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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운명의 장난
친하게 지내던 여자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오직 시장에 갔다가 집으로 왔지만 전 보다 행복했다.
아기가 생겨 배가 부르자 신랑은 더욱 끔찍하게 사랑해 주었다.
가을에 아기를 낳았는데 이게 문제였다.
아기가 춤추던 남자를 꼭 빼 닮았다.
완전 일본 남자였다.
남편은 며칠을 밥도 먹지 않고 울더니 같이 조선으로 가자고 했다.
남편은 나를 친정으로 데리고 와서는 자기 혼자 일본으로 가버렸다.
해가 바뀌고 여름이 와도 남편은 오지 않았다.
어느 날 해방이 되었다.
해방이 되었지만 일본에서 사업을 하는 남편은 영영 오지 않았다.
엄마에게 지난 사정을 이야기했다.
놀란 엄마는 아버지에게 이야기도 못하고 울었다.
아버지도 결국 알았으나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가을일이 끝나고 하루는 아버지가 아기는 집에 두고 시장에 따라 가자고 하셨다.
용기리에서 기계 장터까지는 15리 길이다.
버스도 귀하던 시절이라 아버지와 같이 걸어가는데 겨울바람이 차가웠다.
말없이 한참 가시던 아버지가 이름을 불렀다.
참으로 다정했다.
“아기는 에비가 키워주마, 너는 팔자 고치도록 해라.” 하시고는 말이 없었다.
한참 걷다가 아버지는 “내가 너무 어린 너를 시집보낸 것이 죄다. 에비를 용서해라.” 하시더니, 안주머니에서 무엇을 꺼내서 “이거 받아라,” 하셨다.
천으로 싼 것이 딱딱하고 묵직한 무개가 있었다.
“네가 어려울 때 팔아 쓰도록 넣어 놔라. 금이다.” 하셨다.
다시 주머니에서 제법 많은 돈을 꺼내 주셨다.
기계 장에 와서 아버지는 가방을 하나 사고 여기 저기 다니며 여자들 일용품을 싸 주셨다.
촌사람들은 해방 후 가난하던 시절이라 싸 입지도 않던 내복이며 속옷도 몇 벌식 샀다.
눈치를 챘다.
“나는 오늘 집으로 못 간다는 것을…….”
점심때가 좀 지나서 음식점에 들어가 국밥을 싸주셨다.
아버지는 술을 반주전자 받아 잡수시면서 이름을 부르더니 “오늘 네 서방 될 사람을 만날게다. 내가 보니 사람은 괜찮더라! 청송 도평 사람이다. 농사는 겨우 밥 먹을 만큼 있더라. 내가 논도 얼마 싸 줄 테니 가서 잘 살아라.”하시며 어느 집으로 들어 가셨다.
아마 아버지 친구 댁인 것 같았다.
그 집 안채에 나를 두고는 사랑으로 가시더니, 얼마 지나서 사랑으로 불러 갔더니 어른들 몇 분과 같이 젊은 남자 하나 같이 앉아 있었다.
그 남자와 아버지 사이에 나를 안치더니 그 사람 손과 내 손을 잡고는 “잘 부탁한다.” 하시고는 “길도 먼데 나서 거라.” 하셨다.
나선 남자를 따라 도평 가는 버스를 탔다.
차안에는 장날이라 앉을 자리가 없어 도평까지 서서 갔다.
기북 장터에서 내려 남자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니 겨울이라 캄캄했다.
집은 초가집이라도 잘 지은 집이었다.
마당도 넓고 부모들도 있었다.
어린 계집아이 하나 있었다.
남자의 딸 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시어른이 어디서 만들어 온 아이였다.
남자는 인물도 좋고 착했다.
다음 날 집안 어른들이 모이고 돼지도 잡고 잔치를 하며 어른들에게 인사를 시켰다.
새 남편과 열심히 일하고 재미있게 살았다.
부모들도 아가 너는 집안 일만 해라하고 들일을 시키지 않았다.
아마 아버지가 논을 싸준 보람인지 모른다.
