堅固性이 이해될 것이다.
정한모가 이야기하듯이 ‘장자시는 동양적인 것, 한국적인 것’이다. 실상 당시의 시대적 현상은 우리의 ‘근·현대’에 관하여 나름대로의 반성과 개진이 대두되던 때였다. 즉 근대시 이후 대두된 ‘근·현대’라는 개념에 관하여, 이가 서양의 충격에 의하여 등장하였다고 보는 견해에 대하여 심각하게 이의를 내세우던 때였다. 다시 말해서 서양적인 근·현대가 아닌, 동양적인, 또는 한국적인 ‘근·현대’, 즉 자생적인 근·현대를 찾아가던 시대가 60년대, 70년대였다. 이와 같은 시대에 박제천의『장자시(莊子詩)』, 즉 동양적인 것, 또는 한국적인 것인 대상을 시적인 제재로 삼은 작품이 등장하자 세인들의 관심이 높아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만 동양적인 것이기 때문에 박제천의『장자시(莊子詩)』는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니었다. 즉 신선한 감각,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언어 구사 등이 장자라는 동양적 사유가 지니고 있는 폭넓은 상상의 세계를 시적으로 잘 드러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제천은 그가 지니고 있는, 시인으로서의 감성과 언어적 구사로 자신의 깊은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세계를 莊子的 상상력을 통해 시화하는 데에 성공시켰기 때문에, 그 당시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박제천은 ‘장자를 노래한 것도, 또 장자의 가르침을 노래한 것도 아닌’ 다만 ‘장자적 상상력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밀도 있게 노래한 것’이라고 하겠다. 즉 장자적 상상력, 또는 장자를 필두로 하는 노장적 상상력을 박제천은 자신의 시에 자유럽게 구사하므로 시적인 성취를 이루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장자적 상상력을 얻는 과정을 다음과 같은 박제천의 회고에서 만날 볼 수 있다.
남독형 독서에 빠져 대본집의 꽂혀 있던 1, 2백 권의 책을 독파하면 다른 집으로 옮겨가는 식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책을 사 모으는 두 번째 단계로 접어들으며, 어느덧 책을 분별하는 시력이 길러지게 되어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읽어야 할 책과 읽고 싶은 책들의 목록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나는 내 생애에 있어 잊을 수 없는 두 권의 책과 만났다. 그것은 아마 15,6세 때로 『장자』와 『한비자』였다. 한자와 일본어 번역판으로 된 그 책들은 한문 공부를 따로 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장님 파밭 들어가는 격이었지만, 일본어 번역판이 의지해 한두 줄씩 읽어 내려갔다. 나는 마치 불가해한 비밀결사의 주인공처럼 남몰래 그것을 읽고 또 읽어나갔다. 그러나 이삼 년이 지난 다음 우리말 번역책을 대하고 원뜻과는 달리 오독했나는 것을 깨달았지만, 나는 한동안 뻔뻔스럽게도 내 나름의 책읽기가 더 정확했다는 자부심에 사로 잡혀 있었던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내 자신의 상상력으로 뛰어넘었는데, 그러한 내 독법을 ‘상상력 읽기’라고 명명한 적이 있다.
박제천은 십대 소년의 시절, 다양한 독서의 과정 속에서 만난 장자, 한비자 등 동양의 고전을 통해 나름대로 동양적인 상상력을 키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더구나 그 오묘한 동양의 고전인 장자가 지니고 있는 상상의 세계에다가, 자신이 해석하기 위하여 펼친 나름대로의 상상력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박제천의 문학소년 시절은 상상의 세계 속에서 다양한 사유를 만나기 위하여 헤엄을 치던 사람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상을 통한 정신에의 천착과 이로부터 형성된 세계가 성년에 이른 박제천으로 하여금 『장자시(莊子詩)』와 같은 풍부한 상상을 통한 다양한 정신의 깊이를 지닌 시들을 쓰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므로 그는 상상력을 통하여 현실을 변형시키고, 나아가 다양한 이미지들을 자신의 시 속에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무렵 박제천은 장자시를 비롯하여 다양한 제목의 연작시를 발표하였다. 그의 연작시 형태는 그 이후에도 간간히 지속되지만, 특히 초기 박제천은 연작시에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허수아비가』『과녁』『오구대왕의 산문』『풍어제』『토기사냥』『무무행(無無行)』『허사(虛辭)』『십이동판법(十二銅版法)』 등이 그것이다.
