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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형
24. 다음 기후 그래프에 해당하는 기후의 명칭과 특징을 서술하시오.
24. 정답: 열대 사바나 기후. 연중 기온이 높고 건기와 우기의 구분이 뚜렷하다.
위의 시험 문항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나라의 주관식 혹은 서술형이란 단답식 혹은 그와 거의 유사한 짧은 서술형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선다형 혹은 단답형 문제의 답을 다는 것이 한국의 시험이다. 이런 문제만을 풀이하는 것이 교육이고 또 공부라면 개인의 창의성은 어떻게 길러질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런 객관식 시험 혹은 답답형 중심의 출제가 주는 악영향은 국어나 사회 같은 인문 과목뿐만 아니라 수학이나 과학에도 극히 나쁜 영향을 끼친다. 고교 수학의 경우 큰 문제는 교과서와 부교재(각종 참고서, 자습서, 문제집)의 심각한 양적 질적 불균형이다. 즉 교과서의 서술에 비해서 참고서나 문제집 등의 내용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가령 미적분 1이란 고교 수학 교과서의 경우 <접선의 방정식> 이란 항목이 있는데
교과서의 서술은
1. 접선의 방정식 밖에 없는 데 비해서
참고서의 경우 같은 제목 하에
1. 접선의 방정식
2. 접선의 방정식 구하는 방법
3. 접선에 수직인 직선의 방정식
4. 두 곡선의 공통접선의 조건 등으로 무려 4배나 교과서보다 서술이 많다.
그리고 이런 제목하의 유형별 문제 분석이 보통 6 ~ 10 개씩 붙는다. 결국 교과서만 공부해서는 점수를 잘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니 예전에 서울대 입시 1등한 학생이나 수능 시험 전국 1등 한 학생들이 “교과서로만 공부했어요” 라고 신문기자 회견을 하면 풍자의 대상이 된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수학 같은 경우 교과서로만 공부하다가는 전교 1등은 커녕 내신 5등급 되기도 어려운 지경이다.
그리고 이렇게 유형별 풀이만을 공부의 전부로 알고 죽기로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은 창조적인 사고나 비판적인 사고 혹은 논리적인 사고를 배우기 어렵다.
심지어는 국어 특히 시(詩) 해석이나 분석의 경우 가장 문학적이고 정서적인 시(詩)를 철저히 수학적으로 분석을 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자기 시에 대한 수능시험 문제를 보고 전혀 풀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래의 표는 KBS의 “명견만리” 라는 프로그램에서 “시인과 함께 풀어보는 수능 모의고사” 라는 제목의 방송이 된 적이 있다.
수능 모의고사 (2009년 9월 실시) 시험의 언어 영역(국어)에 출제된 문제 중 최승호 시인의 시(詩) “아마존의 수족관”에 관한 출제 문제가 너무 어려워 - 혹은 객관성을 결여하여 상당한 사회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다음은 당시 신문의 논설이다.
[중앙일보 사설] “내 시(詩) 출제 문제 나도 모두 틀렸다”
시(詩)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라는 말이 있다. 창작자인 시인의 손을 떠난 시를 감상하고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문학교육 현실에선 ‘시는 시험 출제자의 것’이라는 말을 덧붙여야 할 것 같다. 최승호 시인이 엊그제 본지 인터뷰에서 쏟아낸 “내가 쓴 시가 나온 대입 문제를 풀어봤는데 작가인 내가 모두 틀렸다”는 한탄을 들어봐도 그렇다.
최 시인의 작품은 수능 모의고사 문제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는 모의고사 중 자신의 시 ‘아마존 수족관’에 관한 문제를 풀어봤는데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최 시인이 “작가의 의도를 묻는 문제를 진짜 작가가 모른다면 누가 아는 건지 참 미스터리”라며 쓴소리를 할 만도 하다. 이런 웃지 못할 상황은 비단 최 시인에게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십수 년 전 신경림 시인도 한 중학교에서 자신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에 관한 문제 10개를 풀었는데 겨우 세 문제밖에 맞히지 못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학교 교육에서 시는 시 자체로서 음미하기보다는 분해·조립하는 기계 부속품처럼 둔갑해 버렸다. 한낱 문제풀이를 위한 분석 대상으로 전락하다 보니 시의 이미지와 리듬, 글의 맛과 멋은 뒷전이고 주제가 뭔지, 사조(思潮)가 뭔지 등 기계적이고 획일적인 답안 찾기에 매달리기 일쑤다. 작가의 의도보다는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게 먼저다. 이러니 작가가 자신의 시에 얽힌 문제를 풀지 못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교육은 학생을 문학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할 뿐이다. “이런 가르침은 ‘가래침’”이라는 최 시인의 한탄은 죽은 문학교육에 대한 뼈아픈 질타다.