남편도 그렇게 막일은 하지 않고 공부도 일정 때에 소학교를 나왔다.
시아버지는 선비라고 하며 더러 손님들이 자주 왔다.
아버지가 사준 논이 열 한 마지기였다.
그 외에도 밭이 5,000평이 되고 논농사도 열다섯 마지기나 있었다.
아버지가 싸준 것을 합치면 스무 여섯 마지기다.
이만하면 촌에서 잘 산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된다.
이듬해 봄 일꾼들이 못자리를 할 때에 친정아버지와 어머니가 다녀가셨다.
여름부터 배가 불러 다음해 봄에 아기를 낳았다.
그 애가 수야다.
여름 수야 백일에 백 떡을 하고 동네잔치를 했다.
많은 손님들이 왔다.
전처가 삼 년 동안 배태도 못하고 열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3대 외동이던 집이라 만약 자식을 못 낳으면 내가 친정에 두고 온 아이를 양자로 들이기로 하였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논을 싸준 것은 조건이 아니고 그냥 나를 위해 주신 것이었다.
수야 엄마의 인생에 가장 행복한 황금기였다.
동네서도 사랑을 받았다.
집안이 모두 인심이 좋았다.
수야가 네 살 나던 해 여름 전쟁이 났다며 사람들이 피난을 갔다.
피난길에 남편이 그만 인민군에 잡혀갔다.
그 통에 피난을 가다말고 기계에서 멈췄다.
죽어도 집에 가서 죽는다며 시부모들이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셨다.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인민군들이 일체 피난민에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기계 서(西) 숲에서 시아버지가 아는 집에 우선 들어가니 모두 피난 가고 없었다.
기와집에 마당이 넓었다. 도장에는 찧어 놓은 쌀도 두가마니나 있고 집안에 우물도 있어 지내는데 불편은 없었다.
부잣집이라 장독대에 장도 골고루 있었고 도장에 먹을 것이 많았다.
기계 유씨 집안 선비로 시아버지와는 왕래가 많았다고 한다.
인민군들이 밤에는 등불을 못 켜게 했다.
불을 보고 미국 놈의 비행기가 폭격을 한다고 했다.
하룻밤에는 인민군 셋이 총을 들고 와서 나를 강간하려고 했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말리다가 인민군 칼에 찔려 쓰러졌다.
인민군들은 사람을 죽여 놓고 거기서 셋 놈이 일을 보고 갔다.
어쨌든 옷을 걸치고는 어른들에게 가니 시어머니는 죽었고 시아버지는 배에 칼을 맞아 기절했다가 정신을 차렸다.
우선 이불솜으로 피를 막았다.
날이 새자 집 앞에 있는 밭에 구덩이를 혼자 어렵게 파고 있는데 지나던 인민군이 보고 와서 왜 그랬느냐고 물었다. 집에 들어와 보고는 시어머니를 묻어 놓고 가서 약을 가져오더니 시아버지 치료를 해주고는 내게 약을 주면서 치료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인민군들이 주고 간 약을 발라도 여름이라 칼 맞은 자리에 계속 고름을 흘리더니 보름 정도 고생하다가 결국 돌아가셨다.
수야를 데리고 어떻게 기북 용기리 친정집으로 갔다.
친정집에도 모두 피난을 가고 아무도 없고 마을도 텅 비었다.
아기를 데리고 있자니 무서웠다.
어느 날 군인 차들이 지나 갔다.
피난 갔던 사람들이 더러 들어오기도 했다.
추석이 지나서 친정식구는 모두 무사히 돌아왔다.
도평 시가(媤家) 집으로 왔지만 이제 시가(媤家) 집 식구는 아무도 없고 시아버지가 밖에서 만들어 온 아기씨는 없어져 버렸다.
수야 아버지가 인민군에 잡혀가는 통에 정신이 없어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많은 농사를 내 혼자서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친정 오빠가 와서 팔아 친정이 있는 기북에 땅을 싸 두고 나는 도평 장터에 가게 집을 하나 마련해서 점방을 차렸다.