우리 서사무가(敍事巫歌)에 등장하는 바리데기 공주의 아버지인 오구대왕, 동해안 등지의 바닷마을에서 풍어(豊漁)와 무사고(無事故)를 용왕께 비는 전래적 제의(祭儀)의 하나인 풍어제, 도가적, 또는 불가적 의미를 담고 있는 무무행, 로마의 성문법인 십이동판법 등. 그 제목이 시사하듯이 박제천은 매우 의미심장한, 그래서 이야기를 꺼내면 몇 날 며칠을 풀어나도 끝나지 않을 듯한 제재들을 가지고 연작시를 썼던 것이다. 그리고 이 연작의 시작품마다에서 역시 자유분방한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연작시란 한 사물이나 사건이 지니고 있는 면모를 다양하게 보여주려는, 나름대로의 의도를 지닌 작품의 형태이다. 본래 시라는 서정 양식은 어떤 줄거리나 배경을 담기에는 적합한 양식이 아니다. 또한 이와 같은 것이 바로 서정 양식의 특징적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품이 연작의 형태를 띠게 되면, 자연 그 연작을 통한 나름대로의 줄거리, 또는 그 제재가 지니고 있는 배경 등이 은연중에 작품 속에 드러날 수가 있다. 바로 연작시는 서정 고유의 양상을 벗어나고자 하는 새로운 형태의 추구이기도 하다.
바로 박제천은 이와 같은 연작시가 지니고 있는 특성을 살려, 선택한 제재를 자신이 지닌 다양한 상상력을 통해 끝없이 펼쳐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박제천의 『장자시(莊子詩)』 등의 연작시에 관하여 김준오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장자시는 모두 33편으로 구성된 연작시다. 여기서 우리의 시적 체험은 두 가지 놀랄 만한 현상을 목격하는 데서 시작된다. 첫째로 이 작품에서 행은 구분되어 있지만 의도적으로 띄어쓰기가 전연 되어 있지 않으며 구두점도 마지막 시행 끝에 마침표만 찍혀 있을 뿐 전혀 사용되고 있지를 않다. 30년대 이상 시를 상기시킨다.
둘째로 이미지들의 연결이 좀처럼 해독하기 어려운 암호 체계로 되어 있다. 흔히 기상이나 철연이라 불리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 두 가지는 33편의 전체에 일관되고 있는 현상이다. ‘~네’라는, 함축적 청자나 실제의 독자에게 동의를 구하는 종결 의미를 두드러지게 많이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두 가지 현상은 아이러니칼하게도 우리의 성급한 접근을 거부하고 있다.
띄어쓰기와 구두점 무시는 우리의 의미론적 접근을 혼란시킨다. 그러나 이 혼란은 시인이 깔아놓은 미적 장치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언어의 잠재적인 능력을 다양하게 발휘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그는 언어를 주술적으로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시에서 언어의 주술적 기능은 소리로써 우리의 영혼을 구애되지 않고 그대로 읽어 버리면 마법의 주문 같은 것이 된다. 이것은 무가 형식의 연작시 오구대왕의 산문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는 전통의 인위적 리듬을 철저히 파괴하고 자연스러운 리듬을 노렸는지 모른다. 이런 비문법적 장치는 이미지의 결합 양식에서 더욱 교묘하게 나타난다.
김준오의 지적과 같이 박제천의 연작시들은 서정적 양식을 벗어나려는 의도만이 아니라, 띄어쓰기의 거부와 구두점의 무시, 나아가 상상력을 통한 변형된 이미지의 결합 등을 통해 언어가 지닌 주술적인 기능까지 시에 접목시키고자 했음을 알 수가 있다. 나아가 주술적인 장치를 통해 자연스러운 리듬을 획득하였고, 비문법적인 장치를 통해 교묘한 이미지의 결합을 박제천은 연작시를 통해 시도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초기 박제천이 보였던 시에의 모습은, 결국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 독자적인 세계와 스타일을 지니려는 노력의 한 단면이라고 하겠다. 시인으로 살아가며, 한 사람의 예술가로 살아가며 자신의 독자적인 포즈를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것이면서도, 또한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박제천은 젊은 시절 이미 만만치 않은 포즈로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독자적인 모습을 이루고 또 획득하고자, 『장자시(莊子詩)』를 통해 그 스스로 칼날을 갈아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1975년『장자시(莊子詩)』를 세상에 내놓은 이후 박제천은 심법』『율』『달은 즈믄 가람에』『어둠보다 멀리』『노자 시편』『너의 이름 나의 시』『푸른 별의 열두 가지 지옥에서』『나무 사리』『SF―교감』 등 10권의 시집을 내놓는다.