객관식 시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유로 난해한 문제풀이용 ‘죽은 문학교육’에 학생들을 계속 옭아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학창 시절 좋은 작품을 읽고 쓰는 것 자체를 즐기게 해줘야 한다. 그러자면 지금 같은 기계 분해식 문학교육부터 탈피해야 한다. 문학을 문학으로 접하게 하는 교육 방법. 교육당국과 국어교사들이 서둘러 찾아야 할 숙제다. (2009.11.23 02:07 입력)
그런데 이런 가래침의 가르침(교육)이 비단 국어 뿐만 아니다. 영어도 마찬가지이고 과학도 마찬가지이다. 내신은 암기식이고 수능시험은 모두 교과서 밖으로 나간다. 가령 고교 내신 시험의 영어 문제를 보면 작문하라는 것이 대부분 교과서 본문 암기를 요구하고 있다. 교과서는 물론 모의고사 지문까지 거의 암기를 해야 제대로 문제를 풀 수 있다. “죽은 문학 교육” 이 비단 국어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모든 과목의 목적이 제대로 배우고 가르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오직 성적, 즉 인간성 등급 분류에만 목적이 있다 보니 이렇게 죽은 교육, 가래침의 교육으로 되고 그런 결과 이제 드디어 사회 전반적인 무능과 도덕적인 타락, 공직자 부패, 불법 국회의원의 양산(量産)으로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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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중앙일보 사설은 “객관식 시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유로 난해한 문제풀이용 ‘죽은 문학교육’에 학생들을 계속 옭아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학창 시절 좋은 작품을 읽고 쓰는 것 자체를 즐기게 해줘야 한다. 그러자면 지금 같은 기계 분해식 문학교육부터 탈피해야 한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엄밀히 말하면 국어 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평가위주, 시험위주의 교육
더 나아가 학벌주의 교육의 폐단인 것이다.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는 독일식의 대학제도, 교육 제도를 도입하자고 필자는 꾸준히 주장을 해오고 있다. 미국식의 대학자율주의 역시 이런 획일적인 사고를 막고 자발성과 독창성을 키울 수 있기는 하지만 “대학서열주의” 라는 영미식 대학제도의 결점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시행이 불가능할 것이다.
3. 결론 : 주관성 키우는 교육으로
위에서 우리는 성적 위주의 교육, 시험 위주의 교육, 객관식 위주의 교육이 가져오는 문제점들은 각 교과목 별로 살펴보았다. 이런 치명적인 병폐를 묵과하고 “교육 평가”, “수행평가” 혹은 “과정평가” 혹은 “자유학기제” 혹은 “영어 절대평가제도“ 같은 미봉책을 가지고 교육을 바로 잡기에는 한국의 교육은 너무나 황폐하게 되었다. 한국의 교육은 교육공학적으로 치료하기에 너무 썩었다. ”가르침“이 ”가래침“이 된 사회에서 미세한 교육 공학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교육공학이 아니라 교육정치학이 필요하고 교육제도의 혁명이 필요하다.
말장난 같지만 지금 한국 사회가 필요한 것은 객관적 지식이 아니다. 누구나 다 아는 지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누구나 다 아는 지식을 좀 더 정확하게 암기한다고 해서 그게 사회 발전과 사회 구조 변혁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가령 법서(法書) 100,000 페이지를 잘 암기하고 사법고시를 붙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현명한 법관이나 변호사가 될 수는 없다. 현금의 로스쿨 제도 역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로스쿨은 사회적으로 신뢰받지 못하고 많은 비판과 논란 속에 있다. 국민들은 로스쿨의 입학 전형(시험)의 공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사법고시도 로스쿨도 모두 큰 폐단이 있고 가장 합리적인 법관 양성 내지 자격증 시험은 역시 독일식의 국가시험(Staatsexamen) 제도이다.
이런 시험의 공정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등학교 시험은 거의 객관식으로, 수능 시험처럼, 본다.
그러나 그 경우 위에서 최승호 시인의 시(詩) 문항에서 보는 것처럼 “난해한 문제풀이용 ‘죽은 문학교육’에 학생들을 계속 옭아매고”, “기계 분해식 문학교육”이 된다. 이런 정량적(定量的) 평가의 모순을 피하기 위하여 면접 시험으로 보면 로스쿨 입시 부정 의혹처럼 객관성과 공정성을 의심받게 된다.
한국에서 이처럼 평가와 입시 전형의 문제는 도무지 풀리지 않는 매듭처럼 꼬여 있다. 필자의 생각에 이런 사법 시험 제도의 유일한 대책은 미국식의 로스쿨이 아니라 독일식의 리포트형 국가 시험이다. 독일에서는 사법 시험도 근본적으로는 리포트로 본다. 수험생들은 시험 주제를 받으면 대략 1주일 간
집에서 이것을 연구해서 답지를 만든다. 이 시험은 근본적으로 리포트이기 때문에 시험관들의 첨삭지도를 볼 수 있다. 여기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이런 시험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가 깔려 있지만 현금의 철저한 암기식의 사법고시와 공정성의 시비가 있는 로스쿨의 소위 정성적(定性的) 평가 - 사정관 제도 혹은 면접 시험 - 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시험을 통한 주관성(주체성)의 배양은 점수만을 횡하니 알려주는 객관식, 선대형의 시험을 통해서는 이루어 질 수 없고 오직 리포트식 시험과 거기에 대한 채점관 혹은 시험관들의 첨삭지도와 구두시험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해방 후 미국의 물자와 더불어 미국식 실용주의 철학의 산물인 객관식 시험이 우후죽순 격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는 미국이라는 철저한 시장주의, 개인주의, 자유주의 국가와 그 교육 시스템 하에서 작동되는 것이지 한국처럼 국가 교육 제도와 국가 시험제도가 천년이상 지속된 나라에서는 절대로 맞지가 않는 것이었다. 미국이 아무리 좋은 나라이지만 문화적인 풍토와 역사를 무시하고 그 나라의 제도까지 채용하면 안 된다. 따라서 로스쿨 제도 역시 실패한 미국 제도의 도입으로 판정을 내리고 새로운 사법 시험제도의 도입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한다.