수야가 여섯 살 나던 해에 장날이면 점방 옆에서 난전을 펴서 장사를 하던 하씨가 하루는 비가 와서 짐을 점방에 좀 들여놓자고 하기에 그러라고 하였다.
계속 장마가 져서 비가 잠시 그쳤다가 또 오고 또 왔다.
다음 장날도 비가 와서 장이 서지 않는데 하씨는 장에 왔다가 전은 못 펴고 여기 저기 다니다가 저녁녘에야 점방으로 왔다.
비 때문에 가지 못하고 점방에 앉아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저녁을 해서 먹으려고 하는데 하씨가 있어서 먹지 못하고 있는데 수야가 밥을 달라고 보챘다.
수야 밥을 주면서 하씨에게 들어와 저녁 좀 잡수라고 했더니 이 남자가 사양도 안하고 염치도 좋게 들어와 앉았다.
비가 오는 날이라 빨리 어두워졌다.
하씨가 빨리 갔으면 좋겠는데 천둥 번개까지 치며 오히려 장대비가 무섭게 쏟아졌다.
수야는 무섭다고 이불을 쓰고 잠이 들어버렸다.
한 시간이 넘게 쏟아지던 비가 이슬비로 바뀌었다.
밖에는 사방 물소리가 들렸다.
시계를 보니 아홉시다.
하씨가 가지 않고 소주 한 병을 달라더니, 자기 손으로 오징어 한 마리랑 가져왔다.
혼자서 반병 정도나 마시고는, “수야 엄마! 나하고 살림 차립시다.” 했다.
하씨 말에 놀라 그게 무슨 소리냐? 고 했더니, “내가 이 앞에서 장사하면서 벌써 두 해나 수야 엄마를 보았는데 사람이 참 마음에 들었소. 나도 전쟁 통에 마누라 잃어버리고 이렇게 장사를 해 먹지만 여자 하나는 먹여 살릴 수 있소. 수야 엄마 나하고 삽시다.”
하씨는 수야 엄마보다 나이가 열일곱 살이나 많다.
평소에 나이 차가 많은 분이라 가계 앞에서 장날마다 장사를 하고 있어도 남자로 여기지도 않았고 어릴 때에 풍상을 겪어서 팔자 고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그저 아이들이나 잘 키울 생각뿐이다.
성숙한 여자가 돼서 밤이면 남자 생각도 났지만 팔자이려니 했다.
밖에는 쏟아진 비로 물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비오는 밤에 남자가 청혼을 하니 어쩐지 몸이 뜨거웠다.
마음으로 안 되는데 하면서도 하씨가 손을 잡고 당기는데 끌려가 안겨버렸다.
마음은 안 돼 하면서도 하씨가 옷을 벗기는 것이 싫지가 않았다.
수야 아버지는 남자 그게 작고 양기가 약해 들어오기 바쁘게 소 교미 하듯이 후딱 끝내고 말았는데 하씨는 물건이 크고 힘이 좋아 깊이 들어왔다.
첫 남자와도 오르가즘을 모르고 했고 수야 아버지는 내가 하려고 하면 끝내버려 항상 허전했는데 하씨는 벌써 들어오면서부터 맛이 달랐다.
그 날 밤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뒤집히며 집이 흔들리는 그런 밤이었다.
여자가 성숙해서 그런가 아니면 오랜만이라 그런가. 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激情(격정)의 밤이었다.
하씨는 장사를 하면서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많은 여자들과 오입을 해 본 남자가 돼서 여자를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하씨가 가고 나자 잠은 오지 않고 또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하고 무서워지면서도 오랜만에 남자가 다녀간 아랫배는 시원하고 내일이 기다려졌다.
무서운 생각은 없어지고 하씨와 같이 밤을 보낼 수만 있다면 그대로 좋을 것만 같았다.
다음 날 장마도 끝나고 쾌청한 날씨에 하루 종일 기다려지던 하씨는 해가 지고 나서야 찾아왔다.
하루 종일 지루하게 기다렸으면서도 저녁에 오는 하씨를 보자 누가 보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한 마음에 점방 문을 닫았다.