위에서 잠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장자시』에서 장자적 상상력과 현대적 시의 기법이 교직된 시작품을 보였다며는, 『심법』에 이르러, 박제천은 그 연작의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마음의 궁리를 시로 노래하고자 한다. 그 연작에 매겨진 이름과 같이 즉 재주와 이 재주로 인해 얻어지는 고칠 수 없는 마음의 병과 예술에 관한 궁리를 노래한 ‘재(才)와 치(痴), 화(畵)’, 그리고 내편, 외편, 잡편을 하나의 틀로 삼았던 고인들의 마음을 궁리한 ‘내(內), 외(外), 잡(雜)’의 시편들, 음계를 이르는 ‘궁(宮), 상(商), 각(角), 치(徵), 우(羽)’, 성현의 노작인 ‘경(經), 사(史), 자(子), 집(集)’ 등은 참으로 박제천이 과연 그 마음의 궁리가 어디에 가 있는가를 알게 하는 것들이라고 하겠다.
또한 박제천 스스로 자서에서 “자연과 나의 습합을 꾀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시집 『율』에서도 이와 같은 노력이 계속됨을 볼 수가 있다. ‘산정(山頂), 허두(虛頭), 역려(逆旅), 괴석(怪石), 춘설(春雪), 대인(對人), 몽생(夢生), 방생(放生), 천지(天時), 유수(流水)’ 등의 자연과 인사와 세상만사인 여러 물상, 일 등등을 제재로 삼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박제천이 사용하고 있는 이들 자연, 인사 등에 해당되는 어휘들은 매우 고졸(古拙)한 것들로 가히 지금까지 박제천이 천착해온 세계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해주는 것들이라고 하겠다.
더구나 동양의 별자리를 이르는 이십팔수(二十八宿)를 매재로 노래한 심천(心天) 연작은 ‘인사(人事)가 곧 천리(天理)요, 마음이 바로 하늘’이라는 동양적 사유를 그 근간으로 한 시편들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오랫동안 동양, 또는 우리의 것이 지닌 고졸한 맛과 이에 대한 궁리와 사유를 바탕으로 시를 써온 박제천은 다시금 『노자시편』에 이르러 그 노장적(老莊的) 사유와 상상의 깊이를 더 해가더니,『달은 즈믄 가람에』에 이르러 ‘삼봉(三峰), 고산(古山), 자산(玆山), 매월(梅月), 백호(白湖), 서산(西山), 정암(靜菴), 미수(眉풚), 화담(花潭)’ 등 우리의 혁혁한 인물들의 생각을 헤집어 노래하고 있는가 하면, ‘기이(奇異), 처용(妻容), 수로(水路), 월명(月明)’ 등등 삼국유사에 담겨진 여러 일들을 헤집어 노래하고 있다.
욕심도 많고 많은 박제천은 이렇듯 동양과 우리나라의 정신의 정수만을 뽑아 이들을 자신의 정신의 의지처로 삼아,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끝까지 헤쳐 가는 마음을 열어, 이를 시로써 노래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후 박제천은 SF 같은 이상한, 박제천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목의 연작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 장자나 노자나 모두가 그 시대의 SF, 과학적 허구, 곧 공상과학의 대가(大家)들이 아니겠는가. 그런가 하면, 이러한 기상천외한 상상력이 곧 동양의 정신을, 그 무궁한 궁리를 이루어 매월당도 내고, 처용도 내고, 또 천상의 이십팔수를 읽어내기도 한 것이라는 것이 바로 박제천의 생각이 아닌가 생각된다.
박제천 전집는 그간 박제천이 40년 간 쓰고 발표하고 또 시집으로 묶어, 세상에 보여왔던 세계를 하나로 묶어서 보여준, 그러므로 그가 과연 40년 동안 무슨 생각을 하며 시를 썼는가를 알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3.
한 시인에게, 시에 대한 주견, 쉽게 이야기해서 ‘시론’이 없다면, 어쩌면 그 시인은 시인으로서 일가를 이루지 못했다고 하겠다. 즉 ‘나에게 있어 시란 어떠한 것이다.’라는 시에 대한 분명한 입장과 태도를 지닐 때 그는 비로소 시인으로서 설 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어느 누가 무어라고 해도, 어느 평론가가 열 입을 모아 떠들어도, ‘나에게는 이러한 것이 바로 시요’라고 외칠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비로소 한 사람의 일가를 이룬 시인이다.
박제천의 전집 권4를 읽어보면 몇 편의 산문 속에 자신의 시론을 담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즉 권4에서 박제천은 자신의 시에 관한 견해이거나 또는 자신의 시에 대한 해설, 또는 작시를 위한 강의 등을 통하여 자신의 시론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 박제천이 펼친 시론을 살펴보면, 대략 ‘첫째, 시란, 혹은 예술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자신의 예술관, ‘둘째, 시인으로서의 삶과 사물에 대한 인식 태도’, ‘셋째, 시인으로서의 언어관’ 등으로 나뉘어질 수가 있다.
「노장시학」은 같은 예술의 길을 가는 오수환 화백의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결국은 박제천 스스로 시에 대하여 어떠한 생각을 지니고 있는가를 드러낸 글이라고 하겠다. 즉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바가 곧 박제천의 시관(詩觀), 혹은 예술관이라고 하겠다. 오수환 화백이 자신의 그림에서 내놓은 표제인 ‘곡신(谷神)과 적막(寂寞)’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글은, 시인 스스로 지어준 호인 ‘산청(山靑)’을 노안(老眼) 때문에 잘못 읽어, ‘북청(北靑)’으로 읽으므로 해서 빚어진 에피소드에 이르러 그 진면목을 드러낸다.
언젠가 나는 그의 호를 산청(山靑)으로 지었다. 그 뒤에 다시 화실을 찾았을 때 나는 돋보기를 쓰지 않은 채 문패에 붙어 있는 글씨를 북청(北靑)으로 잘못 읽었다. 술자리에서 나는 그의 새로운 호에 대해 말을 꺼냈다. 북은 임금의 자리이고, 오행으로는 동으로 가는 방향이니, 물에서 나무가 자라듯 왕성하리라는 치하였다. 산과 북은 전문(篆文)의 글자로 보면 서로 뒤집어놓은 형상이다. 이제까지의 오수환에 대한 나의 글은 이처럼 그의 그림을 뒤집어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면 또 어떤가. 산이 북에 있듯이 그의 그림은 곡신에도 있고 적막에도 있는 게 아닌가.
그의 새로운 그림 한쪽에서 곡신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다른 한쪽은 적막의 몸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그가 찾아낸 우리네 삶의 본원이고 그 전개이다. 사람의 삶이란 실은 도깨비가 보여주는 우리네 마음의 형태가 아니든가. 그 형태를 지우고 다시 지워냄으로써 삶의 본원이 홀연히 우리 앞에 그 모습이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수환과 나만은 아닐 터이다. 도깨비란 곧 예술가의 도이고, 그 도의 환에 다름 아닐진저!
―「노장시학」에서
‘도깨비들의 삶’으로 요약되는 ‘예술’, 또는 ‘예술가의 도’는 곧 박제천이 지닌 예술에의 정신이며, 이 정신을 통해 바라보는 세계이며, 동시에 예술관이기도 하다. 즉 ‘곡신과 적막’을 모두 지닌, 그래서 어찌 보면 ‘산’으로, 어찌 보면 ‘북’으로 보이는, 그 자리에 바로 예술이 자리하고 있다고 박제천은 말하고 있다. 결국 예술이란, 또는 시란 어떠한 이름으로도 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도깨비가 보여주는 수많은 마음의 형태, 또는 삶의 형태 속에 예술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박제천이 말하고 있는 예술관이요, 시관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산문「심우도(尋牛圖)」와「사물의 이치를 따라 쓴다」를 읽다보면, 박제천이 시인으로서 어떠한 사유를 하고, 또 이 사유를 통해 사물을 어떻게 인식하고자 하는가를 알게 된다.