미리 준비 된 밤이다.
수야는 벌써 가게 방에서 자고 있다.
낮에 미리 치워둔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 남자도 얼마나 굶주렸던지 세 번이나 일을 치르고는 어둔 밤에 돌아갔다.
부모 허락도 없이 점방을 팔아 하씨와 같이 달성에 와서 살림을 차렸다.
그것이 달성 생활의 시작이었다.
달성 생활은 그렇게 행복한 출발이 아니었다.
하씨 재산이라고는 당랑 고추 한 개와 장날 지고 다니는 장사 보따리가 전부였다.
달성에서 출발한 수야네는 도평에서 점방을 팔아 온 돈으로 3칸 접 집으로 지어져 두 가구가 사는 집의 반족을 사서 살림을 차렸는데 담도 없는 벌-집이라 밤에도 부부생활을 마음 놓고 할 처지가 못 되었다.
거기다 하씨가 장사를 나가서 한 달 혹은 두 달 만에 올 때가 많아 수야와 둘이서 외롭고 힘 드는 생활이었다.
고생 중에 용아가 태어나서 노당 절에서 중놈 때문에 생긴 일로 내 신세가 이래 되고 말았다.
거기다가 병달이 까지, 하고는 담배에 불을 붙여 물었다.
이래서 막 서른을 채우는 나이에 나는 하상과 우리용아를, 이별하고 말았다.
하상이 두 번이나 왔어 가자고 하는데 마음은 따라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미안하고 쑥스러워 그냥 안 간다고 했더니 다정스럽게 가자고 붙잡아 주지 않고 “야- 이년아 갈 거야? 안 갈 거야?” 하고 독한 욕을 하면서 윽박지르는 바람에 안 간다고 악을 섰더니, 나쁜 자식 그래도 손을 잡아끌고 같이 가자고 할 것이지, 기다렸다는 듯이 미련도 없이 떠나더라.
아지매가 하상을 따라가지 못한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버스 아지매는 내게 “덕아! 나를 친구 수야 어미라고 늘 잘 해줘서 고맙다. 네가 전에 술에 취해서 너부러진 나를 달성 숲에 있는 농막으로 데려다가 씻겨 주고 간 거 내가 알고 있다. 그 때 내가 정신이 있으면서 인생살이가 서럽고 분해서 괜히 소리 지르고 미친 짓을 안 했나. 네가 옷을 벗겨 씻기는데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그냥 정신이 없는 척하고 있으면서, 혹시 네가 젊은 놈이 돼서 ‘이놈도 버스를 타고 싶어서 이러나’ 했는데 그냥 씻겨서 이불을 덮어 주고 가는 것이 참 고맙더라. 덕아 고맙다!” 하고는 눈물이 흘렀다.
내가 사실 잘 해준 것이 없는데 고맙게 여겨주어 도리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 들을 때는 경멸과 조소를 하며 장난으로 들었으나 다 듣고 나니 기분이 숙연하다.
병 밑바닥에 조금 남은 소주를 두 잔에 나누어 부으니 반잔도 안 돼는 것을 같이 마시고 일어나면서 “아지매 갑산 어른 모시고 남은여생을 행복하게 잘 살아라.” 하고 인사를 하는 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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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 인물이 생을 살아가는데 온전한 자신의 의지만으로 살아갈수가 있겠는지요, 더러는 포기하고 더러는 수용하면서 그것이 또한 자신의 생이라고 살아갑니다.. 문제는 누군가가 그 인생을 가벼이 생각하는데 있을것 같습니다. 도덕적 비 도덕적을 떠나서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생을 다들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것으로 생각합니다. 험난한 세상에서 잡초처럼 살고싶었던 이가 누가 있었겠는지요...
8, 9번이 너무 빠르게 진행된 것 같아 아쉬움이 있었습니다만 1편부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파란만장한 수야엄마에 대해 손가락질 할 사람은 없겠네요. 불행한 역사가 만든 희생자일 수도 있겠기에 말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