마음 먹기에 따라 세상이 바뀐다. 불교에서는 아예 일체유심조라고 한다. 그러나 어떤 마음을 먹어야 나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것인가. 그 실마리의 하나를 나는 문득 12지(支)에서 본다. 우리가 흔히 ‘띠’라고 하는 12지의 열 두 가지 동물은 기실 우리네 마음의 얼굴이 아니든가. 그래서 한자에서는 12동물을 12속상이라고도 한다. 우리들 마음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이다. 인면 수심이란 말이 있듯이 사람의 본성에는 12 동물의 수심이 다 깃들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심우도」에서
동양의 12지(支)를 이루는 열두 동물을 ‘마음의 얼굴’로 생각하고, 나아가 사람의 깊은 속내에는 열두 동물의 수심(獸心)이 깃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다름 아닌 박제천이 시인으로서 사물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눈이라고 할 수가 있다. ‘마음의 눈’, 이 마음의 눈을 통하여 마음에 숨어 있는 열두 동물을 바라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시인의 마음을, 시인의 눈을 지니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어느 옛사람은 바람 소리를 나누어 몇 십 가지로 열거하였지만, 사실 바람 소리가 그러한 세목으로만 끝난다면 세상의 사물이나 이치가 무엇에 필요하랴. 다시 말해 옛사람들이 이름 짓고 가름하고 버리는 것이 완벽하다면 뒷사람의 할 일이 따로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세상의 사물이나 이치란 참으로 무궁하고 오묘하여 사람마다 다 주어진 몫이 있게 마련이다. 적어도 나는 그런 생각 아래 시를 쓴다고 감히 장담하는 바다.
―「사물의 이치를 따라 쓴다」에서
위에 인용된 글 역시 박제천이 사물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잘 드러내주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결국 그를 바라보고 인식하는 삶의 태도에 따라 무궁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박제천이 사물에 지닌 인식의 모습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박제천은 “세상의 사물이나 이치란 참으로 무궁하고 오묘하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나아가 사물을 인식하는 것 역시 “사람마다 주어진 몫”, 즉 그 사람의 삶의 양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물에의 인식 위에 박제천은 수많은 역사상의 인물, 사물, 일들을 오늘에 다시 불러들여 시로 썼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박제천은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 보다 투철하게 언어에 대한 생각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즉 박제천은 모든 낱말을 삶의 상징어이며 그 삶의 양태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는 은유의 기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시인으로서 응당히 깨달아야 할 언어에 대한 인식이지만, 박제천은 이러한 시어에 관한 생각, 언어관을 자신의 삶과 시쓰기에서 체득하고 있으므로, 이를 자신의 시론으로 삼고 있다.
범박하게 말하자면 내 시에 쓰이는 모든 낱말들은 삶의 상징어이자 그 삶의 양태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는 은유의 기능을 갖고 있다. 나는 본시 나라는 한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고, 삶의 의미와 구조, 그 삶의 축적과 지향, 그 삶의 진솔성과 타락, 그 삶의 나눔과 하나됨을 기록하는 걸 시라고 생각하는 자이다.
이것은 허망한 분별심으로 나와 남을 가름이 아니다. 나를 통해 내가 살려는 길이다. 내가 나를 모르고, 또 저를 모르는데 어찌 나를 알고 저를 알 수 있는가. 시냇물 소리로 혀를 삼고, 산의 빛깔로 몸을 삼고, 이 산과 강, 저 땅을 모두 적멸도량으로 삼는 매월당(梅月堂) 류의 발상이 아니다. 내가 물이 되고 산의 빛깔이 되고 자연이 되며, 그것들이 또한 내가 되는 동일성의 원리를 내게 적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삶의 상징과 존재의 은유에 대하여」에서
‘내가 물도 되고, 또 땅도 되고 자연이 되므로, 나의 시어 모두는 삶의 상징어이며 은유의 기능을 지닌 것’이라고 천명하는 박제천에게, 다름 아닌 시어는 곧 자신의 삶이라는 내면성과 사물이라는 외적 존재가 합일되는 경지에서 얻어진 무엇이 된다. 따라서 이와 같은 박제천의 ‘사물과 나’와의 동일성의 원리는 곧 사물에 대한 인식일 뿐만 아니라, 시인으로서 지니고 있는 언어관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언어는 그냥 언어가 아니라, 사물이고 또 일이고 또 만유(萬有)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박제천은 한 편의 시를 그냥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오래오래 지니고 있다가 스스로 꽃이 떨어지고 또 열매가 익어가듯, 그렇게 될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작품으로 내놓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시 쓰는 일이 30년을 넘어가면서부터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속에서는 시가 늘 끓어넘치는 데도, 그걸 종이에 옮기지 않는다. 안에 넣고 푹 삭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잊어버리거나 내버려 두는 게다.
―「시의 완성을 위하여」에서
박제천은 바로 이렇듯 사물이나 인물 등등의 제재에서 깨달은 무엇을 오랫동안, 아주 잊어버릴 지경으로 자신의 안에 두고 있다가, 이것이 ‘사리’가 되었을 때 다시 꺼내어 “자신의 삶의 축적과 지향, 삶의 진솔성과 타락, 삶의 나눔과 하나됨”이 담긴 삶의 상징어인 낱말, 삶의 은유인 언어를 통해 시로 빚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마음의 자’ 하나를 지니고, 이 잣대를 정신의 힘에 의지하여, 문학이라는 ‘거짓말로 씌어진 진실’을 박제천은 40여 년간 해왔던 것이다.
즉 박제천은 이렇듯 예술관, 시관, 나아가 사물에의 인식, 또는 언어관을 확고히 지니고, 이러한 생각을 자신의 삶 깊은 곳에 묻어두고, 이를 근저로 자신의 시론을 세워 40년간 시업에 굳건히 임해왔던 시인이다.
4.
박제천 전집 마지막 권인 권5에 이르면, 박제천 시인의 초기 작품에서 최근작에 이르는 모든 작품을 아우르는 주제별 글들이 실려 있다. 이 부분을 ‘개관’이라고 이름하였다. 즉 박제천 시작품의 개관을 아우른다는 뜻에서 이렇듯 이름을 부친 듯하다. 또한 이러한 글들과 함께 박제천의 시선집 및 개별 시집을 주제로 삼은 평설이나 감상문을 싣고 있고, 박제천을 인터뷰한 기사, 또는 박제천 시작품에 대한 단평들인 월평, 서평들을 싣고 있다.
즉 다른 사람들이 박제천의 시작품을 어떻게 보았으며, 또 박제천을 어떻게 보았느냐 등의 글들이 된다.
개관에서 필자들은 대체로 박제천의 시세계를 ‘동양정신의 현대적 승화’로 보고 있는 듯하다. 김용범은 노자와 장자의 경전을 중심으로 이들의 사유나 상상력이 어떻게 박제천에 이르러 문학적으로 또는 시적으로 수용되고 형상화 되었는가에 집중하였다. 이와 같은 경우는 고영섭, 송정란, 최동호 등 대부분의 필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박제천 작품을 관류하는 기호로 도가적 상징인 ‘곡신(谷神)’과 불가적 결정체인 ‘사리(舍利)’로 상정하고, 정신의 깊은 고뇌를 통해 건져 올린 시편들로 평가하고 있는가 하면, 삼국유사 소재의 설화라는 서사적 고전들이 어떻게 현대시로 육화되었는가에 그 관점이 모아져 있음을 볼 수가 있다.
그 외에 단평이나 서평에서도 실은 상기와 매우 유사한 관점에서 박제천의 시작품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박제천의 시를 “동양과 서양이 만나 치열한 내전을 벌인 전쟁터” 등등으로 이야기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박제천 전집 5권, 무더위 속에서 이 서평을 쓰기 위하여, 이 책상에서 저 책상으로 옮기다 보니, 그 책들이 얼마나 무거운지, 동양의 정신이 박제천을 만나 이렇듯 다시 무거워졌음을 이 여름 나는 정말 심심치 않게 느꼈다. 주마간산(走馬看山)의 서평, 박제천 형에게 참으로 미안하기만 하다. 그러나 실체인 전집이 중요하지, 서평은 하나의 요식일 뿐이 아니겠는가. 그것으로 부족한 글의 위안을 삼고자 한다.
- 윤석산(尹錫山) : 1947년 서울 출생 /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 197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 시집 <바다 속의 램프>, <온달의 꿈>, <처용의 노래>, <용담 가는길>, <적>, <견딤에 대하여>, <밤 나이, 잠 나이> 등 / 한국시문학상, 편운문학상 본상 수상
- <http://cafe.daum.net/kpoetry:시와산문 그리고 시와녹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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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芳山齋」- 김구용 시인 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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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천朴堤千 시인 연보
• 1945년 3월 23일 서울에서 부친 박정륜朴晶崙, 모친 황복순黃福順의 9남매 중 막내로 출생
• 1950년 방산초등학교 입학.
• 1951년 1.4 후퇴 시 대전으로 도보 피난. 한남동 빙판을 건너 한 달여에 걸친 대전 도착했으나 서울수복 후 상경. 피난 시 흩어졌던 형제들도 서울에서 재회. 복교
• 1954년 5월 15일, 와병 중이던 부친 사망.
• 1956년 1월, 방산시장 대화재로 자택 소실. 방산초등학교 졸업.
• 1959년 한양중학교 졸업
• 1960년 성동고 재학 중 문예반에 가입하지는 않았으나, 2학년부터 문학 활동 참여.
• 1962년 성동고 졸업. 1년간 여행 및 독서로 소일, 서울 시내 공립고교 졸업생들로 <화조火鳥> 문학동인 결성. 이 무렵 오진용, 배길랑 등과 잡지 창간을 모색했으나 무산.
• 1963년 동국대 국문학과 입학. 경희대 조태일, 김학철 등과 <대학시회> 결성.
• 1964년 동국대 재학생 천기철, 홍신선, 정의홍, 선원빈, 김정희, 정원모, 문윤호, 명기환, 오대환 등과 <다다> 동인 결성, 동국문학회장.
• 1965년『현대문학』추천제 시부문 1, 2회(신석초 선생), 동대내 동국문학회와 동대문학회를 통합, 동국문학회 초대회장.
• 1966년『현대문학』3회 추천 완료(7월호, 신석초 선생). 4학년 재학중 8월에 육군 입대. 이후, 복교하지 않음. 12월 29일 모친 사망.
• 1968년 4월 19일 김정희(金情姬 Mathild) 와 결혼.
• 1969년 8월 병장 만기 전역. 12월 월간 『주부생활』사 입사. <한국시> 동인 결성.
• 1970년「장자시」(『현대문학』10월호) 발표. 홍신선, 김학철, 정원모, 송유하 등과 <시법> 동인 결성. 아들 진호 출생.
• 1971년 김구용 선생 ‘방산제방산제’ 아호 작명. 「장자시」가 『문학과 지성』에 재수록. <시법> 동인에 강우식, 김여정, 김지향, 오순택, 이만근, 민영 등을 추가.
• 1972년 「주부생활』 퇴사. 이후 진학, 동화출판공사, 국민서관 등 잡지 출판사 전전. 딸 수진 출생, 세례명 루시아. 신도림동집 수해를 입음.
• 1973년 신태양사 편집장으로 재입사 및 퇴사. 동서문화사 편집실장(76년까지)
• 1975년 첫시집『장자시』 출간. 』
• 1976년 시극『새타니』공연. 9월,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입사.
• 1978년 김석훈 시인이 제2시집『심법心法』과『장자시』재간행을 요청, 두 권 모두 조판 완료했으나 사정상 무산.
• 1979년 문예진흥원 지원 제2시집『심법心法』출간(연회), 현대문학상 수상. 첫시집『장자시』재간행(연희), 시극 『판각사의 노래』공연.
• 1981년 제3시집『율律』출간(문학예술사), 한국시협상 수상.
• 1982년 동아일보 월평 대담(1~6월, 김주연). 문인해외사찰단으로 파리, 취리히, 방콕 여행.
• 1983년 시선집『세번째의 별』출간(고려원,「이 달의 책」수상), 『달은 즈믄 가람에』연작 시편으로 녹원문학상 수상. 시론집『영혼의 날개』출간(민족문화사) <시정신>(손과손가락)동인 참여(이탄, 강우식, 김원호, 이영걸, 김종철, 10집 이후 정진규, 이건청, 민용태, 김여정, 윤석산 추가 참여 ~ 1994)
• 1984년 제4시집『달은 즈믄 가람에』출간(문학세계사, 문화부 추천도서). 5개국어 번역 시집『Mind & other Poems』간행(문장사). 8월 미국 아이와대 소재 I.W.P 초청 시인
• 1986년 문인협회 문예대학 강사(89년까지).『명심보감선』출간(샘터. 청소년 교양도서).『채근담』출간(샘터). <방산사숙> 모태가 된 첫 번째 시창작 동아리(박승미, 이정웅, 전영주, 고옥주) 창작 지도, 이후 신술래, 백숙천 추가됨.
• 1987년 제5시집『어둠보다 멀리』출간(오상), 월탄문학상 수상. 시선집『꿈꾸는 판화』출간(문학사상사). 고창수 영역 6인 시집『Korean Poetry 1』수록.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 연구위원. 가톨릭 입교. 두 번째 시창작 동아리(하영, 지인, 김정묘, 이화숙, 김주혜 등) 지도.
• 1988년 제6시집『노자시편』출간(문학사상사). 제1시집『장자시』를 1,2권으로 분책 재간행(문학사상사). 시선집『스물 세 살의 가을』출간(예전사). 『시창작 강의』출간(작가정신, 강우식 공저). 문학아카데미 창립(4월 19일)> 초대의장에 강우식 추대.『』
• 1989년 제7시집 『너의 이름 나의 시』출간. 윤동주문학상 본상 수상.『시창작 방법론』출간(작가정신, 강우식 공저). 명시 에세이『꿈꾸는 삶의 불꽃』출간.
• 1990년 캐나다 외무성 초청으로 캐나다 밴쿠버 등 5개 도시 시찰(밴쿠버, 오타와, 캘거리, 토론토, 몬트리올)
• 1991년 시선집『하늘꽃』간행(미래사). 동국문학상 수상.
• 1992년 제8시집『푸른 별의 열두 가지 지옥에서』출간(청하). 자료관장 재임시 예술의 전당 이전과 관련 베를린, 파리, 런던 등 유럽 3개 도시에 자료 구입 출장 여행.
• 1993년 명상록『마음의 샘』(출협 청소년추천도서).
• 1994년『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출간(강우식 공저, 문화부 추천도서). 문예진흥원 20년 만에 퇴사(자료관장, 홍보출판부장, 문화총괄부장, 문화발전연구소, 조사연구부장 역임). 문학아카데미 대표로 상근. 동국대 동문여행 모임 세월회 결성.
• 1995년 제9시집『나무 사리』출간(문화부 추천도서).『어린이글짓기 소프트 200』출간(이탄 공편, 간행물윤리위 추천 도서). 동국대 문예대학원 출강(현재까지). 추계예대 문창과 출강(1008년까지). 계간『문학아카데미』창간(봄호). 12월 월간『문학과 창작』으로 변경, 발행 및 편집인.
• 1996년 삼성교육원 강사. 제16차 세계시인대회 참석(일본 마에바시).
• 1997년 공초문학상 수상. 고창수 영역으로 미국 코넬대에서 영시집『SENDING THE SHIP OUT TO THE STARS』간행. 『시를 어떻게 고칠 것인다』간행
• 1998년『한국의 명시를 찾아서』간행(『꿈꾸는 삶의 불꽃』증보판, 출협 청소년추천도서).
• 1999년 경기대 국문과 겸임교수.
• 2000년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장.
• 2001년 문예진흥원 지원 제10시집『SF-교감』발간. 경기대 문창과 대우교수(2003년까지). 성균관대 국문과 출강(2005년까지)
• 2002년 우엔 쾅티우 베트남역『한국현대시인 5인 선집』수록.
• 2003년 동국문학인회 회장(2009년까지 3연임)
• 2004년『문학과 창작』계간 변경(봄호부터). 동국대 문창과 겸임교수(2008년까지).
• 2005년『박제천시전집』전 5권 발간. 6월 27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출판 기념회. 7월 1일 아내 김정희 사별. 성동고 총동창회 <자랑스러운 성동인> 추대.
• 2006년『영역 한국 현대시 99인선』편저
• 2007년 제11시집『아,』출간. 민용태 역 스페인어 시선집 출판(스페인 Verbum). 『일역 한국 현대시 105인선』편저. 8월 아들의 웨딩파티 관련 미국여행, LA 만리장성, SFO 한국방송회관 등에서 문학강연.
• 2008년 시집『아,』펜문학상 특별상 수상. 문회ㅏ부 우수교양도서. 김금용 중역시집『한국현대시 7인선』수록.
• 2009년 고정애 일역시집『장자시』출간(일본 유스리카).
• 2010년 Antoine Coppola와 고창수 공역 불역 시집『달마시집』출간(프랑스Sombres Rets). 제12시집『달마나무』출간.
• 2011년 1월『35인 불역시선집』(Sombres Rets) 편저. 동국대 대학원 출강. 활판시선집『밀짚모자 영화관』간행.
[가족사항]
아내 김정희(마틸다) 동국대 국문과 및 성신여대ㅑ 대학원 염직 디자인 전공. 2005년 7월 1일 사별.
아들 박진호 JINO PARK : 홍익대 서양화과 졸업, 파리 국립장식예술학교(아르데코) ENSAD Diploma. 미국 펜실베니아로 이주. 작가생활.
며느리 칼리 아이든 CALLY IDEN : 미국 쿠퍼 유니온 졸업,. 타일러예술대학 전임강사.
딸 박서진(수진, 루시아) 성심여대 국문과 졸업. 동국대 문예대학원 문창과 졸업. 2005년 문화일보 시 당선, 시집『중독된 사랑』발간
사위 이일구 : 한양공대 졸업. 모토롤라 근무.
친손(정주, 지용) 2녀, 외손(이유빈, 이유찬) 1남 2녀.
[현재]
문학아카데미 대표, 계간『문학과 창작』발행 및 편집인
<방산사숙> 배출 시인 224명(2011년 현재 워크숍 및 단기 연수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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